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C만 하더라도, 전체 세계의 GDP 중 80프로를 아시아가 차지했다. 그런데 18C부터 서양에서 과학과 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했고 지금 우리도 서양식 의복을 입고 서양식 건축물 속에 산다. 일부 전통문화만 직접 찾아봐야 조금 남아있을 뿐이지, 문화적으로 서양에 정복당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17세기에 서양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동양과 서양이 차이가 난 걸까?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그 원인을 ‘무지’를 인정했다는 것에서 찾는다. 17c 전까지는 동양과 서양 모두 ‘무지’를 인정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진리는 성경과, 현자가 남긴 고서에 나와있었고 어떤 한 사람이 궁금한 점이 생기면 고서를 찾아보거나 그 시대의 현자에게 찾아가서 물어보기만하면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17c부터 서양에서는 ‘무지’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예를 들 수 있지만 의학의 예만 들어봐도, 이전까지는 히포크라테스의 4원소설로 세상의 모든 병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진리로 받아들여졌었다. 하지만 과학자와 의사들이 그 이론의 결점을 인정하고,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기존의 4원소설은 폐기되고 실험과 냉철한 이성에 의한 학문이 시작되었고, 그것이 현재 인간의 평균수명을 80세까지 연장시켜주는 경이로운 현대의학으로 이어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단상을 살펴보자. 탈모로 고통받는 A가 탈모분야 국내 최고 교수로 꼽히는 아산병원의 B교수를 찾아갔다. B교수는 현재까지 의학이 밝혀낸 수준인 ‘남성호르몬으로 인한 모낭 파괴설’을 설명해주고, 아직 더 자세한 기전은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탈모에 효과가 있는 미녹시딜과 프로페시아를 처방해주며, 유전적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이 약이 드라마틱한 효과가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효과가 없다고 했다. A는 꾸준히 약을 복용했지만 탈모가 나아지지는 않았고, B교수에게 찾아가자 ‘현대 의학의 한계’라는 말을 듣고 모발이식을 꾸준히 받게 되었다.


똑같이 탈모로 고통받는 C는 동네 한의원에 찾아가 한의사 D를 만났다. D는 C에게 옛 고서에 적힌 내용들이 바탕이 된 이론인 ‘기’와 ‘열’을 가지고 탈모를 완벽히 설명해냈다. 그리고 본인 말만 잘 듣고 처방해준 한약과 식습관개선, 스트레스 개선만 하면 머리다 다시 난다고 확신에찬 목소리로 말했다. 몇주가 지나도 머리가 나지 않았다. 불만을 품은 C에게 한의사 D는 본인이 내린 처방은 완전무결하지만, 결국 당신이 식습관 관리를 잘 하지 않고 스트레스 관리도 안되었기 때문에 머리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두 단락을 비교해보자. 현대의학에서 유명한 교수인 B는 탈모 기전에 대한 무지를 인정하고, 치료 효과에 대해 확언하지 못했고 현대의학의 한계까지 인정했다. 하지만 동네 한의사 D는 ‘고서를 바탕으로’ ‘이미 존재하는 진리’를 행했다. 여기서 유발 하라리가 이야기한 17c이전 서양의 냄새가 나지 않는가? 모든 진리는 고서에 이미 나와있고 우리는 답습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시기의 인류의 세계관이 보이지 않는가.

한의학을 옹호하는 이들은 그래서 요즘엔 한의학도 연구를 하고 새로운 치료법도 개발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럼 뭐하나 한의학이 기반으로 하는 ‘기’이론은 그대로인 걸. 이것은 히포크라테스의 4체액설을 기반으로 새로운 치료법을 세운 것과 다름이없다.

그래서 아직 한의학은 17세기에 머물러있는 것이다. 절대로 자신들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는다. 현대의학에서는 그 어떠한 이론이라도 당장 반대되는 증거가 나온다면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하지만 한의학은 고서를 기반으로한 ‘기’는 절대로 뒤집힐 수가 없다. 해부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나와도,(경락관 이야기하지마라 이야기하면 바로 개소리인거 인증하는 링크 건다) meta analysis상 유의미하지 않다는 증거가 나와도, 절대로 기 이론은 ‘기정 사실’로 깔고 간다. 한의학은 ‘기’이론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무지에 대한 불인정’은, 한의학이 아직 17세기에 머물렀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