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학당
고종황제는 1887년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라는 뜻으로 배재학당(培材學堂)이란 이름을 하사하였다. 배재학당이 있는 정동은 한국 근대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대한제국의 정궁이라고 할 수 있는 덕수궁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외교, 정치, 종교, 교육, 문화 등 역동적인 역사를 고스란히 머금고 있는 공간이다. 특히 배재학당 동관 건물은 서울시 기념물 제 1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건물은 현재 다양한 근대 유물들과 함께 배재학당역사박물관으로 이용하면서 시대를 넘어 현재의 학생들을 위한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뒤로 배재대학교 빌딩과 배재 빌딩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노래하고 노래하고 다시 합시다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영원무궁하도록
라라라라 시스뿜바 배재학당 시스뿜바
라라라라 시스뿜바 배재학당 시스뿜바"
서울에는 감리교 학교로서 배화(培花)와 광성(光星)도 있지만 배화는 사직동에 있고 광성은 서강에 있을뿐만 아니라 배재나 이화만큼 연륜과 연혁이 두드러지지 못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배화는 미국 남감리교단이 1898년 설립했고 광성은 원래 평양에서 1894년 설립되었다가 사변후 서울로 옮긴 학교이다. 장로교 학교로는 정신(貞信)과 경신(儆新)이 있다. 하지만 배재와 이화처럼 바로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는 것은 아니다. 황실에 의해 세워진 학교로는 양정, 휘문, 진명, 숙명이 있다. 하지만 같은 가문이지만 역시 서로 떨어져 있어서 내왕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배재와 이화는 달랐다. 운동장에서 노래부르는 소리까지 잘 들릴 정도로 옆집에 위치하고 있었다. 정동교회에서 배재-이화 연합예배를 드리는 경우고 많았고 두 학교가 협동하여 행사를 진행하는 일도 더러 있었다. 더구나 배재학당을 설립하신 아펜젤러 목사님의 따님이 이화학당 교장 선생님을 맡아 한 일도 있고 이화학당 역사상 유일한 남성 교장 선생님인 신봉조 선생님은 배재 출신이었다.
배재학당의 교훈도 별나다. 다른 학교들 같으면 예를 들어 '정직하자, 참되거라, 진리를 추구하자...'등등의 거룩한 단어가 들어가는 것이 통상이다. 배재학당의 경우는 한문지식이 있어야 읽을수 있는 한자성어로 되어 있다. 욕위대자 당위인역(慾爲大者 當爲人役)이다.
- 신약성경 마태복음 20장 26-28절.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남을 섬기라'(Whoever would be great among you must be your servant)는 구절을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사족이지만, 한 집안인 이화학당의 교훈은 '자유 사랑 평화'의 세 글자이다. 그래서 이화 교복의 하얀 칼라에 선이 세개 들어가 있었다.
배재학당은 고종황제께서 교명을 내리신 1886년 6월 8일을, 이화학당은 명성황후께서 교명을 내리신 1887년 5월 30일을 개교기념일로 삼고 있다.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은 일제 식민 시대에 항거하는 대한독립운동의 요람이었으며 애국지사들을 배양한 교육기관이다. 배재공원은 작은 공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신문화, 신교육의 발상지 답게 몇개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배재학당 터가 동시에 남궁억 선생의 집터였다는 기념비이다. 남궁억 선생은 찬송가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의 가사를 만드신 독립운동가이시다. 남궁억 선생은 일제시대에 무궁화 보급운동을 벌여 일제로부터 탄압을 받았다. 무궁화를 우리나라 국화처럼 존중하는 것은 남궁억 선생의 공로이다.
배재대학은 대전에 있다. 배재대학이 세워지게 된 것은 1956년 이승만 대통령께서 배재학당 개교기념식에 참석하시어 '배재대학을 세우라'라고 말씀하신데 따른 것이다. 처음에는 수유리 방면에 배재대학을 세우려 했으나 4.19와 5.16등의 변화 때문에 지지부진하였으며 결국 대전으로 터전을 확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옛 배재학당이 있던 자리 옆의 부지를 배재재단이 매입하여 이곳에 배재대학교가 사용하는 큰 빌딩을 건축하였으니 배재빌딩이다.
배재대학은 대전에 있다. 배재대학이 세워지게 된 것은 1956년 이승만 대통령께서 배재학당 개교기념식에 참석하시어 '배재대학을 세우라'라고 말씀하신데 따른 것이다. 처음에는 수유리 방면에 배재대학을 세우려 했으나 4.19와 5.16등의 변화 때문에 지지부진하였으며 결국 대전으로 터전을 확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옛 배재학당이 있던 자리 옆의 부지를 배재재단이 매입하여 이곳에 배재대학교가 사용하는 큰 빌딩을 건축하였으니 배재빌딩이다.
출처
http://m.blog.daum.net/johnkchung/6619202
배재대학교 학술지원센터
서울 중구 서소문로 103 (우)04516
서울의 교통요지인 시청 부근의 배재정동빌딩 1층에 위치해 있습니다.
◎ 설립 목적
1. 각종 학회 및 대학, 중고교의 학술활동 지원을 통한 지적교류의 거점화 구축
2. 배재대학교 유형, 무형 자산의 사회적 기여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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