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숭상하던 일본은 조선 포로를 돌려보냈다가 보답으로 대장경 인쇄본 2질을 받은걸 계기로 팔만대장경에 집착하게 되었음.
태조는 1395년 조선인 포로 570명이 돌아오자 답례로 인쇄본을 하사하고, 이때부터 일본은 포로 송환 때마다 대장경을 달라고 애걸함. 더 이상 불교를 숭상하지 않으므로 대장경을 인쇄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요구를 거절도 했지만 혹여 행패라도 부릴까, 인쇄본을 주고 안주기도 하면서 일본을 달램.
태종은 대장경판을 건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도 했다고 함. 1556년까지 50여차례 정도 인쇄본을 준비했으니 귀찮기도 했겠지.
일본은 희귀한 공물과 대장경판을 바꾸려고도 했음(조선왕조실톡에 나온 코끼리도 그 공물중 하나임).
세종 6에 대규모 사신단이 토산물을 바치며 대장경판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사신들이 갑자기 식사를 거부함. "빈손으로 귀국해서 처벌받느니 차라리 여기서 먹지 않고 죽을 수밖에 없다" 라는 이유였음. 이 위협에 세종은 더는 버티기 힘든 듯 "우리에게 무용지물이니 그냥 내어주자" 라고도 했지만 신하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대장경판을 건네주지 않았음.
대장경판을 아낄 물건이라는게 이유가 아니라 이번에 넘겨주면 나중에 다른 요구를 감당 할 수 없다는 이유.
류큐왕국은 해인사로 약탈을 보내기도 했고, 세종은 대장경판을 도성 근방으로 옮기려고 했지만 그 많은 판을 옮기기 힘들어 실행하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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념글에 일본 문화재 보니깐 생각났음. 라노벨 스캔본의 민족의 실로 엄청난 사랑임....
여담으로 그 때 줘버렸으면 일본에선 조선의 진상품이라고 하고, 한국에선 조선의 하사품이라고 하면서 싸웠을 듯
저거 존나 집착한걸로 나도 배우긴 함. 그래서 저거 함부로 안내주고 조금씩 달래는 용도로 던져주던데
대장경 적으려면 불교 테크 끝까지 뚫어야해서 그런건가
기술테크에 불교판 왕권신수설까지 뚫어야 하자넠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