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컨대 한의학이 철학이라고 생각하는 학도들의 상념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현재 한

의과대학의 커리규럼이 의학과 의학사가 전도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서양의과대학에도

물론 \'의학사\'(History of Medicine)라는 과목이 있다. 허나 이것은 단지 한 과목, 교양으로

서 그리고 재미로서 가르치는 것이며, 그 의학사의 내용이 곧 그들의 의학적 지식을 구성하

지 않는다. 더구나 의학사에서 나열하고 있는 과거 의서들의 세밀한 연구에 6년이라는 세월

을 소비하는 그런 짓을 하지는 않는다. 예를들면 의학의 기초로서 레닌저의 \'프린시플스 어

브 바이오케미스트리\'를 탐독할 지언정, 방대한 히포크라테스전집을 희랍어로 탐독하지는 않

는다. 물론 이런 것을 하는 것은 의학사 학자들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나 그나마 이런 학자들

은 전세계적으로 희귀한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허나 실제로 한의과대학 커리큐럼은 의학

그 자체의 공부과정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의학사의 연구과정이라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

한 표현이 될 것이다. 결국 한의과대학은 의사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 의학사 학자들을 기르

고 있다고 말해도 과히 빗나간 말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 6년동안 한의학에 관하여 배우는

모든 내용이 실제로 한문으로 쓰여진 고의경. 의서가 거의 전부라는 사실에 비추어 본다면

아무도 나의 말을 결코 부정할 수 만은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아직도 \'황제내경\'이라고

불리우는, 한대에 성립했다고 믿고 있는 책에서 인용만 하면 그 인용문은 의심의 여지가 없

는 논거가 되며, 아무도 그 \'내경\'의 명제가 과연 얼마나 의미론적으로 타당한 것인지, 그리

고 그 논리적 근거가 과연 실증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 것인지를 따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서 한의학은 \'내경\'의 도그마를 신봉하는 \'내경종교학\'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의과대학에는 지금 문헌비평이 결여된 의사학만 있을 뿐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의 \'임상학체계\'(Systematic Clinical Medicine)가 부재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문헌학을 한

의학의 통시적 구조(diachronic structure)이며 임상학을 한의학의 공시적 구조(synchronic

structure)라고 한다면 이 양자가 모두 제대로 가르쳐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즉 한국의 한

의학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헌학의 단계에도, 또 동시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임상학의 단계

에도 진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단언컨대 사실 여러분들이 알고있는 그 권위로운 바이블 \'황제내경\'이라는 텍스트는 그것

이 \'소문\'이든 \'영추\'이든지를 막론하고, 순엉터리 텍스트다. 엉터리도 이만저만한 엉터리

텍스트가 아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6년동안 \'황제내경\'의 권위를 옥황상제 모시는 것보다

더 모시게되는 경험을 하게될 것이다. 그것이 송대의 교정의서국에서 완전히 날조되고 조작

된 텍스트라는 것을 모르고(왕빙의 일차적 조작에 가세하여 더 엄청난 조작이 자행되었다.)

그것이 마치 한대의 고경인냥 공부하게 될 것이다. 그대들은 \'내경\'이라는 텍스트의 역사적

변천과정에 대한 치밀한 논고나 강술을 접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 한의학계는 한의

학을 성립시킨 원전에 대하여 문헌학적 분석의 매스를 가할 수 있는 단 한명의 책임있는 학

자가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허술한 중국학자들의 논의를 베낀 엉성한 몇마디만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것이 새삼 문제가 되어야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의과대학의 교수님들

이 한결같이 \'황제내경\'으로부터 뭣 한줄이라도 인용할때면 그것이 곧 선태시대나 한대의 사

상이나 그 시대의 언어를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것은 우리 한의학계의 불행이요, 한의학이라는 학문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원초적인 오류

다. 다시 말해서 송대에 날조된 언어를 한대의 언어나 사상으로 강의한다는 것, 따라서 한대

의 사상의 진면목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는 것, 따라서 역사적으로 인체의 이

해가 어떻게 변천해 왔느냐 하는 것을 모르게 된다는 것, 따라서 모든 한의학의 텍스트를 바

라보는 역사적 시각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경락이든 음양이든 혈명이든 병명이든

병변이든 약방이든 모든 것이 살아꿈틀거리는 역동성을 상실한 채 절대적·종교적 진리처럼

사판화해버리고 만다는 것, 따라서 우리는 우수한 학생들의 분석적 두뇌가 개발이 되지않고

점점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아편을 잡순 멍청이처럼 히멀건한 동태눈깔만 껌벅이게 되고 만다

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우리 한의과대학의 교육의 실태요, 학생들의 불만과 방황, 좌절과

고민의 실상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