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이전에는 별다른 기록이 없으나, 삼국시대에 들어서면서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졌으며, 이에 따라 삼국 시대의 의학에 관련된 기록을 많이 찾을 수 있다. 신라군이 백제, 고구려, 당나라와 싸울 때 병참 보급품으로 우황, 인삼 등 약재를 갖고 다니거나 머리카락, 자석 등 응급처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물자를 운용하기도 했으며, 나당전쟁이 끝난 후에는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사 최초의 국립의과대학인 '의학(醫學)'을 효소왕 재위기인 692년 설립해 의료인을 배출하는 산실을 일구었다. 신라의 의학에서는 본초경(本草經), 갑을경(甲乙經), 소문경(素問經), 침경(針經), 맥경(脈經), 명당경(明堂經), 난경(難經)을 기초 교재로 삼고 2명의 박사를 두어 학생들을 가르쳤다.
일본의 옛 역사 기록에 백제신집방, 신라법사방 등 신라나 백제의 처방이 기록되거나 의사의 행적이 기록된 것을 찾을 수 있다. 이를 살펴보면 당시 의술은 불교 및 도교의 영향을 받아 주술적 행위와 혼합되어 시행되었으며, 일본에서 의학을 집대성할 때 바다 건너 한국의 처방을 일부 소개할 정도로 한국 의학의 인지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에도 의학의 교류는 활발하였으며, 의서, 약재의 수출과 수입이 다양하게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대에 작성된 향약구급방은 현재까지 존재하는 의서 중 가장 오래된 책이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 한국의 한의학은 거대한 발전을 이루어서, 세종 대에는 당시 국내에 존재하던 처방을 모두 모은 향약집성방이 완성되었으며 당시 의학의 백과사전 격인 의방유취 또한 세종조에 만들어졌다. 의방유취는 양이 방대하여 현재 조금씩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작업은 역시 동의보감이었으며, 이후 한국의 한의학은 이론의 발전보다 대중화를 초점으로 그 방향을 돌리게 되었다.
일본의 옛 역사 기록에 백제신집방, 신라법사방 등 신라나 백제의 처방이 기록되거나 의사의 행적이 기록된 것을 찾을 수 있다. 이를 살펴보면 당시 의술은 불교 및 도교의 영향을 받아 주술적 행위와 혼합되어 시행되었으며, 일본에서 의학을 집대성할 때 바다 건너 한국의 처방을 일부 소개할 정도로 한국 의학의 인지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에도 의학의 교류는 활발하였으며, 의서, 약재의 수출과 수입이 다양하게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대에 작성된 향약구급방은 현재까지 존재하는 의서 중 가장 오래된 책이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 한국의 한의학은 거대한 발전을 이루어서, 세종 대에는 당시 국내에 존재하던 처방을 모두 모은 향약집성방이 완성되었으며 당시 의학의 백과사전 격인 의방유취 또한 세종조에 만들어졌다. 의방유취는 양이 방대하여 현재 조금씩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작업은 역시 동의보감이었으며, 이후 한국의 한의학은 이론의 발전보다 대중화를 초점으로 그 방향을 돌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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