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20:11 이에 예언자 이사야가 주께 부르짖었더라. 그러자 그분께서 아하즈의 해시계에서 그림자를 내리심으로써 그것을 십 도 뒤쪽으로 가게 하였더라.
2 Kings 20:11 And Isaiah the prophet cried unto the LORD: and he brought the shadow ten degrees backward, by which it had gone down in the dial of Ahaz.
이사야서 38:8 보라, 내가 아하즈의 해시계 안에서 이미 내려간 그림자 각도들을 십 도 뒤로 다시 물러가게 하리라.’” 그렇게 하여 해가 그것이 이미 내려갔던 각도들대로 십 도가 되돌아갔더라.
Isaiah 38:8 Behold, I will bring again the shadow of the degrees, which is gone down in the sun dial of Ahaz, ten degrees backward. So the sun returned ten degrees, by which degrees it was gone down.
가령 분명 성경에는 해를 움직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을 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는 거로 해석하는 게 얼마나 말이 안 되냐면 일단 표현부터가 그렇게 말하지 않은 것도 있거니와 이를테면 성경에서 어떤 인물이 길을 걷든 달리든 말을 타든 병거를 타든 그 인물이나 그 인물이 이용한 수단이 움직였다고 하지 그 인물은 멈춰있고 주변 배경이 움직였다고 해석하지 않으며 성경에서 단 한 군데라도 주변 풍경이 움직였다고 표현하는 경우는 없다.
예를들면 주변 바다가 움직였다, 주변 산이 움직였다, 주변 성읍이 움직였다, 주변 도시가 움직였다는 식으로, 아니 주변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는 표현조차 없고 죄다 인물이나 그 인물이 이용한 이동수단이 움직였고 주변 배경은 멈춰있는 것, 즉 배경 위치 변경에 대한 구절은 언급이 전혀 없는, 아니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너무나도 당연하니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것인데 그렇다면 성경만 이러하겠는가?
흔히 과학에서 말하는 지동설에 입각한 교과서나 서적이나 언론이나 사람들이나 지구가 돌고 태양은 멈춰 있다고 하지 지구는 멈춰 있고 태양은 움직인다고 절대 하지 않으며 그나마 지구가 멈춘 것처럼 보이고 태양이 움직인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는 것도 겉보기 운동과 같은 경우 한정이다.
과학이라는 잣대 하에 거짓되고 왜곡된 지동설을 주장하는 교과서나 서적이나 언론이나 사람들조차 그 주장에 대한 근거를 주장할 때는 표현을 정반대로 하지를 않는데 불변의 진리 그 자체인 성경이 딥스 세력이나 거짓말쟁이들도 쓰지 않는 화법을 쓴다는 것, 개돼지들이나 바보들도 쓸리가 없는 표현 방식을 창조주이시고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주관하신 성경은 그렇게 쓰였다는 것인가?
분명 개인이 위치 변화하면 개인이 움직이고 주변은 가만히 있고 주변이 움직이고 개인은 가만히 있으면 주변이 움직인다고 나와 있는데 모든 것에 대한 일관성을 따져도, 아니 따질 거 없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러한데 성경이 헷갈리게, 아니 존재할 수 없는 모순된 방식으로 기재하는 게 말이 된다고 보는 것인가?
개인 관련 위치 변화 및 시점도 의심의 여지를 갖고 "주변에서는 내가 움직였다고 하지만 내가 볼땐 나는 가만히 있었고 내 시점에 모든 주변이 움직인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고 그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았는데 왜 천체는 갑자기 "내가 서 있는 이 땅은 고정되어 있고 주변 태양이 움직인다고 성경에 기록되었지만 아니, 사실 성경은 땅은 움직이고 있고 태양은 고정되어 있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시점에 대한 대상만 바뀐 것일 뿐인데 갑자기 해석이 정반대로 바뀌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게 얼마나 잘못된 건지 보이는가?
성경 외 문서나 세력들도 그러지 않는데 그 이유는 진짜 그렇게 한다면 자신들의 생각이나 사상 등을 그것을 수용하는 대상자로 하여금 주입할 수 없는 것을 초월해서 자신들의 모든 발언과 표현 방식을 정반대로 해석하든 이상하게 해석하든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직 대상자 그 자신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모든 것 안에서 수용하기 때문에, 아니 수용보단 홀로 생각한 것을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아니 아는 게 아니라 모르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런 화법, 표현 방식은 애초에 존재할 수가 없는데 하물며 대주제이시자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모든 것을 개입하신 오류가 1점 1획도 없는 완전한 진리 그 자체인 성경이 그런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기재되어 있을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그렇다면 이것은 거의 뭐 엉터리 수준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논할 가치조차 없는 서적이 되는 것이다.
당장 소설부터 누구든지 문자 그대로 보는데 가령 팔이 2개가 아니라 8개 달린 인간의 모습을 보고 다른 등장인물들이 괴물이라고 말하면 독자 누가 봐도 그냥 줄거리 상에서 팔 8개 달린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이 등장했다고 생각하지 사실 그건 진짜 8개 달린 괴물이 아니라 그냥 팔 2개 달린 인간인데 너무 무서워서 팔 8개 달린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처럼 보였을 것이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그 소설 내에서 괴물이 아니라 그런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직접 부연 설명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누가 봐도 그냥 있는 그대로 일단 괴물이 맞다고 인식한 후에 작품성에 대해 평가할 때 추가적으로 어떤 사물이나 현상 등에 관한 이러이러한 비유나 상징도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영화 또한 마찬가지로 일단 시청자 누가봐도 그냥 괴물이 등장한다고 생각하지 사실 절대 괴물이 아니라 인간인데 너무 무서운 인간이라 괴물처럼 보인 것이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작품성을 평가할 때 그제야 이러이러한 비유나 상징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이 이처럼 소설이나 영화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선행되고 나서야 비유나 상징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성경만큼은 더 중요한 전자를 쏙 빼놓고 후자만 갖다붙이는 것은 이치에 절대 맞을 수 없는 모순 그 자체인 것이다.
마태복음 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가장 작은 명령들 중 하나를 어기고 사람들에게 그렇게 가르칠 자는 하늘의 왕국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리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그것들을 행하고 가르칠 자는 하늘의 왕국에서 위대한 자라고 불리리라.
Matthew 5:19 Whosoever therefore shall break one of these least commandments, and shall teach men so, he shall be called the least in the kingdom of heaven: but whosoever shall do and teach them, the same shall be called great in the kingdom of heaven.
요한일서 2:4 “나는 그분을 아노라.” 하고 말하면서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쟁이요, 진리가 그의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
1 John 2:4 He that saith, I know him, and keepeth not his commandments, is a liar, and the truth is not in him.
그렇기에 불신자들은 성경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인식하면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하니 소설로 치부하여 전혀 믿지 않는 것이고, 신자랍시고 해석하는 대다수는 성경 말씀 중 일부는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만 일부는 '~는 -이다'나 '~처럼'이 써진 것도 아닌 평서문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배운, 세상에서 말한 지식과 정보에 맞지 않으니 비유나 상징이다고 하는 것으로 성경 말씀을 선택적으로 믿는 것, 즉 성경 말씀 중 일부만 믿고 전체를 믿지 않는 것이다.
최소한 불신자들은 성경이 진리라고 생각 안 하니까 있는 그대로의 소설로 치부하니 솔직하기라도 하지 신자랍시고 선택적으로 받아드리는 이들은 사실 성경을 현실과 소설 그 경계 중간 어디쯤의 책으로 세상과 성경을 타협하며 믿고 있으면서 성경 말씀은 하나도 틀리지 않고 전부 진리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솔직하지 않고 그저 거짓말쟁이, 사기꾼에 불과할 따름이다.
갈라디아서 4:9 그러나 이제 너희가 하나님을 안 후에, 더 정확히 말하자면, 너희가 하나님께 알려진 후에, 어찌 너희가 약하고 비천한 초등 원리들로 돌아가서 거기에 속박되기를 다시 열망하느냐?
Galatians 4:9 But now, after that ye have known God, or rather are known of God, how turn ye again to the weak and beggarly elements, whereunto ye desire again to be in bondage?
골로새서 2:8 어떤 사람도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약탈하지 못하도록 경계하라. 그것들은 사람들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요, 세상의 초보 원리들을 따르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니라.
Colossians 2:8 Beware lest any man spoil you through philosophy and vain deceit, after the tradition of men, after the rudiments of the world, and not after Christ.
이처럼 성경을 문자 그대로 봐야 하나의 정확한 해석과 정확한 교리가 나오는 것인데 문자 그대로 하지 않는다면 좀만 자기 프레임에 벗어난 구절이 나올 시 비상식적이라는 둥 판단을 내려 그렇게 카톨릭식으로 비유니 상징이니 교훈이니 영적이니 하면서 뭐든 자기 입맛대로 많으면 수십 가지 이상의 해석을 하게 되는데, 이런 해석 방식은 결국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것으로서 결국 수많은 이단, 사이비 교리를 양산하는 원인이 되며, 급기야 아예 성경 말씀이 틀렸다는 둥 결론을 내리기까지 한다.
킹제임스 성경같이 정확한 종교개혁 성경을 봐도 카톨릭식 해석을 따르면 이러한데 하물며 한국은 변개만 36000군데 이상이나 이루어진 종교통합 성경인 개역 성경과 유사 카톨릭 교리인 장로교 등의 교단화된 교회가 주류인데다가 특유의 음모론과 개인주의 배척이 가장 심한 음폐론과 집단주의 끝판왕답게 과학이나 그것의 근본인 철학과 같은 세상의 초등 원리를 성경보다 우선시하고 유럽이나 미국 같은 수많은 기독교 문화권 국가들한테 있어서 초대교회 교리인 세대주의와 킹제임스 성경은 최종 권위로 두는 주류임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자국 교회의 결정에 눈치보며 반대된 생각을 갖지 않고 더 권위 있다는 식으로 올려치기 해서 그것들을 배척하고 이단 취급하는, 마치 백신 코로나 사태 때 반대 운동하고 있는 해외 국가에 대해서 비정상 취급하고 도리어 자국 정부의 방역 수칙에 눈치보며 반대된 생각을 갖지 않고 꼬박꼬박 지킨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 마냥 그것까지 짬뽕된 형태로 해석하는데 전세계에서 이단, 사이비 비율이 가장 압도적으로 높게 나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디모데후서 3:10 그러나 너는 나의 교리와 삶의 방식과 목적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성도의 사랑과 인내를 충분히 알았으며,
2 Timothy 3:10 But thou hast fully known my doctrine, manner of life, purpose, faith, longsuffering, charity, patience,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계하기에 유익하니,
2 Timothy 3:16 All 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and is profitable for doctrine, for reproof, for correction, for instruction in righteousness:
장로교 등 절대다수 한국 교회의 문제점이 또한 문자 그대로 쓰인 성경 말씀의 교리들을 죄다 그저 교훈적으로만 적용하는 것에 있다.
교리가 얼마나 중요하면 다른 것들보다 가장 먼저 언급했지만 역시 36000군데 이상이나 변개된 개역 성경답게 각 구절의 교리를 교훈으로 바꾼 것처럼 교리적으로 정확한 성경을 왜 써야하는가를 명백히 보여주기에 종교개혁 성경, 그 중에서도 특히 특유의 하나님의 수비학으로 가득한 가장 완전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보는 것이 좋지만 영어를 잘 해석할 줄 모른다면 종교통합 성경인 개역 성경을 볼 바에 차라리 한글로 번역된 킹제임스 성경을, 그 중에서 최대한 직역하여 영어 킹제임스를 가장 근사값으로 번역한 표준 킹제임스 성경을 보거나 표준 킹제임스 성경과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비교하며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입증한다.
아무리 교훈이니 사랑이니 강조해봤자 잘못 적용하면 카톨릭처럼 동성애자도 사랑해야 한다는 교리가 나오고, 아무리 사람 좋은 것처럼 보이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더라도 섬기는 대상이 이만희 같은 사이비 교주면 결국 지옥에 가는 것이며, 아직 죽지 않고 교회 휴거 일어난 후 이 땅의 환란에 넘어가면 결국 짐승의 표를 받게 되는 의롭지 못하는, 정말 사람은 좋다고 볼 수도 없다.
이미 코로나, 백신 사태 때 다 드러났지만 사람은 좋다고 통상적으로 일컬어지는 자들의 절대다수가 꼬박꼬박 방역 수칙이 진짜라고 철썩 같이 믿고 마스크, PCR, 백신 따위를 준수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반대하는 이들을 집요하게 공격해왔다는 것으로도 증명됐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자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께서도 역시 성경에서 사랑의 측면보다 공의의 측면에 대해 훨씬 높은 빈도와 높은 비중으로 다루시듯이 교훈과 사랑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들의 중요도가 교리와 공의를 앞서지 못한다는 것이기에 결국 다 잘해도 첫 단추를 잘못 끼면 허송세월이지만 다 못해도 첫 단추만 잘 낀다면 시작이 반이다고 하는 것처럼 이미 반은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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