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ry Grigsby 동부전선 1 (1941/6) 바르바롯사 - 독일군 편제


Gary Grigsby 동부전선 2 (1941/6) 무너지는 소련군


Gary Grigsby 동부전선 3 (1941/6) 소련군 방어계획


Gary Grigsby 동부전선 4 (1941/6) 보급과 지연전


Gary Grigsby 동부전선 5 (1941/7) 독일의 동맹들


Gary Grigsby 동부전선 SS 1


Gary Grigsby 동부전선 6 (1941/8) 폴로츠크, 키예프 공방전


Gary Grigsby 동부전선 7 (1941/9) 핀스크 포위전


Gary Grigsby 동부전선 8 (1941/10) 스몰렌스크 공방전


Gary Grigsby 동부전선 9 (1941/10) 프스코프 전투


Gary Grigsby 동부전선 SS 2





1941년 6월 22일 바르바롯사 작전으로 시작된 독소전 하계전투는, 라스푸티차와 함께 막을 내렸다.


앞으로의 계획을 수립하기에 앞서, 그동안의 투쟁이 가져온 결과를 둘러보아야 한다.


6/22 ~ 10/23 . 4달동안의 일을 살펴보자.




우선, 개전 당시 양 국가의 병력 상황이다.






다음은 작전 기간동안의 육군 손실이다.


독일군 : 인명 48만, 화포 5800문, 전차 2200대.


소련군 : 인명 263만, 화포 31000문, 전차 12800대.




개전 초 궤멸적인 교환비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처참한 수준이다.


더우기 독일군은 손실 인원의 대부분이 부상병이기에, 언젠가 전선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공군 손실보고서이다.


독일군은 1160기의 기체를 손실하였고,


소련은 10200기를 손실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개전시와 현재의 양 군의 수치 비교이다.


독일군의 전력에 큰 변화는 없다. 손실된 만큼 새로이 보충되었기 때문.




소련의 경우 군인 숫자는 늘었지만, 그저 예비군이었던 사람들이 동원되었을 뿐이다.


2만여대 가까이 있던 탱크는 1만여대밖에 남지 않았고, 비행기 숫자도 어느정도 줄었다.


생산량이 손실치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화포 숫자가 5만문 > 7만문으로 늘어난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다음으로 지도를 살펴보자.


일단 위 지도는, 실제 역사에서의 독일군 진격도이다.



저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분홍색으로 표시된 9/1~9/9 점령지이다.


독일군의 쾌속진격은 눈이 부실 정도였지만, 저 분홍색 지역만은 돌파하지 못하여 중부-남부 집단군의 간극으로 남았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알아챘겠지만, 내 플레이에서도 뜨거운 감자로 남았던 핀스크 습지대 - 키예프 지역이다.


현실 역사에서도 저 습지대를 뒷배로 한 소련의 방어로, 키예프를 사수하고 있던 것이다.





현실에서 독일이 내놓은 해답은, 내 플레이에서 독일 AI가 내놓은 그것과 무서울 정도로 흡사했다.


이른바 "총통의 결단"으로, 역사가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논쟁거리로 남는, 구데리안 제 2 기갑군의 남하작전이다.







남하한 구데리안의 2기갑군과 남부집단군은, 2주동안 키예프에 대규모의 포위망을 형성하여 소련군 70만을 일소하였다.


키예프 포위 이후 구데리안 기갑군은 중부로 복귀하였으나, 그동안 중부집단군의 진격은 멈춰있었다.


이 시간적 공백으로 인해 독일군은 겨울 전에 모스크바를 점령하지 못했다.


2500km를 진격한 독일군이 모스크바 30km 앞에서 한파로 물러난 것을 생각했을 때, 이 "총통의 결단" 은 독소전 향방의 분기점이었지 않을까.


지도에서의 하늘색 화살표가 구데리안 기갑군의 이동 경로이다.




자, 이제 내 플레이를 살펴보자.


남부 독일군은 현실에서보다 더딘 진격을 했고,


구데리안 기갑군이 내려와 큰 타격을 주었지만, 현실처럼 키예프 방어군을 일소하지는 못했다.



구데리안 남하로 인한 중부의 공백은 실제 역사보다도 치명적이었다.


전력의 공백과 더불어 드네프르강 도하까지 포기한 독일군에게 전과확대는 과한 욕심이다.





이제 실제 역사와 플레이를 겹쳐서 살펴보자.


저 지도의 붉은 선이 10/22 전선이다.


저 지도의 초록색 영역은 12/5이라 날짜의 차이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정복지의 크기 차이는 심하다.


무엇보다 현실에서 독일은 레닌그라드-모스크바-키예프라는 세 목표중에서


모스크바에서는 좌절했지만 키예프는 점령하고, 레닌그라드는 포위하는데까지 성공했다.


연재에서 세 도시는 멀쩡했다.





AI가 아주 못한 부분도, 소련이 아주 잘한 부분도 크게 없었다.


나는 이 결과 차이가 드네프르강에서 나왔다 생각한다.


연재에서 독일은 손실을 피하기 위해 드네프르강 도하를 시도하지 않았고,


스몰렌스크지역의 철도를 사용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중부의 전략적 선택지가 거의 없어졌었다.



드네프르강 도하를 피해서 한 선택이 방어가 약한 습지로의 진격이었으니 말이다.


습지 진격은 속도가 느릴수밖에 없었고, 러시아의 날씨가 그것을 기다려주지 않았을 뿐이다.






위 표가 이 게임의 날씨를 결정해주는 수치이다.


주사위 운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10월 중순쯤 라스푸티차가 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화 : 라스푸티차 소강기. 독일과 소련의 동상이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