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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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 다음 목표는 남인도를 점거하고 있는 비자야나가르였는데, 그들은 더 이상의 국가로서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한채, 정말로 군벌의 수준으로 급이 떨어졌으며, 대한에게 수도를 포위당한 그들을 위해 동맹을 맺어주는 서양 국가들이나 이슬람 국가들은 없었다.
당장 서양이나 이슬람 국가들이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군사를 보낸다고 한들, 바다를 건너거나 혹은 요새를 뚫는 도중에 전쟁이 끝나버릴 가능성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조금이나마 승산이 있었다면 모를까, 승산도 없는 전쟁에 성전의 이름이라고 기꺼워할 국가 따위는 이제 인도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슬람 국가들은 지금 인도의 소국을 구원하는것에 쓸데없이 대한을 도발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이것이 무신론자 악마들과의 성전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보다 더 큰 대국적인 시야에서 대한과의 전쟁을 치르고 싶다는 의미였는데, 이미 이슬람교의 성지인 메카, 메디나에 더불어 이슬람이 대한에게 건 첫번째 성전에서 예루살렘을 함락당하면서 알 악사 모스크 마저 대한의 손아귀에 들어가면서 이슬람의 삼대 성지가 모두 무신론자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는 이슬람의 역사에 없었던 추태였으며, 그들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힘을 축적할 것이다.
물론 이슬람 교도들의 성지로의 순례를 굳이 막아서지는 않았지만, 무신론자들의 자비를 받아 성지를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이슬람 교도로서는 크나큰 모욕이 아닐 수 없었다. 때문에 이슬람 교도들은 승산도 없는 전쟁에 예산을 낭비하지 않고 조금씩이나마 대한의 힘을 깍아먹기 위한 책략을 짜내고 있었다.
대한의 정치적 혼란은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이들의 일탈 행위를 가속화 시켰다. 도시로 올라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해서 상경하기는 했는데, 그들이 정작 본 것은 다리뻗고 잘 수도 없을 정도로 비좁은 방과 말라 비틀어진 빵조각, 그리고 영 맛이 없는 막걸리 따위나 먹으며 하루 18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을 하게 되었으며, 그런 고생을 하며 벌어들이는 돈은 그들이 한 고생의 대가라고 여기기에는 너무나 푼돈이었다.
아직 아이까지 끌어들여 사업을 확장하는 이들까지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면 결국 상인들이 아이들에게까지 그 마수를 뻗칠 것은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유교-사민주의 세력은 이러한 사회적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조정에서 직접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황제가 상인들이 지금까지 대한에 해준 많은 일들을 언급하면서 그들을 옹호하고 나섰기 때문에, 유교-사민주의 세력이 내놓은 최대 노동시간과 어린아이에 대한 권리에 대한 주장은 그대로 묻혀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공화주의세력 사이에서도 소수에 위치해 있는 이들이었고, 공화주의자들을 끌어들이는데도 실패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그들의 헛된 시도는 조정에 공화주의자들 사이에서 유독 돌출된 이들이 있다는 것을 공표한 것 그 이상의 어떠한 결과도 만들어 내지 못했고, 공화주의자들에 대해 사민주의자들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또한 사민주의자들 내부적으로도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뉘게 되었는데, 이 분열의 열기는 지도층마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이렇게 조정에서 사회의 혼란을 잠재울 여러가지 논의들은 황제의 상인들에 대한 비호 때문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갔고 죽을 수는 없는데 살 수 조차 없는 사회의 벼랑길에 몰린 사람들은 범죄의 길에 빠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문제는 대한은 그 거대한 국가의 크기와 불합리적인 국경 때문에 그들 권역의 전체를 감당하는 행정체계를 마련하지 못했고, 도저히 행정력을 투사할 방도가 없는 지역에서는 지방관에게 엄청나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재량권을 부여해 지방과 공국의 사이에 있는 애매한 통제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러한 행정관들이 그들 자의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경찰력 뿐이었는데, 그들이 대한의 눈치를 보지 않고 휘두를 수 있는 경찰력으로는 엄청난 인구 이동과 더불어 폭증하는 범죄 성장을 억제할 수 없었다. 여기에 이슬람권의 은근한 지원까지 더해지고나니, 대한의 영역에서는 대한의 배를 습격하는 해적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조정이 이 해적들을 토벌하여 해역의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들 것이다.
한편 비자야나가르 북부에서는 거대한 회전이 벌어졌는데, 대한이 완전한 승리를 가져갔다. 비자야나가르 군은 남쪽으로 후퇴했으며, 한국군은 인도의 북부를 촘촘히 싼 포위망을 만들어 차근차근 밑으로 치고 내려갔다.
그들이 대한의 해안가 지역을 공격하여 약탈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그들은 북쪽으로 올라가 인도 내륙을 해방시킬 수는 없을 것이며, 천천히 압박해 들어오는 대한의 포위망에 걸려 결국은 모두 죽게 될 것이다.
대한의 아시아에 대한 정복 시도는 유럽의 많은 국가들을 긴장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 내부에 들끓고 있는 내부분쟁을 무시하고 바다 건너에 있는 대한을 공격하러 갈 수도 없었다.
오스만의 땅을 빌리면 대한으로 육로로서 이어지기는 할 테지만, 구교도 국가들은 이미 이슬람의 군대가 로마를 불태우는 것을 방관한 적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 오스만에게 대한을 치러 갈 테니 길을 열어달라고 하는 것 까지 알려지게 된다면 감당하기 힘든 일이 벌어질 것이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보헤미아의 경우에는 오스만과의 갈등으로 그들이 유럽의 패권을 장악하는데 방해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내륙국가인 그들과 대한이 전쟁을 벌여야 할 이유가 있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힘들 것이다.
신교도 국가들은 구교도 국가에 의해 유럽에서 거의 축출되어 제대로 힘도 쓰지 못하는데, 굳이 멀고 직접적인 이해관계도 없는 아시아의 대국과 마찰을 일으킬 이유가 없었고 말이다.
때문에 유럽국가들의 간섭은 직접적인 전쟁이 아닌 외교적인 수완이나 첩보망을 이용하여 대한이 전쟁을 계속하기 힘들게 만드는 것이 한계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전쟁을 벌이려 강행할 수도 있겠지만, 오스만의 길을 통하지 않는다면 희망봉을 거쳐 인도든 동남아든 상륙을 해야 할 텐데, 희망봉이 이미 대한의 소유인 지금 대한과 적대하는 것은 상책이 아니었다. 희망봉을 지나지 않고 인도양으로 나갈 수 있는 항로만 있다면 상황이 훨씬 나아졌을 텐데 말이다.
1687년. 서구 국가들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인도는 완전히 대한에 병합되었다. 비자야나가르의 몰락 이전에 간신히 그들의 땅을 사서 조차지를 형성한 몇 개 국가들의 땅을 대한이 회수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만이 유럽국가들이 얻은 전부였다.
다만 아무리 군사적 승리가 이어진다고 해도, 영원히 전쟁이 이어진다면 질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그것이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더더욱.
과거 선대 황제들은 어떻게든 장교들이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이유를 들어 국경을 넓혀왔다. 중원과의 전쟁은 천명대전으로, 여진으로의 북진은 오랜 정주민들의 적인 유목민들을 제압하기 위해. 일본을 공격 한 것은 해적 근절과 아시카가의 피를 이은 자로서 아시카가 막부의 권위를 바로세우기 위하여 같은 명분들. 하지만 중동으로의 진출은 그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었고, 황제는 그에 대한 설득력 있는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중동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인도와 동아시아를 정복하려 하는 정책은 불필요한 행정적-군사적 손실을 불러왔으며, 일부 장교들은 그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집단으로 사직하기 시작했다.
대한은 장교들이 자리에서 내려온다고 당장 군사적으로 위협받을 체급의 국가는 아니었지만, 이들의 손실은 대한의 군사전통의 유실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인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처음부터 발을 내딛지 않았다면 모를까, 여기까지 와서 중동에서 발을 빼는 것은 결단코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장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호르무즈를 공격하여 아라비아의 해안가를 완전히 장악하기를 바랬으며, 그 와중에 그들이 콩고와 자운푸르와 동맹을 맺고 있었든 아니었든 그것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호르무즈는 한국군의 공세에 총체적으로 붕괴했으며, 대한령 인도를 공격할 수 있는 자운푸르역시 전방에서 한국군이 후방에서 티무르가 치고 들어오는 상황 속에서 국경 방어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콩고는 서아프리카에 있는 국가로서 그들이 배를 띄워 인도로 와서 유의미한 전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미 아시아의 각 국가들은 이 전쟁에서 마저 대한이 승리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한편 유럽의 민중들에서는 대한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는데, 상류층들의 사실과 합리적 추론에서 근거한 인식이 아닌 그저 막연한 이슬람을 공포에 떨게 하는 동양계 국가라는 점 때문에 일부에서는 몽골의 재림으로 두려워 하는 한편, 일부에서는 진정으로 프레스터 존의 국가가 나타났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조정 내부에서는 공화주의자 세력에서 매우 뛰어난 인재가 나타나 사회의 개혁을 부르짖었다. 이들이 내뱉은 개혁은 유교-사민주의 세력이 원하는 개혁이라기 보다는 정치적인 분야의 개혁이었다. 그들은 대한의 땅에 조정 말고도 정치에 뜻을 펼치고자 하는 이들이 모여 국정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일종의 의회를 뜻했다.
물론 조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지금, 의회라는 것이 생겨봤자 조정에서의 정치싸움을 벌일 장소를 하나 따로 만들었다는 것 정도의 의미 밖에 없을 테지만 말이다. 다소의 반발은 있었지만, 지금 당장으로서는 의회는 기존의 권력자들이 따로 자리와 세력을 마련하여 대리전을 벌이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었기에 통과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이 의회의 형성으로 공화주의자 세력에서는 대격변이 일어났는데, 유교-사민주의 세력이 온건파와 강경파의 노선차이로 갈라선 것이다. 온건파는 기존의 공화주의자 세력에 돌아가서 의회에서 공화당의 이름을 걸고 목소리를 내게 될 것이고, 강경파는 그들 그대로 의회로 들어가 극도로 소수파인 사회당으로서 성립되었다.
급격한 도시화와 함께 빈부격차로 고통받는 민중들은 이것으로 인해 그들의 삶에 신경쓰고, 그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직까지는 그들이 망치와 낫을 들고 그들을 착취한 자본가의 목을 배어 광화문에 매달자고 하기에는 시기가 일렀고, 그들은 무장 투장 대신 사회당에 희망을 걸어보기로 하였다. 더욱이 본격적으로 합법적인 정치세력화 된 이상 한글로 책자를 만들어 돌리는데 더 이상 주저할 것이 없어졌기 때문에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사회당의 인기는 높아져만 갔다. 이인은 사회당의 존재에 불만을 표시했으나, 그가 허락한 의회에 세종이 인정한 공화주의 세력인 이상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그들을 잡아넣는 것은 부담이 있었고, 잡아넣을 수 있는 시기 또한 지나가 버렸다.
많은 국가들의 예상대로 자운푸르와 호르무즈는 더 이상의 전쟁을 견디지 못하고, 패배를 인정하게 되었다. 자운푸르는 이 전쟁으로 그들의 월경지인 동부지역을 대한에 완전히 양도하게 되었으며, 그들의 서남부 지방 역시 대한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이것으로 대한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 중에서 대한이 인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진정으로 막을 수 있는 국가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히말라야와 인도차이나 루트에 이제 방해하는 국가 따위는 없고, 말라카 해협으로 가는 길목에 많은 해적들을 뿌려놓는다고 해도, 이미 해군력으로서 아시아에서 대한을 상대할 만한 국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결과는 따로 찾아볼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히스파우아 이나라는 대한의 행보를 미리 예상하고 많은 동맹을 맺어두었지만, 그들의 실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동맹이 인도차이나 지방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래서야 동맹이 많다고 해도 전선을 한개 이상 열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이미 그들 동맹 모두를 합한 것 보다 더 많은 병력을 운용할 수 있는 대한으로서는 동맹의 개수보다는 전선의 개수가 더 거치적거리는 문제였으니 이번 전쟁 역시 대한이 이길 것이다.
히스파우는 마지막까지 대한에 흡수당하지 않으려고 그들이 가진 모든 수단을 쓰기 시작했으며, 그 탓에 전쟁은 마지막 한 수를 앞두고 계속해서 지연되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 리투아니아가 보헤미아의 공격에 맞서 동맹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리투아니아는 대오스만 전선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국가였던 만큼, 조정에서는 리투아니아를 위해 참전을 결의하였다.
물론 현장 지휘관의 생각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 오스만과 맞서기에는 시기장조라는 것이었지만. 그가 생각하기를 오스만과 진정으로 전쟁을 벌이고 싶다면, 적어도 저 동아시아 전선에 있는 병력을 모조리 보아서 자신들에게 쥐어 준 다음에야 승산이 생길 것이라 판단하였다.
때문에, 이번 전쟁 역시 대한은 오스만의 후방 교란 그 이상의 역할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륙을 넘나드는 전쟁의 경험은 대한에게 보급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다. 아무리 강대한 군대라도 먹어야 싸울 수 있으며, 아무리 좋은 총포라도 정비와 화약이 있어야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적에게서 취하는 보급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결국 보급은 본국으로 부터 받아야 하는 것이고, 사람은 풀만 먹고는 싸울 수 없다. 또한 총을 맞고도 계속 달려가서 적을 베어죽이는 용사에 대한 것은 책 속 이야기에서나 찾아야 할 것이다.
보급품의 원활한 수송은 이제 모든 장군들과 행정관들의 주요 고심거리가 되었으며, 그들의 심도깊고 전문적인 논의는 대한의 보급체계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폴란드는 조기 탈락하여 그들의 발칸 영토를 오스만에게 헌납하였으며, 리투아니아는 그들 홀로 외로이 보헤미아와 오스만의 군대와 싸우고 있었다.
사실 그들 역시 대한이 오스만을 뚫고 그들을 지원하러 오기 힘들 것이라 예상은 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그저 대한이 국경지대에서 오스만의 대군과 맞닥들여 좌절하였다고만 생각했지, 설마 전쟁이 시작된 직후에 이것은 답이 없다고 판단하고 적당히 싸운 흔적만을 남기고 소소한 전투 이후 오스만과의 전투를 극렬히 회피했다는 사실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1698년. 중원은 드디어 하나가 되었다. 과거 1446년 세종의 거대한 그림으로 인해 시작된 천명대전 이후 산산조각난 중원이 또 다시 하나로 통합된 것이다.
200년을 넘어가는 중원의 오랜 분열에서 승리자는 대한이었으며, 이것은 이제부터 대한이 중원의 막대한 물자들을 정당하게 뽑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물론 강남의 지주들은 대한의 이러한 권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자산을 지키기 위한 모든 수를 아끼지 않을 테지만, 정당한 중원의 주인과 천명 참칭자에 대한 대우가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한은 청나라와는 다르게, 화약무기의 개발이나 상업과 문학, 그리고 기술의 발전에 아끼지 않고 지원을 거듭할 것이다. 이미 200년의 혼란기 끝에 유학은 과거 성리학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무언가로 변질되었으며, 경신대기근을 경계로 한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어디까지가 넘을 수 있는 선인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한 번 세상이 끝나는 재앙을 경험한 한인들은 가능한 한 어떻게든 그들의 씨를 세상에 남기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한인의 인구수는 말 그대로 폭증하기 시작했다.
물론 사회의 부 자체가 늘어났으니 중원과 일본에서도 사람의 수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인과였지만, 재앙에서 어떻게든 자신들이 살아남았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자손의 번창에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에 더불어 그들의 욕구를 충분히 채워 줄 수 있을 만큼의 식량을 보급해 줄 수 있는 국가의 크기가 어우러지자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결과를 불러오기 시작했다.
17세기는 여러가지로 대한에게 격변의 시대였으며, 이 세기를 지나면서 대한은 과거의 색체를 완전히 벗겨내는데에 성공하였다. 상인들과 공인들은 이제 더 이상 사농공상 따위에 묶이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하기 시작했으며, 그로 인하여 중원에서는 기존의 가정 수공업에 비하면 말도 안 될 정도의 균질한 생산품을 뽑아내 팔아치우고 있었다. 사회의 부의 총량은 이제 조정이 예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증가하고 또 증가했으며, 상류층의 성장은 곧 사치산업의 발전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그 만큼 돈을 벌었다면 자신들이 돈을 벌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기도 할 테니까.
반면에 밑바닥까지 떨어진 노동자의 삶은 그리 좋다고 할 수 없었다. 고된 노동과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그들은 그저 생산품을 만들고, 또 죽어갔으며, 죽은 사람의 옆자리는 또 어디 시골에서 올라온 무지렁이가 채워 넣었다. 각 개인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부품처럼 취급되는 이러한 환경에 축적되는 불만을 국가의 승리, 그리고 또다른 승리와 한 병의 술로 어떻게든 달래고 있었지만, 사회당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자 하류층들의 불만이 서서히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지금까지 무엇을 희생하고 있었는지, 얻어 마땅한 물건들을 어떻게 얻지 못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아직까지는 본격적인 사회 운동이 발생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해 지지는 않았지만, 기존의 방식으로 불만을 완전히 잠재울 수 없다는 점은 여러 관료들의 경계를 사기 충분했다.
한편 이인은 어두운 방 안에서 턱을 괴면서 책장에 고이 모셔져 있는 오래된 책을 바라보았다. 그 책은 과거 세종이 남겼던 서적의 종류 중 하나였으며, 의례적으로 필사되어 보존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었던 책이었다.
그 이유는 과거 조선시절 이 책의 사용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책을 필사하던 관료들을 모아 이것의 사용 여부를 물어 보았을 때, 유학자들이 모두 입을 하나로 모아 아뢰기를 이 책이 세종께서 직접 지으신 책임은 알지만, 세상의 빛을 봐서는 안 되는 책들도 있는 법이라며 왕을 만류하여 그 뒤로 이 어두운 방 안에서 썩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인은 가만히 그 책을 바라보았다. 이 책 안에 있는 것이 어떤 내용이든 간에 세종의 책은 언제나 대한에게 이로운 결과를 만들어왔다. 그렇다면, 이 책의 내용을 확인함으로서 현재 대한 내부에 만연한 정치적 혼란을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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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어떻게 나갈지 고르지는 않았는데, 일단 이 세 개 중에 하나로 계획하고 있음.
-콘솔로 혁명공화국 건설-사회당 집권
-정부개혁으로 공화국 건설-공화당 집권
-정부개혁으로 절대주의 상승-대숙청
그리고 개인 사정으로 이제 연재 속도 느려질 수도 있음.
연재추
ㅇㅈㅊ
잼씀. 조선이 아무리 커봐야 동양 국가라 레볼루숑은 쵸큼;;;; 윽겜 정부개혁으로 영국식 의회는 불가능임?
정부 바꿀수 있는게 공화정,신정인데 이제와서 유교탈레반 화는 도저히 끼워맞추기가 꺼려져서. 어차피 목적 판도는 거의 맞췄으니 혁명달고 난리칠 일은 없음 - dc App
연재추
대숙청가자 - dc App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 가즈아아아
이거 wc가능한거임?
ㅇㅈㅊ
3가자 기껏 이세계 치트 주인공 왕조 세웠더니 공화주의 떠서 댕겅 엔딩은 김이 새지 않음?
혁명조선 가즈아아아아아ㅏㅏ아아아아
비바 라 레볼루시옹
퍄퍄
대숙청해서 대조선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