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특히 더 찾아보기 힘들고 들어도 괴리감이 느껴지는 단어가 인류애인것 같은데 난 인간이 사회를 필요로 하는 동물이라고는 생각해도 사회를 위해 진화한 동물이라고는 생각 안 한다.
사회를 이룰 만큼의 지능과 이성을 갖췄지만 생물학적으로는 개인플레이를 하기 때문에 결국 사회에 순종했을 때와 순종하지 않았을 때의 이익에 대한 딜레마를 토대로 간신히 유지되는 사회, 자연에서 일어나는 것과는 다른 형태의 생존경쟁을 하며 형체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을 뿐이다. 이러한 결함은 우리가 겪는 고통의 상당수를 만들어낸다.
같은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임에도 모두가 힘을 합쳐 공동의 목표를 위해 일한다는 생각을 제대로 하질 못하니 모든 조직에서 배신, 횡령, 왕따, 하극상 등등 온갖 부조리가 일어난다. 이해관계를 계산하며 닥치는 대로 무리를 지어서 상대편을 물어뜯는다. 흔히들 듣는 인생을 혼자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이것 때문이다. 범죄, 전쟁은 물론이고 세대, 성별, 정치, 종교를 둘러싼 갈등도 마찬가지다.
이런 식이니 사회문제, 환경문제도 제대로 해결 되는 것이 없다. 인류 역사상 인간은 사회의 구성원들과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제대로 통제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싸지른 인구 수는 존나게 많아서 벌써 80억을 넘어갔다. 전문가들이 주장한 적정 인구 수가 5억임을 감안하면 터무니없는 숫자다. 인간을 계속 낳다보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위인이 나타난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 위인이 우리 세대문제 떠넘기는 이기심과 패배주의에 찌든 찌질이들을 위해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으며 살아갈 새로운 생명이라는 생각은 안 하나보다. 자신은 하나의 인간으로서 대우받고 존재하길 원하면서 누군가를 도구로 취급한다.
심지어 우리에게는 동족을 향해 공격성이 표출되는 것을 막을 만한 억제 메커니즘도 없다. 사자 같은 맹수들은 동족을 죽이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어 그런 메커니즘이 존재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진화할 필요가 없었다. 수천 년에 걸쳐 우리는 가공할 힘을 손에 쥐게 되었고 이를 통제하는 것은 순전히 우리의 이성과 이해관계에 달렸다. 스포츠 같은 것들로 공격성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한다는 아이디어를 로렌츠라는 학자가 제시하긴 했지만 그 방법은 얼마나 성공적이었을까.
만약 인류가 진사회성 곤충마냥 유전자가 각인되어 있었다면 또 달라졌을지 모르겠다. 사회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돌아가는. '개체'의 이득보다 '집단 전체'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는 종이 된다면 적어도 삶의 고통이 지금보다는 줄어들지 않을까. 사회에 맞지 않는 개체들을 안락사 시키고 살아있는 구성원들을 더 잘 챙기며 어쩌면 모두가 적극적으로 인류의 방향성에 대해 모색하다가 반출생주의라는 결론에 도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사회를 이룰 만큼의 지능과 이성을 갖췄지만 생물학적으로는 개인플레이를 하기 때문에 결국 사회에 순종했을 때와 순종하지 않았을 때의 이익에 대한 딜레마를 토대로 간신히 유지되는 사회, 자연에서 일어나는 것과는 다른 형태의 생존경쟁을 하며 형체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을 뿐이다. 이러한 결함은 우리가 겪는 고통의 상당수를 만들어낸다.
같은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임에도 모두가 힘을 합쳐 공동의 목표를 위해 일한다는 생각을 제대로 하질 못하니 모든 조직에서 배신, 횡령, 왕따, 하극상 등등 온갖 부조리가 일어난다. 이해관계를 계산하며 닥치는 대로 무리를 지어서 상대편을 물어뜯는다. 흔히들 듣는 인생을 혼자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이것 때문이다. 범죄, 전쟁은 물론이고 세대, 성별, 정치, 종교를 둘러싼 갈등도 마찬가지다.
이런 식이니 사회문제, 환경문제도 제대로 해결 되는 것이 없다. 인류 역사상 인간은 사회의 구성원들과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제대로 통제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싸지른 인구 수는 존나게 많아서 벌써 80억을 넘어갔다. 전문가들이 주장한 적정 인구 수가 5억임을 감안하면 터무니없는 숫자다. 인간을 계속 낳다보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위인이 나타난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 위인이 우리 세대문제 떠넘기는 이기심과 패배주의에 찌든 찌질이들을 위해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으며 살아갈 새로운 생명이라는 생각은 안 하나보다. 자신은 하나의 인간으로서 대우받고 존재하길 원하면서 누군가를 도구로 취급한다.
심지어 우리에게는 동족을 향해 공격성이 표출되는 것을 막을 만한 억제 메커니즘도 없다. 사자 같은 맹수들은 동족을 죽이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어 그런 메커니즘이 존재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진화할 필요가 없었다. 수천 년에 걸쳐 우리는 가공할 힘을 손에 쥐게 되었고 이를 통제하는 것은 순전히 우리의 이성과 이해관계에 달렸다. 스포츠 같은 것들로 공격성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한다는 아이디어를 로렌츠라는 학자가 제시하긴 했지만 그 방법은 얼마나 성공적이었을까.
만약 인류가 진사회성 곤충마냥 유전자가 각인되어 있었다면 또 달라졌을지 모르겠다. 사회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돌아가는. '개체'의 이득보다 '집단 전체'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는 종이 된다면 적어도 삶의 고통이 지금보다는 줄어들지 않을까. 사회에 맞지 않는 개체들을 안락사 시키고 살아있는 구성원들을 더 잘 챙기며 어쩌면 모두가 적극적으로 인류의 방향성에 대해 모색하다가 반출생주의라는 결론에 도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자연선택의 결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