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를 어깨 위로 올리지 마라'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진리처럼 여깁니다.


왜냐하면 어깨 위로 올라간 앵무새는 주인의 서열을 자신보다 낮잡아봐서 버릇없고 공격적으로 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앵무새 어깨 금지령'은 커뮤니티의 종류를 막론하고 등장한다 - 커뮤대통합>


이 말은 나름의 과학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1. 앵무새는 비행하기 좋고 포식자를 피할 수 있는 높은 장소를 선호한다

2. 서열이 높은 앵무새는 서열이 낮은 앵무새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지낸다

3. 따라서 앵무새가 주인보다 높은 위치에 있으면 주인의 서열을 자신보다 낮다고 인식한다



<흔한 앵무새 인성>


그러나 설명은 그럴 듯 할 진 몰라도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조목조목 따져봐야만 합니다.


앵무새는 정말로 높은 장소를 선호할까요? 그리고 앵무새 집단에서 서열이 높은 새는 더 높은 곳에서 지낼까요?


과학적인 증거를 찾기 위해서 앵무새의 위치와 집단 내의 서열 사이의 관계에 대한 논문을 찾아봤지만, 아쉽게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대신에 다른 새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 결과를 찾았습니다.


1977년에 Ian R. Swingland가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까마귀 사회적인 지위가 높을수록 더 높은 장소에 앉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서열이 높은 까마귀가 높은 장소를 차지한다는 뜻이고, 이는 까마귀가 높은 장소를 선호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1]

<까마귀에서 횃대의 높이와 사회적 지위의 연관성; doi.org/10.1111/j.1469-7998.1977.tb04167.x>


이 논문은 새가 머무는 높이와 사회적 지위 사이의 관계를 입증한 최초의 논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논문이 '서열이 높은 새가 더 높은 장소에 있다'는 말의 기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까마귀에 한정된 연구였지만 널리 퍼지면서 잘못 인용되거나 과장되었고


결국엔 조류 전체를 설명하는 이론이 되어버렸다고 추측합니다.


결국엔 앵무새에게도 적용되어서 '서열이 높은 앵무새가 더 높은 장소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의 사례를 통해 전체를 설명하려 들다니, 너무 확대해석이 심한 건 아닐까요?


위 논문의 후속연구는 40년 뒤인 2017년에 발표됩니다.


[2]

<비둘기와 가마우지에서 횃대의 높이와 사회적 지위의 연관성; doi.org/10.1111/ibi.12447>


2017년 발표된 Steven J. Portugal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비둘기와 가마우지도 까마귀처럼 높은 서열의 새가 높은 장소를 차지했습니다.


비둘기(비둘기목)와 가마우지(가마우지목), 그리고 1977년에 발표된 까마귀(참새목)는 모두 전혀 다른 목(order)으로 분류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종에서 모두 동일하게 서열과 높이 사이의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저자는 이런 서열과 높이의 연관성이 조류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앵무새도 까마귀나 비둘기, 가마우지처럼 서열이 높은 개체가 더 높은 장소를 선호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현재까지 앵무새에서 서열과 높이의 연관성을 관찰한 연구결과는 없기 때문에 가능성을 추측할 뿐입니다.




슬슬 헷갈리실 겁니다..


"그래서? '앵무새를 어깨 위로 올리지 마라'는 맞는 말이야 틀린 말이야!!"라고 외치고 계시겠죠.


이쯤에서 깔끔하게 정리해드리겠습니다.


틀린 말입니다.


왜냐하면 세번째 이유인 '앵무새가 주인보다 높은 위치에 있으면 주인의 서열을 자신보다 낮다고 인식한다'가 완전히 틀렸기 때문이죠.


앞서 보여드린 논문들을 다시 떠올려보십시오.


높은 곳에 있는 새일수록 서열이 더 높은 것은 맞지만, 그 새의 '서열이 높은 이유'가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란 내용이 아닙니다.


즉 새가 머무는 장소(횃대)의 높이는 서열에 의한 결과일 뿐, 서열을 정하는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죠.


<높은 가지에 앉는다고 서열이 저절로 바뀌지는 않는다>


새의 서열은 먹이, 배우자, 영역 등을 두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서로 싸우거나 위협하는 행위를 통해 승자와 패자가 나뉘면서 결정됩니다.


따라서 신체적인 요소(체중, 신장, 나이, 질병)가 새의 서열을 결정하는데 중요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1][2].


단순히 높은 곳에 앉는다고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앵무새를 어깨 위로 올리지 마라'


해외에서는 이것을 'Height dominance'라고 부릅니다.


앵무새 블로거 Pamela Clark의 게시글[3]에 의하면 'Height dominance'는 1990년대에 처음 나타났습니다.


1992년에 Blanchard는 사람과 앵무새의 관계가 지배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앵무새에게 지배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앵무새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을 권고했습니다.


Blanchard의 급진적인 아이디어는 당시의 앵무새 사육사들에게 널리 퍼지게 되었고


'Height dominance'는 그 시기에 등장하여 통제지배공식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사육사들은 앵무새를 사람보다 낮은 곳에서 올라오지 못하게 통제하여 앵무새와의 관계를 지배하고


앵무새의 여러 문제행동들(공격성, 비명, 물기 등)을 교정하는 방법이 가장 탁월하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것처럼 'Height dominance'를 뒷받침하는 과학적인 증거없습니다.


오히려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어하는 앵무새의 본능적인 욕구를 거세하는 학대 행위에 가깝습니다.


강압적으로 통제되는 환경에서 억압되고 의기소침해진 앵무새가 설령 말을 잘 듣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올바른 방법절대 아닙니다.



결국 사람들은 'Height dominance'의 허구성부작용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고 더 나은 사육법을 찾기 위해 논의했습니다.


그런 논의의 첫걸음 중 하나로, 2001년에 게시된 25년 경력의 앵무새 훈련사 Steve Martin의 기고문[4]이 있습니다.


기고문에서 Steve Martin은 'Height dominance'는 완전히 허구이며 앵무새는 사람을 지배하려 들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앵무새를 통제하지 말고 앵무새의 행동을 통해 앵무새의 심리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더 나아가 적절한 보상을 활용한 '긍정강화 (Positive reinforcement)'야 말로 앵무새의 행동을 교정하는 올바른 방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한 노력들이 빛을 발하면서 2010년대 즈음부터는 'Height dominance'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앵무새가 어깨에 올라오는 행위를 사람과 동등한 위치에서 더 깊은 유대감을 느끼기 위한 행동으로 받아들이고 있죠.


앵무새를 통제하고 지배하는 대상이 아니라 같은 눈높이에서 함께 살아가는 친구로 대하도록 인식이 바뀐 겁니다.


<지배하는 관계를 벗어나 서로 평등한 친구가 된다>


'Height dominance'에서 벗어난 해외의 앵무새 커뮤니티와는 달리 한국의 앵무새 커뮤니티는 아직 90년대에 머물러있는 느낌입니다.


왜 우리나라는 아직도 'Height dominance'를 맹신하는 걸까요?


'Height dominance'는 어떻게 국내에 퍼진 걸까요?


그 이면엔 한 권의 이 있습니다.


'깃털 달린 아인슈타인 앵무새'


<국내 앵무새 커뮤니티의 교과서이자 성경, 깃털 없는 앵무새 아인슈타인>


2010, 앵무새 사육에 관한 정보를 접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혜성과 같이 나타난 이 책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국 앵무새 커뮤니티의 교과서로 사랑 받아왔습니다.


앵무새 불모지인 한국에 올바른 사육법을 전하려 노력하신


앵무새 사육사이시자 경영학박사이신 심용주 선생님의 업적은 마땅히 칭송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책은 1990년대에나 유행했던 'Height dominance'를 필두로 하는 지배적인 관계의 사육 방법을 제시합니다.


앵무새는 사람의 어깨 위로 올라갈 수 없으며, 새장의 출입은 사람의 통제를 받아야 하고, 주인은 앵무새를 지배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심용주 선생님이 1990~2000년대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집대성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던 사육법이 수록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안타깝게도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한국의 앵무새 커뮤니티는 'Height dominance'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였고


13년이나 지난 지금에는 해외에선 철지난 잘못된 이론이라며 거의 폐기된 상황에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진리라면서 'Height dominance'를 받들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결국 모든 책임우리에게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새로운 앵무새 사육법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앵무새를 사랑하시는 여러분들은 이미 당연하게 생각하시는, 뻔한 내용일지도 모릅니다.


앵무새는 사람의 어깨 위로 올라와도 됩니다. 심지어 머리 위로 올라가도 괜찮습니다.


당신과 같은 눈높이에서 앵무새는 더 깊은 유대감을 느끼고 기뻐할 겁니다.


앵무새는 높은 곳에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새장을 가능한 높은 곳에 두세요.


앵무새와 사람의 안전을 위해 때론 통제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앵무새를 지배하려 들지는 마세요. 그 아이는 당신의 친구입니다.





참고

[1] Swingland, Ian R. "The social and spatial organization of winter communal roosting in Rooks (Corvus fmgilegus)." Journal of Zoology 182.4 (1977): 509-528.

[2] Portugal, Steven J., et al. "Perch height predicts dominance rank in birds." Ibis 159.2 (2017): 456-462.

[3] blogpamelaclarkonline.com/tag/height-dominance/

[4] issuu.com/worldparrottrust/docs/steve_martin_height_dominance?e=2859271/43270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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