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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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에서의 일이 끝나고, 대한은 이제 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속된 전쟁으로 슬슬 조정의 예산에 붉은색 글자가 보이기 시작했으나, 그렇다고 반국가 연합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한(韓)인이야 어쨌든 본격적으로 전쟁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중원의 경우 이 전쟁을 천하를 통일하기 위한 전쟁으로 여겨 천명에 거스르는 것으로 인지하지 않았다.


유목민족인 만주족과 몽골족이야 이 행위에 대해 큰 생각없이 그저 대한의 한(韓)인과 한(漢)인들에게 가축과 그의 부산물을 팔고 식량과 장작등을 사갈 뿐이었으니 무슨 생각을 할 이유가 없었다. 대한의 주력은 총병과 포병이었고 기병은 보조전력으로서 활용하고 있었으니 유목민들로부터 불만이 나올 정도로 공출을 요구한 것도 아니다.


때문에 조정에서는 대한이 중원의 통일을 포기할 생각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 그를 위해 반국가 연합을 정면에서 파괴시키는 것이 대한의 중원 통제에 더 용이할 것이라 판단하였다.


더욱이 이대로 반국가 연합이 성립한다면 그것은 곧 북남으로 길게 이어진 전선이 된다. 북쪽의 유목민이야 중원의 만리장성을 연장을 하든 확장을 하든 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겠으나, 서쪽에서 밀려드는 군대들을 대한의 병력 만으로 막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대한이 본격적으로 서일본에 통제력 비슷한 것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어떤 식으로든 정통성을 확보해야 했다. 천황이야 지금까지 그가 받아본 적 없었던 후한 대접으로 대한으로 반 이상 넘어왔으나, 아직까지 힘을 가지고 있는 지방 다이묘와 이전 아시카가를 따르던 권력층을 끌어들이는 것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들은 지금 대한이 유리해보이니까 대한에 붙은 것일 뿐, 일본에서의 상황이 반전되고 대한의 수군이 무력화된다면 아무렇지 않게 손을 뒤집을 것들이었다.


이에 이경형이 선택한 것은 종교적 정통성이었다. 처음에는 이세 신궁을 오다 가에 반환하고 천황을 손에 쥔 대한과 신궁을 손에 쥔 오다가로 세력을 양분하려 했지만, 일본의 정세에 익숙해지고 나니 아무래도 그렇게 했다간 오다가가 칼을 거꾸로 잡을 것이라는 생각에 방향을 급선회하게 되었다. 오다가는 그저 쿄토 동쪽의 일본만을 정복하고 그 이상의 힘을 실어주지는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한에서 넘어간 유학자들은 이세 신궁이 있는 곳 까지 닿게 되었는데, 신토가 번성한 환경에, 유학을 전파하려고 해도 그들 식으로 이해하여 그들의 삼백만 신들 사이에 편입해버리려고 하는 움직임에 혐오를 품었지만 황제의 명령이 있었기에 들어내진 못하고 그저 속으로 삭일 뿐이었다.





1556년 3월. 대한은 창성에 전쟁을 선포했다. 당연히 창성에서는 촉나라와 민나라와 함께 대한에 대한 반국가 연합을 결성하고 주변 국가를 규합하고 있었으니, 그들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민나라는 당연히 창성의 이러한 요청에 응하였으나, 촉나라에서는 전쟁이 벌어지려고 하는 그 짧은 틈을 타서 반국가 연합을 탈퇴하였다. 이유가 어떻게 되든 촉나라의 이러한 행위는 대한에 대한 반국가로 뭉치자는 말에 혹하던 중원인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미 한 번의 선례가 있는데 어느 누가 가장 중요한 순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단 말일까. 이 한 번의 배신으로서 중원에서의 반국가 연합은 완전히 힘을 잃게 되었다.






전쟁은 대한의 승리로 끝날 수 밖에 없었다. 대한은 가장 부유한 강남을 확보한 상태였고, 민나라는 강남에 발을 걸치고 있다곤 해도 그 땅이 너무 적어 대한의 대군과 맞상대할 만큼의 병력을 운용할 수가 없었다.


첫 번째 싸움에서 민나라는 그들이 가진 모든 병력을 잃고 공성전에 돌입함으로서 사실상 전쟁에서 탈락했다.


청성도 나름 평야지대에 있고 땅도 민나라보다 더 넓었지만 그 뿐이었다. 그들의 땅이 얼마나 되든, 얼마나 비옥하든 간에 현재 대한의 그것을 넘을 수는 없었으며 대한은 그저 민나라보다 더 수고를 들이는 것 만으로 청성을 완전히 항복시켰다.


이로서 대한에 저항하는 동맹을 주창하던 두 동맹이 순식간에 멸망하였으니 이는 주변 국가들에게 충분한 경계가 될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대한 혼자서는 아무래도 주변에 잘게 쪼개진 수 많은 국가들을 동시에 상대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들역시 대한 혼자서 전선을 지탱해야 한다는 맹점을 짚어 남북으로 긴 전선을 만들려고 했으니까. 이를 극복하려고 남북으로 긴 장성을 지으려는 것은 돈도 너무 많이 들고 사실상 서쪽으로의 확장을 포기하겠다는 의미가 되어 중원의 한족들로 부터 불만을 살 우려가 있었다.


때문에 대한은 적어도 남쪽에서의 공격만큼은 어느정도 억제할 수 있는 동맹을 찾아 나섰고, 아유타야 왕조가 그 대상이 되었다. 아유타야는 대한이 은그슬쩍 내비친 동맹제안을 바로 받아들였다. 조정에서는 자신들은 알지 못했지만, 아유타야에서 대한과의 동맹을 크게 바라고 있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추측하고는 조사를 명했다.






대한의 다음 목표는 대리 아니면 원 아니면 서나라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대한에서는 사람을 보내서 원나라와 서나라의 심경을 떠보았는데, 원나라는 서나라와의 의리를 지켜 전쟁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간자가 알려왔다.


하지만 정작 서나라는 촉나라를 완전히 꺽어버리고 천명을 강탈할 생각이 가득하기 원나라를 돕지 않을 것이라는 보고가 올라왔다.


보고된 내용도 있고, 무엇보다도 아직까지도 보르지긴에 대한 이야기가 남아 공포심을 자극하고 있었던 대한이었다. 이미 만리장성마저 넘고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는 원나라가 아무래도 사천성에 같혀서 촉나라와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는 서나라보다 더 위협적으로 인식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원나라의 정벌은 원나라의 수도를 바로 후려치는 형태로 진격한 한국군과 그와 보조를 맞추어 진격하는 오나라의 군대로 이루어졌다. 이 두 국가가 보조를 맞추어 진격하니, 둘 중 하나를 잘라먹고 장기전으로 몰아가겠다는 계획은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대한과 오나라의 군대는 어떻게든 다른 쪽에서 지원을 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 있었으니 섣부르게 군사를 움직였다가는 대한과 오나라 양 측의 군대에 포위되어 전멸당할 뿐이다.





이에 원나라가 택한 것은 우회였다. 원나라는 장안성을 점령하고 그 길로 중원으로 내려가 중원의 땅을 철저하게 불태워 대한이 전쟁을 지속할 수 없게 만들고자 하였고, 몽골이 점령한 만리장성의 일부가 오히려 한국군이 남쪽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이 되어서 이 전쟁은 원나라가 먼저 장안성을 뚫고 중원으로 들어가느냐, 아니면 대한이 만리장성을 깨고 원나라를 공격하느냐로 결정되게 될 것이다.






대한은 장안성이 깨지기 전에 먼저 만리장성을 넘는데 성공하였다. 이에 오나라와 한국군 양쪽 모두 장안성을 구원하러 내려갈 수 있게 되었고, 오나라의 군대가 장안성을 구원하러 내려가는동안 한국군은 무리하게 기동하지 않고 장성 인근의 촌락들을 점령하는 정도의 활동만을 보였다.


몽골은 한 번의 패배이후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할 여력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많은 땅을 내어주어야 했다. 아직 중원을 몽골 유목민으로부터 완전히 해방시키지는 못하였으나, 이 전쟁으로 인해 북원은 사실상 완전히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서쪽에서 죽어가는 북원의 피냄새를 맡고 달려들 사냥개들을 주시하면서 대초원의 어디를 국경으로 삼을 지 정도만 정하면 될 것이다.





조정은 이것을 끝으로 잠깐 쉬면서 내치에 집중하고자 하였으나, 이 계획이 엉크러졌으니 그 이유는 향료제도 토벌전때문이었다. 향료제도의 항로를 완전히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세부가 이 작은 섬들을 완전히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상인들이 판단하였고, 이에 대한 그들의 뜻을 최대한 잘 정리하여서 조정에 장계로 올렸다.


조정에서는 불안해 하면서도 남만상인들이 벌어들이는 막대한 돈과 그로 인한 세수를 외면할 수가 없어서 그들의 뜻에 따라 향료제도를 토벌하기로 했다. 물론 이때 까지는 세부 인근의 작은 섬들을 점령하는 것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전쟁 자체는 손쉽게 끝났다. 아무리 고향 땅의 지리를 잘 아는 이들이라고 하나, 세부 역시 그곳 땅에 사는 이들이었고 중원과 대초원을 호령하는 압도적인 질과 양적 차이를 지형적 이점으로 극복할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세부 인근의 섬들은 모두 대한에 점령되었고, 이 이상 확장을 할 생각은 없었던 대한은 이 새로이 정복한 땅들을 세부에 하사함으로서 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슬슬 내부적 문제에 집중하고자 하였다.






우선은 대한의 종교에 대한 관용적인 태도를 민중들에게 확실히 인식시킬 필요가 있었다. 조정에서는 또다시 종교에 대한 조정의 태도와 그로 인한 규정들을 적은 칙령을 내렸으며, 이 칙령은 대한의 통제권이 닿는 모든 지역에 배부되었다.


또한 아무리 수백버 말로 떠들어 봤자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들과 해결책들을 모두 얻을 수는 없었던 만큼 지방에서 갈등의 종류와 그에 대한 해결책들, 그리고 그 결과들을 간략하게라도 적어서 조정에 보고하라고 했으며 이로 인해 조정은 나날이 밀려드는 보고서들로 완전히 포화상태에 이르렀으며, 이를 정리해서 저장할 서고가 모자랄 지경이 되었다.


이를 위해 규장각이라는 서류 저장고를 만들었다. 원래 역사에서는 세조때 한 번 만들어지고 정조 때 부활하게 된 이 기구는 세종 이후 널뛰듯이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조선과 그로 인해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상황 상 도저히 만들 수가 없었던 기구였다. 허나 이제 상인들과 부유한 중원 땅으로부터 세수를 걷게 됨으로서 재정에 여유가 생겼고, 필요성도 대두된 시점에서 규장각을 만들게 되었다.


규장각에서는 당초의 목적이었던 칙령에 대한 사후보고 뿐만 아니라 조정의 많은 일들을 모두 저장하여 후세가 이를 보고 본을 받으라는 의미로 만들었기에 그 규모가 거대하고, 많은 신료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하였다.





이렇게 대한이 내부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머리를 쓰고 있을 때, 세부에서 구원요청이 들어왔다. 술루라는 작은 섬나라가 브루나이와 그들의 동맹을 등에 업고 그들의 해안에서 해적질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대한의 상선 역시 많은 피해를 입었으니, 조정은 이를 묵과하기 어려웠다. 상인들은 차라리 대한이 향료제도를 완전히 점거하는 편이 차라리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아직까지는 공상에 불과하지만, 시간을 들여 설득하면 분명히 조정역시 향료제도를 대한이 손에 넣어야 할 땅이라고 인식하게 될 것이 분명할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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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끝났으니까 다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