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제의학교(同濟醫學校)

고종이 1904년에 설립한 최초의 근대식 관립 한의학 교육기관.

갑오개혁이 실패로 끝나면서 일제의 무력에 의한 강요로, 우리의 의사행정(醫事行政) 및 의료교육제도가 서양의학적으로 변혁이 되었다. 1899년 3월에 칙령 제7호로 반포된 의학교관제에 의하여 관립의학교(官立醫學校)를 설립하고 수업연한을 3년으로 학부아문(學部衙門)에서 직할하게 되었다.

1905년 4월부터 한의학 교육이 시작되었는데 그때의 학생 수는 40여 명에 이르렀다. 동제의학교는 1년간을 유지하여 오던 중 탁지부로부터 경비가 지출되지 않아 중단되게 되었을 때, 다시 고종에게 주청하여 고종의 사용재(私用財)인 명례궁(明禮宮)의 친용금(親用金)을 지불하게 되어 3년간이나 더 계속하게 되었다고 한다.

1906년에 일본인 고문관 의사인 좌좌목(佐佐木)이 한의사들을 광제원에서 축출하기 위해 예고도 없이 서양의학 시험을 보아 한의사들을 낙제시켜 축출하였다. 1907년 6월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고종이 강제 퇴위됨에 따라 동제의학교도 개교한지 3년 만에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1910년 8월 2일에는 동제의학교의 뒤를 이어 쇠퇴해 가는 한의학의 재기와 전승을 위하여 동서의학강습소를 만들게 되었는데, 한의학강사는 박준승(朴準承), 서병효(徐丙孝)가, 서의학강사는 안상호(安商浩), 유병필(劉秉泌)이 맡았다. 그러나 1913년 12월까지 만 3년의 단명으로 끝났다.

동제의학교가 비록 3년이란 짧은 기간 존속하고 헤이그 특사사건 이후 외세에 의해 폐쇄되고 말았지만, 수천 년 전통의 민족의학의 재기를 위해 노력한 점은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또한 최초의 근대식 한의학 교육기관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국립 한의과대학에 해당하는 위치를 점했다는 점 또한 평가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