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화


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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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은 구지라트에 대해 전쟁을 선언했다. 북인도 동맹은 이제 유명무실하다고 할 정도로 약화되었으며, 대한은 오스만 제국에게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환하는 것에 성공하는 것으로 그 위신이 하늘 끝에 닿아 있었다.


비록 대한이 그동안 쌓아온 부패와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공왕들에게 허락해 준 자치때문에 그들이 가진 영토의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하나, 적어도 인도에 한해서 그것이 더 이상 문제가 되는 수준이 아닌 것이다. 구지라트와의 전쟁에 북인도 동맹의 일원인 차카타이와 자운푸르는 전쟁에 개입하게 될 것이지만, 그들 모두 이 전쟁이 대한의 승리로 끝날 것임을 직감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 돕지 않는다고 해 봤자 이후에 결국은 대한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 불리한 전쟁에 끼어든 것일 뿐. 북인도 동맹은 과거 20번의 전쟁을 견뎌내고 마지막 전쟁에서 장렬하게 멸망한 비잔틴 제국처럼 죽어,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기고 싶었겠지만, 그들은 중원의 통일 전쟁 끝에 스러져간 5호 16국 같은 것으로서 그 이름을 역사에 남기게 될 것이다.


분명히 역사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지만, 비잔틴 제국과는 달리 역사에 대해 그리 관심을 가진 자가 아니라면 그 이름과 존재 시대조차 모를 그런 국가들 처럼 말이다.





북인도 동맹과의 전쟁에서 차카타이는 가장 먼저 그들의 빼앗긴영토이자 대한의 국경에서 가장 수비하기 불리한 중앙아시아를 침공하였다. 대한의 중앙아시아 권역은 그저 러시아가 더 이상 남하하지 못하게 할 요량으로 집어먹은 땅으로서 국경의 방위에는 너무 어렵고 그렇다고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수익이 좋지도 않은 계륵인 땅이었으니 대한이 그리 관심을 가지고 방호하는 지역이 아닌 까닭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당한 옛 땅을 되찾고 대한을 거꾸러뜨려 몽골제국의 전설을 재현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인도에서는 대한의 압도적인 승기가 보이고 있었다. 병사들을 있는 대로 징집하여 모든 전선에서 적군보다 많은 병력을 밀어넣어 소수 지역에서 적들이 승리를 거둔다고 해도 후방과 측면을 서서히 조여서 퇴각할 수 밖에 없게 만들겠다는 대한의 전술은 인도의 땅에서 더욱 그 광휘를 내보이고 있었다.


어쨌든 인도의 상당부분은 대한을 권역이 되어있었고, 인도의 생산능력을 고려해 본다면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인간탄환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까닭이었다. 대한은 오스만과의 전쟁에서는 쓰지 못했던 전선에 아무튼 많은 적을 끌고 들어가서 전열을 계속 매우며 후려치면서 후방과 측면을 압박하면 결국에는 이기게 된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적에게 만인지적의 용사가 있다고 한들 백만의 군세로 후려친다면 결국은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져 죽게 됨은 옛 고서를 봐도 증명된 당연한 사실이 아니었던가.





한편 대한의 부패는 군수산업에도 그 더러운 손을 뻗고 있었다. 수통은 낡았으며 군장은 품질이 좋지 않은 재료로 만들어져 있었다. 무기는 수령받는 그 시점에서 녹이 슬어있는 경우가 많았고, 지휘관까지 부패한 경우에는 감사 결과 총병은 젖은 화약을, 아직 남아있는 궁병에게는 나무 화살이 지급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미 천명전쟁때 군대의 규격화된 보급의 중요성을 깨닫고 행정력이 허용하는대로 군사들의 무기와 보급품의 규격을 통일하고 그것을 위해 도급업자들을 제한했던 대한에게 있어서 이와 같은 부패는 군사력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져왔다. 이임해는 전에 없이 격분하여 대노했으며, 이와 같은 부패를 저지른 도급업자와 부패 지휘관들의 목을 베어 종로에 내걸었다.





하지만 그 헛점이 인도에서의 전쟁에서 그들에게 틈을 보여줄 만한 것은 아니었던 까닭에 대한은 우선 자운푸르에게 우세적인 입장에서 휴전을 제안하게 되었다. 전쟁의 당사자가 아닌 그들에게서 많은 땅을 얻어내지는 못하였지만, 자운푸르에게는 이것으로도 크나큰 타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자운푸르와의 전쟁에서 벗어나 여유를 얻은 한국군은 그대로 북상하여 차카타이를 공격하고자 하였다. 차카타이는 한국군이 인도에 집중하느라 대초원의 경우에는 현국에서 무기를 지급하고 대초원의 유목민들이 자체방어하도록 한 까닭에 조직적인 저항에 마주치지 않고 그 위세를 사방에 떨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곧 끝날 것이다. 한국군은 그대로 북상하여 차카타이의 영역으로 침공할 것이고, 몽골초원을 넘어 만주로 진입하려는 그들은 제때 본토에 돌아가지도 못할 것이고, 제때 한반도에 들어서지도 못할 것이다.



한편 유럽에서는 콘스탄티노플을 빼앗기고 위신이 제대로 꺽인 오스만에게서 독립하기 위해, 혹은 적어도 기독교를 믿더라도 아무런 차별을 당하지 않을 권리를 위한 발칸 민족의 준동으로 혼란해져 있었다. 더욱이 아나톨리아에서 오스만의 황제의 권위에 의문을 품고 난을 일으킨 자들이 있었다는 점에서 오스만은 결코 국내의 정세가 안정되었다고 할 수 없었다.

만약 그들이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와의 전쟁에서 동유럽을 빼앗고 한 번 바닥을 친 위신을 어떻게든 재건하지 못했다면 가증스러운 반란군과 협상장에 앉아야 하는 처지에 있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면 유럽에서 그들을 어떻게 보게 되었을까. 이제 더 이상 오스만에게는 과거와 같은 그런 위세가 없다고 여기고 국경을 도발하지는 않았을까.

한편 보헤미아는 동유럽의 상당부분을 집어삼키고 대독일을 주장하고 있었다. 이제 신성로마제국의 반절 이상을 집어삼킨 이상 서쪽에 있는 소국들과 동쪽의 통일된 보헤미아가 존재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주장이었다. 합스부르크로부터 신성로마제국의 황관을 강탈하고, 오스만과의 동맹을 이용한 급격한 확장으로 신성로마제국 동쪽을 통일한 그들이 주장하는 대독일은 마땅히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유럽에서는 혁명으로 왕의 목을 떨어뜨린 사보이에 대한 혁명 전쟁이 한참이었는데, 그들이 아무리 공화국의 이상을 바탕으로 국민군을 소집하여 전쟁을 벌인다고 한들, 바로 옆에 육각형을 거의 달성한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거의 통일한 나폴리.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의 거의 다 통일하고 대독일 주창하고 있는 보헤미아가 있는 시점에서 패배가 거의 확정되어 있는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은 국경에서의 소수 교전으로 사보이가 버티고는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와 나폴리. 그리고 오스트리아가 개입함으로서 그들의 혁명도 끝을 고하게 될 것이다.



과거에도 한 번 말했지만, 대한은 계몽주의를 수용하기에는 그리 좋은 토양이 아니었다. 민중들에게 아무리 합리와 이성을 바탕으로 지식을 주입하려고 해도, 그들이 지고 살고 있는 이 땅 자체가 합리에서 많이 빗나가 있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대한은 세종의 책으로서 이루어진 나라였으며, 세종의 책으로서 나아가고 있는 국가였다. 황제를 권세를 제약해야 한다는 공화주의자들의 역도와도 같은 주장이, 법이 황제 위에 있어야 한다는 무도한 주장이 유학을 배우고 익혀온 대한에서 통할 수 있었던 까닭은 오직 세종이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책에는 입헌주의와 공화주의에 대해 우호적으로 서술되어 있다고 여겨도 될 정도로 상세한 설명이 깃들어져 있었고,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음으로서 후대의 왕들이 공화주의자들과 입헌주의자들을 숙청할 명분을 많이 깍아먹었다.

감히 어떤 폭군이 대한의 시초이자 대한이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에 이끌어온 세종의 뜻에 거슬러 공화주의와 입헌주의를 탄압한단 말인가. 계몽주의자들이 대한의 이와 같은 막대한 성장과 미래를 굽어보는 세종의 식견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석을 내놓기 전까지는 계몽주의가 대한에 뿌리내리기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계몽주의의 발산지가 비이성의 결정체이자, 신권을 바탕으로 유럽을 지배해온 로마에서 발생하여 로마 교황이 계몽주의를 받아들여 그 꽃을 아름답게 피워낸 것과는 상반된 이야기였다.




대한은 차카타이의 땅 대다수를 정복하여 국경을 안정화시키고는 대한과 대립각을 계속해서 잡고 있는 러시아를 어떻게든 엿먹일 방도를 생각해내야 했다. 조정의 오랜 논의 결과 러시아가 시베리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인인 카자흐족과,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명분인 백인 카칸의 작위를 노려 생채기를 내는 것이 지금 대한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모욕이라고 하는 제안이 채택되었다.


유럽의 국가들에게 뭐라고 하든, 유럽의 국가들은 동양인 원숭이들 보다는 일단 반쯤은 사람인 스키타이 유목민들에게 더 우호적일 것이었고, 당장 러시아에게서 시베리아를 빼앗으려고 해도 군제가 개혁되지 않은 지금 러시아와 싸우는 것은 그리 좋은 판단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대한으로서는 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없지만 카자흐 족들을 혼란시키기 위한 방책으로 대한의 황제인 이임해에게 쿠릴타이를 거쳐 카칸의 자리에 오를 것을 청하였다.


이미 몽골과 만주에는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부족장들을 선동하거나 회유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아 보였고, 몽골과 만주의 정복자인 대한 황제에게 카칸의 자리를 내줌으로서 자신들의 위신을 살릴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치지도 않을 것이라 판단하였다. 지금의 대한은 원한다면 보르지긴 씨족의 공주를 강제로 끌어와서 황실과 합쳐버릴 수도 있었으므로, 가능성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쿠릴타이를 거쳐 카칸의 자리에 오를 황제의 의사가 중요할 뿐.


이임해가 오랜 고민 끝에 러시아에 모욕을 날리기 위해 황제를 야만족 짐승들의 황제의 관을 쓰게 만드는 것을 용인하면서 그 다음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보르지긴 씨족의 여식을 샅샅이 뒤져 가장 피가 짙은 자를 찾아내었고, 만주의 한화된 만주족들과 몽골 초원의 유목민화된 한(韓)인들을 동원하여 강제로 쿠릴타이를 개최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으며, 그 자리에 유목민화된 한(韓)인들과 한화된 만주계 유목민들을 대다수의 자리를 차지하게 만들어 유목민들의 부족장들이 이임해에게 카칸의 황관을 건네줄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당연히 이와 같은 폭거는 칸의 후예를 자칭하는 티무르를 격분하게 만들었으며, 끝없이 이어진 이슬람세계와의 전쟁에 이골이 나버린 티무르가 이것을 명분으로 대한과의 동맹을 파기하기에 이르렀다. 허나, 오스만이 성한 상태라면 모를까 콘스탄티노플을 강탈당하고 그 위세가 크게 줄어든 지금 대한은 티무르의 동맹 파기가 그렇게까지 중요한 사안으로 다가오지는 않았고, 카칸의 즉위식은 아무런 정체없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전쟁의 당사자인 구자라트는 총체적으로 패배하여, 그들의 모든 땅을 대한에게 넘기고 합병당할 것을 명시한 항복문서에 서명하였다. 이것으로 북인도 동맹은 완전히 붕괴하였다. 델리니 자운푸르니 차카타이니 라다크니 하는 소국들은 이제 티무르와 손을 잡지 않는 한 대한에게 저항다운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런데 그런 국가들에 대해 티무르가 동맹을 맺어 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당연한 이야기일 테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대한이라고 해도 구자라트의 전토를 장악하기에는 지금 전쟁에서 얻은 땅들이 너무 많았다. 때문에 그들의 땅의 일부를 속국인 바흐마니에게 넘겨 행정부담을 줄이게 하였다.


그리고 서쪽에서는 대한의 영역에 편입된 에르디네와 콘스탄티노플에서 기독교도와 대한의 종교계가 충돌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무리 대한이 콘스탄티노플과 예루살렘의 해방자라 하여도 무신론자들과 기독교도들 사이의 골을 쉽게 메워질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대한은 기독교도들과의 조화를 위해 유학자들을 다시 한 번 파견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번에 파견될 유학자들은 이슬람을 조화하던 때와는 달리 조금 좋은 환경에서 활동할 것이었는데, 이는 대한의 유학자들은 콘스탄티노플에서 해방자의 학자로서 대우받게 될 것이었으며, 콘스탄티노플은 과거 갈망의 도시라 불릴 정도의 번화함을 가진 도시였으니 말이다.


더욱이 콘스탄티노플 말고 다른 곳으로 가게 될 유학자들 역시 유럽이나 혹은 에티오피아로 가게 될 것이었는데, 어디로 가든 인도와 동남아시아와 같은 대우는 받지 않은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조화는 유학자들에게 친근한 환경이 될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대한이 화력을 포기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총통위의 전통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왔으며, 현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총통위에서 국방과학연구소로 국방 기술 개발이 이전된 지금 대한의 화력 숭상은 군사를 논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논해야 하는 것으로 위상이 올라가 있었다.


때문에 그들이 대포와 총병의 사거리를 늘리기 위해 발벗고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그것에 대한 성과를 거둠은 엄청난 환영을 받게 되었다. 전장에서 유의미할 정도로 대포의 사거리와 정확도를 개선한 최천약은 조정으로 부터 그 공을 치사받았으며 적지 않은 돈을 포상금으로 받게 되었다. 이로서 그는 역사서와 국방 과학 연구소가 편찬하고 있는 국방 과학 변천사라는 책에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리게 될 것이었다.


사서에 그 이름이 영광스럽게 올라감은 가문의 명예인즉, 공인들은 자신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사서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면서 더욱 기술 개발에 대한 열의가 높아졌다.





그런데 스페인이 동남아시아의 이권을 침탈하기 위해 대한에게 제국주의의 명분으로 선전포고를 감행했다. 대한은 왜 갑자기 스페인이 미쳐서 자신들에게 선전포고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메리카에서 토인들을 때려잡느라 자신들의 힘의 위치를 착각해서, 아시아에 발을 뻗고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대한 역시 한 줌의 콘키스타도르로 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긴 것인지, 아니면 대한의 군대가 아메리카의 토인들 정도로 약하다고 여겨서 전쟁을 일으켰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미 전쟁은 벌어졌다.


한국 해군은 바로 말라카 해협을 봉쇄하고, 스페인과 스페인과 밀월관계에 있는 선박에 대한 무제한 포격전을 벌였다. 대한을 침공한 적국의 상선이다. 그들이 아무리 비무장이라고 한들 봐줄 만한 이유는 없었다. 물론 가능하면 선박 백병전을 벌여서 항복시키라는 교시가 내려왔지만, 자신들의 조국을 아메리카 토인들 정도로 멸시하며 전쟁을 건 국가에 대해 신사적이고 명예로운 전쟁을 기대할 수 있을 정도로 아시아의 전쟁은 친절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서 스페인이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는데, 보헤미아와 덴마크 나폴리가 대한의 편으로 참전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이 전쟁을 시작할 때, 대한의 유럽 동맹국들이 유럽의 강국인 자신들과의 전쟁을 회피하고 대한에게 그저 군사 통행권이라는 되도 않는 지원정도만을 하여셔, 결국에는 유럽에 대한 타격 수단이 없는 대한이 거꾸러질 것이라 예상했는데, 이래서는 스페인 본토와 저지대가 대한의 동맹국들의 타격 범위 내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한국군 사단 한개가 보르네오 섬의 스페인을 몰아내기 위해 상륙하였다. 그들은 이 전쟁에서 대한을 거꾸러뜨리고 한 몫 잡을 것을 기대하였겠지만, 그들이 결과적으로 얻게 될 것은 동남아시아의 상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될 것이었다.

유럽에서는 보헤미아가 스페인과 그 동맹국들을 몰아쳐내고 있었으며 스페인은 예상치못한 전황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대한은 유럽에 대한 타격 능력이 없었으므로 동남아시아에 대해 소규모 교전을 계속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전선을 하나 더 늘릴 여유 또한 가지고 있었다.

스페인이 신나서 자살골을 터트려 유럽이 전쟁터가 된 지금 인도에 대한 유럽의 관심은 또다시 멀어졌다. 그렇다면 대한이 골라야 할 선택지는 인도 통일 전쟁 외에 무엇이 더 있다는 말일까.




자운푸르는 이번에도 전쟁에 참여하였다가, 그들의 영토 대다수를 잃어버리고 군벌 집단보다도 못한 무언가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것은 차카타이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대한의 오랜 숙적인 두 국가의 멸망으로 전쟁이 끝났을 때, 유럽은 대한이 인도에 가지는 우월한 권리를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다만 티무르가 대한에 대한 반국가 동맹을 주창하고 나섰는데, 오스만이 지금 자신들의 전쟁을 하느라 바빠서 티무르의 반국가 동맹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상 대한에게 위협이 될 만한 국가를 끌어들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쨌든 대한의 주 공격 범위는 이슬람의 국가들이었는데, 그 이슬람권 국가들은 오스만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망해버렸으니까.




대한은 이번 전쟁으로 자신들도 유럽에서 일어나는 일에 언제든 소식을 들을 수 있게 선을 놓아야 겠다고 판단하고 유럽의 소국이자 신성로마제국의 배신자의 땅인 디트마셴을 요구하였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보헤미아는 이것을 신성로마제국의 제후국들과 공국들에 대한 경고의 의미와 함께 대한과 그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만국에 밝힐 요량으로 대한이 디트마셴을 가져가는 것을 용인하였다.





다음은 줄이 완전히 끊어진 라다크의 합병이었다. 이것으로 대한은 티무르와 국경이 완전히 접하게 되었으며, 카칸으로서 칸의 후예를 자칭하는 티무르와는 관계를 재고할 마음도, 필요성도 없었으므로 그들과의 전쟁은 약속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때는 오스만과 대항하기 위한 동맹으로서 긴 세월 함께하였으나, 대한이 카칸의 작위를 강탈하면서 적이 되어버린 이들과의 전쟁에 한반도의 많은 지식인들이 슬픔을 참지 못했다. 허나, 대초원에 자리잡은 유목민들은 그것이 설령 유목민화된 한(韓)족이라 할 지라도 대초원의 지배권을 두고 전쟁을 할 수 밖에 없다며 당연한 이야기를 한다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한때 서구 열강에 팔려나가는 신세였으나, 사보이에서의 혁명으로 본국에서 지원을 받지 못해 토착 민족들의 반란으로 독립된 실론 섬의 소국을 향해 대한은 인도 통일 전쟁을 명분으로 전쟁을 걸었다. 그들은 간신히 얻은 독립의 기쁨을 향유하지도 못하고 그자리에서 독립을 잃게 될 것이다.





스페인과의 전쟁은 보헤미아와 나폴리, 덴마크의 도움으로 대한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대한은 스페인에게서 필리핀이라고도 불리는 향료제도의 섬들과 보르네오 섬의 남쪽을 대한에 넘기게 되었다. 이것으로 대한은 향료제도에 대해 더욱 안정된 국경을 차지하게 될 것이었다.

필리핀이라고도 불리는 그 섬에는 이제 대한과 맘루크 그리고 러시아로 세 개의 국가만이 남게 되었는데, 맘루크는 대한의 속국이었으므로 필리핀에서의 힘 싸움은 대한이 러시아를 힘에서 완전히 밀어 붙이고 있는 형상으로 봐도 무방했다. 언젠가 대한이 러시아에게서 시베리아를 강탈하는 그 때가 온다면 대한은 마땅히 러시아에게서 그들의 정당한 권역을 되찾아 오게 될 것이다.





당장 직면한 전쟁이 끝나고 대한은 군제의 개혁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군제의 개혁은 마땅히 나라의 후일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가 분명함으로 대한의 각 정당도 이 군제 개편에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왕당파는 황실 근위대를 제안하였다. 이 황실 근위대는 군제 개혁 이전에 대한이 가지고 있었던 군대의 확장판이었다. 그들은 부패도의 청산이 끝나고 인도와 중원의 무궁무진한 자원을 사용할 수 있음을 전제로 두고 군사 개편안을 제시하였다.


이들은 팔기군등의 유목기병의 축소는 인정하였지만, 그 축소라는 것이 절대적인 양의 축소가 아닌 보병과 포병의 숫자를 훨씬 더 많이 늘려서 비율적인 의미로 기병이 차지하는 비율을 줄이고자 하였다. 이들이 군제 개편안은 과거의 군제를 그대로 가져와서 확대시키고 개편한다는 의미에서 많은 군인들의 환심을 사게 되었다.

왕당파는 황실의 상징인 오얏꽃을 그들의 깃발로 쓰고 있었으며, 오얏꽃의 색이 백색임으로, 그들이 제시한 이 군대의 명칭은 황실 근위대이지만 속칭으로 백군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게 되었다.


공화당은 공화국 근위대에 관한 이야기를 제출하였다. 그들은 현실적으로 대한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군대를 배치하여 국경을 지킬 것을 제안하였으며, 포병과 보병의 균형이 전쟁의 승리의 열쇄라고 믿고 있었다. 그들 역시 유목 기병의 축소를 선호하였므로 종전에 비해 기병의 숫자는 반절로 줄인 2000여명의 기병을 한 개 부대에 배속할 것을 권하였다.


물론 5만명이 한 자리에서 머물 수 있을 정도로 보급이 원활한 지역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므로 실제로 한개 부대가 배속받은 기병은 1000여명이 한계일 것이다. 공화당 역시 화력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전면에서 포병을 지켜줄 보병의 수가 적었다가는 포병이 적군의 공격에 노출되어 크나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포함하고 있었다. 때문에 공화당은 포병과 보병을 동수로 놓을 것을 전제로 하여, 현장에서 장군들이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전투에서 언제나 전열이 무너지지 않게 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공화당은 사회당과 조선 공산당과 반대편에 서 있다는 것이 그들의 색에 영향을 미쳤다. 사회당과 공산당이 적색을 그들의 깃발로 삼았으니, 적색이 연상되는 색을 그들의 당을 표현하는 것으로 사용함은 논외였고, 그들과 가장 대척점이라고 연상되는 청색을 그들의 색으로 정함으로서 공화당이 제시한 공화국 근위대는 속칭 청군으로서 불리게 되었다.


사회당은 공화당과 비슷한 논리로 생각하였지만, 보다 더 나아간 군제를 제시하였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왕당파와 공화당 모두 사회의 하류층이 가지고 있는 여력을 너무나 낮게 바라보고 있었다고 판단하였다. 그들이 사회에서 하류층을 차지함은 그들의 게으름이나 천성적인 비열함과는 전혀 연관이 없이 과거의 어느때에 사람들이 몰락하고 출세함에 따라 그 부의 계승과 그로서 얻어지는 사회적 기회가 평등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때문에 사회당은 이 하류층을 잘 가르쳐 사람으로 만들어 놓는다면 그들이 만들어낼 가능성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고 판단하였다. 때문에 사회당과 공산당은 왕당파에 비하면 정치적 정통성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왕당파에 비견될 만한 병력을 지탱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보병의 수가 왕당파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군제 개혁을 내놓았다. 그들은 더욱이 이제 시대는 기병이 아닌 총포의 시대라고 주장하여 유목기병의 완전한 해체를 주장하였다. 물론 현재 시대에서 기병이 아직 전쟁에서 물러날 때도 아닌지라 전쟁이 진짜로 벌어진다면 이 기병의 무리한 축소로 피를 보게 될 것이지만, 공산당과 사회당의 이 같은 급진적인 제안은 한 번 피를 보고 나서야 고쳐질 것이다.


사회당은 공화당보다 대한이 가지는 여력을 높이 평가하였고, 기병이라는 돈을 많이 잡아먹는 병과를 배제하였기에 상시 유지 가능한 수준의 군대로 공화당 보다 훨씬 더 많은 군사를 부를 수 있었다. 그들은 공산당이 쓰는 적색의 깃발 보다는 공화당에 더 가까운 관계였기에 사회당이 주장한 사회주의 군대는 홍군으로 불렸다.


한편 조선 공산당은 노동자들의 힘을 주장하였다. 그들은 아시아의 힘은 유럽의 기술력과는 달리 방대한 농토와 유교, 그리고 쌀농사로 인하여 인력을 그야말로 무궁무진하게 동원할 수 있는 것에서 찾았다. 더욱이 적의 전열이 무너지는 가운데 끝없이 전열을 새로이 보충하여 최후의 최후까지 버텨낼 수만 있다면 전투에서 승리한 것이라는 논리를 들고와 보병의 확충을 제안하였다.


그들은 보병이 살아서 계속 진격시키기 위해 전열을 보병으로 가득 채울 수만 있다면 포병의 비율이 줄어드는 것 정도는 감당 할 수 있는 대가로 여겼다. 그들은 공화당과 사회당과는 달리 포병이 아무리 많더라도 앞에 설 보병이 무너져 내린다면 포병 역시 무너진다는 논리로 그 선택을 정당화하였다. 때문에 그들은 네 개혁안 중 포병의 비율이 가장 적으면서도 왕당파가 제안한 황실 근위대에 맞먹는 보병의 수를 제안할 수 있었다.


조선 공산당이 주장한 이 공산군의 인력의 핵심은 노동자와 농민이었으며, 군대에 그들을 징집하는 대가로 기술과 학문을 교육시켜주는 것으로 비용을 대신하고자 하였다. 이들이 주장하는 공산군은 그들의 깃발의 색처럼 새빨간 적군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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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당파 집권-대한제국 유지

공화당 집권-대한민국으로 변경. 왕당파는 복벽파로 변경

사회당 집권-(조선/대한) 사회주의 인민 공화국으로 변경. 공산당은 수정주의자로 변경

조선 공산당 집권-아시아 총 노동자 연맹으로 변경. 공화당은 반동으로, 사회당은 근본주의자로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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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갑자기 스페인이 미쳐서 선전포고하고 보헤미아에 얻어 터지면서 동남아 헌상한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됨.

그리고 위의 표는 좀 많이 나중에서야 반영될 것으로 예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