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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인 죄수조차 신호차단기의 전원을 끄면서
결과를 기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던 것처럼,
사실상 일탈에 가까웠던 그 행동이 없었더라면
노마이들이 재쌍둥이 프로젝트를 위해
항성계의 모든 가용 가능한 자원을 끌어모으면서도
목재 화로 강바닥에서 꾸물거리는 도롱뇽들을 위해
자재 한 톨 정도를 남겨줬던 그 선의가 없었더라면.
그 우연에 가까운 행동이 이렇게 이어지고 이어져서
새로운 희망을 만들 수 있었다는 거.
물론 죄수의 말처럼 인간은 어리석고 이기적이며,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잃고 똑같은 과오를 반복할 수도 있겠지만
리벡의 말처럼 이 과거를 미래의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미래를 이어지게 했다는 것 만으로도
우리의 짧은 삶은 가치가 있다고.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면 가치 있는 거였다고.
여기서부턴 개인적인 해석인데
엘크들이 vr챗으로 구현한 영생의 삶은
다른 만화나 영화 등에서 자주 나오는 이상론이기도 함.
대중적으로 제일 유명한건 매트릭스라던가
나루토에 나오는 무한 츠쿠요미가 있겠음
근데 이런 논리는 보통 실행에 성공하기만 하면
논리가 엄청 견고하고 이상적인 이야기라.
작가조차도 논파를 어려워해서 억지로 흠결을 만들거나,
그거조차 안되면
주인공이 나쁜 놈이고 악당이 맞는 말 한 것처럼 묘사되서
결국 스토리 평가가 바닥을 기는 경우도 많았음.
근데 이 겜은 최소한 내가 본 것중엔.
가장 나를 잘 설득했음.
엄청난 워프 기술에 온갖 항성계에 번성하며
마침내 시간마저 정복할 수 있었던 노마이는
고작 항성계 밖에서 날라온 혜성에게 몰살당했고
(정작 그들이 귀엽게 여긴 도롱뇽들은 살아남았단 게 아이러니한 일임)
가상세계에서 영원히 과거에 눌러앉으려 한 엘크는
실제로 그 계획이 수십만년이나 성공하긴 했지만
우주선이 가속할때 좀 덜컹거려서 물이 넘쳤단 이유만으로
그 오랜 삶이 허망하게 끝나버렸음
이렇게 당시에는 빈틈없는 계획 아래 구성된 영원일지라도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아주 간단한 우연에 붕괴될 수 있음.
특히나 영원이란 목표의 특성상,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다 보면
예측 못한 난수와 우연, 억까는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거임
주사위 20개를 동시에 던져서 모두 1이 나오는 것도,
주사위를 무한 번 던진다면 언젠가는 가능하다는 얘기지
이런 식으로 인게임에서 홍수를 맞고 불이 꺼져서 기분 잡친 채로 물 속에서 일어나는 경험을 여러번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엘크들이 말하는 영원이란게 얼마나 덧없고 허황된 거인지를 직접 깨닫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 다음을 생각할 수 있도록 설득되는 흐름이 좋았음.
이런 식으러 내가 직접 선택해서 배드엔딩을 보고,
내가 직접 선택한 결말이라 내가 스스로 납득하고 나에게 가치를 가진다는게
영화나 책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게임만의 가치라고 생각함.
물론 사실 대부분의 겜에선 게임적 허용이나 한계, 등으로 실패하는 방식이긴 하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 이 겜은 그걸 성공적으로 전달했음.
그리고 아까 우연 얘기를 다시 하자면. 그런 우연은 노마이에게 다가오는 침입자처럼, 처트에게 있어 초신성과 멸망하는 우주처럼, 절망과 억까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살아가는데 예상치 못한 행복을 가져올 수도 있는거임.
마치 길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소나무 냄새를 맡은 것처럼.
특히 이 게임에서는 그 '즐거운 우연'이라는 주제가
다른 사람과의 만남으로 잘 표현되었다는 생각을 했음.
이 겜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npc들은 만나게 되면 모두 반갑게 인사하며 맞이해 줬음.
만남을 즐기고, 대화를 시도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주제를 찾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음.
영원에 갇힌 엘크들만 빼고.
왜냐면 나와 다른 타인이란건, 말 그대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우연과 난수의 집합체일 테니까.
그런 새로움과 우연을 즐기고, 그 순간의 행복을 간직하는 것이. 삶이라는 거 아닐까요??
한동안은 또 아우터 와일즈 생각만 하고
그냥 아우터 와일즈 한 상태 일거같음.
끝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
이 엉망진창에 얼기설기 기워붙인 땜빵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이어지는 이야기라는거.
이 장면을 보자마자 무슨 내용이 나올지 머리로 모두 직감해버렸지만 저항할 수 없었음.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이야기임. 이게 인간 찬가 아닐까.
미래는 양자 상태로 중첩되어 있고, 관측하기 전에는 무한한 가능성 속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아무 것도 아니지 엘크는 더 이상 확장 불가능한 오늘로써 죽음으로부터 멀어지려 했지만 결국 허무하게도 죽게 되었고, 화로인은 무한히 반복되는 오늘을 거부함으로써 죽음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거기엔 내일이 있었고... 아무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이 가능한 재미있는 이야기임
글 ㅈㄴ 잘쓰네 잘읽었어
내가 느꼈던 감상이랑 거의 동일한데다 글까지 조리있게 잘 써서 당시에 느꼈던 그 감동을 다시금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음. 고마워!
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