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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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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11월의 막바지가 되자, 동유럽의 구릉지대와 발트 순상지, 북서 우크라이나 등 모든 곳에서


독일 제국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군의 군기가 휘날렸다.


8월 29일 루블린, 9월 22일 바르샤바, 11월 11일 리가, 11월 27일 민스크.


러시아 제국 서부의 거점도시들은 하나 둘씩 고립된 채 무너져내렸고, 독일 제국의 제 1 작전선은 절반 넘게 달성될 수 있었다.


9월에 행해진 알렉산드로스 작전 초반부의 신속하고도 명료한 실행과 이어진 러시아 제국군 80여개 사단의 포위 및 전멸은,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에 존재하던 러시아 제국의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행정, 정치, 경제, 군사 등, 러시아 제국이 관리하던 모든 체계와 구조들은 완전 붕괴하였고


갈팡질팡하는 니콜라이 2세와 러시아 제국 조정은 우랄 산맥 동쪽으로의 파천과 피난 등을 논하면서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넘겨주기는 싫었기에 지리하고 소모적이게도, 겨울까지 버텨낼 방법만을 논의만을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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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토와 한파는 유럽의 황제(나폴레옹 보나파르트)도 넘지 못했던 장애물이다. 그런데 어찌 북독일의 야만인들이 뚫어내겠는가?


...(중략)...


그러므로 우리는 최후의 최후까지 방벽을 쌓아야만 한다. 강철로, 바위로, 흙으로,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병사들과 그 시체로."


-니콜라이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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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하는 농노들, 독일 제국에게 점령된 서부 벨라루스에서 (1914)


이러한 파국의 상황에서, 힘 있고 땅 많던 권세가들과 러시아 조정에서 파견된 지방 행정관들은


80만이 넘는 러시아 제국군이 죽고, 포로가 되고, 도망쳤다는 소식을 듣고 앞다투어 도망치기에 바빴다.


지배층의 도망과 함께 남겨진 러시아 서부 장원의 농민들은, 압제자의 도망에 기뻐하고 환호하면 환호했지,


황제와 조정을 위해 분투하겠다는 마음가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같은 제국의 무능, 군사적 실패, 행정의 마비는 민심 전반의 이반을 가져왔다.


농민들은 충성보다는 혁명을, 전투보다는 항복을 떠들어댔고 러시아 제국 서부에서는 점차적으로 징병에 반발하는 일이 잦아졌으며


심지어 몇 차례의 장교 살해사건과 농노들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귀족 살인, 군수품에 대한 사보타주가 일어나게 된다.


카이저는 이같은 상황을 시의적절하게 이용하기로 마음먹는다.


????민스크 칙령 내용을 국무회의에서 확정지은 후 참모들과 바람을 쐬는 카이저 빌헬름 2세 (1914)


1914년 11월 28일, 민스크가 점령된 이튿날, 독일 제 2제국 카이저와 제국 의회의 이름에 따라 포고된 '민스크 칙령'은


러시아 제국의 농민과 부녀자들을 수탈하거나, 겁탈하거나, 정당한 이유와 군사재판 없이 처형하는 것을 전적으로 금하고,


도리어 군수품의 일부를 굶주리는 자들에게 나누어주도록 하였으며,


피치 못하게 징발해야 할 때에는 전후 제국의 이름으로 환급받을 수 있도록 차용증을 지급하도록 명령했다.


그가 부르짖던 범게르만주의와는 다소 다른 방향의 정책이었지만,


카이저와 제국 대신들은 최종적인 레벤스라움의 외연을 러시아령 유럽까지 고려하고 있었기 때문에,


게르만 족의 이주가 있기 이전까지 동방의 안정화는 필수적인 작업이라는 것에 중론을 모았다.


그리고, 이같은 민심 정책은 효과적이었다. 불만에 가득찬 러시아의 농노들은 빌헬름 2세를 '해방자'로, '어버이'로 부르며 환영했다.


일부 지역에서의 징발로 인한 소규모 마찰을 제외하고는 독일 제국군이 진주하는 거의 모든 지역은 상당 수준으로 안정화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민심 정책이 가져온 가장 큰 이익은 뜻밖의 것이었다.




1914년 11월 중순, 파죽지세로 진격하던 독일 제 2제국 동부전선 중부 집단군 제 3군은 큰 난관에 봉착했다. 벨라루스 북동의 거대한 늪지대가 바로 그것이었다.


벨라루스 북동부로부터 러시아 평원으로 드넓게 펼쳐진 늪지는 병사들 뿐만 아니라 말과 마차, 차량들의 발목까지 붙잡았고, 후티어 장군은 고민에 빠졌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질척이며 길게 늘어선 늪지와 그 사이사이의 호수들은,


독일 제국군의 진격을 더디게 했고 이는 곧 상트페테르부르크로의 대우회가 지연된다는 뜻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코카서스 지대로부터 철로를 통해 급하게 수송된 러시아 제국 코카서스 방면군 30여개 사단이


벨로루시 방어선을 따라 긴급 배치되었다는 첩보 또한 제국 수뇌부로 날아들었다.


지평선으로 늘어선 동부의 습지와 추적추적 내리며 말, 사람 그리고 장비 모두를 지치게 하는 끝없는 비.


이 거대한 수렁은 자칫 잘못 진입했다간 차갑디 차가운 늪과 그 사이사이로 매복해있는 러시아 제국군에 의해 수많은 죽음을 불러올 것이 자명했고,


그렇다고 돌아서 우회하기엔 거리가 너무 멀 뿐더러 러시아 제국군의 재정비된 방어선에 가로막힐 것이 분명했다.


그런 딜레마 속에서, 후티어 장군은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그리고 그가 고민하는 동안 1주일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갔다.


????<동토> 게오르크 루만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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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만 뚫으면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로의 진격로는 완연하게 열린다.


그렇지만, 끝없이 펼쳐진 저 수렁을 통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현지인의 말을 들어보니, 원래대로라면 아무리 늦어도 10월 말엽부터는 비가 억세게 내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올해는, 러시아 놈들의 신이 도우시는 것인지 몰라도. 11월 말엽인 지금에서도 비가 추적이고 있다.


미친듯이 쏟아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굉장히 음산하게. 그리고 섬뜩하게. 저 거대한 동토를 며칠씩 감싸 안았다가 풀어지는 안개와 함께,


비는 약하지만 끊임없게도 추적이고 있다.


부하들에게는 총열을 잘 정비하고, 야포의 관리에 신경쓰고, 동상과 저체온증에 걸리지 않도록 염려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섬뜩한 것은,


저 거대한 동토의 늪지가 아니다.


을씨년스럽게 추적이는 비와 하늘을 온통 메운 검은 먹구름도 아니다.


그것은,


저 끝없는 수렁 속에서,


시체처럼 조용하게 진흙에 파묻힌 채 우리를 노려보고 있을 러시아 놈들이다."


-1914년, 오스카 폰 후티어 장군의 일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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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토노바의 징발 (1914)


이같은 지체의 돌파구는 생각치 못한 곳으로부터 나왔다. 후티어 장군이 결국 대대적인 우회를 결정하려는 그 날의 일이었다.


벨리키예루키 근교의 작은 농촌인 플라토노바에서 도망쳐온 러시아 농노들이 러시아 제국군이 이틀 뒤,


벨라루스 슾지의 호수 중 하나인 에제리 호 북부로 행군할 것이라는 사실을 밀고한 것이다.




그들이 도망쳐 온 이유는, 나흘 전 플라토노바에서의 대규모 징발 때문이었다.


끝없는 장마때문에 짚단과 곡식이 썩고 수확량도 온전치 못했던 가을이었음에도,


러시아 제국군은 벨라루스 슾지대에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행군하던 중 플라토노바에서 강제적인 징발을 자행한 것이다.


러시아 제국군은 마을의 모든 곡식과 가축을 제국 수호의 명분으로 징발해갔으며, 반항하는 이들 상당수를 즉결 처분하였다.


이에 분노한 마을의 장정 몇몇은 야밤을 틈타 아직 마을에 체류중이던 러시아 제국군 후발대의 병영에 난입했고


농기구로 몇몇 군인들을 죽이고 막사에 불을 지르는 등의 폭동을 일으켰다.


이는 곧바로 러시아 제국군의 대대적인 강습을 불렀고, 그들은 불타는 마을을 뒤로 한 채 정처없이 도망했다.


방황하던 그들은, 그들 중 누군가가 들었던 것을 믿고 농민들에게 관대하며 먹을 것까지 제공해준다는 독일 제국군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일정 수준으로 취조당하고 난 뒤 식사를 제공받았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뒤 이어진 심문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튀어나왔다.


????붉은색 : 러시아 제국군 행군로


러시아 제국군의 행선지. 그것은 제국 첩보부도 밝혀내지 못한 사실이었다.


러시아 제국 코카서스 방면군은 코카서스 지대에서 주둔하다가 중부로 이동해 온 부대였고, 따라서 제국 첩보망도 미약하였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새롭게 알아낸 정보는 3군 수뇌부에 충격을 가져다 주었고 후티어 장군과 간부들은 그들의 정보를 믿느냐 마느냐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그리고 지리한 논쟁의 결과는, 낮은 승부수더라도 도박을 걸어보자는 것이었다.


1914년 11월 24일 전군에 출진 명령을 내린 후티어 장군은,


오제로 오르도보 호와 에제리 호 사이의 삼림 지대에 20개 사단을 네 집단으로 분산하여 매복시켰다. 역으로 매복공세를 펼치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리고, 매복 후 20여시간이 지난 11월 27일 오전 11시경, 정찰대가 러시아 제국군 선두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렇게, 안개가 자욱하고 비가 내려, 해가 보이지 않았던 27일 정오 경.


러시아 제국군 우측에서 발포된 총성을 시작으로 독일 제국군 20개 사단과 러시아 제국군 16개 사단의 전투가 벌어진다.


시계 확보가 힘든 날씨에 삼림지대였기에 전투가 종료되는 데는 30시간이 넘게 걸렸고, 결국 28일의 오후가 되어서야 전투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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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붉은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가는 아름다운 광경 속에서,


한 병사가 소리를 질렀고, 다른 병사들도 뒤따라 소리를 질렀다.


메아리치는 함성과 카이저에 대한 연호 속에서, 나는 완전히 승리했음을 알게 되었다."


-1914년, 오스카 폰 후티어 장군의 일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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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의 결과로 러시아 제국 코카서스 방면군의 주력이었던 16개 사단이 궤멸되었다.


늪지였기에 독일 제국군이 진입하기 힘들다는 단점은, 도리어 러시아 제국군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하는 덫이 되었다.


이로써,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는 길목이 열리게 되었다. 주력군을 잃은 러시아 제국 코카서스 방면군은 지휘 체계가 붕괴된 채 방황하였다.


진격하는 독일 제국군을 향해 발악에 가까운 기습들을 감했했지만, 질과 양 모두에서의 열세를 물리치고 승리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가끔씩 울리는 총성을 제외하면, 너무나 조용하게도. 독일 제국군은 늪지를 건너 러시아의 심장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1914년 11월 동부전선 전황



부전선의 전황을 결정한 네 번의 전투는 그렇게 끝이 났다.


독일 제국군에게 남은 것은 겨울이 오기 전에, 최대한 빨리 러시아의 심장을 움켜쥐어 전쟁을 끝내는 것이었다.


러시아 제국의 주력군은 상당 부분 궤멸되었고, 이에 탄력을 받은 동부전선 남부의 전황도 일사천리로 풀려갔다.


11월 초반부터 시작된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우크라이나 방면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는 성황리에 끝났다.


러시아 제국 남부 방면군의 주력은 비록 오데사와 키예프 등 거점도시에 포위당한 채 항전을 거듭하였지만, 물자의 부족과 사기 저하로 고통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겨울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러시아 제국 전체에 퍼져있었다.


겨울만 닥치게 되면, 동토의 매서운 추위로 인해 독일 제국군의 공세가 무뎌질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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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온다.(Зима близко.Зима близко.)"


-1914년 11월 30일. 니콜라이 2세가 행한 호국 호소 연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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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저와 독일군 수뇌 역시도 겨울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다. 겨울이 온다면 진격이 더뎌질 것이고,


주력 도시 몇몇 곳을 포위하기는 했지만 그곳을 지키는 주력군이 건재한 이상 후방의 보급을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게다가 독일 제국군의 대전략은 속전속결이었기에, 제국 육군 역시 보급 역량을 고려한 장기전보다는 단기결전을 염두에 둔 기동전을 위시하였다.


또한 전쟁 초반 주요 철로들을 파괴하였고, 서부 러시아 지역의 러시아 제국군은 전통대로 대규모 청야전술을 강행하였다.


따라서 겨울이 오고 보급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면, 독일군 병력이 얼마나 많든 간에 전쟁은 힘들어진다.


다음해 봄까지 버티는 동안 수많은 동사자가 발생할 것이고, 러시아 제국은 재정비할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안 되었다.




따라서, 카이저와 제국 수뇌는 진작부터 이에 대한 비상 대책을 강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내린 결론은 현실적으로 수 달 내에 러시아 전체를 점령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들의 정신적인 측면을 건드려서 전쟁 지지와 사기를 붕괴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러시아 제국의 별을 떨어뜨리기로 결의한다.




작전명 '별의 몰락'. 또는 '유성 작전'



러시아 제국의 심장,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대한 제국 해병대의 대규모 상륙작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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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


6.28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암살

7.28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대 세르비아 선전포고, 독립보장국인 러시아 제국 참전

8.1 독일 제 2 제국 대 러시아 선전포고, 알렉산드로스 작전 개시

8.3 독일 제 2 제국 대 프랑스 선전포고, 룩셈부르크 전격 점령 작전 개시

8.4 삼국협상에 따라 대영제국 대 독일 선전포고, 이탈리아 왕국 중립 의사 표명

8.5 룩셈부르크 대공국 독일 제 2 제국에 무조건 항복

8.15 파나마 운하 완공

8.26 러시아 제국군, 탄넨베르크 철수

8.28 오렌지 공세

8.29 루블린 조우

8.31 위조그라드 전투, 비스와 강변 100일의 포위 시작

9.1 9월 공세

9.13 일본 대 독일 선전포고

9.22 바르샤바 함락

10.1 오스만 투르크 제국 대 협상국 선전포고

11.19 독일 제국 카미앵 전투 승리

11.21 가우자 전투

11.23 리가 방어전

11.27 민스크 함락

11.28 민스크 칙령, 독일 제국 에제리 호 전투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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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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