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의 향신료 무역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 중 하나가
베네치아에서 향신료 가격을 매우 비싸게 받아서 폭리를 취하면서
그 이유로 향신료에 대한 열망이 대항해시대를 이끌었다는 거임.
과연 정말 베네치아는 향신료를 폭리를 취해서 팔아먹었을까?
향신료의 대표적인 품목인 후추의 400 lbs의 1382년부터 1497년까지의 가격 변함임.
(lbs가 파운드의 다른 표기라는데, 이게 현대 야드-파운드법-1824년에 제정된- 그 파운드와 동일한 건지는 잘 모르겠음, 따라서 가격의 추세를 읽는 선으로 이해했으면 좋겠다.)
1382년 - 60두캇
1391년 - 130두캇
1403년 - 47두캇
1412년 - 155두캇
1422년 - 125두캇
1434년 - 50두캇
1444년 - 35두캇
1455년 - 55두캇
1469년 - 70두캇
1475년 - 50두캇
1497년 - 50두캇
1501년 - 130두캇
1510년 - 55두캇
1475년부터 1497년까지는 거의 가격의 변화가 없었음.
이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전쟁과 같이 악재가 발생하지 않으면
100년 동안 가격은 거의 비슷한 수준(50~60두캇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이 시기가 인플레이션이 심각하지 않은 시기라고 하더라도 100년간 가격이 비슷한 수준으로 있다는 건
지난번에 말했던 포르투갈과 달리 베네치아가 무작정 폭리를 취한 것은 아니라는 거임.
베네치아가 향신료 가격을 장기적으로 안정시키는 것이 가능했던 건
베네치아가 향신료 거래를 국가 사업으로 판단하고
개별 상인이 자기들 맘대로 거래하는 걸 철저히 금지했기 때문임.
지난번에 설명했듯이 베네치아는 향신료 거래에서 일종의 공동구매를 했음.
이건 물론 향신료 거래 세금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국가의 상인들에 비해 협상력의 우위에 설 수 있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했음.
남들 소매할때 도매로 떼어오는 셈이니까.
일종의 규모의 경제가 이루어지는 셈인데, 이렇게 증진된 협상력을 통해서
가격을 최대한 안정화 + 억제할 수 있게되었고
여기서 발생한 가격우위가 다른 국가들의 상인을 향신료 시장에서 몰아낼 수 있게 했던거임.
이게 지난번에 말했던 한탕주의의 포르투갈과 거시적 관점의 베네치아 사이의 결정적 차이점이었음.
결론
베네치아가 향신료 중계 거래로 많은 이득을 본 것은 분명한 사실임.
그러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독점을 통해서 쥐어짜듯이 폭리를 취한 것은 아님.
그렇다고 베네치아가 향신료를 이용한 식문화 증진에 기여하려는 마음에서 그런건 아님.
독점이라고 무작정 올리면 잘 안 팔리거든.
참고문헌 - 레인교수의 Venice a maritime republic의 286~290페이지
로만파운드도 2천년 내내 애초 300그램 조금 넘는 정도니까 크게 차이는 없을 듯. 대충 위키 보니까 한 301g정도 되는 모양이던데.
지금처럼 SI단위로 표기하는게 아니라 같은 단위인데도 지역별로 차이나고 이래서 현대표기로 변환하는건 포기했음...
아니 연구자들이 고증해서 대략이나마 찾아놓은 자료들이 존재함. 로만파운드는 보통 330g이거나 그 뒤 1천년 동안 324~327g 왔다갔다 했거든. 베네치아도 연구가 있긴 함. 귀찮아서 영문위키에서 베네치아 쪽 도량형표 찾아보면 그쪽 lbs 단위는 301g나온다 이거임. 중요한 건 아니지만.
지식이 늘었다!
후추코인 ㄷㄷ
마젤란 원정 당시 한척만 돌아왔는데, 거기에 담고온 형신료로 원정비용 뽕뽑고도 남았다는건 뭐야?
마젤란 원정 때 향신료를 얼마나 가져왔는지는 알 수 없어서 정확하게 답변해주기 곤란함. 다만, 마젤란의 원정 시기가 포르투갈이 향신료를 독점거래하려 시도했던 시기와 맞물린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 때의 가격 폭등으로 인한 이득을 어느정도 보지 않았을까 하는게 내 생각임.
ㄴ 그거야 산지 직송이니깐 각종 중간 수수료 떼면 개이득이지. 베네치아는 아무리 싸게 샀다고 해도 알렉산드리아까지 오는 각종 수수료가 붙은거니깐
ㅇㅁㅇ
지시기 느러따
지식이 느러따
역시 서로마 공화국답다
역시 양심의 상징 도제님나라 빚안갚는 양아치와는 격이 다르네
그럼 포르투갈이나 스펜이 개척한건 왜? - Gora Euska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