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ry Grigsby 동부전선 1 (1941/6) 바르바롯사 - 독일군 편제


Gary Grigsby 동부전선 2 (1941/6) 무너지는 소련군


Gary Grigsby 동부전선 3 (1941/6) 소련군 방어계획


Gary Grigsby 동부전선 4 (1941/6) 보급과 지연전


Gary Grigsby 동부전선 5 (1941/7) 독일의 동맹들


Gary Grigsby 동부전선 SS 1


Gary Grigsby 동부전선 6 (1941/8) 폴로츠크, 키예프 공방전


Gary Grigsby 동부전선 7 (1941/9) 핀스크 포위전


Gary Grigsby 동부전선 8 (1941/10) 스몰렌스크 공방전


Gary Grigsby 동부전선 9 (1941/10) 프스코프 전투


Gary Grigsby 동부전선 SS 2


Gary Grigsby 동부전선 10 (1941/10) 41년도 하계전투 총평.


Gary Grigsby 동부전선 11 (1941/11) 라스푸티차 소강기


Gary Grigsby 동부전선 SS 3


Gary Grigsby 동부전선 SS 4


Gary Grigsby 동부전선 12 (2부 시작) (1941/11) 소련의 동계 작전계획






11월 마지막주, 소련 지휘관은 프스코프 전선을 확인하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대치하고 있던 독일군이 단시간에 사라진 것이다.


독일군은 프스코프 돌출부를 깔끔하게 포기하며 전선 축소를 시도했다.





소련도 독일이 대응하리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상대 군의 움직임에 반응 안할 군대나 지휘관이 있을 리 없기에.




그러나 독일군의 움직임은 예측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여름 막바지 공세로 점령한 지역을 쉽게 포기할거라는 예상안은 없었다.




전선에서 적의 돌출부는 대부분, 나의 돌출부를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전역을 살펴보면 소련의 노보르제프 돌출부가 더 위태로워보인다.


서로가 서로의 돌출부 포위를 시도하며, 그런 소모전이 되리라 예상했었다.







(한글자료 출처)



이는 실제 역사에서의 독소전에서도 벌어졌던 일이다.


르제프-데미얀스크 돌출부에서는 엄청난 소련병사들이 갈려나갔고,


쿠르스크 돌출부에서는 독일 기갑군이 갈려나갔다.









소련 지휘관은 역사와 마찬가지로 서로가 서로의 목을 죄는 소모전을 내심 기대하고있었다.


독일의 프스코프 돌출부는 평야지대이지만, 소련의 노보르제프 돌출부는 습지대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소모전을 벌인다면 필연적으로 소련이 유리했다.



계획은 그럴싸했다. 독일군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을 뿐.



프스코프 돌출부에서 전선을 정리한 독일군은, 이 부대를 전략적으로 배치했다.

중부의 폴로츠크-스몰렌스크지역에 엄청난 규모의 부대가 집결되었다.



독일군은 프스코프 돌출부보다, 이 중부지역이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판단한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 독일은 이곳을 택했을까.




더 멀리서 전장을 바라보니 해답이 나오는 듯 했다.


프스코프라는 돌출부를 포기하는 대신, 모스크바로 직접 진격할 수 있는 스몰렌스크지역을 택한 것이다.




겨울에 이 지역 소련군이 지지부진하면, 곧바로 진격을 시도할 것이며

동장군을 등에 업은 소련군이 이 지역으로 몰려오더라도, 최대한의 방어가 가능할 것이다.





이 지역만 장악하고 있으면 언제든지 모스크바를 넘볼 수 있다.


소련군이 프스코프라는 작은 지도를 보는 동안, 독일군은 중부지역 전체를 바라보는 듯 했다.











11월 상황.


12월 상황


그리고 12월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한파가 시작되었다.


월동준비의 유무 차이가, 독소 양국의 전력 차를 크게 메꾸어버렸다.







동장군을 등에 업은 소련의 공세와, 전략적 재배치로 이를 대비하는 독일군.


바야흐로 짧았던 가을장마는 끝나고, 동부전선에는 다시 한번 피바람이 몰아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