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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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인간은 자연의 힘을 두려워 하였다. 정착생활을 한 이후 번개 태풍 홍수 가뭄등 자연재해는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로 이어졌기에
고대인들은 이를 관장하는 신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스 로마신화, 바이킹, 이집트, 중국이나 한국 신화에서도 자연의 일부분을 관장하는 신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수 있다.
전쟁에서는 이러한 자연환경을 이용하는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평야에서는 병력의 양과 질로 압도 할 수 있지만
기동이 제한되는 산이니 숲같은 지형에서는 어떤 전략이나 위치를 점하느냐에 따라서 뒤떨어지는 병력으로도 적을 물리칠 수 있다.
1937년 5월 23일 미국 내전 상황도
PSA군은 솔트레이크 시티를 향해 진군하였으며, AUS는 미시시피 강을 넘어서 텍사스 주로, CSA는 덴버시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진군하기 시작하였다.
반란 세력들의 합종책의 일환이였는데 연방군을 각지에서 압박하는 전략을 취하였다.
연방군의 병력은 다른 어떠한 세력보다도 많았지만 3면에서 반란군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였다.
하나하나 각개격파를 하는 전략이 주효할것이라고 생각했던 연방이였지만 문제는 공세를 하는동안에
다른쪽에서 오는 병력을 막아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 중부는 미시시피강을 제외하면 평지였기 때문에 반란군을 이 강만 넘으면 거칠것이 없었으며,
연방군은 이 강에서 반드시 저지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였다.
미시시피강은 강폭도 크고 수심이 깊어서 도하지점도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이 강을 끼고 방어를 한다면
쉽게 뚫기가 힘든 천혜의 요새로 삼을수가 있다. 설령 뚫는다 하더라도 병력을 증원시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방어자에게 매우 유리한 지형이라고 볼 수 있다.
연방군은 방어선을 조정하기위해 돌출되어있는 일리노의 주에서 병력을 철수하였으며
CSA와 AUS가 점령한 아이오와주와 미주리주를 공략하여 미시시피강 서안을 확보하려 하였다.
반면 CSA는 오대호를 건너서 밀워키와 그린베이를 공격, 위스콘신주를 점령하여 전선을 확장할 교두보를 삼으려고 하였다.
전투는 일진일퇴를 거듭하였고, 사상자가 속출하였으며, 공세과 돈좌되면서 연방에게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하지만 연방에게 생각지도 못한 호재가 생겼다.
바로 2차세계대전의 발발이였다.
CSA는 인터네셔널에게 AUS는 독일제국에게 지원을 약속받았지만, 이 두세력간의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지원을 약속받은 장비나, 군사 고문들은 모두 전선으로 돌아갔으며, 이는 PSA와달리 군 장성이 빈약한 CSA나
산업기반이 부족한 AUS에겐 큰 타격으로 다가왔는데 CSA군은 노동자계급이나 하급 간부가 중심이 된 군대라서
대규모의 군을 굴리는데는 미숙하였으며, AUS는 농업중심의 국가라서 중장비를 생산할 공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를 보충해줬던 외국의 지원이 끊기자 양국군의 질은 하락하였으며, 공세도 지지부진 해졌다.
한달간의 길고 참혹한 전투끝에 6월 말에서는 미시시피강 서안을 확보하고 방어선을 구축하는데 성공하였다.
반란군은 미시시피강 동쪽으로 철수하였으며, 재정비에 들어갔으며 연방군은 PSA로 총구를 돌렸다.
중부지역과 달리 서부지역은 로키산맥과 고원, 네바다사막으로 이루어져 기동이 제한되며
도로가 제대로 정비가 안되어있어서 공격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리한 지형이다.
PSA군은 병력을 아이다호주나 피닉스시 같이 기동이 용이한 지역이나 도시에 병력을 배치시켜놓고 연방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1937년 6월 병력 배치도
PSA는 남부,북부방면군으로 나눠서 남부지역의 2개사단이 피닉스 지역을
북부지역의 5개사단이 보이세와 트윈스 폴 지역을 방어하여 길목을 지키는 형태로 방어를 하였으며
시애틀과 새크라멘토, 샌디에이고, LA, 샌프란시스코에 예비사단을 두었다.
방어병력이 공세를 막아내면 뒤의 예비병력이 투입되어서 공격병력을 격퇴하는 전략이였다.
한편 미군은 휴스턴 지역에서 뉴욕전투에 참가한 4개사단을 재정비하고 있고,
리차드슨 중장휘하의 멕시코 국경수비대 4개사단
솔트레이크 시에 브래들리 장군휘하의 2개사단 덴버시에 맥아더장군 휘하의 3개사단
몬타나주의 동원예비군을 지휘하는 마샬장군의 2개사단 총 12개의 사단이 투입되었으며,
아이라 이커 장군의 육군 항공대 7개 비행단이 솔트레이크 비행장에 배치되었다.
미군은 PSA군의 방어를 뚫어야만 했지만 길목을 지키고있는 상대에 병력을 들이미는건
범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미는것보다 위험한 행동이였다.
방어선을 약화시키려면 적 병력을 다른지역으로 돌려야만 했고, 그러기에는 기만작전이 필요했다.
6월 말 서부전선 상황도
미군은 휴스턴에서 재정비가 끝난 4개사단을 모조리 서부전선으로 돌렸으며 최대한 신속하게 PSA를 격멸 시키려고 하였다.
미군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아이다호 주에 배치된 5개사단의 방어병력을 벗겨내는 일이였다. 아이다호주는 로키산맥과
하천을 끼고있는 지형이고 어느 측도 수적이나 질적인 우세가 점하질 못하였기 때문에 공격자 입장에서는 불리한 상황이였다.
마셜장군은 로키산맥을 넘어서 시애틀 방면으로 병력을 이동하자 PSA는 시애틀과 아이다호 방어선의 예비병력을 투입하였으며
포틀랜드에 주둔한 예비병력을 아이다호 방어선으로 배치시켰다.
하지만 맥아더 장군 휘하 6개 사단이 먼저 들이 닥쳤고, PSA는 필사적으로 맞서 싸웠지만 양측에서 3만의 사상자를 낸 혈전끝에
연방군이 방어선을 돌파하는데 성공하였다.
남부에서는 한개 사단을 빼서 네바다 사막과 콜로라도 고원을 가로질러서 수도인 새크라멘토로 진격하였는데
미 정보부인 OSS에서는 평문으로 기동정보를 흘렸으며 놀란 PSA는 예비병력을 전부 새크라멘토로 이동시켰다.
그 사이에 나머지 4개사단이 피닉스 방어선을 돌파하는데 성공하였다.
리차드슨 장군은 고삐를 죄어 수도인 새크라멘토에 공세를 취해 탈환하는데 성공하였다
PSA는 시애틀로 천도하였으며 끝까지 항전할것임을 밝혔다.
1937년 7월말에 브래들리 장군은 유진시를 공략하여서 남북을 완전히 분단하였으며,
PSA의 남부 방면군의 항전의지를 완전히 박살내었다. 고립된 병력들은 탈영을 하거나 투항하는등 급속히 와해가 되었다.
1937년 8월에는 PSA는 시애틀을 제외한 전 도시가 함락당하였으며, 그나마 로키산맥 일대에서 게릴라를 하면서 항전하였지만
이미 전세는 기울대로 기울어진 후였다. 미군은 시애틀 주변의 방어선을 모두 돌파하면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시애틀로 진군하고 있었으며
로키 산맥에 숨어서 게릴라활동을 하던 병력들은 고립되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결국 PSA 대통령인 헨리 아널드는 더이상의 항전은 무의미 하다고 판단하여 항복을 선언하였으며 모든 군대에 전투행위 중지를 명령하였다.
2달간에 걸친 혈전이 끝을 맺는 순간이였다.
며칠간의 협상뒤에 9월5일 미군은 시애틀을 접수하면서 종전을 발표하였다.
두달간의 혈전이 끝을 맺는 순간이였다.
미군은 내전이란 어수선한 상황속에서도 정교한 작전을 실행하며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는데
빠른 시간내에 병력을 재건, 무장시키고 원할한 보급을 하던 군수, 지원분야뿐만 아니라
치밀한 기만작전을 성공시킨 정보 분야등 어느 한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두루발전하였다.
이는 훗날 지구방위대라고 불릴 '천조국'군의 초석이 되었다.
하인리히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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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너가 대통령이면 존나 밋밋한데 맥아더가 집권 안하냐
미국 입장에선 내전이라는 악재와 세계대전이라는 악재가 겹치니 오히려 이득이 되어버렸다는게 재밌음. 만약 내전이 없었다면 구식교리와 장비 탓에 유럽열강들한테 먹혔을테고 세계대전이 없었으면 최소 3등분은 되었을텐데 - dc App
제목에 연재좀 달아줘
단대호 졸귀 - dc App
홍1어가 왜 금지어? 항의하니까 글삭제? 추잡한 홍1어독재보소
실제로 내전을 통한 전시경험은 유럽 전선에서 동맹인 러시아 공화국과 함께 인터네셔널인 브리튼이나 코뮌을 상대하는데 큰 도움을 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