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엄마들 때문에 절대 못한다.

정규 50분짜리 체육수업도 없에는 나라임.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769919?sid=102

 

 

17세 아들 일본에 배구 유학 보낸 프로 코치··· “만화 하이큐는 실화”편집자주한국 스포츠, 어떻게 기억하나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도약한 우리 스포츠는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를 줬습니다. 하지만 저력의 K스포츠가 위기에 섰습니다. 프로 리그가 있는 종목조차 선수가 없어n.news.naver.com


배구 선수에게 일본은 천국과 같았다. 매주 주말마다 크고 작은 대회가 쉬지 않고 열렸다. 오사카 고교 배구팀끼리 1부, 2부, 3부로 나눠 대결하는 지역 대회인 ‘긴키’ 대회가 대표적이다. 전국대회 격인 ‘하루코(춘계고교배구대회)’ 또는 인터하이에 나가지 못하는 팀도 언제든지 경기를 할 수 있다.


주전 경쟁에서 탈락한 선수들도 뛸 기회가 많았다. 모모야마고 배구부원은 28명. 감독은 선수를 수준별로 1부, 2부, 3부로 나눈 뒤 다른 학교 1~3부와 수시로 연습게임을 치렀다. 최소 엔트리(12명)도 채우지 못하는 팀이 많은 우리나라에선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윤 코치는 “고교 리그인데도 2부리그 우승팀이 1부리그로 승격하고, 1부 꼴등이 2부로 내려오는 승급제까지 있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일본에선 이렇게 팀이든 선수든 엄청난 경쟁을 뚫어야 이시카와 같은 정상의 자리에 설 수 있다. 일본 배구 대표팀이 7월 세계 배구 최강자를 가리는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아시아 국가 최초 동메달을 따낸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프로가 목표인 학생과, 순수하게 배구가 좋아서 운동하는 아이들이 뒤섞여 있었다성적보다는 운동을 통한 ‘인성 함양’을 중요시하는 지도자들은 실력이 최상급인 선수도 다른 부원들과 마찬가지로 심판, 청소, 점수기록 등을 번갈아 가면서 맡도록 했다. 이는 입시 경쟁이 치열한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