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함대가 조선연안에 대거 착륙한 것은 1840년대 라피에르 제독의 함대엿다. 이들은 조선해역에서 난파하여 거의 한달가량을 머물다가.. 중국배를 얻어타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서구열강들이.. 조선을 식민화하려고 끊임없이 우리 해역을 조사한 것은 서구가 중국에 진출하고부터이다.
그 중에서도 직접적으로 조선출병계획을 세우고 조선을 군사적으로 식민화하려고 구체적으로 시도했던 나라는 프랑스가 최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1850년대 중반에.. 인도차이나 함대 제독 게렝을 보내어 우리 해역을 사전조사했는데 그 때 게랭이 타고온 기함이 바로 비르지니호다.
게랭과 비르지니호는 동해안에서부터 시작해 우리 해안을 따라 내려오며 거의 2개월에 걸쳐 매우 자세한 조선 정탐보고서를 작성해 프랑스 해군국의 식민성에 제출했다.
이 게랭의 보고서에 의거해 프랑스는 드디어 조선 원정군을 편성하게 된다.
게랭의 조선보고서는 측량, 수로, 군비, 사회상태, 지배구조, 자원, 풍습,도시와 시골, 경제등에 관한 한국의 최초의 종합보고서로서 서양인에 의해 작성된 최초의 한국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이한 것은 게랭은 조선의 지배 피지배 구조를 유심히 관찰하여 이 계급구조를 이용하면 조선을 쉽게 식민화 할 수 있다고 단언하고 잇다는 점이다.
...조선의 관리들은.. 하나없이 죄다 부패했고 매우 부당하게 세금을 징수하고 주민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킨다..고 그는 적고 있으며 ..반면 농민과 어부들은.. 프랑스인에게 매우 우호적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또한 그는.. 이렇게 분열되고 무력한 나라, 관리들이 군함 한척만 나타나도 떨면서 달아날 줄 밖에 모르는 나라는 처음으로 이 나라를 점령하려고 생각하는 유럽열강의 야심에 희생될 것이 분명하다....라고 결론짓고 있다..
게랭은 비르지니호의 정탐을 통해 최종적으로 조선 정복에 드는 자원을 나름대로 밝히고 있고 나폴레옹 황제도 게랭의 보고서에 의존하여 실질적으로 조선 원정군을 편성하게 된다.
조선 정복에는 군사적인 정복이 포함되며, 여기에는 보병 6천명. 기병 300명 포병 1개중대면 충분하다....라고 결론내리고 잇다. 또한 첫 상륙지로 함경도 영흥이 거론되고 있고 영흥으로부터 해서 수도 서울까지는 1주일이면 충분하며 수도와 인접한 큰 강이 잇어.. 포함을 진주시킬수 있다는 이점도 기대한다...어쩌고저쩌고.. 하고 있으니.. 단지 6천정도의 병력으로도 조선 전역을 장악할 수 있다..라고 판단하는 유럽의 군사강국의 지휘관의 판단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당시의 조선의 상태라면 게랭의 말대로 단지 6천이 아니라 그 절반의 최신식군대라도 충분히 점령할수 있었을 수도 있다.
..어찌됐건.. 조선으로는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지만... 모든 준비를 마치고 출병일자만을 기다리고 있던... 프랑스의 조선 원정군은.. 1856년에 벌어진 애로우호사건으로 그 계획이 취소되고 말았다... 제2차 아편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프랑스는 영국과 함께 참전했고.. 이 중국전역이 프랑스의 조선 원정계획을 취소하게 만든 것이다....
이게 실현되었다면 이것보다 10년뒤에 있을 병인양요는 애초에 역사에 있지도 않았을듯.
왜? 이미 조선이 프랑스에 넘어갔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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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님 감사 ㅎ
심지어 베이징까지 털려주심 - dc App
엘랑은...글쎄
그렇게 쉽게 먹힐까 일단 쳐들어가더라도 청나라가 자기 나와바리인데 안냅둘걸
이미 1861년에 수도 베이징까지 털린 청나라가 뭘 하냐 베트남 쳐맞고 코친차이나 정복당하는것도 지켜만 봤는데 - dc App
엘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