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ichaiuniv1919년 3월 1일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에 알린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입니다.
3·1운동이 비폭력 저항운동이라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일제는 해방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무력으로 공포정치를 실현하고자 하였습니다. 3·1운동을 시발점으로 하여 우리 국민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이 더욱 커졌고, 계속된 독립운동은 8.15 광복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의미있는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배재대 인스타
자랑스러운 배재인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한글학자 주시경,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개화기 지식인 서재필, 윤치호, 김지호, 의학자이자 사회사업가 오긍선, 민족 시인 김소월 소설가 나도향, 여윤형(자퇴), 최초의 한국인 음악교사, 애국가 작사가로 거론되는 인물중 하나인 김인식.
+국내 최초의 일간신문인 매일신문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이권침탈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협성회회보(왼쪽)는 배재학당 학생들이 만든 협성회의 회보로, 자주독립정신을 고취했다. 신문박물관 제공
협성회회보(매일신문)
협성회회보는 배재학당 학생들이 만든 협성회(協成會)에서 발행한 회보입니다.
협성회 회보(協成會 會報)는 배재학당의 학생회인 협성회(協成會)가 1898.1.1 창간한 주간 신문이다. 편집 체재와 내용은 일반을 상대로 하는 종합지의 성격을 띠었으며 외부의 보조를 받지 않고 발행된 신문이다. 자주 독립 정신 고취 및 비판기능 등을 갖춘 신문으로서 최초의 일간지인 매일신문의 기초가 되었으며, 우리나라 근대 신문발달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배재학당은 선교사인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1858∼1902)가 1885년에 설립한 최초의 근대식 중등교육기관입니다. 여기서 강의를 맡았던 서재필(徐載弼·1864∼1951) 선생의 지도 아래 사회 참여적이고 민주적인 토론회를 전개하여 민중의 큰 호응을 이끌었습니다.
이들은 토론 내용과 결과를 널리 알리며 개화정신을 고취시킬 신문 발행의 필요성을 느껴 1898년 1월 1일 협성회회보를 창간했습니다. 자주독립정신을 고취하고 사회비판 기능을 갖춘 주간신문으로 시작해서 이후 일간지로 발전합니다.
1898년 4월 2일 제14호까지는 주간으로 발행하다가 회를 거듭할수록 큰 호응을 얻자 같은 해 4월 9일부터는 '매일신문'으로 제호를 바꿔 국내 최초의 일간이 됐습니다.
독립신문
매일신문보다 2년 앞선 1896년 창간된 독립신문은 격일로 주3회 발행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자주적인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말과 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주시경은 독립운동가 서재필을 만나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한글로 만들어진 '독립신문'을 창간 하였습니다.
매국노가 몇명이 있음 이승만 윤치호 친일수구 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