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유영철의 편지에서도 “냉혈한이 자식들 때문에 주저한다고 하면 코웃음들 치겠지만 자식들이 새로운 사실을 뉴스를 통해 듣게 된다면 다시 흔들릴 것이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커질 수밖에 없지.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이라서 신중할 수밖에 없어”




한국 사회는 어떻게서든 극악무도한 살인을 저지른 유영철을 악마화시키고 괴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저런 따뜻한 모습을 진심으로 보여줘도 믿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유영철도 감정이 아예 결여된 사람은 아니다. 그에게도 감정이란 것이 있다. 하지만, 그는 단지 거기에 흔들리거나 휘둘리지 않았을 뿐이다. 



왜 우리는 그가 아들에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거짓이라고 믿어야 하는가? 어쩌면 사회는 믿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유영철처럼 사람을 18조각을 잘라버린 살인마가 아들에게 진심으로 사랑을 느꼈다고 한다면 오히려 더 무서워지기 때문에, 


그러나 나는 안다. 


유영철, 강호순은 진심으로 가족만큼은 사랑했다. 



더 이상 그들을 악마화 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존재이지만, 어디 살인이라는 게 그들만 저지를 수 있는가? 여기, 저기, 거기 누구라도 저지를 수 있는 것이 바로 살인이라는 것이다. 


히틀러는 600만명에 해당하는 유대인을 독가스실에 넣어서 죽였다. 그 뿐만 아니라 집시도 즉결처분했고 장애인도 약물로 전부 죽였다. 


그런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동물보호법을 만든 동물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히틀러를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로 간주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대체 그들이 말하는 공감이란 게 무엇일까?


저것이 진정한 공감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진정한 공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