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3.1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졸업과 동시에 자동 부여되는 의사 면허증을 받지 못했다. 조선총독부 의원에서 2년을 부수(副手)[6]로 근무하고 나면 의사 면허를 내주겠다는 제안을 받아 조선총독부부속병원에서 외과 마취 부수를 하며 마취 기술을 익혔다. 마취과 전문의가 따로 없던 시절이라 마취는 외과 의사한테 중요한 작업이었고, 여기서 익힌 마취 솜씨는 나중에 그가 외과 의사로 이름을 날리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백인제는 외과의사로서 충수염 및 충수염성 복막염을 1천예 이상 수술하였다고 전해지며 1937년에는 유착성 장폐색에 대해 폐색부 상부 장관을 복벽에 유착시켜 장루(腸瘻)를 형성하는 방식의 장감압술(腸減壓術)을 세계 최초로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2011.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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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조해선생은 1년에 두 번씩 열린 한의사시험에 일곱 차례, 즉 14번 만에 합격했습니다. 이 수험표 14장이 아직 보관돼 있는데 그는 학생들과 대화를 할 때면 ‘13전 14기’의 정신을 강조했습니다. 이후 선생의 한의원은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를 도운 한 이사장에 따르면 환자 수가 하루 500명이 넘었는데 한조해선생은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새벽 4시에 일어나 국선도(國仙道)를 수련한 뒤 한의학서적, 특히 ‘동의보감’을 보며 환자 맞을 채비를 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