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ry Grigsby 동부전선 1 (1941/6) 바르바롯사 - 독일군 편제


Gary Grigsby 동부전선 2 (1941/6) 무너지는 소련군


Gary Grigsby 동부전선 3 (1941/6) 소련군 방어계획


Gary Grigsby 동부전선 4 (1941/6) 보급과 지연전


Gary Grigsby 동부전선 5 (1941/7) 독일의 동맹들


Gary Grigsby 동부전선 SS 1


Gary Grigsby 동부전선 6 (1941/8) 폴로츠크, 키예프 공방전


Gary Grigsby 동부전선 7 (1941/9) 핀스크 포위전


Gary Grigsby 동부전선 8 (1941/10) 스몰렌스크 공방전


Gary Grigsby 동부전선 9 (1941/10) 프스코프 전투


Gary Grigsby 동부전선 SS 2


Gary Grigsby 동부전선 10 (1941/10) 41년도 하계전투 총평.


Gary Grigsby 동부전선 11 (1941/11) 라스푸티차 소강기


Gary Grigsby 동부전선 SS 3




연재를 하면서, 독소전 과정에서 히틀러의 역할이나


그의 전략적 안목 등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이 질문에 대해 올바른 대답을 내려면, 매우 다양한 시각에서의 고찰이 이루어져야 한다.


공산권 붕괴 이전 서양 전사학계에서는 독일 장성 출신들의 회고록에 의거한 고찰이 많았다.


많은 독일 장성들이 "독일군은 강했고 우린 잘했지만, 히틀러가 머저리라 전부 말아먹었다" 라며 증언했다.











그리고, 이런 독일군에게 털린 전적이 있는 서양학계에서는 그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편이었다.


폴란드는 4주, 프랑스는 6주만에 털리고, 미국도 마켓-가든에서 털렸는데 "독일 참모진 사실 별거 아니었음" 해봤자 누워서 침뱉기이기 때문이다.


"독일군은 엄청 강했고 독일 참모진은 일류였으나, 연합군은 영웅적인 활약으로 세계를 지켜냈다." 라는 설명이 훨씬 매력적이었다.


악의 축 히틀러를 까내리는 내용도 입맛에 들어맞는것이었다.



이렇게 독일 장성들의 실책은 일부분 히틀러에게 책임전가되었고, 서방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실제로, 공산권이 무너지고 소련의 기밀문서들이 해제되면서 이러한 평가는 상당부분 수정되고있다.


특히 교차검증에 의한 전후 독일 장성들 증언들에 의혹이 제기되었고, 이 과정은 아직 진행중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전략가로서의 히틀러에게 어떠한 평가를 내려야 하는 것일까.


물론 대답은 여전히 어렵다. 소련측 문서가 모두 기밀해제가 된 것도 아니고, 영미학자들의 열람이 상당수 거부되고 있는 실정.



거기다 히틀러라는 인물을 평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히틀러 주위에 대한 자료가 없다.


히틀러나 그 측근들 시각에서의 고찰이 필요한데, 이게 불가능하다.


대부분 자살하거나 사형당하거나 도망갔으니까.....






워낙에 논문급 소재이고, 공대 출신인 나보다 훨씬 많이 아는 사람들도 득실거린다.


그러니 여기서는 그의 전략가적인 면모의 총평보다, 새로운 시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봐야 한다는 점을 제시하고 싶다.


바로 "정치가 히틀러" 로부터의 접근이다.





전략적 면모에 대한 평가를 하기 위해서 우선 히틀러의 위치부터 확인해야만 한다.


2차대전을 흔히 히틀러VS스탈린으로 표현하는데, 둘의 입장이 살짝 다르다.


스탈린은 공산당 내부에서 인사조정을 하는 직위를 가졌고, 이를 이용해 철권통치체제를 구축해내었다.


히틀러는 선거에 의해 민주적으로 그 정치기반을 얻었다. (히틀러가 정당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의 권력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물론 선동과 모략이 난무했고, 비합법적인 부분도 많았기는 하다.






뮌헨 폭동을 실패하고 깜빵에 간 히틀러는 깨달았다. 집권은 폭동이 아니라 선거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경제공황이 터지고,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치뤄진 선거로 나치가 집권당이 되었고,


이어지는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을 이용하여 반대세력을 숙청하며 절대권력을 쥐게 된다.




여하간 히틀러의 권력기반의 근원은 국민의 지지에서 나왔기에,


선전을 위해서라도 동부전선에서 후퇴나 패배를 용납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더 주요한 문제는 히틀러가 쥔 권력의 종류였다.


히틀러가 독재적 권력을 가진 것은 어디까지나 행정-입법-사법 부분에서만이었다.


2차대전기 독일은 물론, 바이마르공화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Wehrmacht(독일 군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1차대전에서 패배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힘은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세력은 무려 호엔촐레른 왕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프로이센 융커 귀족을 기반으로 했다.


(영문 위키 융커 참조.) > 링크에서 명단을 보면, 우리가 아는 독일 위인 상당수가 융커출신이다.



아무리 정부 내에서 히틀러가 독보적인 힘을 쥐었다고는 하나, 보헤미아 상병 따위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독일 군부는 히틀러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게중에는 히틀러의 사상에 열광하여 열성적인 나치 지지자가 된 사람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군부 전체의 입장은


"또라이같은 녀석이 정권을 잡긴 했는데, 공산당이나 사민주의자보다는 낫겠지."

"군수산업도 팍팍 키워주고 군대 늘려주는데 어디까지 하나 지켜보자"


하는 방관적인 입장이었다.


나치당이 블롬베르크그 스캔들을 이용해 국방장관을 해임함으로써, 국방군 책임자를 온건한 인물로 갈아치운 정도가 고작이었다.


블롬베르크-프리취 스캔들 사건 참조. (영문 위키피디아) (나무위키)




이러던 것이 히틀러의 도박적인 전략들이 먹혀들어가며 상황이 바뀌었다.


라인란트 재무장시 전 독일인이 Mein Fuhrer 를 연호했으며,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병합했을때조차 연합국의 제재는 없었다.




본격적으로 단치히를 침공하자, 국방군에서는 쿠데타마저 계획할 정도였다.


"폴란드 치면 육군 최강대국인 프랑스가 서쪽에서 쳐들어오고 나라 망할텐데, 그전에 저 미친놈을 멈춰야 하지 않을까"


"프랑스 개입하면 항복하고, 알아서 정권에서 내려오겠지"





그러나 폴란드는 물론, 이듬해에는 프랑스까지 6주만에 항복시키며 히틀러의 "도박적인 전략" 은, 총통의 "천재적인 전략적 안목" 으로 비춰지기 시작했다.






히틀러의 위상이나 인식이 변하기는 했어도, 독일 국방부가 막강했고 히틀러가 그것을 완벽히 통제하지는 못했다.


이는 독소전 내내 지속되었고, 히틀러와 군부의 알력다툼은 계속되었다.






스탈린이 일선에서 물러나 지휘권을 참모진한테 전부 맡기더라도, 정치장교나 이미 숙청을 통해 완벽히 통제되었던 소련군과는 달리


독일 국방군은 히틀러의 장기말이 아닌, 난폭한 야생마였던 것이다.


히틀러는 국방군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통제하기 위해 독일군의 모든 작전에 개입을 시도하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고만 했다.







전쟁에서 히틀러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이런 정치적인 요소가 고려되어야 한다.


"전략가 히틀러" 부분이 "정치가 히틀러"적인 요소로 인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히틀러의 전략적인 면모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다른 시점에서도 바라보아야 한다는 "관점"만 제시하고


그의 전략 그 자체에 대한 평가는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면 논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