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병구 전 민주동지회장
- 2017. 06. 04
부마항쟁에 대한 김재규의 보고를 듣고
부마항쟁이 일어났을때 김재규가 "부마사태는 체제저항과 정책불신 및 물가고에 대한 반발에
조세저항까지 겹친 민란이나 다름없다. 곧 전국 5대 도시로 확산 될것 같다”는 예측 보고를 했다.
그러자 보고를 받은 박정희는 벌컥 화를 내며 "앞으로 부산 같은 사태가 생기면 이제는 내가 직접
발포명령을 내리겠다"면서 "자유당은 4·19때 최인규나 곽영주가 발포 명령을 해서 사형을 당했지만,
내가 직접 명령을 하면 나를 누가 사형 하겠느냐"고 역정을 냈다.
이상 간단히 박정희와 함께한 측근들이 듣고 본 박정희의 실상을 가감 없이 열거했다.
박정희가 알아서 물러 났을것 이라고 증언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그는 반란죄의 수괴이기 때문에
사실 순리로 물러날수도 없었다. 그래서 가끔 물러날 것 처럼 말도 하고, 그럴듯한 제스처도 취하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물러날수도 없었고, 그래서 물러날 생각도 없었던 것이다.
박정희가 살아 있었다면 종래는 다른 후진국들 처럼 쿠테타는 또 쿠테타를 부르고, 그나마 이룩한 성과도
새로운 쿠테타 세력에 의해서 파괴되는 불행이 연속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지금 혼란을 겪고 있는
중동의 시리아나 리비아처럼 말이다.
내란 쿠데타로 정권을 잡으면 절대 스스로 물러나지 못한다..인류 역사에서 스스로 물러난 독재자는 없다.
왜? 쿠데타 과정에서 수 많은 불법과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이 따른다. 물러나면 내란수괴는 사형이다.
독재자는 죽거나 국민들에게 쫒겨나거나 둘중 하나..
고향후배 총에 죽는게 그 독재자의 운명이었다.
- 2011-10-17
김재규: 금년도 9월달에 부산에 계엄이 있지 않았습니까?(※1979년 10월16일 부마항쟁이 발생하자
박정희 정권은 18일 0시를 기해 부산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함)
변호사: 그렇죠.
김재규: 그 이후에 대통령하고 같이 식사를 했어요. 자유당 발언이 있어가지고.
내무장관 최인규(※1960년 3·15 부정선거를 지휘한 혐의로 투옥된 뒤 사형됨)가 발포 명령을 해가지고는.
변호사: 다 죽였지요.
김재규: ‘나는 그런 짓 안 한다. 나는 내가 직접 한다.
그렇게 해서 대통령 물러가면 그만이지. 나를 사임까지 시키겠느냐?’ 이런 정도의 강경한 분입니다.
변호사: 아! 발포 명령을 자기가 하겠다고 그래요?
김재규: 내가 직접 발포 명령 한다.
변호사: 박정희가?
김재규: 예.
1979년 10·26 직후 ‘김재규 최초의 진술 육성 테이프’(사진)를 32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한다.
‘재야 민주화운동의 산증인’ 김정남(69) 선생이 18일부터 <한겨레>에 연재하는 ‘10·26 32돌
특별기획-박정희 시대를 증언한다’를 통해서다.
매주 1회씩 연재할 증언의 첫회는 ‘유신의 심장을 쏜 김재규와 독재자 박정희 최후의 순간’으로 시작한다.
김재규의 육성 테이프는 재판에 앞서 그해 11월30일 남한산성 육군교도소로 찾아간 류택형 변호사와
맨 처음 대화한 내용을 녹음한 것이다. 법정 최후진술과 사형 전날의 유언 등 지금까지 이미 공개된
김재규의 녹취록과 비교할 수 없는 ‘10·26의 생생한 진상’이 날것 그대로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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