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화
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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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이 본격적으로 티무르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을 때, 러시아의 카자크들이 대한의 국경을 침범하였다. 이들은 러시아 휘하의 유목 기병대로서 시베리아의 소수 부족들을 잡아먹어 러시아의 개척민들이 자리를 잡게 하는데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때문에, 이 카자크 기병대가 대한의 국경 인근을 약탈했을때, 이 카자크의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이들은 없었고, 당장 티무르를 처벌하기 위해 군제를 개편하고 보급로를 건설하면서 전쟁 준비에 여념이 없던 대한의 여론을 순식간에 러시아를 공격하자고 외치는 일치단결된 목소리로 변했다.
대한의 조정은 이들 카자크의 행보 때문에 당장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는 것은 그다지 현명하지 못한 생각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러시아에게 이 카자크들의 '독단적'인 일탈 행위를 묵과할 수 없다는 말로 시작하는 일종의 최종 통보를 보냈다. 이는 만약 러시아가 이 유목민들을 감싸고 돈다면 대한은 티무르와의 전쟁을 팽겨쳐두고 러시아와의 전쟁에 돌입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경고였다.
러시아는 대한과 전쟁을 벌일 각오까지는 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보헤미아의 행보였다. 보헤미아는 과거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대한의 손을 들어주어 전쟁에 직접적으로 참전한 국가였는데, 과거 러시아와 국경 다툼을 벌인적 있는 그들이라면 이번 전쟁에서도 대한의 편을 들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고, 실제로 대한이 보낸 국서에서도 신성로마제국 운운하는 글귀가 들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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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러시아는 이번 카자흐가 일으킨 갈등에서 한 수를 접어주고 들어가는 수 밖에 없었다. 하고자 한다면 진짜로 전쟁을 벌일 수도 있었겠지만, 대한이 동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동시에 치고 올라오는 가운데 보헤미아가 동유럽을 통해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진격해 온다면 진짜로 수도가 불타고 파천할 후방 도시도 없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들은 오만한 자존심을 꺾고 이번 일을 러시아의 통제를 벗어난 일부 카자크의 독단적 행동이라 선언하고는 이번 일에 대해 책임질 희생양을 구해 대한에게 신병을 양도하는 것으로 갈등을 끝내고자 했다. 조정은 러시아가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가 불타는 것 보다는 유목민들 가운데 일부가 차르의 통제를 벗어나 전쟁을 일으킬 뻔 하였다고 하는 편이 위신이 덜 상한다고 판단하였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러시아로 부터 보내진 이 희생양은 감히 유목민 된 자로서 카칸의 영역을 침범하여 카칸이 이끄는 마을을 공격해 불태운 죄로서 참수하였다. 그리고 그와 주동자들의 시체는 땅에 묻히는 것도 하지 못하게 막고 들판에 버려두어 날짐승과 들짐승들이 그들의 시체를 파먹게 방치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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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산에서 대규모의 금광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이 운산금광에 대한 소식은 순식간에 한반도 전체로 퍼져나갔으며, 이 금광에서 조금이라도 떡고물을 얻어먹으려는 잡졸에서 시작하여 이 금광을 바탕으로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려는 야망 넘치는 사람, 그리고 금광을 확보하여 자신의 세계를 더더욱 공고히 하고자 하는 대형 자본가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정에서는 이 사업에 대해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당장 초기 채굴자들이 보고한 금의 양만 봐서는 이 운산의 광산에 있는 금맥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은광과 금광들, 그리고 아시아의 남부 지방을 모두 발 아래에 두면서 막대한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는 조정의 입장에서는 저 조그마한 광산을 차지하기 위해 조정의 위신을 깎아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스러워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때 이임해가 세종의 책을 들고 나오면서 상황이 격변했다. 그가 들고나온 책에서는 이 운산 광산의 금맥이 한반도 제일을 넘어서 동아시아의 규모에서 봐서도 손에 꼽을 만한 금맥이 저 운산에 잠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세종이 어떻게 그런 일들을 알아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가 철근 콘크리트와 질소를 이용한 비료 같이 현재는 기술력이 미비해 실용화하거나 재현하는 것도 힘든 기술을 책에 기술해 놓은 것이 많아, 그저 세종이 썼으면 그게 그대로 되겠지 정도로 판단할 뿐이었다.
어쨌든 조정은 원래의 방침을 깨고, 운산의 광산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것으로 조정은 단기적으로는 얻을 수 있는 돈이 줄어들 것이었으나, 시간이 많이 흘러 저 광산을 제대로 채굴할 기술이 실용화 되고 난다면 큰 돈을 벌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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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를 물러나게 한 대한은 바로 티무르를 향해 전쟁을 선언했다. 이때는 티무르가 그나마 남아있는 이슬람 동맹국들을 최대한 소집하여 어떻게든 대한과 비벼보려고 하고 있었다.
여기 있는 대부분은 대한의 타격범위 안에 들어가 있으나, 마다가스카르 섬과 남아프리카 인근에 있는 킬와 만큼은 대한의 타격 범위 밖에 있었다. 정확하게는 킬와가 대한과 비빌 수 있느 수준의 국가라는 것이 아니라, 킬와를 제압하기 위해 군대를 분산운용했다가는 티무르와의 전선이 불안정해져서 피해가 크게 나올 수 있다는 정도의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튀니스는 그곳으로 가는 경로가 오스만에 의해 가로막혀 있지만, 그것은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지중해에 대한의 편이 없으면 모를까, 지중해에는 대한과 같이 오스만의 해군을 깨뜨리고 갈망의 도시를 탈환해낸 카톨릭 동맹이 있지 않는가. 그들은 북아프리카의 이슬람을 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힘을 빌려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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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 첫 전투는 그렇게 좋지 못했다. 아무래도 군대의 편제의 개혁을 진행 중에 격돌한 것이라 대한의 군대는 효율적으로 싸우지 못했던 탓이다. 대한의 군대는 티무르의 군대를 상대로 두배의 병력을 밀어넣었으나, 피해는 대한이 더 컸다.
허나, 대한의 전쟁은 소수 부대의 승리가 목적이 아닌, 어떻게든 적의 부대를 패퇴시키고 그 틈에 대량의 병사들을 밀어넣어 상대방을 옥죄는 방식이었으므로, 피해가 크든 작든 이 승리는 의미가 있었다. 병사의 피해는 바로 밑에 있는 인도에서 얼마든지 충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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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과 사회당의 선전으로 의회가 조정과 황제에 대해 실권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들은 자신들의 민중의 대의라고 주장하였으며, 민중의 대의를 사회에 실현하기 위한 권력을 주지 않은 채 의회만을 만들어 놓은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하였다.
색색의 옷을 입은 양반들이 한양에 모여 의회에 힘을 돌려달라고 간절히 청하는 그 모습은 한양에 거주하는 많은 민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 중에는 아직 정치계에 본격적으로 출사하지 않고 권한 없는 의회의 사회당 세력에 적만 두고 한문에 힘쓰고 있던 강세환이 그 풍경을 보게 되었다.
문인이자 화가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그는 친구들과 선배들의 강렬한 외침에 감명을 받아 그 자리에서 시위를 벌이는 의회의 사람들을 그림으로 그렸고, 그 그림을 보던 그림에 재능이 있던 몇몇이 그것을 모작하여 팔아치움으로서 한양을 넘어서 경기권 전체에 한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에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이임해는 이런 상황에서 굳이 무력으로 의회를 진압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의회에 그들의 뜻을 펼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권력을 양도할 것을 약속하면서 당장의 정치적 혼란은 끝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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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를 밀어붙이고 있던 한국군은 티무르가 병력을 우회하여 전쟁 시작과 동시에 무너뜨렸던 델리를 부활시켰다고 하는 소식을 들었다. 델리는 이번 전쟁에서 대한의 후방을 위협 할 수 있는 위치를 차지한 국가였다. 여기에 티무르의 군대가 델리에게서 길 안내를 받으며 물자를 보급받는다면 대한의 물량 공세는 최악의 피해를 초래할 지도 몰랐다.
때문에 한국군은 그들의 부대 몇개를 급히 남하시키기로 했다. 문제는 이렇게되면 티무르 군에 비하여 아무래도 질적으로 열세에 놓일 수 밖에 없는 대한은 수적 우세를 장담할 수 없어 진격의 속도가 늦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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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2일. 델리를 정복하기 위해 진격의 방향을 바꾼 한국군 부대는 자신들이 얼마나 빨리 전장에 복귀하느냐에 따라 티무르와의 전쟁이 어떻게 흘러갈지가 결정된다는 것을 알고는 전속력으로 델리로 달려가 후방으로 침투해온 티무르 군을 괴멸시키고 델리의 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티무르쪽 전선은 티무르가 우세를 가져가기 시작했는데, 한국군의 침투 속도가 느려짐에 따라서 여유를 얻은 그들은 전선을 재정비하고 후방에서 모집한 군대를 대한의 아라비아 지방으로 우회시켜서 대한의 아라비아 통제력을 약화시키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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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는 티무르와 다우시르의 진격으로 인해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누가 어디의 군세인지도 장담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지금 대한의 통제 아래 있는지 티무르나 다우시르의 점령지 안에 있는지 감도 잡지 못한채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이는 대한이 인도 정벌을 위해 병력의 대부분을 가져가 버렸고, 더욱이 편제의 개편으로 인해 군사력이 매우 떨어져 있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라비아의 공왕인 애신각라 윤진은 이 사태를 자신이 아라비아에서 쫓겨 날 수도 있는 사태라고 판단하고 그와 그의 휘하에 있는 모든 이들의 능력을 사용하여 이 사단을 극복해나가고자 하였다.
때문에 아라비아 주둔 한국군은 전쟁 직후 바로 다우시르의 수도를 무력화 할 수 있었다. 허나 그것만으로 부족했는데, 다우시르의 충실한 이슬람교도들이 자신들의 수도가 불타오르던 말던 메카를 탈환하기 위해 돌진한 것이다. 한국군은 이 성전사들이 메카를 점령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다고 판단하여. 수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메카를 향해 진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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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 전선에서는 대한의 5만 군세가 티무르의 군대에 의해 패전하였다. 물론 그들이 패전한다고 해도 전장에는 막대한 양의 한국군이 남아있었기에 당장 전열이 무너져 대한의 국경으로 퇴각해야 한다는 식의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었지만, 전선에 큼지막한 구멍이 뚫린 이상 티무르 전선은 또다지 정체될 수 밖에 없었다.
한편 메카에서의 전투는 대한의 완전승리로서 끝나게 되었다. 자신들의 수도가 불타던 말던 일단 메카만 따면 이슬람 교도로서 책임은 다 했다고 믿는 이 성전사들은 그들의 왕자가 직접 이끌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에게 수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의 패전이었다. 다우시르는 이제 그들의 전의가 떨어지는 것을 감내할 차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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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은 인도의 인력의 힘으로 한 때 구멍이 났던 전선을 바로 메꿔버리며 티무르군에게 후퇴를 강요하였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자신들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군대들인데 아무리 전투력에 자신이 있다고는 해도 상대방을 압살할 수 있는 수준이 되는 것도 아니니 자신의 출세를 걸고 적들에게 가져다 박을 장군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한국군은 천천히 티무르의 요새를 함락하면서도 언제든지 서로를 지원할 수 있는 정도의 간격을 지키고자 하였다.
한편 대한은 내부적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의회가 힘을 얻게 되면서 그들의 대의권을 더욱 공고히 하고자 선거를 계획하여 황제에게 그 뜻을 제출하였는데, 황제가 그것을 선뜻 받아들이고, 그들이 계획한 선거에 기름을 끼얹으면서 판을 키운 것이다.
원래 의원들이 계획한 것은 28세 이상의 시험을 통과한 한국인 남성들만이 투표를 하여 의원을 선출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였다. 또한 그 시험을 관직에 오를 정도의 시험은 아니더라도 어느정도의 난이도는 갖추어 아무것도 모르지만 목소리는 내고싶은 무지렁이들을 최대한 배척하고자 하였다.
허나, 공산당과 입을 맞춘 황제는 이래서야 어떻게 대의권을 의회가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확신 할 수 있겠냐면서 24세 이상의 한국인 남녀에 시험을 통과해야 선거를 치룰 자격이 주어짐은 똑같았지만, 그 시험의 난이도를 대폭 낮추어 사회당과 조선 공산당의 교육을 받은 이들이라도 떡잎이 푸른 자들은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을 요구하였다. 당장 선거를 요구한 것은 공화당의 의원들이라 더욱 정치 참여의 문턱을 낮추겠다고 하는 황제의 뜻에 별다른 반박을 할 수 없었다.
황제만이 그런 주장을 했다면 어떻게든 무마 가능했겠지만, 공화당의 기준이 너무 높다고 비난하던 조선 공산당과 황제가 그것을 바라기 때문에 선거의 문턱을 낮추는 것에 동의하는 왕당파가 있었기에 그들은 말을 바꿀 수 없었다.
여성이 포함된 이유는 과거 선제께서 난설헌이 재능이 있으나 여성이라는 성별 탓에 부당한 신혼생활로 고통받고 있을 때 조정에 등용하여 황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는 즉,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이 중요한 때에 여성의 역활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난설헌 이후 여성 관직자는 그렇게 많이 배출되지 않았는데, 이는 대한이 여성들이 공부를 하지 못하게 의도적으로 막았거나 조정의 등용 방식에서 성차별적 요소가 있었다기 보다는, 여성들 본인들 조차도 뭔가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 옳은 해석이었다. 때문에 별종으로 취급받는 소수의 여성들 말고는 여성의 정치 참여는 매우 낮은 편에 속했고, 의회가 권력을 쥐기 전에 벌어진 모양만 낸 선거 때에도, 여성의 역활은 배제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것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거인즉, 글을 읽을 수 있는 여성이라도 한국인이라면 그 뜻을 알아둬야 한다는 말이었다.
대한은 지금까지의 얼굴마담을 뽑는 선거가 아닌 진짜로 자신들의 뜻을 대변할 의원들을 뽑기위한 선거를 준비하기 위한 거국적인 준비태세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들은 진짜로 권력을 가지고 활동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반쯤 부정이 일어나도 그렇겠지 하는 기존의 선거 방식은 용납할 수가 없었다.
대한이 이렇게 민중들의 선거가 치루어지려고 할 때, 당연히 비한국인들이 주류인 중원에서 엄청난 반발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일본이나 인도처럼 공왕이 통치하는 지역도 아닌 대한의 직할령임에도 불구하고 선거의 권한이 없어 바다 건너 있는 한국인들이 뽑은 사람의 통제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하다 못해 저 초원에 사는 유목민화된 한국인에게도 시험만 통과한다면 투표권이 주어지는데 말이다.
이에 대한 조정의 답변은 '꼬우면 너네들이 천명 따던가' 였으며 선거가 실제로 벌어지기 전에 중원에 대한 통제력을 최대한 키워 놓아 불미스러운 일을 최대한 줄이고자 하였다. 장수성에 세워진 사원은 대한이 여전히 유교국가임을 만 천하에 알리는 것으로서 정치에 큰 뜻이 없는 지식인들과 그저 세상이 그렇게 까지 달라지지 않았음에 안주하는 하류계층들에게 호감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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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가 인도에 돌린 병력들은 모두 괴멸되었으며, 그에 따라 한국군은 후방으로 돌렸던 10만의 군세를 다시 전선에 복귀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이 전선에 합류함은 안 그래도 수적으로는 한국군에 밀리고 있는 티무르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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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을 기르는데에는 아무래도 정주민족들 보다는 유목민들이 믿을 만 한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한에게 생물학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축산업에 뛰어드는 자들이 조금씩이지만 늘어나고 있었다. 이들은 보통 사회당의 교육을 받았지만 그럴듯한 직업은 모두 더 머리가 좋은 다른 이들이 직업을 차지하고 있어 이리저리 떠돌다가 배운 것이 생물학이라고 농업이나 축산업에 뛰어든 이들이었다.
당연히 이들의 이론을 바로 실전에 접합하기에는 여기저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들은 이론만을 안다가 파산하는 것 보다는 직접 가축들을 길러서 먹고사는 이들에게 노하우를 전수받고자 하였고, 처음에는 단순한 정보교류로 시작한 이 사업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존의 농민과 축산업자들에게 조언을 나누어주는 생물학자와 경제학자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만주나 대초원지대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그저 경험론적으로 가축의 질병을 치료하거나 혹은 그들의 생명을 떠나보내던 유목민들에게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대한에서 벌어진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가축의 부산물의 품질을 향상시켰으며, 그 중에서 양모는 그 품질이 매우 좋아졌다는 보고가 조정에 올라올 정도로 개선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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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은 다우시르의 주력을 격파하고 그들의 수도를 점령함으로서 그들에게 항복을 권유하였다. 다우시르는 티무르와 튀니스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있다는 소식에 약간의 희망을 품으려고는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폴리의 군대가 방금 지중해를 넘었다는 소식에 그들이 진정으로 참여하면 튀니스는 사실상 없는 국가 쳐야 되다는 사실에 대한이 제시한 유전에 동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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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0일. 버스트에서 대한의 장군이 티무르의 대군에 맞서 엄청난 승전을 거두었다. 이는 과거 대한이 티무르에서 벌인 첫 전투보다 훨씬 더 많은 군사들 동원하였지만, 티무르 역시 그 때에 비해 두 배나 되는 군사를 동원한 상태였다. 때문에 이 전투에서 양국의 양적 차이는 없는 것으로 봐도 무방했다.
이 전투에서 양 국가가 차이가 났던 것은 이 전투를 지휘하는 장군이 어느쪽에 더욱 재능이 있느냐였는데, 대한의 장군은 티무르의 장군 보다 여러 면에서 부족하였지만, 보병과 포병의 사격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장이었다. 반면 티무르의 장군은 사격은 그렇게 좋지 못했으나, 기병의 전술과 부대의 기동력을 살리는 것에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재능이 있는 자였다. 만약 그가 1500년대나 그 이전에 태어난 자였다면 능히 인도를 도모하고도 남았을 그런 명장었다.
하지만, 이 전투는 대한이 티무르에 비해 규율에서 밀리고 있음에도 대한의 교환비 우세로 끝이 났다. 기병의 역활 역시 돋보이기는 했지만, 보포의 합동 공세가 이 전투의 승리의 주축이었다는데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가 없었다. 이 전투를 참관하던 이들은 이제 진정으로 기병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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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이 자살해 버린 이후 영국은 향료제도와 희망봉에서 대한과 상업을 경쟁하는 주요 국가였다. 과거 대한에게 몇 번이나 데인 적이 있는 영국은 함부로 대한을 자극할 만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영국에게 몇 번이나 엿을 먹을 뻔한 대한은 영국을 가만히 놔두는 것은 상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대한은 그들의 땅에 망명한 영국의 장교들의 인맥을 살려서 영국의 내부 상황을 조금이나마 더 알고자 하였고, 이 계획이 성공하면서 대한은 영국의 국내 사정을 조금이나마 더 알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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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시르가 예견했던 대로 튀니스는 나폴리의 공격에 저항하지 못하고 그들의 영토를 내주게 되었다. 그들의 전 국토는 불타오르고 있었으며, 그들은 패퇴를 강요당하고 있었다. 튀니스는 머지 않아서 대한과 조건없는 휴전을 체결하게 될 것이다.
한편 티무르는 오스만의 땅을 빌려 성벽이 무너진 채로 방치되어 있는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기는 하였으나, 의미가 없었다. 대한이 그 도시를 유지하고 있음은 오스만의 육군이 범접하지 못해서가 아닌 오스만이 나폴리-대한 연합해군을 격멸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으므로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으로 갑자기 오스만이 대한을 공격한다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더욱이 티무르가 그 도시를 점령하여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대한은 기독교 국가가 아닌 유교 국가였으며, 콘스탄티노플은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대도시로서 그 가치를 가질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땅이었다. 새삼스럽게 요충지를 점령당한다고 해서 위신이 깍이거나 정부에서 책임 공방이 벌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티무르의 군대가 이슬람의 검으로서 콘스탄티노플을 순례하러온 기독교인들을 참살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겠지만, 그랬다가는 티무르는 대한보다도 더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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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에서의 전선은 한국군이 우세를 점했다. 티무르의 수도와 동부 지방의 저항을 분쇄하고 서쪽으로 진격해 나가는 한국군을 막을 만한 군대는 이제 티무르의 내부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제와서 아바리아에 있는 군대를 뒤로 물려봤자 쓸데없이 지연되어 각개격파 당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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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은 중원을 북방의 오랑캐로부터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대한이 천하를 통일하고 난 다음에는, 만리장성을 중원의 인간들이 한반도에 유입되어 한반도의 인구 비중이 뒤집히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용도가 바뀌었으며, 이 만리장성은 용도가 오히려 중원을 봉쇄하는 것으로 바뀌어 대한이 요동과 간도의 인구 비중을 한국계 우세로 바꾸는 동안 화북의 인간들을 중원에 묶어 놓는 역활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한국인들이 경신대기근의 영향으로 간도를 넘어 만주 초원까지 진출한 상태에서 감자와 고구마 옥수수 등의 작물들을 들여와 한국인들을 말 그대로 밭에서 뽑아내듯이 양산하고 있는 지금 만리장성은 그 역으로는 기능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베이징에서는 한국인과 화북인이 인구비로 경합이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화북의 인근은 누가 따로 말 할 것도 없이 한국계가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이 우세 상황은 화북만으로 끝나지 않고 산둥이나 화중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었으며, 규슈에서도 한국인과 일본인의 경합이 벌어지고 있었다.
특히 민족주의가 본격적으로 발흥하기 이전인 지금은 민족을 나누는 구체적인 경계선이 있는 것도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배우고, 어디에서 살며,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스스로를 피 한방울도 섞이지 않았음에도 한국계로 자칭하는 경우도 있으니, 인구가 뒤집히는 현상은 조정의 예상을 아득히 초월한 속도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한반도인의 원류인 한반도에서는 유목민화된 한국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는 않았기에 이 자칭 한국인들을 우호적으로 대하지는 않았지만, 중원이나 일본에 사는 자칭 한국계들이 굳이 한반도에 올 일도 없었기에 갈등은 표면화되지는 않았다.
조정은 이 만리장성을 개량하여 만일의 경우에 천명이 뒤집히는 날 중원의 세력이 북상하여 요동이나 대초원을 공격하지 못하게 막고, 대한이 안정적으로 중원에 영향력을 투사하는 것을 돕는 장치로 바꿔버렸다.
이임해는 이를 두고 언젠가 진시황의 왕릉을 찾게 된다면, 그 날에는 조정에서 크게 제사라도 지내 줘야 겠다고 평했다. 이것으로서 그들과 직접적인 영향관계도, 당장 눈에 띄는 변화도 없는 선거 문제로 중원이 요동치는 것을 막는 하나의 쐐기가 더 추가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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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는 이제 더 이상 서쪽 국경을 지킬 능력도 없음을 인정하여야 했고, 튀니스는 나폴리의 공세에 완전히 밀려서 대한과 조건없는 휴전을 맺는 것에 동의하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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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스까지 날아가자 티무르는 더 이상의 전쟁을 벌일 의지를 상실하였으며, 대한이 요구하는 휴전 협상장에 나올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 휴전에서 대한은 티무르에서 벌어질 급변사태를 막고 대한의 아시아 통제를 더욱 공고하게 할 협상안을 제시했다.
이 조건으로 대한은 아라비아를 가기 위해서 타국의 국경이나 긴 바닷 여행을 감수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다우시르와 티무르를 분리함으로서 그들이 공동 투쟁할 가능성을 크게 줄였으며, 오스만 제국과의 접경지를 늘림으로서 그들에게 더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상황이 이렇게 되고 나자 대한은 티무르가 과거 자신들이 오스만에게 대항하기 위해 그랬듯이 러시아와 손을 잡을 가능성을 경계하게 되었다. 안 그래도 러시아가 하얀 카칸을 자칭한 전적도 있었으므로 칸의 후계를 자칭하는 티무르와 손을 잡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대한은 티무르와 러시아의 국경을 떨어뜨림으로서 그 가능성을 차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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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과의 전쟁, 정치적 혼란은 대한의 항로 통제권을 약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전근대라고 하지만 스페인은 명백한 해양 제국이었고, 그런 나라와 전쟁을 벌이는데 대한의 배가 멀쩡할 리는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한국은 희망봉과 말라카에서의 영향력이 급락하여 빠르게 성장하는 영국과 경합을 할 정도로까지 해협 지배력이 떨어지게 되었다. 이는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장 말라카 해협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대한은 동남아시아에서의 계획이 완전히 어그러지게 된다.
때문에 그들은 중원에서 급히 수배한 상선들을 투입하여 이곳의 영향력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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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대한은 선거의 준비가 끝났다. 공산당은 가능하다면 모든 인민에게 선거권을 주고 싶었으나, 그것은 현실적인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다. 안 되는 일이 있으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혹시 쏟아부은 돈이 부족하진 않았는지 다시 돌이켜 보라는 격언 답게 대한은 과거 실패했던 길을 닦는 과업을 더 많은 돈을 쏟아부음으로서 강제로 성공시켰다.
하지만 아직 산 속에는 산군이라 불리는 호랑이들이 살아 있었고, 몇 번 호랑이를 솎아내고자 포수들을 동원하여 호랑이 사냥을 벌인 적이 있으나 유의미한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함부로 민중들을 움직이게 했다가는 그저 호랑이에게 밥을 주는 일에 불과했고, 그렇다고 각 읍과 고을에 투표소를 설치하겠다는 것은 광기에 불과했다. 물론 아까 말했다 싶이 돈을 더 부으면 가능은 하겠지만, 조정이나 의회에 주어지는 활동비는 무한하지 않았다.
대한은 한반도와 몽골 만주 화북의 관찰사들로 하여금 조정에서 제작한 문제를 배포하여 인쇄토록 하였고, 그것을 이용하여 주요도시에서 시험을 치고 그 자리에서 통과한 이들로 하여금 대리인을 선출하게 한 다음, 그 대리인이 한양에 온 다음 지역구의 한표를 행사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것 역시 복잡한 방식이었으나, 마을당 500장이 넘어가는 종이쪽지를 돌려대며 한양에 모아 일일이 열어보는 귀찮고 복잡한 작업 보다는 효율성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조정은 이 선거를 2년 뒤에 개최하고자 하였고, 이 선거의 결과로 대한은 그 국가의 정체성이 크게 바뀔 것이었다. 대한의 모든 당은 자신의 세력권을 결집하는 가운데 선거할 자격이 되지만 아직 자신의 뜻을 정하지 않은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홍보활동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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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4년. 2월 1일. 한국의 상인들이 희망봉에서 영국의 상인들을 대상으로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다. 보통이라면 그냥 상인들 끼리의 일이라며 양국 정부는 그냥 모른 척 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었지만 대한의 조정이 알지 못하는 다른 이유로 영국의 상인들은 이례적으로 대한의 조정에게 한국 상인들의 활동 자제를 요청하고 나섰다.
조정은 이 일로 희망봉에서의 일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판단함과 동시에 대한에 소속되어 있는 상인들의 이권을 보호하고자 영국의 상인들의 요청을 무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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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언제 어디서나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사람이 문명에서 생활하고자 한다면 어떠한 경우에도 경제활동에서 유리될 수는 없다. 비록 장기적인 시야는 커녕 거시적인 것도 보지 못해 화폐 제도를 말아먹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제활동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었다.
사람은 언제나 가지고 있는 것과 필요한 것이 일치할 수는 없는 것이고, 개인적인 사정이나 혹은 하늘의 재앙 같은 일들로 인해 필요한 물건이 생겨 그것을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과 물건을 교환하여왔다. 국가라는 주체는 그 교환을 화폐를 주조하고 화폐에는 신용이 깃들어 사람들이 너도나도 화폐를 이용하여 편하게 필요한 물건을 교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국가는 화폐를 제조하고 신용을 보증함으로서 어느 정도는 이득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으로 하여금 타 세력을 경제적으로 종속시켜 손과 팔을 묶을 수는 있진 않을까. 그것이 바로 이 대중국 관세청의 설립 이유였다. 대한의 조정은 한국인 어용상인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중원을 경제적으로 한반도에 예속하고자 하였다.
물론 중원의 체급이 한반도와 만주와 대초원을 합쳐도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차이가 나고, 중원이 한 차례 박살 난 것도 아니고, 대한의 천명 통일 이후 다소 침체기이기는 하지만,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그것을 실물 경제로 속박하겠다는 것은 미친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때문에 조정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실물 경제 말고 수학 꽤나 하는 사람들 마저 손해를 보고 파산하기 일쑤인 금융권의 도움을 받았다. 그들은 조정의 학자들도 명확하게 파악하기 힘든 어려운 계약서들과 각종 안정장치 등으로 중원을 봉쇄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이것이 완성된 다음에는 강남이든 화중이든 대한에게 저항하기 위해 들고 일어난다면 일단 아킬레스 건을 잘린 다음에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조정은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도 없었지만, 금융권이 충분히 위험한 자들인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사회당과 공산당은 이런 식으로 노동자들의 고혈을 자본가들이 빼먹어왔구나 싶어서 분개하기는 했지만, 당장 중원을 묶어두기 위해서는 그들의 도움이 필수적이었기에 공화당에게 대놓고 뭐라고 하지는 못했다.
이로서 중원의 발이 묶인 지금, 다른 곳은 공왕의 통제 아래 있기에 한반도에서 선거가 벌어지든 말든 별로 상관도 않는 지금. 대한은 선거의 결과를 발표하고 적용하기 가장 최적의 때를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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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결과는 공화당-왕당파-공산당-사회당 순으로 표차가 벌어졌다. 사회당은 복지주의의 원류로서 그 영향력이 있다고 판단하였지만, 더욱 강렬한 색체를 띄는 공산당이 사회당을 잡아먹으면서 오히려 본가인 사회당이 무너진 것이다.
한편 왕당파와 공화당의 싸움은 누가 이길지 감히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는데, 모두 그 만한 정통과 역사를 쌓아온 세력이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공화당이 왕당파보다 세력 형성이 늦었다고는 하나, 그 존재는 세종에 의해 인정되었던 만큼 집현저의 사냥개들의 정신적 후예인 왕당파와 세종이 인정하여 형성된 공화당은 같은 부모 밑에서 한날 한시에 태어난 형제나 다름없었다.
어쨌든 선거는 공화당이 승리하였고, 의회는 황제에게 세종의 책들에 대한 권한의 이양을 요구하였다. 아들을 잃은 후로 억지로 국정을 운영하여 오기는 했지만, 어렸을 때 이인의 광기를 보고 그의 할머니인 오키코가 비참하게 살다가 마지막에 그를 위해 마지막 불꽃을 피워내고 죽은 것을 보고 아들이 연달아 죽은 것을 경험한 이임해에게는 이는 어쩌면 해방일지도 몰랐다. 어떻게 생각하던 이임해는 의회의 요청이 있는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세종의 책을 의회에게 대여하였다.
이로서 대한은 세종이 만들어낸 책을 개인의 영달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무제한적으로 국가를 위해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임해는 정식으로 공화정부가 국가의 통제권을 이양받기 바로 전의 짧은 기간을 임시 통령으로서 국가의 수반을 책임질 통수권자로서 행동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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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에서 의원을 선출하는 개표에 이어서 지방에서 같이 올라온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표를 개표하였다. 이는 공화당의 제안이었으므로, 공화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한 지금은 반론이 있더라도 그대로 강행되었으며, 당연하게 의원을 가장 많이 배출한 공화당의 인물이 선출될 것이라 예상되었고, 개표 결과 공화당의 후보였던 안사도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과거 정부와 마찬가지로 중앙에 힘이 집중되어 있는 중앙집권적인 국가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세종의 책을 바탕으로 정치체계를 완전히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의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 국가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이야기였는데, 이는 조정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였다.
의회가 입법부로서 가동을 시작한 시점에서 조정은 경쟁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의회와 대통령이 존재한다고 한들, 조정에서 구 황권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입번권과 행정권이 한 나라에 두 곳에 존재하는 사태가 되어 버릴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자 예측이었고, 개혁의 명분이 세종의 책인 이상 조정도 덮어놓고 거부할 수는 없었다. 아직 정식으로 권력이 이양된 것은 아니었지만, 합의된 절차에 따르면 다음 해에 안사도가 대통령으로서 국가 수반으로 존재하게 된다.
더욱이 황제가 권력을 일부 이양했을 지언정 아직 황제로서 존재하고, 공화당이 권력을 이양받았을 지언정 그 권력기반이 가장 취약한 지금은 왕당파가 정치적으로 반격할 여지는 충분했고,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가는 그대로 엄청난 분란이 발생할 터였다. 선거가 끝난 후 한양은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을정도로 경직되어있었다. 공화당의 오해로 인한 판단 착오로 한 나라에 두 국가수반, 두 행정부가 존재하게 된 지금, 누군가가 불을 지르면 한양은 완전히 불타오를 것이다.
조정은 왕당파가 이기겠지 싶었는데, 갑작스럽게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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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할 때는 좀 많이 여유 있겠지 싶었는데, 캡쳐 하니까 두 화만에 나올 분량이라서 하나로 합침.
공화정으로 한 이유. 유로파 모드 찾아보다가 조선 태극기 교체 모드 보고 뽕맞아서.
여기까지 온 이상 왕당파가 이기든 공산당이 이기든 공화정 개혁 달리고 세종의 책의 의회 이양은 썼을 것.
책이 의회로 넘어갔으니까 다음 화에 세종에 대한 떡밥 풀어버릴 것임.
개추
안니 공화파 승리라니
1812년 끝나면 에필로그같은거 넣을거임?
ㅇㅇ - dc App
엥간한 대역물 소설보다 재밌네
그럼 입헌군주국이 되버린 거??
황제가 황제로서 남아 있는데 의회에서 착각하고 대통령 선출한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썼음 - dc App
행정부 두쪽남 - dc App
연재추
대한민국추
님 모드 머 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