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이 상태 그대로 두 사람이 상대방 없이 지낼 수 없는 나날을 보내리라는 착각이 어느새 내 느긋한 마음에 생겨나 있었다. 좀더 깊은 의미에서 보면 그것은 이중의 착각이었다. 이별을 고하는 그녀의 말은 지금의 이 만남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알려주고, 지금 누리는 이 기쁨이 가상에 불과함을 폭로하여 그것이 영원할 줄로 알았던 유치한 착각을 무너뜨렸다. 그와 동시에, 가령 이별이 찾아오지 않더라도 남녀 관계라는 것은 '모든 것이 지금 상태 그대로'에 멈춰 있기를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또 하나의 착각도 무너뜨렸다. 나는 숨 막히도록 똑똑히 깨달았다. 하지만 어째서 이대로여서는 안 되는가. 소년 시절 몇천 번을 물었던 그 물음이 다시 입가에 떠올랐다. 어째서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모든 것을 옮기고 모든 것을 유전하는 흐름 속에 내맡기지 않으면 안 되는 괴상한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부과되어 있는 것일까. 이런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의무가 세상에서 말하는 '생'이라는 것인가. 그건 나에게만 의무인 것이 아닐까. 적어도 그 의무를 무거운 짐으로 느끼는 사람이 나뿐이라는 건 틀림없었다.


-미시마 유키오, <가면의 고백>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