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대도 의대처럼 예과 2년, 본과 4년으로 나누어져 있다. 본과 때 본격적인 임상과목을 배우게 되고 예과 때 의대와는 다르게 주로 고서를 통해 한자를 배우며 한의학 원론이라는 과목을 배우게 된다. 아직도 원론 첫 수업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나이 지긋하신 교수님이 들어오시더니 ‘눈을 감아보라, 양 손을 배 위에 올려보라, 뭐가 느껴지지 않느냐, 우리 몸에는 기가 흐른다, 집중을 해서 느껴보라. 우리는 이렇게 멋있는 학문을 배우고 있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상위 2-3% 이내의 인재로 얼마든지 원하면 서울대 공대, 자연과학대 등 최신 과학의 정수를 배울 수 있는 곳이나 같은 학교 내의 의대를 충분히 갈 수 있는(내가 입학할 당시에는 그랬다) 성적의 학생들에게 이루어지는 한의학 가스라이팅의 시작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의대와는 다르게 예과 때 한자라는 핑계로 공부를 열심히 시켜 다른 학교로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예과때는 정신없이 지나간다. 한자가 어느덧 익숙해지면 본과생이 된다. 한의대 본과 1~2학년때는 흥미로운 과목이 많다. 침구학, 본초학과 같이 혈자리와 기본적인 한약제들을 배우는 한방 과목과, 기초생리학과 해부학과 같은 양방 과목을 배우면서 내가 이렇게 멋있는 학문들을 기초로 양방의 폐해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멋있게 침과 한약으로 고치는 허준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수업을 안 듣는 학생들이 생긴다. 상상도 못하겠지만 무려 절반 이상의 학생이 수업을 듣지 않는다. 대학교 수업을 안 듣는다고?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럼 어떻게 시험을 보고 F를 면해 유급을 당하지 않느냐고?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엄청난 퀄리티의 족보가 있다. 일부 20~30% 정도의 학생들이 수업을 열심히 듣는데 이 학생들이 필기해 놓은 내용, 그리고 잘 정리되어 있는 과거 기출문제 등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듣기 싫어하는 소위 ‘양방 과목’은 수업을 단 한 번도 듣지 않는 학생들이라도 족보만 보면 통과할 수가 있다.
그러면 수업 안 들을 때 뭐하냐고? 한의사 중에 명의는 한의대 교수가 아니라 대학 밖에서 돈을 끌어모으고 있는 명의로 소문난 ‘한의원 원장’님들이다. 이 명의라는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학회를 만들고(예전 유명한 학회는 가입비를 천만원을 받았다), 허준이 되고 싶어 간절히 공부하고 싶은 한의대 학생들에게 선생님, 스승님 소리 들으면서 선심 베푸듯 한의학을 가르킨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관(觀)을 가져야 한다’ 이건 또 뭔 소리인가?
간단하게 설명해보겠다. 사상의학 다들 들어보았을 것이다. 사상의학은 이제마 선생님이 만든 한의학의 하나의 계열이라고 보면 된다. 이 사상의학이라는 개념을 내 머릿속에 집어넣고 언제든지 꺼내서 환자를 볼 수 있는, 관점이 생겼다고 해야하나? 이걸 ‘관’이라 한다. 요새야 MBTI를 물어보지만 예전에는 한의대 다닌다 그러면 소양인이야 태양인이야? 물어보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로 사상의학이 마치 한의대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소양이라고 생각했지만 절대 아니다. 사상의학 말고도 수십가지의 계파가 있다는 것이다. 얼굴이나 몸의 형상 등을 보고 진단해서 치료하는 형상의학, 배만 주구장창 눌러보고 진단내리거나, 맥만 주구장창 보거나 등등 재미없는 학교 수업을 듣지 않더라도 한의사들은 공부할 게 너무나도 많다. 왜 이런거에 빠지냐고? 나도 얼른 저 멋있는 선생님, 아니 스승님처럼 관을 가져서 환자를 멋있게 고쳐내는(그리고 돈을 많이 버는) 한의사가 되고 싶으니까. 이게 두번째 가스라이팅이었다.
본과 3학년이 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본격적으로 임상과목을 배우는 시기로 한방병원에서 진료보는 교수님들이 들어온다. 많이들 모르겠지만 한의사도 양의사들처럼 전문의가 있다. 간, 심, 비, 폐, 신이라는 장기별로 나눈 내과 계열도 있고 침구과, 한방재활의학과 등이 있다. 여기서 각 과별로 진료하는 교수님들이 들어오는데 수업 내용의 80%는 양방 내용이다. 양진한치라는 개념이 여기서 나오는데 양방으로 진단을 하고 치료는 한의학으로 하는게 기본 ‘관’인 중국의 교과서를 그대로 가져와서 교수님들이 강의를 한다. 그래서 병인, 증상, 진단방법 등등 양방 내용이 쭉 나오다가 갑자기 치료에서만 한약 내용이 나온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이때까지 여러 멋있는 스승님들에게 ‘진짜’ 한의학을 배우고 '양방따위는 필요없어' 하고 있는데 우리 스승님보다 못한 대학병원 교수라는 인간들이 와서 양방 내용을 너무나 중요한 것처럼 가르치는데 내가 다 자존심이 상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수업을 안 듣는다. 그래도 괜찮냐고? 괜찮다니까? 양방 내용 하나도 몰라도 유급 안 당하게 족보 만들어 놓았다니까? 가감없이 말하자면 80%의 한의사는 양방 모른다. 알고 싶어하지도 않고 교육 수준도 한심할 정도로 낮아서 배워도 의미가 없을 수준이다. 안타깝게 돌아가신 예전 한의사협회 회장님이 골밀도 측정한다고 발목에 대고 당신은 골다공증이 있으니 침과 한약을 사용해서 치료해야 합니다 이야기가 나온게 이러면 좀 이해가 되려나? (장담하건데 대부분의 한의사들은 이게 아직도 뭐가 잘못된지 모를거라 확신한다) 예전부터 우리들이 초음파, 엑스레이, 레이저처럼 양의사들 것 뺏어오려는 논리가 교과서에 있고 수업을 듣기 때문이다! 논문도 쓰고 있다! 인데 솔직히 쪽팔린다. 수업 과목이 있어도 다 듣지도 않잖아 솔직히.. 논문도 자기들끼리 허접한 학회 만들어놓고 거기에 투고하면 다 받아주는 시스템인데 의새들이 이런 저널이 있는지 알까봐 겁날 정도라고... 뭐 공무원들은 그런거 보지도 않고 이런 형식적인거 좋아하니까 거기에 딱딱 맞추면 마치 완벽하게 교육이 되고 있고 교수들이 논문도 열심히 쓴다고 착각해서 통과를 시켜주는거다.
의과대학, 한의과대학, 치과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철저한 교육과 교육 관리를 통해서 어느 정도 이상의 수준을 갖춘 의료인이 나와야 하는게 목표인데 적어도 한의대는 그게 되지 않는다. 기본적인 양방지식, 심지어 일부는 한방 지식이 하나도 없이도 충분히 졸업하고 한의사 국가고시를 통과할 수 있는게 한의대 교육의 현실이다. 요새 의대정원 늘리는게 화제인데 일부에서 말하는 교육이 제대로 안 될 것이라는 점, 한의대 다녔던 입장으로 그 점은 너무나 잘 이해된다. 해부학 시간에 의대에 주어지는 카데바 외에 한의대에 줄 수 있다는 겨우 몇 3~4구 얻어내서 30~40명이 한 카데바로 수업을 들었었는데 정말 카데바 본 기억도 안 난다.
제일 큰 문제는 한의대를 졸업할 때 발생한다. 국가고시를 보기 위해 졸업준비위원회라는 것이 구성이 되는데 뭔가 분위기가 엄숙하다. 졸준위를 하게 되면 술도 많이 마신다는 이야기가 있고, 믿을만한 사람이 졸준위를 해야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래놓고 회비를 100만원이 넘는 돈을 걷는다. 공부할 내용 정리한 책 출력비가 그렇게 들지 않을 텐데…? 처음에는 10권 이상의 총 정리본으로 공부할 책이 주어진다. 이때 공부하는 사람 없다. 책이 줄기 때문이다. 4권 -> 2권 시험날이 다가올수록 이렇게 줄게 된다. 그리고 시험 보기 몇일 전에 비밀작전이 시작된다. 수업이 다 끝난 어두운 밤에 마지막 2권짜리 책을 가지고 강의실에 모이라고 한다. 문을 잠구고, 앞에서부터 페이지를 넘기면서, 35페이지 무슨 내용 엑스표 치시구요, 38페이지 어떤 내용 동그라미 치시구요, 48페이지부터 70페이지까지 엑스… 와 진짜.. 회비 걷어서 교수님들 어디 보내준다는 소문이 진짜였나? 생각이 든다. 이게 대한민국 의료인의 국가고시인가.. 현타가 오더라도 일단 붙어야 되기 때문에 열심히 받아 적고 외운다. 시험 날 당일, 동그라미 친 내용에서 그대로 나오는 문제가 수십문제가 된다. 아.. 이렇게 90% 이상의 합격률이 나온거구나.. 씁쓸한 웃음밖에 안나왔다. 물론 뒷처리는 깔끔하게 한다. 시험장으로 가는 버스에 경찰이 탈 수 있으니 버스에 책 놓고 다니지 말라는 무서운 경고부터, 시험 끝나면 책 파쇄해라 등등. 책 몰래 빼돌릴수 없냐고? 모든 페이지에 자기인지 알 수 있게 하는 고유 숫자 찍어서 주는게 기본인데 빼돌려서 폭로했다가 집단 린치 당하게..? 바로 위에서 왜 한의대를 졸업한 사람들이 최소한의 자질을 가지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이제는 이해가 되겠지? 참고로 의사도 수십년 전에 똑같은 문제가 있었다가 국가고시 문제를 공개하기 시작한 이후로 쌩으로 공부해야 하는 시험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치과의사는? 모르겠다. 한의사는? 아직이다. 다른 전문직이라는 직종도 알고 보면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겠지?
얼마 전에 한의사 국가고시 문제 하나 공개되어서 문제된 적 있는데, 지주막하출혈 사진 주고 이 환자의 치료는? 해서 여러 한약제를 고르는 문제. 한의사들은 이 문제가 뭐가 잘못되었는지 생각 안 한다. 그냥 답만 외울 뿐이지.

개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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