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당군 20,000명+말갈병
-670년 3월 오골성 전투: 신라와과 고구려 부흥군에게 말갈군이 패배함.
이때 신라군과 고구려부흥군 각기 1만, 합해서 2만 명이 전투에 승리했지만, 지속되는 당군의 지원군에 후퇴하여 수비 태세를 갖춘 것을 보자면 연합군 2만을 상회하는 지원이 온 것으로 보임.
-671년 1월 설구성 전투: 웅진도독부를 구원하려는 시도였으나 신라군에 패배함.
전력: 당군과 백제 유민 포함 20,000명 내외
-670년 7월 신라의 공세: 기록에 확인된 사망자만 9,000에 달해 전력에 전투로 발생했을 부상자를 포함해도 병력이 반타작남.
-671년까지 신라에 의해 82개의 성이 함락됨. 이 대공세로 웅진도독부는 적극적인 군사활동을 수행할 능력을 상실했고, 신라는 이중전선이라는 위기를 초기에 제거하는데 성공함.
행군 총관: 설인귀
전력: 설인귀서와 답설인귀서를 볼 때 수만 규모. 표준 행군이라고 가정시 20,000명.
-671년: 설인귀, 계림도 행군총관으로 임명됨.
-671년 6월 석성 전투: 옹포의 신라 수군 격퇴 후 기벌포를 통과하여 웅진 도독부 구원 시도하나 신라군에게 패배.
이후 안 싸우고 설인귀서로 아가리만 터는 것을 보건데 석성 전투의 패배로 무력화나 작전지속능력을 상실한 듯.
-675년 11월 기벌포 전투: 초반에 신라 수군을 격퇴했지만 이후 신라군에게 패배. 단순한 해전이 아닌 수륙 양면에서 싸운 것으로 보임.
행군 총관: 고간(동주도), 이근행(연산도)
전력: 10,000명(동주도), 30,000명(연산도)+오와 초 지방의 수군 추가 병력+유주와 병주의 추가 병력+673년부터 말갈과 거란의 추가 병력+672년에 투입하려던 산둥 집결 병력을 673년에 투입
-671년 4월: 고구려 부흥군 진압을 위해 편성. 이때 당은 '동시에' 토번에 대한 병력도 편성하여 토번과 한반도 문제를 동시에 상대하여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임.
-671년 7월: 안시성의 고구려 부흥 세력 진압.
-671년 9월: 고간의 선발대, 평양 도착.
-672년 7월: 전원 평양성에 도착, 주둔. 선발대와의 간격에 대해 보급 or 재정비 or 고구려 부흥군과 신라군의 저항 등 여러 의견이 있는 걸로 알음.
-672년 8월: 한시성, 마읍성 전투: 한시성, 마읍성 함락.
-672년 8월 백수성 전투: 신라군에게 패배.
-672년 8월 석문 전투: 초기에 신라의 장창당에 포로 수천이 잡히는 등 고전하는 듯하나, 공명심에 의해 병력이 분산된 신라군을 격파하며 대승.
-672년 12월 백수산 전투: 고구려 부흥군과 신라 지원군에게 승리. 이때 잡힌 포로만 수 천인 신라군의 규모를 볼 때 고구려 고지에 상당수의 신라군이 활동한 것으로 보임.
-672년 겨울 횡수 전투: 고간이 신라군에게 패배.
-673년 9월 호로하 전투: 이근행이 고구려 부흥군 격파. 고구려 부흥군 소멸.
-673년 9월 왕봉하 전투: 신라군에게 패배.
-673년 겨울: 우잠성을 항복시키고 대양성과 동자성을 함락. 그러나 이후 추가적인 남하를 하지 못하고 전선이 교착 상태로 지속됨. 석문 전투 이후의 공방전으로 남하할 여력이 사라진 것으로 보임.
보통 석문이 당군에 비해 전투력 딸리는 신라군의 대패 이후 사죄사 파견하며 당분간 짜진 걸로 아는데, 석문에선 오히려 장창당 단독으로 활약했고 패배 이유도 공명심 문제였지 전투력 문제가 아니었고, 또 당이 사죄사가 파견되는 와중에도 격렬한 공방전이 벌어졌었음.
행군 대총관: 유인궤(당 군부의 실세)
전력: 휘하에 설인귀, 고간, 이근행 등 위의 모든 행군 총관 총괄+행군 대총관인 유인궤 직속 병력 수만하여 약 10만 추정.
-674년 1월: 유인궤, 계림도 행군 대총관에 임명됨. 목표는 정벌, 즉 신라 본토 공격. 당시 군부의 실세인 유인궤가 나서는 등 당의 고착화된 전선을 돌파하려는 의지가 보임.
-675년 매소성 전역:
2월, 칠중성 전투, 유인궤가 신라군에게 승리.
9월 천성 전투, 설인귀가 신라군에게 패배.
9월 매소성 전투, 이근행이 신라군에게 패배.
당군과 거란과 말갈군이 아달성, 칠중성, 적목성, 석현성 전투에 승리. 앞서 함락한 칠중성을 다시 함락한 것을 보건데 이전에 신라가 다시 장악한 것으로 보임.
-676년 7월: 도림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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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만 봐도 여요전쟁에 밀리지 않음
이시대 영화화하면 개쩔거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