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구리에 창이 찔린 사자가 부르봉 왕가의 백합 문장이 새겨진 방패를 지키고 있다.)

18세기 후반과 19세기의 프랑스는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였음

혁명의 시대였던 18세기 후반은 프랑스의 절대왕정이 몰락하고 국민의 정부인 국민의회가 등장하던 시기였음

국민이 왕을 몰아내는 혁명 사상은 당시 전제정권에 심취해있던 유럽의 왕가들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고 프랑스의 혁명 열기를 잠재우기 위해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는 프랑스를 침공함

국민의회는 침공에 대항하여 국민군을 편성하여 맞서 싸웠지만 왕당파 장교들의 태업과 정보유출로 인해 국민군은 전멸 직전까지 내몰렸음

파리 시민들은 패전의 책임을 왕에게 물었고 왕의 퇴위를 주장했지만 루이 16세의 의연한 대처로 무산되었음

어설프게 빠져버린 파리 시민의 분노는 다시 점화되어 1792년 8월 10일, 파리 코뮌을 위시한 파리 시민들은 들고 일어나 왕이 거주하던 튈르리 궁으로 몰려갔음

왕을 호위하던 프랑스 왕실 호위대는 분노한 시민들 앞에서 무기를 버리고 도망쳤지만 왕실 호위를 위해 고용된 스위스 용병대 786명은 자리를 지켰음

그런 용병들을 보다 못한 루이 16세가 “그대들의 임무는 끝났으니 이만 가도 좋다.” 라며 해산을 명했지만 스위스 용병들은 끝까지 남아 최후의 한명까지 남아 루이 16세를 지켰음

수적열세와 압도적인 화력차이로 인해 스위스 용병은 전멸하였고, 결국 루이 16세는 붙잡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프랑스는 공화정을 수립하게 됌

스위스 용병들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스위스 루체른에 빈사의 사자상이 건립되었고, ‘사코 디 로마’와 함께 스위스 용병의 신의를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음

+) 사자 위에 써있는 구절은 HELVETIORUM FIDEI AC VIRTUTI (스위스의 충성심과 용기) 라는 라틴어 구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