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쾌락보다 고통이 훨씬 더 크다는 거야 대가리 꽃밭인 놈들 아니면 상당수가 동의하겠지. 근데 단순히 쾌락만 추구하는 인생관으로 인생의 가치를 계산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예를 들면 투쟁 그 자체라던가 목적, 혹은 성취감 같은 가치들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여전히 비존재보다는 훨씬 더 의미있는 삶을 사는 건 가능하다고 봄? 바꿔말하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존재가 비존재보다 더 가치있게 만드는 어떤 요소가 진짜 단 한 개도 없다고 보냐.
그리고 이건 내 지인이랑 얘기하다 나온 건데 우리의 마음가짐에 따라 살면서 느끼는 쾌락이 고통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함? 이 두 가지 질문이 논리적으로 반박되면 반출생주의도 더 이상 패배자들의 사상이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게 되지 않을까.
예를 들면 투쟁 그 자체라던가 목적, 혹은 성취감 같은 가치들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여전히 비존재보다는 훨씬 더 의미있는 삶을 사는 건 가능하다고 봄? 바꿔말하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존재가 비존재보다 더 가치있게 만드는 어떤 요소가 진짜 단 한 개도 없다고 보냐.
그리고 이건 내 지인이랑 얘기하다 나온 건데 우리의 마음가짐에 따라 살면서 느끼는 쾌락이 고통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함? 이 두 가지 질문이 논리적으로 반박되면 반출생주의도 더 이상 패배자들의 사상이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게 되지 않을까.
각자의 생각에따라 다를수있지. 본인이 가치있게 느끼는 일을 한다면 몸이 힘들어도 보람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의 경우가 그렇지. 하지만 쾌락만 추구하는 인생관은 단순하고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인생관은 고차원적이라고 할수는 없을것 같아.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모두에게 의미있는것은 아니니까. 게다가 반출생주의자는 쾌락만 추구한다기보다 고통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하지. 고통을 확정적으로 피하는 방법은 태어나지 않는것 뿐이고.
가능하긴 하지만 그런 사람들 조차도 다시 태어나서 또 살래? 하면 망설일 듯. 인간은 노병사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결국 언젠가는 무너진다고 생각함. 그리고 반출생은 태어날 아이의 삶이 어떨 것인가에 대한 것보다 앞서 그 삶의 시작의 동의를 구할 수 없다는 점이 불합리하다라는 게 가장 주 포인트 같음.
가치나 의미가 있든없든간에 동의없이 낳음당하게 하는 짓 자체가 문제라는 것 왜냐면 누군가는 그 가치나 의미조차 바라지도 않을 수도 있고 그런 셀프정신승리가 불가능한 인간도 있을테니까. 그걸 부모가 보장하고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낳음당한 인간이 바꾸려 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
의견들 전부 잘 읽었음. 생각 정리도 되고 좋네.
반출생주의는 삶이 가치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잖아 태어난 이상 최선을 다해서 도전하는 삶을 부정하는 것이 아님 삶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결국 고통과 죽음으로 박탈당하는 최후를 왜 타인한테 강제하냐는 거지
쾌락이 고통보다 더 클 수는 없음 쾌락은 아무리 수치가 높아도 점점 무뎌지고 더 높은 단계로 가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방면 고통은 아주 약간이라도 강렬하고 무조건 피하고 싶은 수준이지 그리고 결국 극소수 제외하고 누구나 늙으면 병 한두개는 찾아오고 고통스럽게 죽을 수 밖에 없음
분명 사람은 과정상의 고통을 감수하고 결과적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태어나지 않으면, 그럴 필요 자체가 없다. 태어나지 않으면, 애써 삶의 의미, 가치를 찾아 헤멜 필요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태어났기 때문에, 공허감이라는 병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삶의 의미, 가치라는 대증요법을 갈구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 못해 죽을 때까지. 중요한 것은 고락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계약주의적 절차도 없는 고통 위험(리스크) 강요에 있다. 자신이 자신의 의사로, 사회 계약 하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그래도 상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출산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런 불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고락만이 전부인 공리주의를 동원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