안전예방을 함으로써 안전수칙을 준수하는 '사람들에게' 이득이 되는 건 맞지만 반출생주의는 고통을 예방하는 그런 주체나 실체가 없음
그런 실체가 있다고 믿는 순간 존재하지 않는 아기 영혼에게 이득이 있다고 믿음으로서 '존재하지도 않는 아기영혼'을 믿는 종교로 봐야함
참고로 사상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은 광신도적 종교와 다름 없음 맥스웰 테일러의 '광신도들'의 특징을 몇가지 나열하자면
1) 사회적 표준에서 많이 벗어나고(반사회적)
2) 추호의 의심도 없이 확신하며 (반출생주의에 대한 확신)
3) 이분법을 사랑하며 (출생주의 반출생주의 단순화하여 대립하기)
4) 경멸과 무시를 하는 것
경멸과 무시 비난 비추 등 환영함 나는 차피 반출생주의를 철학이나 사상도 윤리도 도덕도 아니고 광신도적 종교로 보고 있음
220.81 졸라 웃기는 새끼네 ㅋㅋㅋ
야이 병신아 그럼 북한의 남침대비는 왜 하는거고 이상기후대비는 왜 하냐?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비유 자체가 잘못됨 그건 '존재하는 자'들의 안전 예방으로 남한의 주체의 이익을 보지만 반출생주의는 비존재나 존재나 둘 다 이익을 보는 안전 예방이 아님 그런 이익의 보는 주체나 실체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면 이익을 가져오면 됨
지금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대로 판단하고 행동해도 되는거임? 정말 존재하지 않으면, 배려할 필요가 없다면 배려하지 않아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함 출산이란 행위에 있어 당사자를 배려하지 않으면 태어나서 고통과 죽음을 무조건 겪게 되는데?
비유 자체가 잘못됨 마음대로 판단하고 행동해도 된다고 주장한 적이 없음 핀트는 반출생주의로 인해 '이익'을 보는 주체나 실체가 없다고 비판하는 것
미래의 추상적인 가능성이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미래에 대비하는 행동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가정하는 건 매우 위험한 발상임;;; 네 논리면 시한부 인생을 태어나게 하는 것, 전쟁통에서 아이를 낳아 죽게 만드는 것 모두 아무런 윤리적 문제가 없음
그렇게 주장한 적 없음 반출생주의는 비존재나 존재나 이익 보는 주체나 실체가 둘 다 없음 남침대비는 남한의 안정성을 증가시키지만 반출생주의는 그런 안정성을 증가시키는 주체나 실체가 없음
이익을 보는 주체는 없지만 피해를 보는 주체도 없지
이익을 보는 주체나 실체가 없기 때문에 '이타'라고 말할 수 없으며 뿐만 아니라 피해를 받는 주체나 실체도 없기 때문에 '비윤리적'이라고도 말 할 수 없지 아무도 '이익'이 없다는 건 확실함 반출생주의는 이론상으로 비존재는 피해를 받진 않지만 존재자의 '손해의 위험요소'가 증가한다는 것은 사실임 왜냐 위에 처럼 반출생주의가 무조건 옳아서 거의 광신도적으로 절대신봉하여 생떼쓰면서 무의미한 말장난을 계속 반복하면 존재자의 '시간을 손해' 보기 때문임
반출생주의 모토는 존재하지도 않은 비존재에게 이득을 가져다주고 싶은 것이 아님... 피해자를 만들고 싶지 않은거임;;
남침대비가 남한의 안정성을 증가시켜준다. 그래서 남침대비를 해야한다. 비출산을 행하면 고통받고 죽는 생명체가 없다. 그래서 비출산을 행한다. 뭐가 문제인데?
말 그대로 남침대비는 남한의 안정성을 증가시켜줌 '비출산을 행하면'이라는 말에 어폐가 다소 있음 비출산은 출산의 부재이지 '비출산을 행하면'이라는 문장 구조 자체가 자연스럽지 못함 출산의 부재는 안정성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출산의 부재임 그것을 대비라고 할 순 없음
남한의 안정성? 남침대비한다고 미래에 남한이 붕괴되지 않을거란 보장이 있음? 아직 벌어지지 않은 미래를 마치 이미 존재하는 것처럼 왜 얘기함
반출생주의는 예를 들어 '사과가 맛있따' 라고 답을 미리 정해놓고 사과가 맛있다는 그 근거를 무수하게 나열한 '믿음'임 사과를 먹지 않는 대책이라든가 대비라든가 그런 건 없음 왜냐 반출생주의는 실질적으로 '피임'을 잘하는 방법은 하나도 서술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걸 보고 대책이나 대비라고 하는 것임
존재자 입장에서 손해를 본다? 뭔 개같은 논리지?
지금 실질적으로 무의미하게 존재자의 '시간의 손해'를 보고 있음 전혀 실리적 의미나 실리적 이익이 없음 그런 실체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면 가져와오면 됨
대상이 반드시 물질적으로 존재해야만 의미가 있는것임? 추상적 가치를 부정하는 거야?
아니 ㅋㅋㅋㅋ 웃기는 놈이네 네 혼자 자꾸 딴소리할래? 아니 존재하지도 않는 비존재한테 안정성이 왜 필요함
그래 내 말이 그말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비존재에게 '안정성'이라는 이익보는 실체가 없다 물론 존재자의 안정성의 '이익'의 실체도 없다 예시를 든 남침을 다시 예를 들어 역설로 반출생주의로 저출산이 실현되면 국력을 약하게 만들어서 존재자에겐 잠재적 '위험요소 증가'가 될 수 있음(개인적으로 반출생주의와 저출산은 인과관계나 선후관계가 별로 없다고 보는 편이고 반출생주의가 핵심적인 저출산의 원인으로 보지도 않지만)
그럼 출생주의를 행하면 이득과 행복의 비중이 더 큼? ㅋㅋㅋ
출생주의는 아예 논의하지도 않았음 논점은 반출생주의의 오점을 비판하고 있는 것
무의 상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개념임? 유의 상태와 다른 개념의 상태가 있냐는 말이다. 4차원의 또 다른 개념이 있는거야?
무는 없는 개념이 아니라 그것을 실체화하여 존재보다 무가 낫다라는 말 자체가 넌센스적인 전제임
아니 ㅋㅋㅋ 비존재가 존재보다 낫다는 것이 아니라 비존재하는 시나리오가 존재하는 시나리오보다 더 낫다구요 ㅋㅋㅋ
그런 비존재하는 시나리오 자체가 실체가 없다는 것임 그건 '개념'이고 '믿음'임 존재하지 않는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의 시나리오라는 '개념'이 고통의 부재라는 '이익'을 봤다고 하는 '믿음'
아나 답답하네 비존재하는 시나리오가 존재하지 않음? 내가 아이를 안낳는 시나리오 A는 존재할 수 있고 내가 아이를 낳는 시나리오 B도 존재할 수 있지.
ㅇㅇ 그건 그냥 상상이고 개념이고 믿음임 '아기영혼 시나리오'라고 작성해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음
ㅋㅋㅋ 내가 지금 아이를 안낳아서 새로운 존재의 고통과 죽음이 실체화가 안되었는데 무슨 상상이고 개념임? 내가 비존재하는 시나리오를 실천해서 그럼 고통과 죽음이 생성됨? 비존재하는 시나리오를 실천하면 무의 상태가 되지. 반출생주의자들이 원하는 건 고통과 죽음의 재생산을 막는것이고 고통과 죽음의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는 이타심이라고 볼 수 없음 지금 어디선가 잠자고 있는 철수와 영희가 이타적이라고 볼 수 없듯 출산의 부재는 이타적인 이익을 도모하지 않음 무의 상태라는 것 자체가 실체가 없음 무의 상태라는 건 그냥 니 머릿속의 개념일 뿐이지 실제로 존재하지 않음
재생성은 없어지게 됨.
비존재 시나리오를 실천해도 새로운 존재의 고통과 죽음이 생산된다면 실체화할 수 없는 허상이 맞지.
비존재의 시나리오를 선택하든 말든 너는 무의 상태를 체험할 수 없음 왜냐하면 무의 상태는 개념이고 상상이기 때문이다 반출생주의를 아무리 믿어도 너는 태어난 게 사실이고 무의 상태라는 개념은 그냥 좋게 말해서 가능세계이지만 상상이고 허상임 대비나 대책이 아니라
존재하지도 않는 비존재에게 무슨 이득을 줌? 무의 상태를 원하는거지
존재하지도 않는 비존재에게 이득이 없다고 주장하는 게 나임 무의 상태를 원한다는 건 너지 비존재가 무의 상태를 원하진 않음 왜냐하면 비존재든 무의 상태든 니 머릿속의 개념일 뿐이다 그렇다고 너가 반출생주의를 믿어서 실질적으로 '무의 상태' 가 되는가? 그것도 아님
ㅋㅋㅋ 이타심을 버리고 이기심을 행한다면(출산) 바로 매우 높은 확률로 존재상태가 확정되어 버림. 시간은 현재에서 미래로 흘러감. 너의 논리는 미래의 의미와 추상적인 개념을 부정하는 것임.
이타심을 버리라거나 이기심을 취해야 된다고 주장한 적 없음 넌 거꾸로 알고 있음 이게 반출생주의의 최대 오점 중 하나임 아이에게 이타적인 것이 이타적이라고 부르지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이타적'이라고 부르지 않음 그런식으로 '이타'를 포장한다면 지금도 어디선가 잠자고 있는 철수와 영희도 이타적으로 포장할 수 있을 것
자 그럼 내가 하나 물어보자. 왜 복제인간과 유전자 조작 동물 생산에 상당수의 과학자들이 반대하는 걸까? 그들이 현재 존재하지 않으니 그들의 잠재적 입장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걸까? 태어나지도 않은 복제인간과 유전자조작동물 들의 잠재적 고통을 생각해서 생산을 반대하는 건 이타심이 아님?
그건 그걸 반대하는 너한테 물어봐야지 나한테 물어보면 안되지 고통의 생산을 반대하는 것 까진 나도 동의하지만 내가 지금 오점을 비판하고 있는 건 반출생주의로 인해 '고통의 생산'을 막았다는 주체나 실체나 '고통의 부재'를 겪거나 체험할 수 있는 주체나 실체 자체가 없다고 하는 것이 핵심적인 논의 내용임
자꾸 딴소리 하지 말고;; 추상적인 미래의 개념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너의 논리적 오류를 회피하지 말라니까?
그건 다 시나리오 속에서 상상하는 '고통의 부재' 또는 '고통의 재생산성을 막았다라는 시나리오' 다시 말해 소설에 속함 반론하고 싶으면 고통의 재생산성을 막았다라는 그 주체나 실체를 가지고 오면 됨 그런식으로 포장하는 건 어디선가 잠자고 있는 철수와 영희도 '고통의 생산을 막았다 그래서 이타적이다'라고도 포장할 수 있을 것
그러니까 고통의 부재를 겪을 주체가 없다고 해도 고통의 부재를 겪을 주체가 없는 시나리오 자체가 고통의 존재를 겪을 주체가 있는 시나리오보다 낫다구요.
그러니까 그 자체가 소설이고 그 소설을 읽는다고 이타적이라고 볼 수가 없음 왜냐 지금 어디선가 잠자고 있는 철수와 영희도 출산의 부재로 인해 고통의 재생산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타적이라고 포장(위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런식으로 출산의 부재 또는 출산의 반대가 이타적이라고 포장하는 것은 위선도 아님 실질적으로 보면 해악임 왜냐 선악의 근본 저의를 완전히 엉뚱하게 정의하고 있기 때문
무슨 소설이야 ㅋㅋㅋ 내가 아이를 안낳았는데 새로운 존재가 태어나서 고통받고 죽을 일이 있음? 나의 반출생주의 실천으로 인해서 나로 인해 피해본 당사자가 없음.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뭔 ㅋㅋㅋ 내가 욕망을 못이기고 낳았다면 당연히 태어나서 고통받고 있겠지.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은 소설이 아니지만 '아이를 낳지 않음으로서 나는 이타적'이라는 말 자체가 소설이라는 말임
핵심은 피해를 주지 말자는 거지 이득을 주자는 게 아닌데? 애초에 비존재한테 어떻게 이득을 줌? 존재하지도 않는데? 하지만 존재하지 않게 함으로써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잖아?
출산의 부재가 피해를 주지 않음이라는 말은 맞을 수 있지만 '그것이 이타적이다' 라고 말하는 순간 소설이 되어버림 계속 반복하지만 지금도 어디선가 잠자고 있는 철수와 영희도 비출산을 행함으로서 '이타적'이다 라고 포장할 수 있음
그럼 아직 존재하지 않는 모든 잠재적 존재와 가능성에 대한 모든 행동에 대해 아무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는거야?
아니 그렇게 주장한 적 없음 넌 정말 all or nothing thinking(이분법적 사고)를 사랑하구나 A를 비판한다고 해서 내가 그 반대급부인 B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게 아님
반출생주의 사상의 근본은 이타심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이타심이 아니라고 정의할 수는 없음.
이타심에서 출발했다고? 근데 왜 그 누구에게도 이타적인 결과물이 없지?
너의 논리면 인간의 감정과 행위에 대해 아무런 의미도 부여할 수 없음.
인간의 감정과 행위에 대해 아무런 의미도 부여할 수 없다고 하진 않음 단지 반출생주의의 근본적인 선악 판별 그 자체가 엉뚱하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임
새로운 존재가 태어나서 고통받고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반출생주의 사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마인드가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이상한데? 나를 납득시켜봐
이타심 그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님 실제론 이타적이지 않으면서 이타심으로 포장하는 위선을 비판하는 것
이타적인 결과물이 왜 없어? 저출산과 반출생주의 확산으로 인해 도덕과 윤리의 가치, 서로에 대한 존중에 대한 문화가 점점 커지고 있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군 그런식으로 출산의 부재나 출산의 반대를 이타적으로 포장하는 것 자체가 위선(해악)임 물론 너의 감정이 이타심일 순 있음 그걸 부정하는 건 아님 하지만 저출산율은 존재자에게 이익보는 게 아님 존중하는 문화? 여기만 갤러리만 해도 전혀 출생주의를 존중하는 문화가 깔려 있진 않은데?
반출생주의 사상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상처와 고통을 공유하고 공감하면서 고통의 총량을 줄여나가고 있고, 그렇게 해낼 수 있다.
글쌔? all or nothing thinking(이분법적 사고)나 진영논리나 흑백논리로 출생주의와 대립하여 갈등을 증가시키는 건 아니고?
반출생주의 사상의 등장으로 인해 인간을 노동력과 도구로 보는 관점이 계속 희석되고 있음. 사람들은 본인들의 삶의 가치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더욱 성찰하게 되었고 타인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감능력도 향상되고 있지.
그건 반출생주의 바운더리 안 쪽에서나 통용되는 공감이지 반출생주의의 바운더리 밖을 벗어나는 순간 공감능력의 향상이고 뭐고 적대감만 증가됨 왜냐 본질적으로 반출생주의는 출산을 해악으로 정의했기 때문임
뭔 소리야;; 우리 인류는 출산을 암묵적으로 강요받아왔고 태어날 아이의 입장, 삶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생각해보지 못하게 주입받고 살아왔음. 반출생주의 사상이 극단적일지라도 반출생주의 사상으로 인해 사람들은 매트릭스에서 깨어나게 되었지.
다시 복붙함 그건 반출생주의 바운더리 안 쪽에서나 통용되는 공감이고 고찰일 뿐이지 반출생주의의 바운더리 밖을 벗어나는 순간 공감능력의 향상이고 뭐고 적대감만 증가됨 그건 왜 고찰을 못함? 왜냐 본질적으로 반출생주의는 출산을 극단적으로 해악으로 정의했기 때문임
극단적일지라도 강렬한 임팩트가 있어야 사람들이 의문을 품고 세상이 바뀐다.
그런 극단적인 강렬한 임팩트가 존재자에게 고통의 부재가 되게 하진 않음 특히 진영논리로 A(반출생주의)와 B(출생주의)를 대립하여 대립각으로 정치질 하는것은 반출생주의가 옳건 그르건 출산할 사람은 출산하고 출산하지 않을 사람은 출산하지 않음 반출생주의가 옳아서 출산율이 낮아졌다는 인과관계 선후관계 상관관계는 없음
예를 들어 사과가 맛있다는 고찰로 인해 사과가 맛있어지는 게 아님 사과가 맛있는 사람들 끼리 사과에 대한 고찰을 선호하듯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과나무 바운더리 안 쪽에서나 공감하고 소통하지 사과를 먹지 않는 사람 또는 사과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베타적인 관계일 수 밖에 없음 그걸 보고 진영논리 및 갈등관계라고 부름
ㅋㅋㅋ 누가 보면 반출생주의자들이 현실세계에서 폭동 일으키고 신천지 회원들처럼 교회에 집어넣고 사상을 강요하는 줄 알겠음?
너보고 급진적 강요를 했다고 주장하지 않음 단지 '사상을 강요하는 잠재적 위험요소'가 있긴 하지 그것을 대비하거나 대책하는 방안도 있다곤 말 못하잖아?
반출생주의가 극단적인 광신도 사상? 출생주의자들의 반출생탄압 혹은 비출산을 원하는 젊은이들에게 가하는 폭언과 탄압에 비하면 애교지 ㅋㅋㅋ
글쌔 나도 개인적으로 주변에서 애를 왜 안낳냐고 많은 질문은 받아왔지만 단 몇마디만 주고 받았을 뿐 실질적으로 100페이지가 넘는 '사과가 맛있는 이유라는 책'도 안 읽어봤냐고 강압적으로 강요 받은 적은 없네 그런 강요는 여기서 처음 받아봄
네가 오해하는 것 같은데 너처럼 논리정연하게 반박하는 사람은 극소수일 뿐 대부분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이유로 애 입장 생각 하나도 안하고 무분별하게 낳으니까 제발 한번이라도 반출생주의 논리를 공부해보라고 간절하게 외치는것뿐임 ㅋㅋㅋ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건 이기적이고 탐욕에 찌든 부모를 둔 바운더리 안 쪽에서나 통용되는 공감이지 개인적으로 내 부모는 그렇지 않았음
하나 예를 들어보자. 아이를 낳는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본인들의 행복을 위해서" "노후에 외롭고 싶지 않아서" "인생의 목적을 찾고 싶어서" "성숙한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어서" 여기서 태어날 아이의 고통, 죽음, 변수에 대한 입장이 고려된 이유가 있음? 없잖아? 넷상에서 강하게 얘기라도 해줘야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지
모든 부모들이 네 생각만큼 그렇게 멍청하진 않음 생각보다 힘들면 아이를 출산하지 않음 물론 힘든데도 미련하게 아무 생각없이 출산을 하는 부모도 있겠지만 그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봄 그냥 그 순간순간 적절한 상황에 맞는 적절한 답을 했을 거라고 봄 모든 사람이 이타주의자라고도 볼 수 없음 모든 사람이 이기주의자라고도 볼 수 없음 반출생주의도 고통의 부재라는 이익을 도모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도 표면적으로 '이기심'으로 포장할 순 있지 마음에서부터 출발하는 이타심과 별개로 말임 포장은 하기 나름임
보셈 반출생주의자가 얼마나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는지 비추수가 현재 기준으로 11개임 물론 예상하고 글을 작성해서 나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수치지만 반출생주의자는 반출생주의 바운더리 안 쪽에서나 공감하고 고찰하지 그 밖을 벗어나는 순간 베타적이고 적대감이 근본 저의임 그것을 표면적으로든 원리적으로든 '이타심'이라고 볼순 없음 그런식의 진영논리는 정치질하는 정치가도 잘함 정치질 하는 사람도 자기 진영의 바운더리 안 쪽은 만큼은 이타적임 그렇다고 정치질이 윤리적이고 이타적이고 도덕적이냐? 내 대답은 '아님'
반출생주의가 적어도 출생주의보다 극단적이지는 않음. 오케이?
내가 계속 얘기하지만 적어도 출생주의자들보다는 평균적으로 윤리적임 오케이? 완벽한 도덕과 윤리관을 어떻게 현실화시킴?
어째 말하는 투가 소문 자자하던 분탕 같은데. 이미 논파된 사안을 똑같이 반복 재생하는 건 뇌가 고장난 것일까?
그저께 와서 논의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지 분탕이 아님
아기 영혼은 너의 인지적 착각에서 비롯된 오개념이지. 학자들이 미래 세대에 대해서 말할 때는 아기 영혼 같은 걸 생각해서 말하는 게 아니지. 미래 세대에 논하면 아기 영혼을 논하는 거고 그건 아무 의미 없다고 우기는 게 그게 직관과 유리된 개인의 광신인 거고.
그래서 반출생주의로 인해 '누가' 이익을 보는데? 아무도 이익을 보지 않음 만약 이익을 보는 주체나 실체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면 가져와보면 됨
임신할 계획을 세우고 산부인과에 갔는데 의사가 어떤 병에 걸려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지금 임신해서 애를 낳으면 애가 기형아로 태어나고, 치료하고 다음 달에 임신해서 애를 낳으면 문제 없이 아이가 태어난다고 해보자. 미치지 않았다면 치료하고 다음 달에 임신해서 애를 낳는다. 그리고 원래 계획대로 임신해서 태어날 아이(A)는 다음 달에 임신해서 태어날 아이(B)와는 다른 사람이다. 이때 존재하지 않는 A에 대해서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라는 생각을 했음. 이때 이로 인해 이득을 얻는 존재 A도 없으며 비존재 A가 실재하지도 않지만 우리는 비존재 혹은 태어날 예정으로 사실상 존재할 아이를 가능세계로 가져오고 논의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음.
그리고 이분법적인 사고로 출생주의와 반출생주의로 단순화한다고 하는데, 아이를 낳는건 항상 낳거나, 안낳거나 둘 중 하나임. 여기서 모두가 낳아도 되는가? 어디까지만 낳아도 되는가? 모두가 낳아서는 안되는가? 이렇게 갈리는거지,
A, B 둘다 논의하는 건 가능도 하고 문제도 없지만 실제 세계가 아니라 가상적인 상상의 세계임 상상의 세계에서 윤리적이어봤자 허상임
마치 트롤리 딜레마에서 A를 선택할지 B를 선택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서 'A가 윤리적이다'라고 선언하는 순간 그건 소설이 되어버리듯 가상의 세계에서 A를 동조한다고 해서 그게 착하다는 뜻이 아님 예를 들어 '1000억받기 vs 고자되기' 라는 상상의 vs놀이에서 전자가 압도적으로 고통의 부재가 높으니 vs놀이에서 전자를 선택하면 도덕적인 인간이 되는 게 아니듯;
비동일성 문제들과 같은 윤리적 문제를 다 넌센스로 취급할 것이라면 부모세대와 미래세대 사이의 윤리는 무너지게됨 안그러냐?
https://plato.stanford.edu/entries/nonidentity-problem/
그렇지 않음 예를 들어 '1000억받기 vs 고자되기' 라는 상상의 vs시나리오 자체가 실체가 아닌것을 비판한다고 해서 실제 세계의 윤리가 무너지진 않음 그렇게 주장한 적도 없고
이렇게 보자 너는 계속 뭔가의 태어나지 않음으로서 혜택을 얻는 주체를 찾고 싶어함 나도 그렇고 베너타의 하먼에 대한 반박에서도 그렇고 실제로 그런 주체 같은건 없다고 그럼에도 비개인을 말하는건 반사실적 상황에 대한 학술적인 표현의 오해로 인해서 발생한 허수아비 때리기임 반출생주의자가 어떤 수혜자를 위한 행위보단 개인의 윤리적 판단을 내린거임 위글의 임신 계획을 가진 여성의 사례가 그렇지 자신이 이런 행위를 하면 이런 문제가 생긴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 행위를 하지 않은거임 자식을 가졌을 때 그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떠한 고통을 받게 된다는 상황은 간단한 사고만 해도 알 수 있음 그래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 판단을 하는거임 그뿐임 그 행위로 실제로 누군가가 구해진다는 망상을 하는게 아니라
누군가 고통을 입을 수 있는 행위에 대한 정당화가 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는게 낫다고 진술할 뿐임
'이익'보는 주체나 실체가 없는 건 당연하고 그걸 찾으려고 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임 뿐만 아니라 가능세계에서 vs놀이를 한다고 해서 실제 윤리와는 합치되지 않는 오점을 비판하고 있는 것 내가 아무리 '전자를 선택해서 나는 윤리적'이라고 주창해봐야 실제 세계에서 윤리적이지 않으면 윤리적이지 않은 것임
그 누군가가 없다고 넌 말하겠지 태어나지 않았으니까 근데 내가 말하고자 한 부분은 선택의 상황에서 어떤 문제가 피해가 예상이 될 때 그걸 할만한 정당화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겠다 말하는게 그리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은 아니잖아. 너는 그건 어차피 일어나지 않을 일이니까 무슨 소용이냐 말하겠지 이건 서로 문제에 대한 인식이 다른 것도 있겠고 윤리적 직관의 차이도 있을거임 아마 서로 설득이 안되는 지점이겠지
예상되는 피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할만한 정당화가 없으니 하지 않는게 더 윤리적으로 나은 선택이라고 본다가 나의 입장. 너는 어차피 그건 일어나지 않았잖아 근데 윤리적으로 낫고 말고가 어디에 있냐는 입장인건데 200개가 넘는 댓글 동안 우린 서로의 입장의 차이가 더 선명해졌을 뿐임 말했다 싶이 이건 직관의 차이로 인해서 벌어진 장황한 키보드 배틀이었고 이 부분에서 새로운 소재가 나오지 않은 이상은 딱히 더 하고 싶은 말이 없음
정당화를 비판하고 있는 건 아님 '가상의 개념을 존재보다 더 낫다'고 하는 엉뚱한 정당화를 비판하고 있는 것임 그건 개인적으로 굉장히 도발적이고 자극적으로 들림 왜냐하면 존재하지 않는 건 실재하지 않기 때문
'가상의 개념을 존재보다 더 낫다' 뭐 나도 그렇고 다른 반출생주의자가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라는 반사실적말을 할 때는 실제로 태어나지 않은 나를 불러와서 비교하는게 아니라 삶의 가지는 비가역적인 박탈이 가지는 것에 대한 평가로 보는게 맞을듯 그래서 베너타 역시 언어 그대로 받아들여서 일치시키려 드는 비판에 대해서 파리에게 파리통에서 빠져나갈 출구를 가르쳐 주는 것이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문구를 변용해서 말했음
반출생주의(anti-natalism)에서 -주의(-ism)는 사회, 정치적 목적 따위를 위해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행하는 운동, 즉, 캠페인 따위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그냥, <체계화된 이론, 학설>을 의미하는 거다
반출생주의를 안하면 피해를 입는 존재는 확실히 생김
존나 답답하네 ㅋㅋ 220.80아 ㅠㅠ
영혼은 둘째치고 무와 유의 차이를 모르나??
반갤러들 주장이 이긴것같음 얜그냥 지 고집만 부리고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