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보호와 민족문화 보존 업적☆☆☆☆
문교부 외국으로 문화재관리국 설치(1961. 10. 2)
문화재보호법 제정 공포(1962. 1. 10)
남대문 중수 공사 준공(1963. 5. 14)
동대문 개축 준공(1963. 9. 5)
문화재보수 5개 년 계획 수립(1963. 9. 10)
팔의사 창의탑 준공(1963. 11. 5)
해인사 팔만대장경 판고 신축 및 보수(1963~1977)
경주 석굴암 복원공사 준공(1964. 7. 1, 보고서 작성 : 1961. 7. 17)
무형문화재, 기능 및 예능보유자 인정 전승사업 시작(1964년)
석가탑 사리함에서 세계 최고 목판 인쇄 다라니경문 발견(1966. 10. 14)
국립중앙박물관 착공(1966. 11. 16, 준공 : 1972. 8. 25)
밀양 영남루 보수(1966. 11. 30)
서울 문묘 보수(1966. 11. 30)
부여 정림사지 정비(1966. 12. 6)
법주사 대웅전 보수(1966. 12. 18)
종합민족문화센터 기공(1967. 4. 25)
안중근의사 동상 이안(1967. 4. 26)
국립묘지정화사업 현충탑 건립(1967. 10. 1)
세종로에 이충무공 동상 제막식(1968. 4. 27)
소수서원 해체 복원(1968. 12. 2)
광화문 복원공사 준공식(1968. 12. 11)
현충사 성역화 중건 준공(1969. 4. 28, 착공 : 1966년, 조경공사 : 1972~1974년)
범어사 대웅전 보수(1969. 8. 19)
월정사 대웅전 준공식(1969. 10. 14)
유관순 유적지 착공(1969. 10, 준공 : 1973. 3)
금산사 대적광릉 해체 복원(1970. 2. 29)
행주산성 보수 준공(1970. 11. 10, 착공 : 1969년, 행주대첩비 건립 : 1963년)
세종대왕기념관 기공(1970. 11. 19, 준공 : 1973. 10)
도산서원 보수 준공(1970. 12. 8, 착공 : 1969. 10. 6)
화엄사 대웅전 보수(1970. 12. 25)
남원 광한루 보수(1970. 12. 31)
진주성 보수 준공(1970년, 착공 : 1969년)
남한산성 보수정비사업 착공(1970년)
금산 칠백의총 정화사업 준공(1차 : 1971. 4. 13, 2차 : 1976. 9. 20)
무령왕릉 발굴(1971. 7. 8)
속리산 법주사 사천왕문 복원(1971. 8. 30)
국립부여박물관 부소산 신관 개관(1971. 9. 1, 기공 : 1965. 9. 14)
경주고도개발 10개 년 계획 확정(1972. 3. 10)
육산리 고분군 정화(1972. 11. 4)
경주 155호 고분(천마총) 발굴 착수(1973. 4. 6)
불국사 복원 준공(1973. 7. 5, 착공 : 1970. 11. 3)
한국문화예술진흥원 개원식(1973. 10. 17, 현판식 : 1974. 10. 11)
문예중흥 5개 년 계획 발표(1973. 10. 19)
해미 읍성 복원정비(1973~1977)
낙성대 준공(1974. 6. 10, 착공 : 1973. 11)
금산사 미륵전 해체 복원(1974. 12. 10)
문경 관문 해체 복원(1974년, 제1관문 성벽 보수 준공 : 1975년, 제2관문 문루복원 및 성곽보수
준공 : 1975년, 제4관문 홍예성곽보수 준공 : 1976년, 제3관문 문루복원 및 제1관문 단청 준공 :
1977년)
황남대총(98호 고분) 발굴(1974~1975년)
서울 성곽 복원?보수계획(1975~1978년)
중앙민속박물관 개관(1975. 4. 11)
수원 성곽 복원 착공(1975. 5. 30)
경주박물관 개관(1975. 7. 2)
광희문 복원공사 준공(1975년)
경주 용담정 천도교 유적지 정비(1975년)
옥산서원 보수작업(1976. 1. 20)
한국 미술 5천년전(1976. 2. 23~7. 25, 일본 도쿄, 교토, 나라)
밀양 표충사 정화사업(1976. 4. 10)
강릉 오죽헌 정화사업 준공(1976. 5. 7, 착공 : 1975. 10)
유적지 및 전적지개발 위한 특별법 제정(1976. 6. 24)
한산도 충무공 유적 정화사업 준공식(1976. 10. 20, 착공 : 1975. 1)
신안 해저문화재 발굴(1976년부터)
예산 추사고택 보수정비 준공(1977. 6. 27, 기공 : 1976. 7. 4)
경주 통일전 준공(1977. 7. 30, 착공 : 1976. 4. 22)
여주 영릉 보수정비 사업 준공(1977. 10. 9)
부석사 정화사업 기공(1977. 10, 준공 : 1979년)
강화전적지 정화사업 준공(1977. 10. 28, 착공 : 1976. 8)
고창 읍성 복원정비(1977. 12. 30, 착공 : 1975년)
내장사 정화사업 준공(1977년, 착공 : 1974년)
안동 하회마을 영모각 보수 준공(1977년, 유성룡장군 유물보관)
홍지문 준공(1977년)
월정사 복원 공사 착공(1978. 5. 3)
제주 황파두리 항몽유적지 정비 준공(1978. 6. 2)
금오산 채미정 정화사업 착공(1978. 6. 25)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개원(1978. 6. 30)
해남 표충사 보수사업 착공(1978. 8. 15)
김천 직지사 정화사업 준공(1978. 10. 30, 착공 : 1977년)
곽재우장군 유적지 조성 정화사업 착공(1978. 11. 22)
충주 충렬사 정화사업 준공(1978. 11. 23)
국립광주박물관 개관(1978. 11. 28, 착공 : 1977년)
광산 고경명장군 포충사 보수사업 준공(1978년)
부산 충렬사 보수 준공(1978년, 착공 : 1976년)
예산 윤봉길의사 충의사 보수 정화사업 준공(1978년)
경주 보문관광단지 개장(1979. 4. 6)
한국 미술 5천년전 개막(1979. 5. 1,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보스턴, 클리블랜드, 뉴욕,
캔자스시티, 위싱턴, 시애틀)
남원 만인의총 정화사업 준공(1979. 10. 5)
광주 충장사 김덕령장군 유적지 정화사업 준공(1979년, 기공 : 1974. 4. 4)
충주 임경업장군 유적지 정화사업 준공(1979년)
춘천 유인석 의병장 유적 정비보수 준공(1979년)
일부 / 이하생략...]
☆☆☆☆박대통령에 대한 국내외 인사들의 평가☆☆☆☆
"박정희는 조국근대화에 확고한 철학과 원대한 비전을 바탕으로 시의적절한 제도적 개혁을 단행했다. 매우 창의적이며 능률적이었다." - 카터 에커트 (하버드대학 교수)
"아시아에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세 지도자로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와 중국의 덩 샤오핑 그리고 한국의 박정희를 꼽고 싶다" "오직 일에만 집중하고 평가는 훗날의 역사에 맡겼던 지도자" - 리콴유 (전 싱가포르 수상/현 싱가포르 고문장관)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던 한국이 박대통령의 새마을운동을 시작으로 불과 20년 만에 세계적인 무역국가가 되었음을 경이롭게 본다." - 폴 케네디 (예일대학 교수)
"박정희는 한국경제 발전의 유공자"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박대통령의 역사적 큰 공헌은 그의 뛰어난 지도력 하에 한국을 저개발의 농업국가에서 고도로 성장한 공업국가로 변모시킨 것이다." - 앰스덴 (MIT 정치경제학 교수)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의 목표는 자립경제력을 갖춘 현대국가의 건설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 맨스로프 (러시아 안보연구소 교수)
"중국의 덩 샤오핑은 세계 유례없는 한국의 연 10% 급성장과 경제부상에 놀라며 박정희식 경제개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 마홍 (중화인민공화국정책과학연구회장)
"박정희 대통령은 매우 강한 지도자였으며 대기업을 일으켜 국부(國部)를 증진시킨 훌륭한 지도자이다" -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전 총리)
"박정희 근대화 성공으로 중산층 창출이 되고 이것이 한국 민주주의 토대가 되었다. 박정희야 말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하였다." - 오버홀트 (美 카터 전 대통령 수석비서관)
"20세기의 위대한 아시아 지도자들 중 20명중에 한명" - 뉴욕타임스
"박정희는 비록 민주화운동을 억압하였으나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중산층을 대폭 창출시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하였다." - 1991.4.2 김상기 (충남대학 교수)
"민주화란 것은 산업화가 끝나야 가능한 것입니다. 자유라는 것은 그 나라의 수준에 맞게 제한되어야 합니다. 이를 가지고 독재라고 매도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앨빈 토플러 (미래학자/뉴욕대학 명예박사)
"1965년 필리핀의 1인당GNP가 270달러였을 때 한국의 1인당GNP는 102달러 였지만 2005년 필리핀의 1인당 GNP가 1030달러였을 때 한국의 1인당GNP 16500 달러로 변하였다"
"가난한 절대빈곤의 후진국에서 조국보다 잘살던 동남아 나라들을 따돌리고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한 박정희 대통령의 지도력이 존경스럽다" -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
"중국의 덩 샤오핑의 개혁은 박정희 모델 모방" - 美, RAND 연구소
"매 회의마다 우리 농촌과 국토에 가졌던 뜨거운 애정, 빈곤했던 우리 역사에 대한 한에 가까운 처절한 심정, 그리고 빈곤을 극복하여 경제대국을 이룩하려는 치열한 집념에 숙연해지곤 했다"- 고건 (대한민국 전 총리)
"요즘은 박정희 대통령이 좋게 인식되는 것 같은데 옛날에는 유신이니 해서 비판이 많았지만 초기 새마을 운동을 한 덕택에 경제 발전의 기초가 되었던 점은 훌륭한 점입니다. 나도 영화를 통해 서울을 보았는데 서울은 일본의 도쿄보다 훌륭한 도시로 조선이 자랑할 만한 세계의 도시입니다."
"서울에 가면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도 참배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많은 몽골인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과 개발모델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 또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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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당시했던일은다박정희업적이냐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