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은 수천 년 동안 검증된 우리 민족 고유의 의학이라는데
그게 수천 년 동안 검증됐으면 조선시대에는 왜 그렇게 미개하게 살았죠?
현대 의학으로는 가볍게 고칠 수 있는 것도 못 고쳐서 낑낑대며 살던데 말이 안 되잖아요
조선시대 한의학이랑 지금 한의학이랑 달라요? 지금도 검증 안 된 중세시대 의서에 적힌 풀떼기 가지고 치료하는 거 아닌가요?
한의학은 수천 년 동안 검증된 우리 민족 고유의 의학이라는데
그게 수천 년 동안 검증됐으면 조선시대에는 왜 그렇게 미개하게 살았죠?
현대 의학으로는 가볍게 고칠 수 있는 것도 못 고쳐서 낑낑대며 살던데 말이 안 되잖아요
조선시대 한의학이랑 지금 한의학이랑 달라요? 지금도 검증 안 된 중세시대 의서에 적힌 풀떼기 가지고 치료하는 거 아닌가요?
돈 많은 사람들 위주로 치료받지 않았을까함
지금은 건강보험덕분에 아무나 병원 다니는거긴함 건보안되서 침 1회 5만원이라고 하면 돈없는 사람들 못다닐거같음
그러면 왜 조선에서 제일 돈 많은 조선 왕은 왜 그러고 살았어요?
잘 살지 않았음? 평균수명 말하는거임?
피부병으로 종기 짜다가 죽은 애도 있는데요?
밤이 깊은 뒤에 잠깐 잠이 들어 자고 있을 때 피고름이 저절로 흘러 속적삼에 스며들고 이부자리까지 번졌는데 잠깐 동안에 흘러나온 것이 거의 몇 되가 넘었다. 정조실록 정조 24년(1800) 6월 25일
2차감염된거 같음 코털도 잘못 뽑으면 뇌수막염 걸린다고 함
2차 감염이 아니라 고름 짜다 죽었어요. 현대 의학으로는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는 병인데 조선시대에는 왕조차 치료 못했는데요?
무슨 말하고 싶은거임? 조선왕들 다 아프면 바로 즉사했음?ㅎ 현대의료기술 발달했는데 의료사고는 왜 생김? 기술은 좋은데 의사가 허접인거임?ㅎ
수천 년간 검증된 의학이 한의학 => 조선시대 간단한 병도 치료 못함 => 돈 많은 사람들 위주로 치료받았지 않았을까? => 왕의 간단한 병도 치료 못해서 죽었음 =>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임?
ㄴㄴㄴ 님이 말하는거 충족하려면 조선시대 왕이 아프면 치료 못받고 죽어야함.ㅎ 의료사고 1례로 설명하기엔 근거가 빈약해보임 기술발달한 현대에는 왜 의료사고로 사람들이 죽음?ㅎ
지금도 치료 못 하는 어려운 병이 아니라 너무 간단한 피부병도 치료 못 했던 게 한의학이라는 거죠. 아울러 조선시대 왕이 죽진 않았어도 피부병 앓으면서 살았는데 삶의 질은 어땠을까요? 조선시대 열악했던 의료를 생각하면 한의학은 시대의 흐름 속에 사라지는 게 맞지 않나요? 이렇게 어거지로 수천 년간 우리 민족의 건강을 지켜왔다고 하지 말구요.
ㄴㄴㄴㄴ 이해를 못한 모양임. 님이 말한 건 의료사고 1건임ㅎ 의료사고가 아니라 조선시대 의술로는 간단한 피부병 치료가 불가능했음을 충분한 근거를 들어서 보여주면 끝날 문제임.ㅎ 내가 궁금한건 그거임 조선시대 의술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나도 궁금함 그래야 우리가 더 노력할 부분이 생김ㅎ
그럼 님은 조선시대 의술이 형편없었음이 증명되면 한의학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시는 거죠?
ㅇㅇㅇㅇㅇ 당연한거 아님?ㅎ 안되는 치료법 마냥 들고있는 바보가 어딨음ㅋ 우리가 지금 쓰는 치료법도 다 통하니까 배우고 쓰는거임ㅎ
상이 대조전에서 승하하였다. 약방 도제조 원두표(元斗杓), 제조 홍명하(洪命夏), 도승지 조형(趙珩) 등이 대조전의 영외(楹外)에 입시하고 의관 유후성(柳後聖)·신가귀(申可貴) 등은 【이때 신가귀는 병으로 집에 있었는데 이날 병을 무릅쓰고 궐문(闕門) 밖에 나아가니, 드디어 입시하라고 명하였다.】 먼저 탑전에 나아가 있었다. 상이 침을 맞는 것의 여부를 신가귀에게 하문하니 가귀가 대답하기를, "종기의 독이 얼굴로 흘러내리면서 또한 농증(膿症)을 이루려 하고 있으니 반드시 침을 놓아 나쁜 피를 뽑아낸 연후에야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하고, 유후성은 경솔하게 침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왕세자가 수라를 들고 난 뒤에 다시 침을 맞을 것을 의논하자고 극력 청하였으나 상이 물리쳤다. 신가귀에게 침을 잡으라고 명하고 이어 제조 한 사람을 입시하게 하라고 하니, 도제조 원두표가 먼저 전내(殿內)로 들어가고 제조 홍명하, 도승지 조형이 뒤따라 곧바로 들어갔다. 상이 침을 맞고 나서 침구멍으로 피가 나오니 상이 이르기를, "가귀가 아니었더라면 병이 위태로울 뻔하였다." 하였다. 피가 계속 그치지 않고 솟아 나왔는데 이는 침이 혈락(血絡)을 범했기 때문이었다.
제조 이하에게 물러나가라고 명하고 나서 빨리 피를 멈추게 하는 약을 바르게 하였는데도 피가 그치지 않으니, 제조와 의관들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상의 증후가 점점 위급한 상황으로 치달으니, 약방에서 청심원(淸心元)과 독삼탕(獨參湯)을 올렸다. 백관들은 놀라서 황급하게 모두 합문(閤門) 밖에 모였는데, 이윽고 상이 삼공(三公)과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 약방 제조를 부르라고 명하였다. 승지·사관(史官)과 제신(諸臣)들도 뒤따라 들어가 어상(御床) 아래 부복하였는데, 상은 이미 승하하였고 왕세자가 영외(楹外)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다. 승하한 시간은 사시(巳時)에서 오시(午時) 사이였다.
의관 유후성은 반대했고 의관 신가귀가 의료사고낸거임?
유후성이건 신가귀건 왕의 너무 간단한 피부병조차 치료 못해서 절절 맸다는 게 포인트인데요?
의료사고로 읽힘.ㅎ 혹시 조선시대 종기 짜던 모든 사람 다 죽음? 그러면 조선시대 종기짜는 의술 ㅎㅌㅊ 인정함
애초에 너무 간단한 피부병을 치료 못해서 절절 매는 게 핵심 포인트인데요. 조선시대 의학 수준이 저 수준인데 왜 저런 조선시대 의학을 수천년간 검증됐다고 우기면서 지금도 사용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가서요.
그럼 현대는 왜 의료사고 생김?ㅎ EBM이니 100% 다 검증된 것만 하는 현대의학이 왜 간단한 수술하다가 사람 죽임?ㅠ
그니까 님이 말하는 너무 간단한 피부병 조선시대에는 거의 치료못했음을 보여줘야 주장이 먹힘ㅎ
종기가 간단한 피부병이에요. 지금은 동네 의원급에서도 간단하게 고쳐요. 비위생적인 생활습관이 주 원인이구요.
종기를 치료하지 못했다는 말이 성립되려면 조선시대에는 종기 치료를 수차례 도전했는데 대부분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주면 끝임ㅎ
현대에 태어난 것은 축복입니다. 이 문장에 동의하지 않는 분도 많을 겁니다. 각종 환경오염과 지나친 경쟁 등을 생각하면 ‘순수한 옛날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종기와 관련해서는 현대인이 조선의 임금보다 행복합니다. 현대인에게 아무것도 아닌 종기가 항생제가 없던 과거에는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질환이었습니다. 종기로 본 역사는 흥미진진합니다.
<조선, 종기와 사투를 벌이다>(방성혜 지음, 시대의 창 펴냄)에 따르면, 문종과 정조는 종기가 원인이 되어 숨진 대표적인 ‘귀하신 몸’들이다. 세종 31년인 1449년에 당시 세자였던 문종은 등에 생긴 화농성 종기, 즉 등창으로 고생했다고 하는데, 당시 문종의 등창은 붉게 부어오른 부위가 한 자(약 30㎝)에 이를 정도로 컸고 그 증상도 심각했다. 세자의 등창이 얼마나 심각했으면, 아비였던 세종은 아들의 고통을 보다 못해 “도죄(徒罪) 이하의 죄를 저지른 자들은 이유와 판결 여부를 막론하고 모두 사면하라”는 왕명을 내렸을 정도였다.
비위생적인 생활습관이 주요 원인이라면 위생관념과 상하수도의 발달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도 다시 한번 되돌아볼수 있는것같음ㅎ 갑자기 님한테 고마움ㅎ
하지만 이런 주변 사람들의 배려와 정성에도 불구하고, 문종은 수시로 재발하는 종기로 인해 즉위 2년 만에 사망했으며, 겨우 열두살인 어린 세자의 즉위는 결국 계유정난과 사육신의 처형으로 이어졌다.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이끈 임금으로 평가받는 정조의 생명을 앗아간 것도 정조 24년(1800년)에 머리와 등에 발생한 커다란 종기였다. 종기의 병증이 얼마나 심했는지 어의들이 총동원되어 임금의 환부를 살폈지만 종기는 낫지 않았고, 결국 정조는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승하하고 만다. 종기가 발생한 지 겨우 24일 만의 일이었다.
종기 치료법을 전문적으로 다룬 치종학서들이 다수 편찬되었고, 종기만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치종의들을 관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양성할 정도였다는 것은 이에 대한 증거이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648527.html#csidxdc412edd97c8ac298b3046af7250368
조선시대 너무나 많은 왕들이 종기로 고생하며 살았고 종기로 인해 죽기도 했습니다. 왕조차 치료하지 못한 게 종기라는 피부병이었어요. 하지만 현대에서 종기는 너무나 가볍게 치료됩니다.
서양에서 항생제 개발되고나서 치료가 잘되긴함 그래서 요즘은 외과나 피부과에서 다 째고 오심ㅎ
혹시 현대에는 한포진이 완치가 됨? 우리 지역 유명 피부과에서 10년 치료해도 안되는 환자 지인소개로 와서 내가 준 연고 바를때마다 반년넘게 효과보는분 있음 난 완치 못시키겠음.
종기(腫氣, boil, furuncle)는 피부의 털구멍 따위로 화농성 균이 들어가서 생기는 염증이다. 종기는 한포진이 아니에요. 하지만 시도는 좋았어요.
한포진이 종기라 한적 없음 ㅠ 나는 종기환자는 안보니까 내가 오늘 연고 처방해드린 한포진 환자 예시 말해본거임 어차피 요즘은 외과나 피부과 다니다 오심ㅋ
일부러 못알아듣는척 하는 거면 그렇다고 말하면 됨ㅎ
그렇다면 왜 느닷없이 종기 얘기를 하는데 한포진 얘기를 꺼내는 걸까요? 조선시대 의학의 형편없음이 드러내는 게 겁이 나기 때문인가요?
아주 전형적인 논점이탈의 오류. 종기 얘기중에 한포진 갖고와서 뭐 어쩌자는건지? 종기 얘기를 계속했다가는 불리하니까?
척은 아니고 실제로 못하는거였음?ㄷㄷ 한포진이 나온 이유? 님이 말한건 '종기'로 인해 사망한 일종의 의료사고 케이스였음. 그거 하나로 용감하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면서 조선시대 의학의 무용론을 펼치는거임? 그럼 님이 말한것도 피부병의 하나일뿐이니 나도 그럼 피부병의 하나일뿐인 사례로 현대의학의 무용론을 펼치면 된다고 생각이 들었음. 똑같은 논리전개과정이니 이의는 없을거임. 그래서 마침 오늘 오신 한포진 환자 이야기를 꺼낸거임ㅎ 종기보다도 위험성 떨어지는 피부병의 하나일 뿐인 한포진 아님? 그럼 지금 현대의학도 미개한 의학임? ㅠ
의료사고가 아니라 조선최고급 어의도 간단한 감염 조차 못 다루는 한의학의 무능함 때문인데 뭔 또 의료사고야 ㅋㅋㅋㅋ 아니 무능,무지에서 오는 것과 착오, 실수에서 오는 것은 전혀 다른건데 왜자꾸 엮으려하냐
중종(中宗·1488∼1544)은 해열제로 야인건수(野人乾水)를 먹었다는 내용도 나온다. ‘야인건’이란 인분(人糞)을 말한다. 중종에게는 해열제라면서 사람 똥을 먹였던 게 한의학이네요. 사람 똥을 먹으면 열이 내려간다는 건 근거가 있는 건가요?
실수의 기준은 뭐임?ㅋ
나도 모름 요즘 똥먹이는 한의사 있음? 과거 치료법에 매몰될 필요가 없음 요즘 한의원에서 환자 치료하기 얼마나 편한지 모름 과거에 못한거 현대에 하고 있으면 된거임ㅋ
한의학에서 과거 치료법 빼면 뭐가 남는데요?
과거 치료법 빼면 현대 치료법이 남음ㄷㄷ
요즘 한의원에서 돌 갈아서 침 놓음? 한의원에서 첩약 옹기에 달여서 환자 옆에서 약사발에 짜줌? 현대식 치료법을 씀ㅎ
현대 한의원에서는 침을 안 쓰고 첩약을 안 쓰나요? 돌을 간 침과 공장에서 나오는 침이 침술학적으로 차이가 있나요? 첩약도 첩약 옹기에서 달이는 거랑 공장에서 달이는 거랑 차이가 있어요?
오늘날 한의원에서는 현대기술로 만들어낸 저렴한 침을 쓰고, 현대기술로 만들어낸 약탕기와 포장기, 파우치라는 도구를 사용함ㅎ
그러니까 조선시대 돌로 갈았던 침이랑 공장에서 나오는 침은 효과가 다르냐구요. 첩약도 옹기에 달이는 거랑 공장에서 달이는 거랑 약효가 달라요? 왜 쓸데없는 얘기를 꺼내는 건지?
효과 차이는 갑자기 왜 등장하는지모르겠음 님이 과거치료법 빼면 뭐가 남냐고 해서 요즘은 과거처럼 치료 안한다고 한거뿐임ㅎ
과거처럼 치료를 안 하면 한의학의 치료법이 뭐가 남냐구요. 수천 년간 우리 민족의 건강을 지켜왔던 게 한의학이라잖아요. 그럼 그 동안은 뭘로 지켜왔던 거죠?
님 어쩌다가 종기의 역사에 꽂힌 모양임ㅎ 항생제 나와서 이제는 종기로 죽을 걱정 안하니 그걸로 다행 아님? 혹시 님 주변 한의원에서 종기 치료한다고 하는곳 있음?
조선시대 왕의 피부병도 고치지 못했던 한의학이 도대체 뭘 근거로 우리 민족의 건강을 지켜왔다고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가는데요.
현대의 한포진도 완치 못시키는 대한민국 수많은 피부과는 존재 가치가 없는거임?ㅠ
왕의 건강도 저 수준이었는데 일반 민중들은 말 할 것도 없었죠. 개항기 기록만 봐도 트라코마로 인해 소경이 어마어마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나라 전역에 만연된 트라코마 (눈의 결막질환)의 영향으로 장님이 엄청나게 많다. 이들이 가장 원하는 직업은 무당이다. 이 무당만큼 수입이 좋은 직업도 드물기 때문이다. 이들 무당의 할일은 병자의 몸을 장악하고 있는 악귀를 몰아내는 일인데 병이 심하지 않는 경우 무당은 성공한다. 재수만 좋으면 병세가 심하지 않는 환자받으면 그 무당은 나라 방방곡곡 유명하게 된다. 환자의 병세가 심하고 심상치 않다고 여겨지면 무당은 적당한 기회에 그럴듯한 트집을 잡아 책임을 전가시킴으로써 자신의 체면을 살린다.
팩트 하나 말해줌 현대에는 한의원에서 님이 말한 질환 볼일이 거의 없음 감사한 부분임 조선시대 의사들은 시대 잘못 만나서 쌩고생한거임ㅠㅠ 현대 한의사들은 시대 잘만나서 공장에서 만들어 나오는 저렴한 침, 국가인증한약, 양방의 도움, 위생관념의 발달 등으로 편하게 진료하는건 맞음.ㅎ
제가 말했던 질환들 현대에도 존재하고 의원급에서 간단하게 고쳐요. 그리고 조선시대 한의사들도(의사가 아니라) 유기농 약재들이랑 장인이 만드는 침구 다 구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왕조차 치료 못하고 저렇게 쩔쩔맸구요.
지금 한의사가 조선시대때는 유일한 의사였고, 조선말에 서양의학이 우리나라 주류 되면서 의사 명칭 쓰게된거 아님?
우리 민족의 건강을 지켜오던 건 "한의사"들 아니었던가요? 조선시대 어의들을 한의사라고 부르는 게 부끄럽나요?
이상한 포인트에 빠지신듯함ㅎ 조선시대 문헌에 한의사라고 쓰여있는거 있음? 지금 부를때야 어의들이 한의사선배님들이지만 당시에 그랬음?ㅎ
우리는 조선시대가 아니라 현대 대한민국에 살고있고 의사와 한의사는 엄연히 다르죠.
그러면 문헌을 그대로 복사해오지 말았으면 어땠을까함ㅎ 님덕에 혼란만 가중됐음ㅎ
의사와 한의사는 전혀 다른 직업이라는 걸 염두해두면 전혀 헷갈리지 않습니다.
효과 없음. 항생제가 문제가 아니라 한의학이 그렇게 통찰력이라도 있었다면 위생관리라도 하라고 했겠지. 아니면 왕이 운동이라도 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런 개념조차 없었음. 궁궐에서 태어난 왕들이 오래 못 산 이유.
조선시대 왕들이 깨끗한 환경에서 운동하고 위생관리 했으면 가장 잘 먹은 사람들이니 평균수명 60까지는 갔어야지.
ㅇㅇㅇㅇㅇ 맞음 그래서 상하수도의 발달이 그만큼 중요한거임 이제 좀 알아주는 친구 만난듯함ㅎ
14.49 이색 누가 한무아니랄까바 말돌리기,말장난만 존나게하는구나
양의학은 씨발 지들 좆같은거 알아서 싹다 바꾸기라도 했지 한무당은 ㅅㅂ 임상실험도 안된거 ㅈ대로 만들어서 비싸게 팔아먹는 사기꾼이다
이건 이해가 안되는게 조선시대랑 비교하려면 중세 유럽 의학이랑 비교를 해야지 사료만 놓고 보자면 허준시대 한의학이 동시대 의술들 중에서는 제일 나았던거 아닌가? 유럽에서는 정신병 치료하려고 두개골 망치로 깨던 시절인데
중세시대는 서양의학은 주술사가 했고, 정신병자는 머리속에 악령들었다고하여 머리에 구멍내고 꺼낸다고함, 동시대를 비교해야지
무식한 양아치 새끼네 동시대를 비교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