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하는 사이 나는 담배를 피우고 술을 배웠다. 하지만 담배도 술도 그저 흉내일 뿐이었다. 전쟁은 우리에게 묘하게 감상적인 성장방식을 가르쳤다. 그것은 인생을 이십대까지로 뚝 잘라 생각하는 것이었다. 뒷일은 일절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인생이란 이상할만치 가벼운 무엇이었다. 정확히 이십대까지로 구획된 인생의 소금호수가 자연스럽게 염분이 짙어져서 몸이 손쉽게 떠오르도록 해주는 것 같았다. 막을 내릴 시간이 곧 다가온다고 생각하면 스스로에게 보이기 위한 가면극도 더 신속히 진행되어서 좋았다. 하지만 내 인생을 향한 여정은 내일이야말로 떠나자, 내일은 꼭, 하면서 하루하루 늦춰지다가 벌써 몇 년이 지나버려 이제는 도무지 나설 가망도 없는 듯했다. 이 시대야말로 내게 유일했던 윤락의 시대가 아니었을까. 불안하기는 했어도 그 불안은 그저 막연할 따름이었고 나는 아직 희망을 품고 있었기에 내일은 언제나 미지의 푸른 하늘 아래로 내다보였다. 여행에 대한 공상, 모험에 대한 공상, 내가 언젠가 될 터인 당당한 나의 초상, 내가 아직 보지 못한 아름다운 나의 신부의 초상, 나의 명성에 대한 기대......그런 것들이 마치 여행안내서, 수건, 칫솔과 치약, 갈아입을 셔츠, 갈아입을 양말, 넥타이, 비누 같은 것처럼 여행길에 지닐 트렁크 안에 차곡차곡 준비되어 있던 그 시절, 내게는 전쟁조차 어린아이의 기쁨 같은 것으로 다가왔다. 나라면 총알을 맞아도 아프지 않을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었던 과잉 몽상이 이즈음에도 전혀 시들 줄 몰랐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상마저 나를 미지의 희열로 들뜨게 했다. 나는 모든 것을 소유한 것처럼 느꼈다. 그렇지 않은가. 여행 준비로 정신이 없을 때만큼 우리가 여행을 구석구석까지 완전하게 소유하는 때는 없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그저 이 소유를 망가뜨리는 작업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것이 여행이라는 저 완벽한 헛소동인 것이다.
-미시마 유키오, <가면의 고백> 中
문학동네 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