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4월 14일

이란은 사트 알 아랍, 아르반드 루드를 사이에 두고 맺은 1937년의 조약은 전면 무효라고 선언하고 거기에 더해서 앞으로 통행료 받을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대놓고 선포한다. 사실 샤한샤가 조약을 전면 무효라고 선언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세상의 어느 나라에서 강 위에 국경선을 그을 때 한 쪽 연안에 치우치게 그리냐는 것이다. 


하지만 사트 알 아랍의 중요도를 생각할 때 이건 노골적인 선전포고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이라크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이란의 후안무치함을 규탄했지 군사적 행동으로 나설 엄두도 못냈다. 왜냐고?


당시 이란군은 중동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고 있었으니까.


팔레비는 좋은 말로 하면 미국의 든든한 우방이었고, 나쁜 말로 하자면 미국의 훌륭한 개새끼였다.

실제로 미국은 이란을 중동의 대리자로 삼고는 어지간한 우방한테도 안 주는 특혜를 쏟아부었다.



미국-이란 동맹의 결정체. 이걸 지금까지 우려먹을 줄은 그 누구도 몰랐지…


그리고 그런 특혜가 가장 두드러졌던 부분은 바로 군대였다. 그의 군대에 대한 열정은 엄청났다.

이란 석유 수입의 상당수가 이란군 전력 확충에 들어갔으며, 서방과의 친선관계는 곧바로 최신식 서방무기의 직도입으로 드러났다.

혹자는 그가 군사력 강화에 대한 강박 관념이 있다고 할 정도였으며,

심지어 그의 반대자들마저도 '샤는 이란군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군대로 만들었다'라며 인정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막강한 전력을 배경으로 이란은 역대급 초강수를 둔다. 이른바 '아라반드 합동 작전'.


1969년 4월 22일. 


이라크는 이라크 국기를 게양하지 않은 배는 절대로 수로를 통과할 수 없다고 엄포를 한 가운데, 강재 빔을 적재한 이란의 화물선 이븐 시나가 2척의 함정과 팬텀 비행중대의 호위를 받으며 페르시아 만으로 항해하기 시작했다. 아주 당연하게도 화물선에는 이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고.


양국은 강변을 따라 포병대, 전차, 대공화기를 주르륵 깔아버리고는 만에 하나의 사태에 대비하였다.

그리고 이라크는 뭘 했냐고? 손가락만 빨며 지켜보고 있었다. 뭐 어쩌겠나.

이란군에 비하면 좆밥이라는 건 자기들이 훨씬 더 잘 알고 있었는데.


뒤 이어서 4월 25일 화물선 아리아 파르가 4척의 건보트의 호위 하에 아무런 방해 없이 강을 지나갔다.


이로써 이라크는 공개적으로 엿을 쳐먹었고, 눈 뜨고 사트 알 아랍의 주도권을 완전히 강탈당했다.

결국 국제관계는 힘 있으면 장땡이란 사실이 다시 한 번 증명되는 사건이었다.


빡쳐버린 이라크는 그 즉시 수천명에 달하는 이란인 시아파 순례자들을 추방했고,

이란 상품에 대한 경제제재를 단행하였다.


앞으로 자주 나올 지도이니 참고하자.

파란색 지방이 발루치스탄, 주황색 지방이 후제스탄인데 발루치스탄 반군은 여전히 이란을 빡치게 하는 요소이다.


마지막으로 후제스탄과 발루치스탄 분리주의자들을 노골적으로 지원해주기 시작했다.

여기에 이란은 이라크 쿠르드족에게 군사고문을 파견하고 물자를 지원하는 등, 쿠르드 독립을 노골적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더욱 화끈하게 엿을 쳐먹인다.

게다가 CIA와 모사드까지 여기에 숫가락을 얹었다.


계속된 긴장 속에 여기서 먼저 GG를 선언한 측은 이라크였다.

왜냐면 당시 국제정세가 이라크한테 전혀 안 좋게 굴러갔거든.


1973년 욤 키푸르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서 이라크는 미친 듯이 계산기를 굴리게 된다.

당시 이라크는 직접적인 이해 관계는 없었지만, 이스라엘과 이란이 협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존재하였다.

어찌 되었든 이라크랑 이스라엘은 잠재적인 적성국이었고 이란이랑은 당장 내일 전쟁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전쟁이 터지면 이라크는 그 날로 국가가 증발하는 상황이었다.'


이란 역시 UN의 권고가 들어오면서 마냥 뻗대기에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날이 갈수록 불온해지는 국내 상황 역시 샤를 옥죄고 있었다.


결국 양국 모두 자존심 대신 실리를 선택하게 되면서

1975년 6월 13일 알제에서 열린 OPEC 정상회담 자리에서, 이라크와 이란은 알제리 대통령 후아리 부메디엔의 중재 하에 협정을 맺게 되고,

1976년 6월 22일 테헤란에서 교환과 동시에 발효되었다.


이게 현재 사트 알 아랍의 경계를 확정짓게 된 알제 협정이다.



왼쪽부터 이란 샤한샤 레자 팔레비, 알제리 대통령 후아리 부메디엔, 맨 오른쪽 콧수염 아재는 말 안해도 알리라 믿는다.


조약 내용 자체는 심플했음

1. 양측의 국경선은 사트 알 아랍, 아르반드 루드의 정확히 한 가운데를 기준으로 정한다.

2. 이란은 쿠르드 반군을 향한 군사적 지원을 전면 중단하고, 이라크 역시 발루치스탄과 후제스탄 지원을 중단한다.


이 조약의 결과로 이란과 이라크 사이에 전쟁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보였다.

이란 정부는 이란 외교 역사상 길이남을 대성공이라며 자축하였다.


이란을 믿고 이라크에게 저항하던 쿠르드 족은 그야말로 사망선고나 다름없었지만 말이다.


쿠르드족 반군을 향한 이란의 군사적 지원은 순식간에 빠져버렸고,

CIA와 모사드 역시 이란과 발 맞추어 발을 빼버렸다.

국경 역시 완전히 봉쇄되어 쿠르드 반군은 오갈 곳이 소멸해버렸다.


그리고 후세인은 감히 이란 믿고 질러댄 쿠르드 반군을 문자 그대로 쓸어버렸고,

10만에 달하는 난민이 터키와 이란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양국 모두 이 조약에 불만이 있었다. 사트 알 아랍, 아르반드 루드가 완전한 자신들의 소유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라크의 국력은 이란에 비하면 절대적인 열세였고, 이란 역시 국내상황 때문에 외정을 어떻게 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그 불만은 의외로 얼마 있지 않아서 터져 버렸다. 그것도 좀 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