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제국이 되고 나서도 지도에서 바뀐건 독일 공화국이 독일 제국이 된것 밖에 없었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빼앗긴 영토는 아직 정당한 소유자로 되돌아 오지 않았으며 베르사유 조약의 산물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다.


폴란드가 소유하고 있는 단치히-포젠이 있었고 서방에는 프랑스와 벨기에가 가져간 영토가, 식민지에는 칭다오와 아프리카의 식민지. 태평양의 여럿 군도들이 있었다.





나치와 히틀러가 대중의 광신적인 지지를 끌었던것도 베르사유의 치욕과 도이칠란드를 양지로 이끄는 대외정책에 대중이 끌렸던 것이고 히틀러를 몰아냈다고 해도 강한 독일을 되돌려놓길 바라는 대중의 바람은 변하지 않았다.


또한 수뇌부도 독일의 현 영토는 정당치 않다 생각했고 팽창주의 정책을 조심스래 시작하길 바랬다.


독일 제국의 옛 영토를 찾는것을 시작하길 원했던 카이저는 동방으로 눈을 돌려 중국의 키아우초우에 손을 뻗게 된다.





빌헬름 2세가 집권한 이후로 나치가 남겨둔 크릭스마리네는 재편되어 에리히 레더의 지도 아래 제국 해군으로 거듭났다.


예전의 건함경쟁때를 연상케 하는 속도로 영국 해군을 쫒아갔고 그를 위해 독일 경제는 기형적으로 군국주의에 맞춰졌다.


정부는 전시행정 비슷한 경제 정책을 펼쳤고 민간공장들은 모두 내전때처럼 군에 협력하며 전쟁특수를 유지해갔다.


그렇게 대양해군은 모양새를 갖추었고 영국과의 타협을 통해 로열 네이비와 견줄만한 전력만 겨우 유지할수 있게 되었다.


적당한 해운력을 갖춘 독일제국이 처음 수복한 영토는 키아우초우 였다. 이를 수복한 경위는 당시 아시아 정세를 봐야한다.




동방의 떠오르는 열강이었던 일본은 독일과 비슷하게 군이 반동주의 사상에 입각한 파벌 '황도파'를 만들어 권력을 침식했다.


황도파는 몇몇의 드라마틱한 사건들을 거쳐 정부의 우두머리에 이르는 데에 성공했고 덴노를 중심으로 한 전제군주제 군국주의 국가성립에 성공한다. 물론 덴노는 그에 찬성했냐는 의문을 남기고서.


일본 군부를 장악한 청년 장교단은 중국과의 전쟁이 미국과의 마찰로 이어지지는 안을까 우려를 하고 있었지만 중국에 대한 이권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안고 있었다.


중국 또한 일본과의 전쟁은 피하고 싶었고 내치를 중심으로 한다음 외세와 마주하고 싶었다. 다음과 같은 상황에 독일이라는 제3 세력이 아시아에 힘을 투사 해왔다.




-오스카 트라우트만, 칭다오 회담 성사시 중국 외무성 왕충후이와 함께 찍은사진(1938)



중국은 일본과의, 동아시아내 영구적 평화를 가져오길 바랬다. 일본이 쳐들어온다면 최악의 경우 수천만의 사망과 함께 전국토 유린이라는 경과를 낳을수 있기때문에 일본과의 외교에 국운이 달린 셈이였다.


독일은 공화국 시절부터 중화민국에 군사 고문단과 함께 군 최고 권위자 한스 폰 젝트가 재임하는등 중국과 친선관계를 맺고 있었다. 제국에 들어와서도 팔켄하우젠의 고문단은 유지되고 있었으니 중국에 있어서 안성맞춤의 협상 중재자였다.


카이저는 외교 대사 트라우트만에게 일러 외교적인 방법으로 칭다오를 찾을 방법을 물색하게 했고 트라우트만은 칭다오 회담이라는 큰 수확을 끌어오며 황제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독일 국내에 배포된 칭다오 회담 선전 포스터(1938)


독일은 칭다오에 고관대작을 보내 일본과 중국의 타협을 이끌어 내며 다음과 같은 절충안이 타결되도록 도왔다:


1. 중국은 화북, 산둥 등지의 조약항을 일본에 임대하며 그 기한은 70년으로 한다.


2. 중국은 반공행위에 적극 참여하며 이는 일본이 협력한다.


3. 중국은 일본 상품에 대한 관세를 경감한다.


4. 일본은 중국의 주권을 존중하며 중국과 일본은 조약후 국경을 인정한다. 또한 서로 불가침조약을 맺으며 이는 독일이 보장한다.


5. 일본은 외국의 재중 권리를 인정한다.


6. 독일은 주중 군사고문단을 확장시키며 중재의 대가로 칭다오의 조약항을 다시 조차하며 기한은 1897년부터 세어 100년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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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일본 정부나 군은 둘다 뒷맛이 좋지 않은 조약이였지만 동아시아에 항구적인 평화가 찾아온것만으로도 한숨 돌릴수 있게 되었다. 칭다오 조약에서 일본과 중국은 승자도 아니였으며 패자도 아니였다. 승자는 독일이였다." -하인리히 뵐 (2차 세계대전사 中)




칭다오의 재조차는 제국에 자신감을 가져오게 했다. 황제는 사라예보에서의 교훈을 실전에서 보여주며 외교가 전쟁을 이길수 있음을 독일에 보여주었으며 일본과 중국이라는 협력국을 가져왔다. 아시아에 반공국가 둘은 완강한 반공을 외치고 있던 독일에게 향후 큰 힘이 될것으로 보인다.



베를린의 카이저는 동방의 특사가 가져온 전리품에 취해있었다.


더욱 중요한것은 독일의 확장행보를 막을수 있는 힘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키아우초우 재조차로 인해 베르사유 체제는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다. 독일은 명백히 재무장과 동시에 확장을 시작했으며 협상국이 두려워 했던 1914년의 독일이 돌아올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프랑스는 공산혁명에 힘쓰고 있으며 영국은 중립을 선언했다. 이탈리아는 독일을 째려보기만 하고 있었다. 가장 큰 적 소비에트 연방만이 대숙청을 거치며 거대한 곰의 발톱을 갈고 닦고 있을 뿐이였다.

세계는 아직도 기름통에 빠져있으며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다. 독일이 그 중심에 서있었으며 그들은 20세기를 독일의 세기로 만들려고 하고있었다.



독일의 식민지 재점령은 이제 시작되었으며 독일이 양지에 설날은 머지 않은것처럼 보인다.






팽창을 시작하는 독일제국은 과연 어떻게 될까?



독일인들의 미래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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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까지 2편 더 나올듯.. 분량 조절 또 실패함 사실 2편 3편 한편이였는데 끊는게 더 잘읽힐것 같다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