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른의 생일. 


난 이혼남이 되었다. 


창밖엔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얀 눈송이들이 가로등 불빛 사이로 유영하듯 흩날린다. 


서른 평생 처음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쓴 연기가 목을 타고 내려갔고, 이내 기침으로 온몸이 흔들렸다. 


"후우...."


연기인지 입김인지 모를 한숨이 하얗게 뱉어져 창문에 서린다.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후회, 허무, 그리고 더 큰 공허함이 나를 덮쳤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세상도. 전부. 




***




10년전. 이제 막 교복을 벗은 나는 스무살의 대학생이었다. 


태어나 처음 가본 클럽에서 한 여자를 만났고, 우린 한순간의 불꽃처럼 타올랐다. 


그 불장난은 내 인생에 아내와 딸이라는 이름의 화인을 새겼다. 


그 후 모든 게 달라졌다. 


철부지 같은 나를 아빠라 부르던 작은 아이의 눈망울과, 나와 아이를 원망하면서도 내 손을 꼭 잡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아내.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이 두 사람만을 보고 일하며 헌신했다. 


내 젊음과 꿈, 욕망. 미래까지 전부 저당 잡힌 채로.


그리고 오늘 아침, 2주동안 연락 두절이던 아내로부터 날아온 문자 하나가 내 인생을 거꾸로 뒤집어놓았다. 


'그만 끝내자.' 


단순하고 차가운 문장이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 문장을 몇 번이고 문질렀다. 


마치 그것이 지워질 거라 믿는 사람처럼. 


하지만 아무리 문질러도 문자 속 문장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끝이라니. 


어떻게 그리 쉽게 끝이란 말을 내뱉을 수 있는 거지. 


너에게 나와 우리 딸은. 가족은 그렇게 가벼운 의미였던거야? 


그동안 내뱉어온 모진말들이 힘들다는 투정이 아니라 전부 진심이었던 거냐고.


"...어떻게. 넌 어떻게 그게 쉬울수있어."


서른.


어릴땐, 서른 즈음 되면 어른이 되어있을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아무래도 난 나이를 헛으로 먹은것 같았다.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고 담배 한개비에 의지해 겨우 버티고 서있는 내 모습이 한심했다. 


유행하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후회할일이 하나도 없었던 과거 그시절로 다시 돌아갈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그런 편리한 일이 현실에서 벌어질리는 없었다. 


내가 할수있는건 그저 담배와 소주 한병에 기대 오늘 하루를 흘려보내는것. 


그것뿐이다. 


시체처럼 허우적거리는 몸을 이끌고 냉장고로 걸어가 소주 한 병을 꺼냈다. 


나는 술병을 들고 창가로 돌아와 다시 거리를 내려다 봤다. 


눈송이는 여전히 흩날리고 있었다. 


평화롭게. 


그 누구에게도 아무일 없다는듯이. 


".....인생. 시팔."


그래, 오늘 하루만 무너지자.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으니 하루쯤은 괜찮지 않겠나. 


스스로를 그렇게 설득하며 스마트폰을 내려놨다. 


오늘은 자체휴업이었다. 


잔 없이 입으로 알콜을 우겨넣기를 잠시. 


내리는 하얀 눈을 바라보며 난 그렇게 의식을 잃었다.



***



다음날 아침. 


평소와 별다를 것 없는 하루가 시작됐다. 


나는 숙취로 깨질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현관을 나섰다. 


"장사고 뭐고 다 때려칠까. 시팔."


사실 이제와 이게 무슨의미가 있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 


대학을 중퇴한 뒤, 10년동안 해본일 안해본일 없이 이리저리 구른끝에 겨우 갖게된 내 사업장. 


대학가 구석에 자리한 작은 이자카야 하나가 지금 내가 가진 전부였다. 


이제 아내도, 사랑하는 딸도 곁에 없으니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거 접으면 이 나이에 내가 뭘하겠냐. 아영이는 또 어쩌고."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동네 시장으로 식재료를 사러 나섰다. 


사회인이란 그런 존재다. 


힘들고 괴로워도, 해야 할 일은 해야한다. 


가정이 무너지고 세상이 무너졌어도, 딸아이만은 지켜야 하는게 아버지였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유난히 발걸음이 무거웠다. 


숨도, 어깨도 누군가에게 짓눌리는 듯 하여 도저히 제 컨디션으로 일을 할 수 없을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뭐라도 좋으니. 이 엿같은 기분을 해소할만한게 필요했다.


그때였다. 


까앙-! 


까앙-!


어디선가 귓가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타격음이 들려왔다. 


그건 쇠방망이가 공과 부딪히는 소리였다. 


고개를 돌리니 낡은 동전야구장이 눈에 들어왔다.


야구장. 내 인생에서 한 번도 관심을 둔 적 없는 곳. 


하지만 지금, 저 소리가 어쩌면 내 답답함을 해소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발길이 돌아갔다.

 

한걸음. 두걸음.


어느새 도착한 야구장 문 앞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망설였다.


쇠로 된 문짝은 녹이 슬어있었다. 


투박한 간판 아래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난 굳은 얼굴로 낡은 문을 밀었다.


끼이익-


"계십니까..?"


야구장 안은 생각보다 좁았다.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도 딱히 없었으며.


사람이라곤 고등학생 몇 명과 50대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 한 명 뿐이었다. 


고등부 선수들과 감독인가? 


나도 모르게 그들을 응시하고 있자니 이내 그들의 이목도 내게 집중되는 것을 느꼈다.


"뭐야, 저 아저씨. 선출인가?"

"와, 덩치가 무슨."

"조폭아니야 조폭?"


...다 들린다 이녀석들아.


요새 MZ친구들은 남 눈치도 잘 안보고 되바라졌다고 하더니. 


사실인가보다.


우리 딸 아영이는 안그런데 말이지.


아무튼.


키 198cm에 몸무게 103kg. 이런 내 덩치 탓에 학생들의 반응이 새삼스럽진 않았다.


사실, 태어나서 제대로 된 운동 한 번 해본 적 없던 내가 이런 반응에 익숙해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살면서 스카우트라며 명함을 건네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만난 경험이 있었으니까.


'세계 정상에 설 재능을 가졌다.'

'넌 꼭 격투기를 해야 해.'


그런 말을 들으며 받아둔 명함만 해도 유도, 주짓수, 씨름, 레슬링, 킥복싱 같은 투기 종목은 물론이고. 축구, 야구, 농구, 미식축구, 하키, 심지어 테니스까지 수십종목이 넘었다.


어떤 스포츠든 간에 내 몸뚱이만 보면 모두가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곤 했었다.


평생 내가 받은 명함만 모아도 수첩 세권은 될정도로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저기 감독으로 보이는 내 또래 중년 남성분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내 황금몸뚱이를 보더니 불타는 시선으로 이리저리 스캔을 때리기 시작했으니까.


물론, 마지막에 내 얼굴을 본 순간 그 모든게 실망으로 변했다.


거, 미안합니다.


아저씨라서.


"크흠. 흠.."


괜히 헛기침을 한번 하며 제일 구석으로 다가가 배트를 들었다. 


이제 나에게 관심을 꺼줬으면 하는 의도가 다분히 담긴 행동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그들은 나를 향한 시선을 멈출생각이 없어보였다.


호기심? 기대? 그게 정확히 무슨 감정이 담긴 시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딸에게 배운 요즘말론 알빠노다.


그런것까지 신경쓰기엔 지금 내 감정상태가 온전치 못하니까.


"음. 근데 이거...." 


젠장. 어떻게 하는건질 모르겠다. 


사는게 바빠서 오락은 커녕 게임기조차 언제 만져본지 기억도 안날 정도라.


음. 여기 구멍이 있네. 


동전을 집어넣으면 되나? 


스읍. 500원을 넣어야 돼 100원을 넣어야 돼. 


이놈의 세상은 아저씨에 대한 배려가 1도 없구만 이거. 


"처음 오셨나 봅니다?" 


그때였다. 


옆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언제 다가왔는지 어느새 내 옆에 서있는 한 사람. 


감독으로 보였던 중년 남자였다. 


"아, 예. 스트레스 해소겸.. 재미있어보여서 하하.." 


속사정을 전부 말할수 없으니 대충 둘러댄 변명이었다. 


사실 꽤 민망했다. 할짓없는 백수처럼 보였을까봐. 


하지만 남자는 그런 내생각은 짐작도 못한다는듯 미소를 던지며 말을 걸어왔다. 


"허허허. 야구는 해보신적이 있고요?" 


"아뇨. 아예 처음입니다." 


"저런. 완전 초심자가 치기엔 쉽지 않을텐데." 


남자가 방망이 하나를 들어 자연스러운 배팅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그래도, 워낙 체격도 좋으시고. 아직 나이도 젊으신거 같고. 딱 봐도 타종목 선출이신데. 기본적인 운동 신경이 있으실거니 막 엄청 어렵진 않을겁니다." 


음. 운동이라곤 헬스도 해본적 없는데. 굳이 정정하지 않고 어설픈 미소를 짓고있자니, 남자가 내 손에 배트를 쥐여주며 미소를 지었다. 


"자, 한번 잡아보세요. 초심자니 방망이는 짧게. 이렇게 오른손을 왼손 위로가게 파지하시고. 아, 오른손잡이시죠?" 


"아, 예. 오른손. 맞아요. 감사합니다." 


얼떨결에 남자가 이끄는대로 이리저리 자세를 취하다보니 제법 타격하는 자세가 갖춰지기 시작했다. 


"다리는 어깨 넓이 정도만큼 벌리고, 살짝 구부리면 좋아요. 몸에 힘도 좀 빼시고. 특히 어깨에 힘이 안들어가야..... 음...? 이미 그러고 계시네. 가만있어봐. 자세가 벌써 나오시는데? 진짜 방망이 처음 잡아본게 맞아요?" 


"아, 예. 정말 처음입니다. 하하.." 


음. 그냥 자연스럽게 편한 타격자세를 만든것 뿐인데. 


운이 좋았는지 생각보다 고칠게 없나보다.


"허허. 좋아요. 좋습니다. 확실히 선출이시라 그런지 감각이 좋으시네. 그럼 그대로 한번 휘둘러 볼까요? 사실 전문적으로 배우실게 아니니까 다칠만한 쿠세만 없으면 되거든.....어.. 어어?" 


후우웅-! 


후우웅-! 


내키는대로 방망이를 두어번 휘둘러봤다. 


온 몸의 체중이 회전력을 가득 품고 방망이로 전달되는게 느껴졌다. 


덧붙여, 가볍고 날카롭게 바람을 가르는 배트끝의 감각까지도. 


근데, 좀 이상하다. 원래 배트끝마저 내 손인것처럼 민감하게 느껴지는게 정상인가? 


"와, 이거 되게 기분이 좋네요. 공이 없어도 휘두르는것 만으로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거 같습니다. 하하." 


".....허." 


그렇게 신나서 방망이를 네댓번 휘둘러보는데 뭔가 이상한 기류가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았다. 


내게 친절한 목소리로 배트잡는법을 알려주던 남자가 갑자기 아무 말도 없는게 이상했거든. 


그런데. 


"....아니 무슨 스윙 자세가 프로보다 깨끗해? 당신 진짜 초심자 맞아요? 젊은사람이 나이든 사람 붙잡고 장난치고 그러면 안됩니다. 쯧." 


...예? 제 자세가, 프로보다 뭐요?


"아, 아니. 저 정말로 오늘 방망이란걸 처음 잡아보는..."


"됐습니다, 됐어요. 거, 내 눈이 옹이구멍인줄 아쇼? 이래뵈도 내가 한울고 야구부 감독이외다! 내가 야구 처음하는 초보자를 한두명 본줄 압니까. 에잉."


....억울하다. 그런데 이미 나를 거짓말쟁이로 단정지어버린 사람을 설득하기엔 내가 가진 야구지식도 모자랐고. 그럴 의욕도 솔직히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냥 해명을 포기하기로 했다.


어차피 오늘 보고 말 사람.


호의를 갖고 도와주려 한 건 고마웠지만, 제멋대로 오해를 해버린것도,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며 역정을낸것도 결국 저 사람이었다. 


그러니 마음의 빚같은건 없다.


스읍. 


아무튼 이대로 그냥 가기도 그러니 공이나 몇번 때려보고 가야지.


근데, 이거 공이 나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거야 또.


사실 아직 옆에있는 야구부 감독에게 물어보면 쉽게 해결될 일이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아 직접 기계의 버튼을 이것저것 눌러봤다. 


이걸 누르면 되나?


음 속도가 올라가네. 130. 140. 150km?


"어, 어어! 조심! 뒤에 공!"


그때, 갑자기 등뒤에서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지켜보던 감독의 다급한 외침 또한 들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시야 끝에 무언가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눈앞으로 쏜살같이 달려드는 작은 흰색의 공.


150km짜리 직구였다.


....큰일났다.


"허, 허억!"


어쩌지?


쳐야하나?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단어들.


이미 회피할 시간은 없었다.


그렇다고 배트를 잡고 공을 때릴 자세를 취하기에도 물리적인 한계가 있어 보였다.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


아니면 최대한 안다칠만한 부위에 맞기라도 해야해.


그 짧은 순간 그렇게 생각하며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빼려 했다.


그런데.


"뭐, 뭣?"


이변이 벌어졌다.


내 몸이 내 생각과 전혀 다르게 움직인 것이다.


내 양손이.


내 다리가.


마치 귀신에 씌이기라도 한 듯,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분명 공에 맞지않기 위해 엉덩이를 뒤로 뺐을 뿐인데.


엉거주춤한 자세로 완전히 무너진 그 자세로도, 양 발이 제대로 고정되지 않아 하반신 전체가 마치 넘어질듯 휘청거리는 그 불안한 형태로도,


내 몸은 기묘한 밸런스로 타격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난 공을 피해 도망치지 않았다.


안전한 부위로 맞기위해 몸을 돌리지도 않았다.


단지,


까앙-!


휘둘렀을 뿐이다.


마구잡이로 무너진 자세로, 스윙을.


묵직한 충격이 손바닥을 울렸다.


그와 동시에 모든 소리가 멈춘 듯했다.


감독도, 주변의 학생들도, 나 자신도.


모두 얼어붙은 채 그 장면을 바라봤다.


"어...?"


벙찐듯한 내 목소리가 입밖으로 새어나온다.


손바닥이 화끈거렸다.


뒤늦게 매우 놀란듯한 감독이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 지금 뭘 한 거야...? 저, 저런 자세에서 홈런...?"


나 역시 손바닥에 남은 타격의 감촉을 느끼며 멍하니 서 있었다.


또르르 굴러온, 하얀 볼이 발끝에 닿은줄도 모른채.


"...이게.. 무슨?"


나지막이 내뱉은 혼잣말.


하지만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지독한 침묵이, 마치 장작불의 잔열처럼 서서히 공간을 채워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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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난하게 회귀없는 스포츠물 써볼라 햇는데 이건 으떰?


다써놓고 읽어보니 너무 힘이 들어가서 무거운거같기도?ㅋ


뭔가 쓰기전에 단편적으로 생각한 흐름이랑 다 써놓고 나오는 결과물이랑 꽤 차이가 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