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줄 영웅적인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온라인, 오프라인 광장으로 나아가

계몽에 앞장서야 한다


12.3 계몽령으로 많은 국민이 깨어났다면

이제는 우리 하나하나가 윤대통령이 되어

다른 이들을 계몽하여야 한다


계몽이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광장에 나아가 발언할 용기이다.

불의에 침묵하지 않을 용기이다.


아래 내용은 출판사 서평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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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변」은 

1784년 12월 《베를린 월간 학보》에 발표되었다. 


이 글은 곧장 계몽 개념을 정의하면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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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이란 

인간이 스스로의 잘못으로 초래한 

미성년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미성년 상태란 

다른 사람이 이끌어주지 않으면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수 없는 무능력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미성년 상태가 

지성의 결핍 때문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지도를 받지 않고서 

지성을 사용할 결단력과 결핍 때문이라면 

미성년 상태는 

스스로의 잘못으로 초래한 것이다. 


과감히 알려고 하라! 

자기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이것이 계몽의 슬로건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성년 상태인 것이 

지적 능력이나 지식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려는 

결단과 용기의 부족 때문이며, 


그런 한에는 미성년 상태가 

‘스스로의 잘못으로 초래한’ 

자기 책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선각자가 

무지한 대중을 각성케 하고 

지식을 전파하는 것을 계몽이라 여기는 

통념을 허물어뜨리는 발상의 전환이다. 


단지 무지를 타파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그런 통념적 계몽관은 

‘문외한’과 ‘전문가’의 구별을 전제하고 

‘전문가’가 ‘문외한’을 인도하는 것을 계몽의 과제로 설정한다.


——


칸트가 거듭 강조하는 것은 

스스로 사고하려는 시도에서 

지식의 많고 적음이 문제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칸트에 따르면 

심지어 아무리 풍부한 지식을 갖춘 사람도 

지식의 활용 면에서는 오히려 

가장 계몽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지식의 활용 면에서 오히려 

가장 계몽되지 않은 경우란, 


예컨대 

단지 외부의 강압이나 권위에 무조건 순응하거나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지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지식이 많을수록 오히려 

그런 유혹에 빠질 공산도 크기 마련이다. 


그처럼 

보편타당한 이성적 원칙에 위배되는 지식의 사용을 

칸트는 ‘미신’과 ‘맹신’이라 비판한다.




그러나 

근대 이래 체계적으로 분화된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들은 

거의 예외 없이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고 

타인의 권위와 도움에 의존해 삶을 유지해 나가는 

전형적인 방식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타인의 권위에 의존하는 ‘게으름’에 못지않게 

그런 비주체적 삶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도록 조장하는 

사회체계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경우 개인은 고립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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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을 공적으로 자유롭게 사용하라!


칸트는 

고립된 개인과 달리 ‘공중’(公衆)은 

스스로를 계몽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칸트가 말하는 ‘공중’(Publikum) 개념은

18세기에 들어와 서적 보급의 급속한 확대로 

광범위하게 형성된 독자층을 가리키며, 

나아가 그들이 의견을 개진하면서 

여론을 형성해 나가는 공동체 

내지 ‘공론장’의 의미까지 포괄한다. 


그런 공론장에서는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미성년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발언하고, 

이를 통해 계몽의 정신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칸트는 

공론장에서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계몽의 필수적 요건으로 설정하고 있다. 


칸트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이성의 ‘공적’ 사용이다.


…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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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예속의 비판적 사유


계몽의 세기라 일컬어지는 18세기 

당대의 계몽사상에서 흔히 

고루한 편견의 타파나 지식의 보급을 

계몽의 과제로 설정한 것과 달리 


칸트는 

타인의 인도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할 용기를 가지라고 촉구함으로써 

‘계몽에 관한 계몽’을 수행했다. 


이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자율의 원리를 근간으로 삼기 때문에, 


‘위로부터의 계몽’은 

원칙적으로 계몽의 정신에 위배된다. 


심지어 문외한이 

전문가의 권위에 무조건 의존하고 따르는 것도 

자신의 생각을 

타인의 권위에 예속시키는 것이기에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를 포기하고 

‘미성년 상태’를 온존시키는 것이다. 




지식이나 권력에 의해 타인의 권위에 예속된 

‘미성년 상태’를 감내하는 것은 

후견인들이 길들이고 부리는 

‘온순한 가축’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또한 권력자들이 관리하고 조종하는 

‘기계의 부품’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미성년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계몽적 자각은 

곧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혁명”이다.




칸트의 계몽사상에서 

이성의 공적 사용 개념은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와 직결된다. 


이성의 공적 사용은 

소수 학자들 사이의 토론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여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형성하여 

참여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룬다. 


그러한 공론장에서 

국민의 의사가 모여 입법의 기초가 되며, 

따라서 모든 입법은 

공적 이성의 검증을 통해 비로소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공론장에서 이루어지는 의견 수렴과 합의 과정은 

단일한 견해나 신념을 만장일치로 관철하려는 목표를 추구하지는 않으며, 

소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성의 공적 사용은 

전체주의를 배격하며 

다양성의 공존을 지향하는 

다원적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한다.


자율적 주체와 공론장의 형성을 지향하는 칸트의 계몽사상은 

현대 정치철학의 민주주의 논의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그 중요성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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