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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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은 거리낄 것도 없이 곧장 명의 수도로 들이닥쳐서 천명이 떠난지 오래되었음에도, 아직도 천자를 자칭하는 황제를 사로잡았다. 그렇게되면 명나라의 사기가 크게 꺽여야 할 테지만 명의 껍질을 쓰고 있을 뿐인 군벌집단들은 명의 황제가 사로잡히든 말든 항쟁을 계속할 것이라 천명했다.
그들의 시각에서 보면, 명의 황제를 사로잡든 말든, 돈에 눈 먼 동이 놈들이 요구 할 땅은 분명히 강남지방일 것이고, 그곳에 자리를 튼 군벌들이 요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즉, 그들의 몰락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대한은 항복을 거부하는 지방 군벌들을 토벌하기 위해 전쟁이 장기화 되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한명전쟁이 한참 토벌전으로 바뀌고 있을 때, 서쪽에서 이변이 있었다. 대리가 토번과 천명을 자칭하는 촉나라를 모두 꺽어버린 것이다.
명나라로부터 승리하여 정당한 천명을 가져온 촉나라는 앞으로 대한의 앞길을 막을 중원의 천자제국으로 성장할 것을 많은 이들이 우려하였으나, 이제 그 걱정은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되었다.
대리는 토번과 촉나라를 동시에 공격하여 승리하기는 하였으나, 그를 위해 많은 돈을 써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할 것이고, 전쟁에 패배할 토번과 촉나라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이번 전쟁의 패전으로 촉나라의 치세가 불안정해져서 촉나라 안에서 내분이 일어나 국가가 갈라지지는 않을 까. 그것만이 우려될 뿐이었다.
토번과 촉나라, 대리가 어떻게 되든 간에 그들은 대한의 정복전쟁에 감히 참견할 만한 크기가 되지 못했다.
그들이 그들의 국경 안에서 서로 투닥거리는 동안 대한은 명으로부터 해안가의 일부를 또다시 뜯어내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대한은 명을 내륙국가로 만들어 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향료제도로 향하는 항로의 안전을 장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전쟁은 돈이 많이 들고 군대에는 돈을 투자해 봤자 돈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때문에 본격적인 확장 성향을 드러낸 대한은 과거와는 달리 상인들에게 많은 호혜를 배풀었다. 그 이상으로 상인들에게 돈을 뜯어내야 지금의 확장을 유지할 수 있었으니까.
이에 상인들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국가에게 낸 세금을 돌려받고자 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항로의 안전 확보였다. 대한의 독점적 영향력 하에서 안전해진 서해. 그리고 그로 인해 더욱더 부유해진 대상인들. 그 모든 것을 보고 남만상인들이 무엇을 원하기 생각했을지 뻔했다. 그들은 향료제도가 대한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을 원했다.
한편 조정도 향료제도의 부가 있다면 더 부유하게 국가를 운영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남쪽으로 내려갈 명분을 찾고 있었고, 이렇게 둘의 욕망이 일치하면서 대한은 남하를 본격적으로 고려하기 시작했다.
한편 희망봉에서는 구라파의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고 있었다. 희망봉을 처음 찾아내고 이름을 붙였던 것은 포도아의 한 항해자였다고 한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구라파의 항해자들이 발길이 끊어진 틈을 타고 몰려든 대한의 개척자들이 희망봉에 마을을 세우고 목책을 세우는 바람에 구라파는 희망봉의 통제권을 빼앗기게 되었다.
특히 그 땅을 점거한 것이 이슬람과는 또 다른 무신론자라는 사실에 구라파의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고 전해졌다. 무신론자와 이슬람. 구라파에서는 그 두가지 선택지 중에서 무엇을 잡아야 할 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예수를 최후의 예언자이자 삼위일체의 화신이라는 것을 거부하는 이슬람인가, 아니면 예수와 주의 신성성과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무신론자인가.
결국 그들은 그 어떤 것도 아닌 제 삼의 길을 따르기로 했다. 이제 유럽에서 아메리카의 개척은 현실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촉나라는 대리와의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완전한 혼란기에 빠져들었다. 대한을 자칭하는 동이족과 부패한 명나라를 토벌하고 천명을 바로세우겠다며 들고 일어났지만, 북경 중경 남경중 하나도 따내지 못했고 남쪽의 소국 따위에 전쟁을 패하면서 지배층이 분열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촉나라 역시 과거의 국명을 빌려온 군벌 연합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의 자칭 황제가 수완이 뛰어나단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하지 못한 시점에서 전쟁에 패배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지 못했을 경우 이렇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촉나라는 완전히 분열되었으며, 사방에 흩어지는 부와 권력을 조금이라도 더 모은 군벌에 의해 빠르게 이합집산되었다. 촉나라는 황제의 직할령과 충의지사가 버티는 얼마 안되는 땅들만이 남았으며, 그 외의 땅들은 모두 군벌들이 들고 일어나 독립했다.
그러는 와중 또다시 북원이 명나라를 침공해 들어왔다. 북원이 이미 만리장성을 넘었고, 명나라가 죽은 사람을 꼭두각시 삼아 간신히 연명하는 상황에서 이 전쟁의 결과는 굳이 생각하려 하지 않아도 뻔했다.
저쪽에서 혼란스럽든 말든 대한은 국경지대의 소요사태를 제외하면 어떻게든 안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비록 점령한지 얼마 되지 않는 땅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지배자를 경계하는 분위기가 팽배하지만, 그들을 강제로 억압하려 하지 않고 세금만 잘 내면 자치를 용인해준다는 점에서 피를 보면서 들고 일어날 필요성은 크게 느끼지 못했다.
대한은 국가의 광대한 확장으로 인하여 국가의 행정력이 지방에 거의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했다. 이미 과거에 중원에 발을 디뎠으면서도 한반도에 발묶여 있을 때 사용하던 중앙집권적 행정체계를 강제하려 하다가 피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지방 자치를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이경형의 생각은 약간 달랐다.
그는 현재의 대한은 과거의 선례에 너무 겁 먹어서 투사 가능한 행정력 조차도 사용하는 것을 망설이는 것 처럼 보였고, 이대로 간다면 머지 않아서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 판단하였다. 때문에 그는 전 백성에 대한 인구조사를 실시하려고 하였다. 물론 제대로 끝날 것이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지방의 사람들에게 중앙이 행정력을 투사할 생각이 있다는 것 정도는 확실히 인식시킬 것이다.
만주에서 칸이 급사했다. 딱히 수상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니, 언제나 있는 질병에 의한 죽음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대한과 만주는 약간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칸이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은 지금 친인척들 가운데 왕의 자리에 오를 이를 찾아내야 했는데, 대한식 참근제도와 왕실결혼으로 인한 만주 황실의 종속화로 인해 가장 왕위에 가까운 것이 대한의 왕족이었던 것이 문제였다.
한 나라의 왕을 다른 나라의 왕족을 모셔와서 세울 수도 없었던 노릇이었던 만큼 만주와 대한의 지배층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져들었다. 대한의 대신들도 만주의 흡수는 그다지 달가워 하지 않았는데 땅이 넓어지고 유목민들이 대한에 직접적으로 종속되는 것은 나쁘지 않았으나, 그렇게 되면 북원과 직접적으로 국경을 접하게 된다.
때문에 이 문제는 생산적인 논의를 낳지 못하고 끊임없이 수렁에 빠져들면서 도대체 이런 방식으로 유목민에게 목줄을 씌우자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한 사람이 누군지에 대해 따지는 지경으로 상황이 악화되었다.
결국 이경형은 더 이상 상황이 악화 되었다가는 정말로 기능부진 상황에 빠질 것이라 판단해 뒤에 있을 여러 재앙들을 감수하고 만주의 왕관을 대한이 계승할 것을 선언했다.
이 것은 이후에 있을 비슷한 사례에 대해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다.
비록 실질적으로 통제력이 미치는 지역은 그리 넓다고 할 수 없으나, 대한은 역사상 그 어떤 국가보다도 넓은 강역을 확보하였다.
행정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곳에서 비효율적으로 조세가 걷힌다고 해도 점유하고 있는 강역자체가 매우 넓다 보니 쓰는 비용이 많아졌어도 어떻게든 국고의 흑자와 적자의 균형을 맞춰가며 국가를 운영할 수 있었다.
국가와 국가를 넘나들며, 저 먼 사막과 사막 너머에서 찾아온 상인들은 대한의 부유함에 감탄했다. 어떤 이들은 대한의 강대함을 오스만조 돌궐과 비등하다고 까지 말하였다. 그 말을 들은 일부 사람들은 역사속 돌궐을 잠깐 떠올렸으나, 시기도 너무 오래되었고, 땅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오스만 투르크를 돌궐족의 친척의 친척의 친척의 친척쯤으로 생각하며 뜻을 두지 않았다.
무리한 통합을 한 이상 불만이 생기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를 어떻게든 무마하려고 세금을 낮추려고 한들 이미 대한은 적자와 흑자의 틈에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참이었으니 여기서 감세는 다른 지역에서의 불만을 야기할 수 있었다.
때문에 그들이 선택한 것은 위신을 높여 민초 하나하나가 국가의 이름 아래 뭉쳐서 얌전히 있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때문에 대한은 과거 발해의 영역을 되찾았으며 이는 한과 만주 유목민들의 동시 승리하는 되도 않는 말을 적절히 꾸며서 선전하기 시작했다.
남쪽에서 맘루크가 명나라의 군벌로부터 중원의 땅을 하나 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비록 항구와 항구 인근 마을에 대한 통제권 정도만을 의미했지만,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너무 컸다.
물론 대한에게는 아직은 조차지가 크지도 않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사실상 군벌의 자비 아래 맘루크가 지배하는 마을의 형식을 띄고 있었으므로 군벌들이 땅을 외세에 팔아치웠다는 정도의 인식만이 있을 뿐 그렇게 크게 반응할 것까지는 아니었다.
이 때문에 중원이 크게 흔들려 군벌 세력이 약해지면 약해지는대로 대한이 확장할 기회였으니까.
1553년 결국 유학자들이 히로시마에 거대한 유교 서원을 짓는 것으로 종교적 논쟁을 종결시키는데 성공했다.
물론 종교적 색체가 입혀진 유교 이단을 끝장내는데에는 실패했고, 지금도 일본땅 어디선가 유교 이단들이 우후죽순 솟아나고는 있으나 일단 대한령 일본의 백성들에게 정통 유교를 배우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도는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를 위해서 유학자들은 머리가 빠질 정도로 열을 올리며 달려들어야 했으며, 이 이상 나아가자니 과거의 일들이 떠올라 멈칫 거리며 더 이상 확장하기를 꺼렸고, 어색한 평화상태가 정착되어 결국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으로 협의하고 각자의 자리를 잡았다.
1554년 조정은 교토를 확보하고 천황을 손에 넣기 위한 전쟁을 시작했다.
천황은 교토 어딘가에서 인간 옥새로서 막부의 통제를 원활하기 위한 장식품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만약 이 천황을 확보하는데 성공한다면 정통 막부와 막부의 자리를 탐하는 대한의 구도를 완전히 역전시킬 수 있게 된다.
일본에는 이기면 관군 지면 역적이라는 말이 있다고 하니, 대한으로서는 이를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물론 아시카가 막부도 대한의 이러한 속셈을 눈치채고 재빨리 동쪽에서 병사들을 모아 미노를 점령하고 남쪽의 오와리를 점령하여 빠르게 가장 먼저 막부를 배신한 오다가를 토벌하려고 했으나, 대한의 빠른 증원으로 아쓰타 신궁 근처에서 강을 사이에 두고 양군이 마주쳤다.
막부군은 대한군이 따라붙기 전에 진격하려고 했지만, 한국군이 생각보다 빠르게 도하를 결심하는 바람에 격돌이 일어났고 몇 차례의 전투 끝에 오케하자마에서 막부군이 큰 피해를 입고 동쪽으로 퇴각하였다.
막부군이 동쪽으로 퇴각한 지금 한국군이 교토를 점령하는 것을 막는 세력은 하나도 없게 되었고, 한국군은 교토를 빠르게 점령하고 개선하여 황궁을 확보하였다.
한번의 패배로 막부군은 포기하지 않고 다이묘들의 군세를 다시 끌어모아 교토와 오와리를 동시에 공성하고 있었다.
이 당시 한국군은 미노를 탈환하고 있었고, 양 측의 군세가 우연히 한국군의 진로에 겹쳐 있었기에 함부로 움직였다간 세개의 면에서 공격받아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 때문에 미노를 먼저 확보한 다음 오와리로 내려가든 아니면 교토로 서진하든 하려고 했는데 대한에게 나쁜 소식이 연이어 들려왔다.
하나는 중원의 군벌들이 대한을 적대하기 위한 동맹을 창설했다는 것이다. 아직은 그 크기가 작으나 대한의 확장세를 경계하는 각 국가들이 이 동맹에 흥미를 보이면서 예조에서는 이 동맹에 가입할 가능성이 높은 국가들을 가려내고 아직 이 동맹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 국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비상 근무에 돌입했다.
또 하나는 대한이 미노를 탈환할 무렵 막부군이 교토를 빼앗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 길로 오와리를 통해 동쪽으로 빠져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거의 분명하게 그들은 천황을 데리고 있을 것이다.
이에 한국군은 곧장 오와리로 남하하여 막부군과 합류하려는 다이묘군과 동시에 싸우는 것을 선택하였다.
이번 싸움은 무리하게 전투를 시작한 한국군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었으나, 대한의 뒤쪽에서 세부의 군대가 지원해 와서 대한의 무너진 전열을 채우기 시작하니 한국의 지원이 도착했다고 여긴 막부군이 오히려 패퇴하였다.
이 전투는 매우 천운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 어쨌든 한국군은 막부군이 퇴각하면서 낙오된 천황을 다시 회수할 수 있었고, 그 길로 교토를 다시 되찾으로 서진하였다.
그 무렵 예조에서는 비상근무를 한 성과를 꺼내왔으니 이 자료를 토대로 침착하게 대처하면 반국가 동맹이라는 것을 맺은 국가들이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제어할 수 있을 것이었다.
교토와 천황. 이 두가지를 모두 손에 넣은 이상 대한은 이제 슬슬 전쟁을 끝내려고 하였다. 이제 교토와 그 인근의 땅들을 점령한다면 더이상 다이묘들도 막부의 정통성을 따르지 않을테고, 그렇게 되면 조각조각난 일본을 대한의 입맛대로 잡아먹을 수 있게 될 테니까.
아시카가의 쇼군은 이러한 내용이 적힌 천황의 칙령을 거부하며 한국군에게 최후의 회전을 강행하였으나, 그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아시카가 막부는 사실상 끝을 고하고 있었다. 이제 막부와 지방 다이묘의 관계는 뒤집혔으며, 쿄토를 기준으로 동쪽의 다이묘들은 새로운 막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물론 대한의 뜻에 따라 교토에 도착한 쇼군 역시 아시카가였으나, 그자가 대한의 꼭두각시임을 모르는 다이묘는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얼마 전 있었던 만주 왕실의 흡수 통합 사례 때문에 다이묘들은 그런 식으로 일본을 흡수할 생각이라고 여겼으나, 이는 사실과 달랐다.
만주의 흡수 통합은 당시 대한으로서도 재앙이었고 아직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대한으로서는 일개 섭정인 정이대장군의 혈통을 노릴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이제 대한은 일본의 관군이 되었고, 그들이 관군이 된 이상 일본의 민초들은 일련의 사회 변화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보통은 이 충격으로 인해 많은 피해가 발생했겠으나 관서의 조화된 일본 신토교도들, 일본 불교도들, 그리고 유교 이단의 활약으로 인해 이 충격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었다.
이제 슬슬 모든 것이 끝나가고 있을 때, 오다가에서 이변이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라는 자가 하극상의 연쇄로 대한이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던 오와리-오다를 하나로 합쳤다는 것이다. 사실 오와리를 받아들일때, 오와리가 3등분 나 있었다는 것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대한이었으니 예조에서 이 소식을 듣고 잠깐 뇌정지가 온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원래라면 이 역도를 토벌해야 하나 아직 오다가는 관동에서 해야 할 일이 있고, 대한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일본에서 누구보다 먼저 대한에 자발적으로 투항한 영주였고, 그것은 가볍지 않았다.
대한으로 부터 존재를 인정받는 오다의 오다 노부나가는 전쟁 초기 대한군-오다 연합군과 막부의 회전에서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평민을 중하게 등용하였다고 하여 주변의 비웃음을 샀지만, 대한의 여황은 그것을 보고 천민을 등용하여 중히 쓰면 어떨까 하는 발상을 떠올렸고, 대신들은 이 황제의 폭주를 또 어떻게 무마시켜야 하는가로 머리가 아파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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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거 르권이 내년 쯤에 나올줄 알고 이거 연재 끝나면 르권 나와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건데, 르권이 생각보다 빨리 나와버림.
shu=촉(蜀)
손에 안 익어서 또 틀렸네. 수정함
열강초즌 ㄷㄷ
권?
오조지추
빛 조 선
연재추
근 성 추
그 어떤 국가 >그 어떤 한반도계 국가 - dc App
궁금한 게 있는데 지금 윾4 한패 넣고 실행할라 하믄 플러그인 오류로 튕기는데 지금 어케 연재하는거임? - dc App
이거 미리 녹화해둔 분량 사용 중임 - dc App
여황이 아니라 여제 아녀?
초선 원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