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부의 아들 이옥(李沃)·이윤(李贇)·이예(李裔)·이한(李澣)·이징(李澂) 등도 모두 적몰되었고, 종[奴]이 되어 각 고을에 나누어 예속되었다. 이옥은 강릉에 예속되었는데, 왜구가 동계(東界)에 침략하자 아군은 멀리서 바라만 보고도 궤멸되어 도망해 버렸다. 평소에 이옥의 용맹함을 알고 있던 안렴사가 군사를 주어 왜적을 치게 하니, 이옥이 힘껏 싸워 물리친 덕분에 강릉 일대는 참화를 면하였다. 왕이 보고를 받자 말과 안장을 하사하고 그 〈관노의〉 역(役)을 면하게 해 주었으며, 뒤에 우왕은 이춘부의 고신(告身)을 지급하였다.

 

『고려사』 125권 「열전」 '간신-이춘부전' 중에서

 

 

왜구가 강릉부(江陵府) 및 영덕현(盈德縣)과 덕원현(德原縣)의 2개 현을 노략질하였다. 이때 이춘부(李春富)의 아들 이옥(李沃)이 몰입되어 동계(東界)의 관노(官奴)가 되었는데, 왜구가 이르자 우리 군사가 소문만 듣고도 도망가서 무너졌기에 부사(府使)와 안렴사(按廉使)가 이옥이 용맹하고 날래다는 말을 듣고 군사를 주어서 그들을 공격하게 하니, 이옥이 힘써 싸워서 그를 물리쳤다. 왕이 안마(鞍馬)를 하사하고, 그의 역을 면제해주었다.

 

『고려사절요』 29권 「공민왕 4」 '공민왕 21년 6월' 중에서

 

 

이옥은 시중(侍中) 춘부(春富)의 아들이다. 시중이 주살당하자 이옥은 강릉부의 병졸로 편입되었다. 이 무렵에 왜구가 동해에 몰려와서 주·군(州郡)을 약탈하니 백성들이 모두 다투어 피하였다. 마을의 앞뜰에 큰 나무가 많았는데 이옥이 밤 사이에 사람을 시켜 화살 수백개를 나무에 꽂아 놓았다.

 

이튿날 상복을 벗고 말을 달려 해구로 나가 몇 개의 화살을 적에게 쏘고는 거짓 패한 체하면서 나무 사이로 달려 들어가니 왜적이 구름과 같이 몰려왔다.

 

혼자서 당해내는데 꽃혔던 화살을 뽑아 쏘며 종횡으로 달리며 치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전하기를 마지않았으나 시위를 헛되게 당기지 아니하여 쏘기만 하면 반드시 맞으니 죽은 자가 즐비하였다. 이로부터 왜적이 군의 지경을 범하지 못하여 한 도(道)가 그의 힘으로 편안하니 조정이 가상히 여겨 벼슬을 내렸다.

 

성현 『용재총화』 3권, 29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