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까는 양의사들을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공기가 눈에 안보인다고 공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중세시대 과학자들이랄까.


우주는 에테르로 가득차있다는 가설까지 내세웠었지.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고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그게 '합.리'라는 탈을 쓰고 이 우주를 설명할 수 있다고 오만하던 중세의 과학자들처럼..


현대에도 그런 어설픈 합리적 사고를 표방하는 과학자들이 바로 그들같다.




부분의 합이 전체라고 주장하는 그들에게


인간의 장기를 모두 모아놓으면 그게 인간이 되는가? 라고 묻고 싶다.


어떤 체계가 차원이 높아질수록 그것에 맞는 이론은 새롭게 생성된다.


거시세계에서 성립된 고전역학이 미시적 세계에서 성립되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양자역학이 탄생한 것처럼..


한의학에서는 이것을 정체성(*identity가 아님)이라고 하는데,


이런 과학철학적인 면에서 보면 오히려 과학기술의 발전의 장애가


직관과 현상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더 키워줬던 것 같다.


반면에 오만방자하던 양놈들은 다양한 scope를 개발해서 이 세상 만물의 구성성분을 모두 '관찰'할 수 있다고 자만했기 때문에


오히려 현상을 '시각'에 의존하여 설명하게 되면서 그 과학은 더 편협해졌다.


관찰할 수 없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고,


오로지 '언젠가 또 다시 깨져버릴 가설을 바탕으로 한 실험적 검증'만이 그들의 유일한 논거였다.


(아 물론 실험적 검증은 동양의학도 자유로울 수 없지만.....)




사실 서양의학이 문제가 아니라 어설픈 한국의사들의 사대주의가 문제일런지도 모른다.


서양에서 과학의 최전선인 프론티어에 있는 최고 과학자들은 이미 반성을 하고 다시 유턴을 하고 있는 반면에


그 뒤를 쫒는 사대주의에 쩔은 동양인들은 그 시행착오를 겪은 그 길로 밟아가고 있다.





인간이 왜 원시시대에서도 적잖은 의학적 트러블을 겪으면서도 살아올 수 있었을까?


왜 배고픔을 느끼게 만들었을까?


왜 반이성적인 감정 따위를 만들어 우리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방해하는 것일까?



그것은 증명이 안되었으니까...


레퍼런스가 없으니까..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니까..


라는 이유를 내세우며 ...


인간의 본연의 감정과 생체적 신호를 모두 무시하고 있다.




물론 이성적인 사고가 없다면 논리가 산으로 가서 소위 말하는 야매의학이 나오고 샤머니즘이 나오는 것이지만,


인류가 지금으로부터 몇백년이 지나서 돌아보면


우리가 말한 최전방의 이성적 사고는 ...아마 오류투성일 것이다.




다시말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임을 내세우며 주장하는 의학 또한...


무한한 우주의 진리의 발톱의 때만도 못한 진실을 밝혔을 뿐이고,


그런 상태에서 자신의 이론을 주장하는 것은 ...


언젠간 시간이 흘러 자신이 무지했음을 주장하는 것 뿐이다.




한의학은 양의학에 비해 primitive 하다고 하겠지만,


결국 그 잘난 양의학은 ...primitive한 곳으로 회귀하고 있다.



음식문화에서도 패스트푸드부터, 깡통 통조림 음식까지 ...온갖 정크 푸드들이 왕성하게 생산되다가,


지금은 소위 '웰빙'이니 '유기농'이니..하는 트렌드로 바뀌고 있다.


어떤 인위적이고 어설픈 합리의 산물인 농약들과 온갖 화학비료들로 생산한 자연물이 아니라,


오히려 원시시대의 그대로의 자연물들이 더 각광을 받고 있는 것만 봐도 ....당연히 알 수 있는 사실인 것이다.




출산을 더 쉽고 편하게 만들다보니,


산모와 태아에 최악의 영향을 끼치는 무통주사가 나왔고,


자연적으로 중력의 힘을 받아 직립자세로 출산하기 보다는


베드에 누워 간호사들이 몇명이 달려들어 산모의 배를 힘껏 누르는 ..상당히 인위적이며 최악의 조건인


기형적이고 매우 부자연스러운 출산요법들이 나왔다.


태아가 산모의 산도를 따라 엄마의 좋은 균들을 섭취하고 그 균을 배양시켜야 함에도


제왕절개라는 방식으로 태아에게 면역력을 기를 기회를 빼앗아 버렸다.




양의사들은 그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도 ...우리는 그것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어설픈 합리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의학적으로 불가피하게 제왕절개를 해야하는 산모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을 제외한 대부분은 그것이 전혀 필요치 않다.




양의학 자체가 인류 발전에 하등 도움이 안된다는 것은 아니다.


외과를 비롯해 급성(acute) 질환에 대해서는 강력한 약효들 덕분에 생물학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항생제가 평시상황에서 장기적인 복용은 면역력을 파괴하지만,


급박하고 생과 사를 다투는 전쟁상황에서 팔과 다리가 잘린 군인에게는 2차적인 감염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항생제는 그 역할을 발휘한다.


그러나 그것은 갑자기 무너진 생물학적 균형을 강력한 효과로 바로잡는 역할을 하지만


급성인 상황에 국한된다.


물론 그것도 양의학의 역할이긴 하다.





그러나 그 acute한 부분에서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다.


비염이 있는 환자가 십수년간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한다는 건 미친짓인 것처럼 말이다.


그건 비염 질환을 치료하는게 아니라, 환자를 마취시켜 그 증상을 못느끼게 하는 눈속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 북한군이 쳐들어왔는데, 경보를 안울린다고 해서 전쟁이 안 일어난것은 아니지 않은가.




한의학적 이론에 대해 서구적 검증방식 (그것도 옛날 방식)을 요구한다는 것은 ...


한의학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침의 효능에 대한 연구는 그 자체로 객관적이지 않다.


침은 혈자리도 중요하지만, 그 찌르는 깊이도 중요하다.


그것은 온전히 자침하는 한의사의 기술에 달려있는데,


그것이 곧 명의와 돌팔이를 구분하는 기준이다.



그것을 간과한채 혈자리를 놓고 수백명을 자침한들... 그 한의사로부터 얻은 결과는


그 한의사의 자침 능력에 대한 논문이지..


한의학의 침에 대한 논문은 아니다.




또한 어떤 증상이 있는 환자를 놓고


한약에 대한 효능의 연구를 살펴보면,


그 증상이 과연 맞는지는 양방적으로 진단하게 된다.


그러나 한의사마다 그 변증은 다를 수 있다.


안구건조증인 환자에게 간의 문제로 보는 한의사도 있고,


다른 문제로 보는 한의사도 있을 것이다.


그런점을 간과한채 객관적 어쩌구 떠들어대며 논문을 제시한들...


그게 과연 한의학과 무슨 연관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