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그늘 (4) 진맥.. 이거 진짜일까? 2

2005/07/19 오전 4:18 | 漢醫不悟

고대에 해부학이 발달되기 전 맥박이 뭐 때문에 뛰는지 모를 때에는 그 맥박이 막연히 삶의 에너지, 기의 작용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심장의 활동으로 뛰는 것이 맥박이라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또 위급한 병자가 도착했을 때 이 병자가 살 수 있을지 없을지를 판단하는 방법은 손목의 맥박을 짚어보는 방법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딴게 아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맥진이다.

맥에 대해 쓰여져 있는 한의서 황제내경, 난경, 맥경을 차근차근 읽어보면 맥진이란게 원래 질서정연하게 발달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년 빤쓰자락이나 다름없다. 한의사들, 다들 황제내경 난경 맥경 차근차근 외우다시피 읽었으니 다들 잘 안다. 맥진이 상당히 껄쩍지근 하다는 걸. 그런데도 다들 입을 막고 있다.


지금도 그걸 신앙처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 넘들 직접 얘길 들어보니 참 대단하다.

열심히 환자들의 맥을 잡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맥을 잡고 가만히 있으면 그 사람의 안 좋은 기운이 손가락을 통해 전해져 온다고 한다. 그때 위가 안 좋은 사람은 그 나름대로 특별한 기운이 있고, 또 폐가 안 좋은 사람도… 혹은 병이 있는 그 부위 손가락에 통증을 느낀다고 한다.

또 어떤 넘은 말하길, 위가 안 좋은 환자를 진맥하면 자기의 위에서 비슷한 반응이 온대나 머래나..



진맥에 대한 사기극은 워낙 뿌리가 깊어 아무도 감히 내어 놓고 얘기하지 못한다. 天機漏洩 급의 범죄다. 근데 한의사들이 그걸 고백하지 못하는 데에는 가끔가다 나오는 의학 드라마도 몫을 한다.

지난번 허준드라마 때문에 한의사들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했다.
드라마덕에 환자들 몰렸다가 허준덕에 졸지에 무능한 한의사로 낙인찍혔다.


어떤 환자든 맥을 턱 잡곤 곧 바로 처방이 나온다.
중전마마 손목에 명주실 매달아 저쪽 끝에서 그걸 잡고서 ‘중전마마 감축드리옵니다 회임하셨사옵니다..’ 꺼이꺼이 아뢰는 어의.

의녀 하나가 죄수로 잡혀온 여자의 맥을 탁 집자마자 바로 의관에게 보고한다.
‘저 여자 임신중입니다’

이거 아주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전 국민이 보는 드라마에 예전 한의사들의 이런 신기에 가까운 진맥 모습들이 여과없이 그대로 나간다.

물론 실제로 자기가 쭉 보아온 여성의 경우에는 맥을 짚고서 임신여부를 알 수도 있겠다. 임신을 하면 당연히 맥이 바뀌기 때문이다. 임신후 6주 내지 10주가 지났을 때 뱃속 아기의 심장박동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산모의 맥도 당연히 그것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판 처음 보는 여자의 맥을 짚고 임신을 알아낸다는 건 생판 처음 보는 넘 악수만 하고 그넘의 좆길이를 알아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일부는 강력히 항변한다. 자기는 진짜로 맥으로 병을 알아낸다고. 마찬가지다. 생판 처음보는 환자를 온통 가려놓고 손목의 진맥만으로 알아낸다면 그는 실제로 진맥을 하는 神이다.
근데.. 그런 넘 결코 없다.



형제처럼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던 교수님이 한분 계셨다. 동국대 한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박사까지 공부하고 무지하게 잘 나가던 한의원을 20년 가까이 운영하던 분이었다.
서울 정도 600년 해에 서울시가 뽑은 ‘어의’로 선정되셨던 분이다.

일주일에 두세번은 우리집에 놀러오셔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곤 했었다. 어느날 물었다.
‘진맥으로 어떻게 병을 압니까?’
‘난경 읽어봐요’
‘읽어봤는데 더 이해가 안됩니다’
\'술이나 마셔요..ㅋㅋ\'


한의학의 성경은 內經이라는 책이다. 이거 불명확한 거 투성이에다 존나 어렵다. 하지만 이 내경만큼 한의학의 근본과 원리를 잘 표현한 책은 없다.
難經은 어떠한 책인가? 내경이 하도 어려워 그 내경을 알기쉽게 설명한 책이라는데 지은이도 불명확하고 쓰여진 시기도 불명확하며 책의 내용상 오히려 혼돈만 가져다 줄 수 있는 일종의 \'怪書\'다.
脈經은 진맥에 통하였다는 어떤넘이 쓴 책인데 지금 한의사들이 폼잡고 있는 진맥이 다 여기서 나왔다.


진맥의 당위성에 대한 한의학적 설명은 음양오행의 동양사상과 통하지 않고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니 자세히 거론하지 않겠다. 과학적 잣대로 들이대어 논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허전하니까 왜 손목에서 진맥을 하는지 그부분을 슬쩍 맛을 보면..

\'촌구는 십이경맥의 경맥지기가 모두 모이는 곳이며 수태음폐경의 박동부위이다….중략… 촌구는 오장육부의 시작이자 끝나는 부위이기 때문에 촌구에서 진찰하는 것이다.\'
이런식이다. 차라리 안 읽고 지나가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 ㅎㅎ


문제는 이렇게 진맥의 이론적 근거가 될만한 세가지 책의 내용이 서로 다르고 모순된게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內經엔 三部九候라고 하여 인체 여기저기를 살폈다.

그러다 難經에서 바뀐다. 손목의 寸口부분을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근데 같은 난경에서도 앞뒤가 다르다. 초반엔 누르는 강약에 따라 맥상을 취했다. 즉 깊이 눌러 취해지는 맥과 얕게 눌러 취해지는 맥을 구분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후반에 들어서는 갑자기 손목을 寸關尺 부위별 셋으로 나누어 각각 장기를 배속하여 진찰한다. 즉, 寸部에 심 소장 간 담을 배속하고 關部에 비 위, 尺部에 폐 대장 신 방광을 배속했다.

그러나 脈經에서는 이 寸關尺을 다시 좌우로 또 나누어 여섯가지 부위에 장부들을 새롭게 배속하였다. 즉, 좌측 촌관척(寸關尺)을 짚으면 심(心), 간(肝), 신(腎)이며, 우측 촌관척(寸關尺)이면 폐(肺), 비(脾), 명문(命門)으로 곧 현재의 진맥과 같다

이거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얼핏 세분화하면서 발전한 거 같지만 실상 지들 맘대로다.
왜 왼손의 촌부에서 심의 상황을 살피는지 상식적이고 그럴듯한 설명이 없다. 단지 이렇다. 肝心出左.. 오행의 상생이론(수생목 목생화) 으로 차례대로 水-腎 木-肝 火-心 이렇게 차례대로 배속되었다.
물론 부차적인 설명은 장황하다. 그러나 어차피 같은 소리다. 실제적이고 상식적인 설명은 없다.


다시 교수님에게 물었다.

‘솔직히 얘기하시죠. 진맥으로 진짜.. 병을 알 수 있습니까?’
‘큭.. 어떻게 알아.. 부침지삭이나 구분하면 다행이지’
‘실제로 환자를 무지 많이 보면서 진맥을 오래하면 알게 될 수도 있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요’
\'교수님이 학생이실 때 연세드신 교수님들은 혹시..?’
‘한사람도 없었지요. 다 마찬가지요’
‘그럼 교수님은 왜 환자들 진맥을 하시나요?’
‘그냥 폼만 잡는거요 ㅎㅎㅎ 근데 이거 다른 학생들한테는 말하지 마쇼’


맥공부 개운하게 때려치웠다.
한의학에 대해 무대뽀로 공부하고 늘 자신의 모자람만 탓하며 안개속을 헤매다가 처음으로 그 안개속에서 벗어나오는 방법을 깨달은 출발점이었다.


한의사에게 진맥이란 걸 빼어버리면 갑자기 앙꼬빠진 찐빵이 되어버리고, 고무줄 없는 빤쓰, 밑창 없는 고무신이 되어버린다. 한의사에게 진맥은 무슨일이 있어도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최후의 밥그릇이다.

근데 이거 여간 께름칙한게 아니다. 내려놓자니 밥그릇이 걱정이고 들고 있자니 쪽팔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