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자야 되고 처씻어야 되고. 이런 반복 병신짓을 하면서도 필연적으로 타인과의 경쟁,갈등을 겪어야 되고, 그와중에 운이 나쁘면 보너스격으로 각종 질병,사고,사건의 피해자로서 정신적,육체적 상흔을 겪게 되고, 그런 중에서도 기필코 후손을 처남기고, 그 후손 역시도 반복 병신짓을 해야 되는 우주의 법칙이 끝없이 좆같다.
개인적으로 우주 메커니즘은 태엽 감아놓은 인형과 같다고 느낀다. 상위 차원 씹새끼의 설계, 계산대로 움직이는, 한 치의 오차 없는 행성과 별의 공전과 자전과 같은 반복의 삶. 지루하고 의미없는 반복이 미천한 세포 한 톨에까지 적용되는 우주.
추가적으로 누군가의 고통에 슬퍼해야 하고, 누군가의 죽음에 절망함이 삶에 상수처럼 꽂혀 있는 이 현실에서도 결국 참아내야 하고, 또 다시 일상에 들어가 처먹고 처마시고 처싸고 처자고 처씻어야만 하는 좆병신짓 반복.
이런 반복마저 원활히 할 수 없는 북한의 현실을 상기해보면, 우주는 결국 하나부터 열까지 운이 전부인 메커니즘이라 새삼 더 역겨워진다. 왜 우주는 생겨난 것이고, 왜 이 모든 것이 생겨난 것일까.
공룡이 오래도록 존재했지만 결국 그 존재 이유에 아무런 의미도 없었고, 존재했던 사실조차도 인간이라는 한 종에 의해서, 그마저도 화석으로써 아주 미세하고 희미한 자국으로만 밝혀졌을 뿐.
공룡이 그 오랜 존속 기간이 무색할만큼 찰나에 사라져 버림으로써 결국 존재의 그 의미없음에 확증을 준 것과 같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 역시 존재의 의의라는 게, 역시나 처먹고 처마시고 처싸고 처자고 처씻고 처낳고 처싸우고 처죽는게 전부인, 지루하게 의미없는 반복에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살다보면 행복과 기쁨의 순간 역시 맞이하게 되지만, 술에 취해 흥겨웠던 기분이, 다음날 술이 깨면서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길고 지독한 숙취로, 숙취 이후엔 무미건조한 기분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은 구조일 뿐이다.
행복과 기쁨이라는 것은 결국 정신적,육체적 욕구 충족이 되었을 때 느끼는 것인데,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 욕구 충족이 원만히 이뤄지는 시간보다 그렇지 않은 시간이 대부분이다. 결국 마약 복용 순간과 같은 찰나라는 것이고, 실제적으로 남는 건 늙어가는 육체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죽음의 순간 뿐이다.
생명체들에 기본적으로 심어진 죽음과 고통에의 공포. 자살을 편히,쉽게 할 수 없는 존재로 세팅돼있으니, 이 부분에선 꼭 우주 혹은 생명체들을 설계 및 창조해낸 상위 차원의 엔지니어들이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소위 말 하는 시뮬레이션 우주론.
내재된 죽음과 고통에의 공포. 부담없고 편안한 자살이 불가능하니, 부차적으로 삶은 근근히 이어가야 되고, 그와중에도 처먹고 처마시고 처싸고 처자고 처씻어야 되는 일상 반복은 해야 되니, 이런 메커니즘이 지루하고 역겹다.
혹자는 인간을 숭고하고 고결한 존재로 일컫지만,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정복하고 우위에 있음으로 기뻐하고 갈등을 조장하고, 하루 일상 중 처먹고 처마시고 냄새나는 배설물을 배설하는 더럽고 원초적인 메커니즘에서 벗어나는 인간은 태초부터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다고 보기에 틀렸다고 생각한다.
처먹고 처마시고 처싸고 처자고 처낳고 처싸우다 죽는게 인간, 아니 모든 생명체들의 메커니즘이다. 지구의 생명체 중 지능이 가장 높은 인간의 모든 과학 기술도 근본적으론 결국 처먹고 처마시고 처싸고 처자고 처낳고 처싸우는 것에 할애될 뿐이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루한 이 반복 시뮬레이션을 끊어낼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뿐이다. 우주의 소멸, 그리고 자살. 난 자살을 택한 사람들이 지금 존재하는 비자살 생명체들 그 누구보다도 용감하고 현명했다고 본다. 범죄하고 그 도피처로 자살을 택한 사람들은 제외하지만, 이 것 역시 이 우주에 자유의지가 존재하는지 결정론이 맞는 것인지 불분명한 것이니 구체적으론 보류의 시각으로 봐주는 스탠스이다.
존재함으로 인해 겪는 모든 것들은 비존재함으로 겪지 않는 모든 것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의미가 없다
개인적으로 우주 메커니즘은 태엽 감아놓은 인형과 같다고 느낀다. 상위 차원 씹새끼의 설계, 계산대로 움직이는, 한 치의 오차 없는 행성과 별의 공전과 자전과 같은 반복의 삶. 지루하고 의미없는 반복이 미천한 세포 한 톨에까지 적용되는 우주.
추가적으로 누군가의 고통에 슬퍼해야 하고, 누군가의 죽음에 절망함이 삶에 상수처럼 꽂혀 있는 이 현실에서도 결국 참아내야 하고, 또 다시 일상에 들어가 처먹고 처마시고 처싸고 처자고 처씻어야만 하는 좆병신짓 반복.
이런 반복마저 원활히 할 수 없는 북한의 현실을 상기해보면, 우주는 결국 하나부터 열까지 운이 전부인 메커니즘이라 새삼 더 역겨워진다. 왜 우주는 생겨난 것이고, 왜 이 모든 것이 생겨난 것일까.
공룡이 오래도록 존재했지만 결국 그 존재 이유에 아무런 의미도 없었고, 존재했던 사실조차도 인간이라는 한 종에 의해서, 그마저도 화석으로써 아주 미세하고 희미한 자국으로만 밝혀졌을 뿐.
공룡이 그 오랜 존속 기간이 무색할만큼 찰나에 사라져 버림으로써 결국 존재의 그 의미없음에 확증을 준 것과 같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 역시 존재의 의의라는 게, 역시나 처먹고 처마시고 처싸고 처자고 처씻고 처낳고 처싸우고 처죽는게 전부인, 지루하게 의미없는 반복에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살다보면 행복과 기쁨의 순간 역시 맞이하게 되지만, 술에 취해 흥겨웠던 기분이, 다음날 술이 깨면서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길고 지독한 숙취로, 숙취 이후엔 무미건조한 기분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은 구조일 뿐이다.
행복과 기쁨이라는 것은 결국 정신적,육체적 욕구 충족이 되었을 때 느끼는 것인데,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 욕구 충족이 원만히 이뤄지는 시간보다 그렇지 않은 시간이 대부분이다. 결국 마약 복용 순간과 같은 찰나라는 것이고, 실제적으로 남는 건 늙어가는 육체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죽음의 순간 뿐이다.
생명체들에 기본적으로 심어진 죽음과 고통에의 공포. 자살을 편히,쉽게 할 수 없는 존재로 세팅돼있으니, 이 부분에선 꼭 우주 혹은 생명체들을 설계 및 창조해낸 상위 차원의 엔지니어들이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소위 말 하는 시뮬레이션 우주론.
내재된 죽음과 고통에의 공포. 부담없고 편안한 자살이 불가능하니, 부차적으로 삶은 근근히 이어가야 되고, 그와중에도 처먹고 처마시고 처싸고 처자고 처씻어야 되는 일상 반복은 해야 되니, 이런 메커니즘이 지루하고 역겹다.
혹자는 인간을 숭고하고 고결한 존재로 일컫지만,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정복하고 우위에 있음으로 기뻐하고 갈등을 조장하고, 하루 일상 중 처먹고 처마시고 냄새나는 배설물을 배설하는 더럽고 원초적인 메커니즘에서 벗어나는 인간은 태초부터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다고 보기에 틀렸다고 생각한다.
처먹고 처마시고 처싸고 처자고 처낳고 처싸우다 죽는게 인간, 아니 모든 생명체들의 메커니즘이다. 지구의 생명체 중 지능이 가장 높은 인간의 모든 과학 기술도 근본적으론 결국 처먹고 처마시고 처싸고 처자고 처낳고 처싸우는 것에 할애될 뿐이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루한 이 반복 시뮬레이션을 끊어낼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뿐이다. 우주의 소멸, 그리고 자살. 난 자살을 택한 사람들이 지금 존재하는 비자살 생명체들 그 누구보다도 용감하고 현명했다고 본다. 범죄하고 그 도피처로 자살을 택한 사람들은 제외하지만, 이 것 역시 이 우주에 자유의지가 존재하는지 결정론이 맞는 것인지 불분명한 것이니 구체적으론 보류의 시각으로 봐주는 스탠스이다.
존재함으로 인해 겪는 모든 것들은 비존재함으로 겪지 않는 모든 것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의미가 없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 인과적 요인에 의한 필연일 뿐이다. 나뭇가지 바람에 흔들리는 것조차도
동의한다. 물리법칙이 온 우주에 적용되는데 그 법칙을 거스를 존재와 현상은 없겠지
와 나랑 생각이 똑같노
賢者
과민성대장이라 처 싸야 한다는 게 가장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