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학과 동양의학


의학(醫學)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살면서 종종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려서 고통을 겪는 수가 많다.
그 때를 위해 의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한다.
그 근본은 인간의 존엄함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의학에는 어떠한 종류가 있는가?
가장 보편적인 기준으로는 [현대의학]과 [대체의학]으로 구분할 수 있다.
현대의학은 전통적인 서양 생물학에 기반을 두는 현대의 대부분의 병의원에서 행해지는 의학이고
반면에 대체의학은 [현대의학이 아닌 것]이다.
주류 현대의학에서 취급되지 않는 다른 의학들은 전부 대체의학으로 설명된다.
각국의 전통의학, 기치유, 파동의학, 아로마 테라피, 요가, 명상, 주류로 취급받지 못한 서양의학 등등..
일맥상통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대체의학은 보통 자연의학으로도 표현된다.
원래는 현대의학과 자연의학이라는 구도로 비교를 해보고 싶었지만 이 글에서는 주로 자연의학 중에서도 대표격이고, 체계적이고 가장 우수한 축에 속하는 한의학의 예를 들어서 서양의학(현대의학)과 동양의학의 구도로 글을 전개해 보고 싶다.


우선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에 관해, 그 둘이 전해주는 느낌을 그대로 느껴보라고 말하고 싶다.
우선 서양의학의 쪽을 살펴보자.
고등교육을 이수한 학생 중에서도 가장 성적이 우수한 엘리트들이 의대를 진학한다.
그 후에도 철저하고 어려운 학문의 과정을 거친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일반인으로서는 외계어로 들릴 지경으로 어렵고, 어떤 면으로는 폼난다.
그들은 수백만원에서 수억에까지 달하는 진단장비, 치료장비, 보조장비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 역시 쿨하게 보인다.
의사들이 내려주는 처방, 집도하는 수술들은 아무나 흉내내기 어렵다. 그것을 하려면 엄청난 숙련이 필요하다.
각종 의약품을 개발하는데에는 억소리는 우스운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된다. 전 세계가 신약 개발에 골몰하고 있고, 정부의 지원과 우수한 인재들이 몰린다.

반면에 동양의학은 어떠한가?
그들은 겉보기에 온몸에 침이라 불리는 바늘을 꽂아대고, 무슨 [원시인 원주민]들도 아니고 풀떼기 우린 물이나 마시고, 음양오행이니 하면서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하는데, 이것은 거의 미신이나 주술에 가깝고, 당연히 과학적으로 효과를 볼 수 없는 것이고 설사 효과가 있더라도 위약효과가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서구 말고도 한의학의 본진인 우리나라에도 상당히 많다.

이쯤되면 동양의학의 대패가 아닌가? 당연히 현대의학이 현대적이고, 과학적이고 난해하고 투자와 지원도 천문학적이니깐?
나는 그 인식과 프레임을 깨고 싶어서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다.


우선은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관점의 차이, 접근법의 차이에 대해 다루어 볼 필요가 있다.
서양의학은 과학적이다. 쪼개고, 나누고, 분류하고, 분석한다.
그리고 서양의학은 기계론적 인체관에 기틀을 두고 있다.
기계는 한 부분이 고장나면 그 부위만 갈아끼우고, 기름칠 잘 해주면 언제 그랬냐는듯 쌩쌩히 돌아가지 않던가?
노트북이 화면이 안나오면 VGA나 액정 문제니깐 그것만 갈아주면 되고,
키보드가 안먹히면 당연히 자판이 문제니깐 자판만 갈면 되는것 아닌가?
서양의학은 그러한 관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하나더, 서양의학은 입자론적 관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입자라는건 무겁다. 움직이지 않는다. 시공간적으로 안정적이다.(이에대해 뒤에서 추가로 설명함)

반면에 동양의학은 쪼개고 나누기 보다는 전체를 통합적으로 본다.
그리고 동양의학은 입자론에 근거를 두지 않는다.
동양의학은 입자가 아닌 양자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서양 과학자들은 불과 100년전만 하더라도 氣에 대해 알지도, 인정하지도 못하였다.
그 전 까지만 해도 서양인들의 과학은 입자적인 관점에만 머물러 있었다.
입자라는것은 세상의 물질을 쪼개고 쪼갰을 때 분자, 원자 정도 까지의 것들을 입자라고 그런다.
서양 과학자들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만물의 근원 되는 것을 찾기 위해 그것을 더 쪼개고 쪼개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입자를 쪼개고 쪼개면서, 그동안의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현상에 마주친다.
분자, 원자, 소립자 미립자 어쩌고 저쩌고 쪼개어 들어갈 때마다 우리가 느끼고 있는 거시세계에서의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와해되고, 시공간에 제약없이 입자들이 요동치고, 움직이는 것을 알아냈다.
이는 기존 거시물리학, 고전역학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입자와 파동이 실은 하나라는 것을 알아냈다.
이중의 슬릿을 설치해 놓고 반대편에 전자를 검출할 수 있는 계측장비를 설치한 후 전자총을 발사했는데, 그것을 관측하던 과학자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과학자들이 전자를 예의주시 하고 있을 때는 그것은 입자의 형태로 관측이 되었는데
과학자들이 한눈을 팔자 똑같은 전자가 파동의 형태로 관측이 된 것이다.
이것으로 입자와 파동은 같은 본질이라는것, 그리고 또하나 불가사의하게 느껴지지만 인간의 의식이 그것이 입자이느냐 파동이느냐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근데 동양의학이 이 양자론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동양 의학 뿐만 아니라 동양의 사상, 종교, 풍수지리, 역학 등 모든게 이 양자론을 토대로 세워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우주가 입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파동, 에너지임을 이미 수천년전에 깨닫고 일상생활, 의학에 적용했던 것이다.
우리 조상들의 의사였던 한의사들은 이미 인간이 대우주의 복잡미묘함과 맞먹는 심오한 소우주임을 알았고, 우리 인체에 에너지가 흘러 다니는 길, 각 장부들의 에너지가 인체 전반에 걸쳐 어떠한 육체적, 정신적 영향을 미치는지, 각 에너지가 모여있는 부분의 역할, 그것이 막히거나 끊기면 어찌 되는지,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인체라는 에너지와 우리 주위 자연환경의 에너지와의 관계 등에 대해서 꿰뚫고 있었다.
우리 민족은 기절초풍(기가 끊기면 풍을 초래함), 간담이 서늘하다, 간도 크다(간의 에너지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말하는 것) 기분 좋다(말그대로 기의 분배分配가 좋아서 [기분]도 좋다) 같은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쓴다. 
서양에서는 그로부터 수천년 뒤에나 겨우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을 태동시켰고 그전까지는 양자레벨의 미시적 레벨에 다다르기는 커녕 분자 레벨 까지도 한참 걸려서 겨우 도달했는데, 지금도 그나마도 “만물이입자이자 파동이라는데, 그래서 어쩌라는건지” 수준으로 무지한데 우리 조상들은 옛날부터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과 파동으로서, 에너지로서의 세계가 어떻게 운용되는지, 그것을 의학에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는지 알았다.
우주 삼라만상이 氣의 운행으로부터 생성 소멸하는 것을 알았다.
서양 과학자들은 이제서야 겨우 그것을 이해할 똥 말똥이다.

그건 그렇고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에너지의, 양자의 관점을 가지고 어떻게 인간의 건강을 지켰는가?
우주 만물이 가만 냅두면 스스로의 법칙에 의해서 운용되고 생성, 소멸하듯이
인간이 자연의 법칙에 거스르지 않는 삶을 살면 에너지도 막히지 않고 흐르는 거고,
그로인해 건강도 얻게 된다고 봤다.
흐르던 기운이 줄어들면 병이 드는거고, 끊기면 죽는 것으로 봤다.
그러니깐 건강을 회복하려면 침과 뜸으로 막힌 혈자리에 전기적 자극을 줘서 막힌 물줄기를 뚫어 주기도 했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에 존재하는 많은 동식물, 광물들을 이용해 에너지를 원래대로 회복시켰다.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비교 사례를 들어 보겠다.
먼저 암이다.
서양의학에서 암이란것은 몸에 있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것을 죽이고 사멸시켜 제거해야 한다.
그과정에서 몸에 흐르는 에너지와 체력, 면역력, 인체의 자연치유력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사람들이 항암제가 좀 독하고 화학요법이 조금 괴롭다는 정도는 다들 알고 있지만, 항암제가 1차 세계대전때 독일군이 사용하던 살상용 독가스가 시초라는 것을 알게되면 까무라칠것이다.
독일군이 사용하던 알킬화제라는 독극물이 암세포의 유전자 합성을 저해하는 현상을 우연히 발견하여 항암제 개발의 단서로 삼은 것이다.
아무리 순화하고 개량해 봤자 그것은 독극물이다.
자연스러움에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
자연계에서 그런 극악스러운 물질은 주위에서 도통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런데 굳이 그 물질을 가지고선 암을 고치려고 한다.
물론 그 물질이 암세포를 사멸시켜 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전신의 면역력, 자연치유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다.
분명히 암 진단을 처음 받은 환자들은 그 전날까지만 해도 건강에 이상을 느끼지 못하다가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부터 체력이 극도로 쇠약해진다. 
분명히 그 극약폭탄을 써서 암세포를 제거했는데, 항암치료를 종료하고 일상에 복귀하려는 수많은 암 환자들이 끊임없는 재발을 겪는다.
그걸보고 의사들은 암이 전이되서 재발했다는둥, 헛소리한다.
그건 암이 전이된게 아니라, 항암제에 의해 전신의 면역력이 초토화 되었기 때문에 암세포가 새로 생겨나 도로 활개를 치는 것이다.
그나마 옛날의 건강하던 몸에서는 암세포가 힘도 잘 못쓰고 딱 고만고만 했는데, 항암치료를 하고 난 후에는 암세포의 행보에 거침이 없다.
암의 재발, 악화는 물론 전신적인 기능부전으로 사망한다.
암환자들이 암에 의해 사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사실 암 환자들의 주요 사망 원인은 항암제에 의한 암세포의 창궐, 전신적인 기능부전 때문이다.
병을 낫기 위해 전 재산을 바치고, 인생을 걸고, 가족의 고난을 겪게 하면서도 결과물은 고작 암세포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워먹는게 전부다.

동양의학을 비롯한 자연의학에서는 암세포를 인간의 근원적인 치유력 앞에서는 당해내지 못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인체 근원의 힘을 키워 자연스럽게 낫게 하려고 하는 정 반대의 방법을 쓴다.
절대 암세포 쪼가리 죽인다며 독극물 폭탄을 퍼붓는 방법 같은건 쓰지 않는다.

두번째 비교는 불면증이다.
불면증의 원인은 현대의학적으로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당연히 그럴수 밖에 없다.
기계론적 관점에 의해 뇌는 뇌고, 불면증은 뇌의 부적응적 작용으로밖에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양의학에서는 불면증의 치료를 위해 수면제를 처방한다.
수면제는 뇌의 뉴런 간극 시냅스에서의 화학물질 작용을 인위적으로 조정하여 잠이 오게 하는 것으로, 거기다 심각한 간독성, 신독성 까지 있다.
이것이 뭐가 문제인가?
인체는 밤이 되면 머리와 사지말단에 있던 피를 몸통으로 불러들여, 하루동안 쌓인 독소를 해독하고, 피로를 해소한다. 
잠을 잘 자고 일어나면 피로가 풀리고 정신이 개운한 것이 본래의 이치이다.
근데 수면제를 자기전에 복용하게 되면 전신은, 특히 신장과 간장은 밤새도록 그것을 해독하느라고 난리가 난다. 무언가 엄청 독한 것이 매일 밤마다 일감이 밀려들어 오니, 일감이 밀려 제대로 독소를 정화하고 피로를 풀지 못한다. 
그런데도 어쨌던 잠은 잔다. 뇌가 마약이나 다름없는 약 성분에 쩔어있으니.
하지만 수면제에 의해 잠을 자면 숙면을 취하기 어렵고,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동양의학에서는 불면증에 각 장부들의 에너지가 미치는 영향, 심리적인 영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원인에 맞는 처방을 내릴 수 있었다.

세번쨰로는 고혈압, 당뇨병 같은 만성 성인병 질환들의 예를 들고 싶다.
의사들은 이 병들을 두고 평생동안 약으로 [관리]하라고 환자들에게 이른다.
사실 이 [관리]라는 어휘 선택에서는 의사들의 악독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 [관리]라는 표현은 [우리는 병을 근원적으로 고칠 줄도 모르고 그럴 능력도 안되는데, 우리도 돈 벌어야 되니깐 이약 먹고 평생 호갱짓 해라]라는 말을 순화해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이쯤 설명했으면 서양의학과 동양 의학중에 누가 미개하고, 누가 뒤떨어졌는가?
현대의학은 의학을 빙자한 사기행위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기만하는 폭압이다.
자연에 그대로 흐르는 강줄기를 가만히 냅두면 가끔 홍수가 나서 물난리가 날 지라도, 그 자리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태동하여 살아가고 인간의 삶의 터전 역시 그곳에 근거지를 둔다.
그런데 그 물난리가 난다면서 강을 포크레인으로 뒤집어 엎고, 공구리치고 그러면 당연히 생태현상의 조화가 깨지고 그것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삶도 파괴된다.
서양의학의 합성 화학약품 처방, 인공적인 시술들과 본질을 같이 하는 비자연적이고, 조화롭지 못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래도 “아닌데?” 그러고 고개 뻣뻣히 들면서 내 주장에 반발하려는 자도 많을진대, 그런 자들은 자기 보고 싶고 편한 것만 보려는 자들이기 때문에 귀기울여 상대할 필요가 없다.
현대의 의학자들은 현대의학의 한계가 분명하고, 오히려 대체요법, 자연요법, 동양의학이 이 분야의 빛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그들은 끝까지 자연치유를 부정하고 어렵고 험난한 길을 택하는가?
그것은 자연의학이 자신들에게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의 의학은 더이상 의학이 아니라, 비지니스이다.
사람들의 건강을 담보로 엄청난 부를 가져올 수 있다.
인생에서 목숨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그것이 환자들에게 현대의학이라는 비지니스에 맹목적으로 충성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의학이라는 비지니스는 이미 예전의 숭고함과 인간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사명과 목적을 잊은 지 오래다.
의료의 기업화, 자본주의화가 극단적으로 추진된 미국에서는 이미 가난한 환자가 응급상황으로 병원에 실려 오더라도, 어떤 조치도 받지 못한다.
그들에게선 돈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그 병원의 의사들은 그 환자를 자기 식당에서 무전취식 하려는 부랑자 정도로 여기지 않았을까?

자연의학은 서양의학을 뿌리부터 흔들어 붕괴시키고, 자신들을 최후엔 길거리에 나앉게 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을 아주 잘 알기 때문에 온갖 협작질 술수를 부려 가면서 세상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자신들만이 최고고 옳다는 프레임을 주입시키는 것이다.

그래도 현대의학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도 많은 것은 사실이다.
예를들면 현대의학은 해부학과 생리학을 근거로 전쟁터에서 총탄과 파편에 맞아 으깨진 장기와 팔다리를 재건할 수 있다.
위생적이고,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항생제와 백신들을 개발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병원原들에 맞서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 항생제들도 딱 천연 항생제인 페니실린이 개발되던 그 때 까지이지, 그 이후에 개발된 인공 항생제들과 그것의 남용은 인류에게 재앙이 되고 있다.)
하지만 현대의학이 가져다주는 축복과 실익보다는 그것의 폐해와 부정성이 월등하기 때문에 내가 시간들여 이런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앞으로 우리의 질병을 다스리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여태 한 주장에 따르면 앞으로는 한의원만 다녀야 되는건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병이 이미 났을때 고쳐주는 의사보다는 오히려 병을 걸리지 않게 예방해주고 몸의 치유력을 가꿔주는 의사가 훨씬 좋은 의사다.
근데 그 좋은 의사가 누구일까? 
나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자기 자신만이 자신의 몸에 대해 잘 알고, 신경써줄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의사를 쓰는 것은 마치 조상님 묘 벌초하는데 벌초대행사를 쓴 느낌이다. 성의가 없다 이말이다.
자신의 몸에 대해 공부하고, 자신의 몸을 가지고 놀고, 자연과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만히 관찰하고 배우다 보면 자연히 우리에게 병은 다가서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