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부터 이준, 이상설, 이위종
1907년 고종의 밀지를 받은 3인은 네덜란드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게된다.
3인방은 1905년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호소했지만, 결과는 알다시피 인터폰엔딩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후 이 삼인방의 행보를 알아보자.
1. 이준
이준은 머나먼 이역만리 타국에서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헤이그 인근 호텔에서 온몸에 종기가 올라 죽게된다.
배드엔딩 루트가 제대로 뜬것이다.
2. 이위종
이위종은 빡친 나머지 경술국치 이후 러시아로 귀화해 버린다.
러시아 사관학교에 입관하고 러시안 백마와 결혼하고 나름 해-피 엔딩으로 보이지만
1913년 러시아 동부전선에서 사망했다는 통지서만 남기고 그는 족적을 감추게 된다.
3. 이상설
이상설은 민족독립운동의 초석이 되었다.
사실상 독립운동의 시작은 없었다 할정도로 이분 없었으면 독립운동은 꿈도 못꿨을 정도로 많은걸 이루고 가게되는데
대충 그의 업적을 살펴보면
1906년, 북간도 용정에 서전서숙 학교 설립.
1907년,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 평화 회의에 고종의 밀명을 받고 파견됨.
1909년, 이승희 등과 북만주 밀산부에 독립 운동 기지인 한흥동 건설.
1910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3도의군 결성 참여, 성명회를 조직, 한일 합병 반대하는 독립 결의를 담은 '성명회 취지문'과 한민족의 독립 결의를 밝히는 '선언서' 발표.
1911년, 블라디보스토크에 한인 단체 권업회를 조직.
1914년, 이동휘 등과 함께 연해주 지역에서 대한 광복군 정부를 세우고 정통령 취임.
1915년, 상해에서 신한 혁명당 박은식 등 과 함께 설립
그가 내린 뿌리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하게 되었고 이후 1920년대 있었던 모든 독립운동의 그 근본 뿌리를 찾게되면 이분과 연결될 정도로
사실상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베스트 3위안에 들정도로 많은걸 하고 가시게 된다.
이제 우리는 저 3명의 특사들 처럼 한방향을 향해 나아가게 될것이다.
그게 어떤길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이준이 될지, 이위종이 될지, 이상설이 될지.. 패갤 역사의 판도의 한복판에 우리는 서있게 된것이다.
최근 연구 결과로는 이위종은 이후 러시아인으로서 1차대전 참가하고 볼셰비키 가입해서 러시아 혁명에서도 최전선에서 싸움
우린 이위종엔딩일듯
아시발 죽기싫다고 미친놈아 ㅋㅋㅋㅋ - Free Tibet 六四天安門事件 The Tiananmen Square protests of 1989
1913년 러시아 동부전선은 어디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