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 135도선은 우리 영토가 아닌 일본을 지나기 때문에, 한반도 위치를 고려해 변경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독도에서도 약 278㎞ 떨어져 있다.

 

우리 기준에 맞게 국토 중심부를 지나는 127도 30분 표준자오선에 맞춰 표준시를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여기에서 출발했다.

 

현재 표준시가 일제 잔재로 인식되는 것도 이런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UTC+9'를 표준시로 삼은 건 1912년 1월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는 해방 뒤인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이 일제 잔재 청산을 명분으로 동경 127도30분으로 바꿨다. 그러나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 뒤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국제관례를 이유로 시간대를 돌이켰다. 실제 6·25 전쟁 직후 이승만 정부에선 30분 차이가 나는 표준시를 썼다. 동경 127도 30분 표준자오선에 따른 결정으로, 현재 북한의 것과 같다.


한국의 서울 및 수도권을 기준으로 볼 때 경도는 동경 `126도 5분~127도 5분` 사이에 위치하는데 중간값 127도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경도 1도당 4분 정도의 시차가 있으므로 토쿄 시간과는 약 32분의 차이가 있다. 

 

그러다 1961년대 다시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삼는 법안을 만들어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왜 일본 식민 사상에 젖어 살아가고 있는건가? 말로는 친일청산 이라고 할뿐. 생활과 표준은 일본 기준에 맞춰 살고 있는것인가.





... 30분 단위 규정이 불편하다고?

이란(동경 52.5도, UTC+3:30),

아프가니스탄(동경 67.5도, UTC+4:30),

인도·스리랑카(동경 82.5도, UTC+5:30),

네팔(동경 86.25도, UTC+5:45),

- 네팔은 UTC+5:45라는 독특한 시간대를 사용.

미얀마(동경 97.5도, UTC+6:30),

오스트레일리아 중부(동경 142.5도, UTC+9:30),

캐나다 뉴펀들랜드(서경 52.5도, UTC-3:30).

 

.세종대왕이 만드신 해시계도 현재 127도 30분과 불과 2분 차이날 정도임. UTC+8:30은 조선시대때 세종대왕과 장영실 그리고 세종이 등용한 젊은 과학자들이 과학기구를 제작하고, 역법을 써서 산출해낸 시각이다. 이미 우리 고유의 시간이 UTC+8:30인데 일본과 박정희가 지정한 UTC+9:00이 우리 표준시라고 우기다니.. 혼란, 소모비용? 그럼 다른 나라들의 UTC+30분 시간들은 뭔가.

 

... 일본과 다까기 마사오 박정희가 바꾼 일본 기준시계. 세종대왕과 배재학당 이승만 초대 대통령 동경 127도 30분 표준자오선 기준이 더 합리적이다.

 

시간주권 회복! 국민청원!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214935



일제 잔재 청산

일제시대부터 일본에 의해 정해졌으며, 오늘 지금 이 시간까지 속절없이 이어져 온 것들에 대한 청산이 먼저이다.


1. 도로명 주소

기존의 지번주소가 일본 강점기의 잔재 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지금의 세종대로가 육조거리이고 통·반이라는 것이 사실상 도로명 주소입니다. 이를 일본 강점기 때 토지 수탈들의 목적으로 지번주소를 만든 것입니다. 


2. 지적도 측량 원점

토지 소재, 경계... 등을 통해 소유관계를 나타내는 지적도와 한국에서 제작되는 각종 지도는 모두 일본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그 기준이 되는 지점이 토쿄 미나토구 토쿄 타워 부근에 있는 소위 "일본 경위도 원점(토쿄 원점)" 이다.


일본은 1892년 경도와 위도의 기준점으로 정했고, 1910 년부터 조선에도 적용했다.  

각종 지도는 물론, 소재와 소유관계를 나타내는 국가 공식적인 토지대장이나 지적도의 측량 기준이 일본이다.


다행히 2006년국제표준 세계측지계를 적용한 새로운 원점인 "동해 원점"이 울릉도에 설치되었고, 독도에 세계측지대를 적용한 "지적위성기준점"이 설치되었다. 하지만 그러나, 

토지 소유권과 경계 등과 관련된 지적도는 분쟁의 소지가 있어 여전히 기존 "일본 경위도 원점(토쿄 원점)"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3. 서울 표준시 (Seoul Standard Time) 표준시간 문제

지금 한국의 표준 시간은 일제 시대부터동경 135도의 토쿄 시간(TST : Tokyo Standard Time)으로 정하였습니다.


1954년 3월 21일 이승만 대통령령에 의해 동경 127.5도 표준시로 환원되었는데, 1961년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뒤 국가 재건 최고 회의에서 그 해 8월 10일 다시 동경 135도로 변경된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한제국 시절 이승만 


대한제국 시절 협성회 회보와 독립신문 주필, 교육계몽운동으로는 독립협회 활동 등을 하면서, 왕정 폐지와 공화국 수립을 도모하였다는 반역의 죄목으로 옥살이를 하였으며, 독립정신을 저술하였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총리, 한성 임시정부와 각지에서 수립된 임시정부의 수반을 거쳐 1919년 9월 11일부터 1925년 3월 23일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직을 역임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외교위원부 위원장, 국무위원회 외교위원 등을 역임했다. 주로 미국에서 외교 중심의 독립운동을 벌였다.


일제 강점기 중반에는 미국 및 스위스 등을 무대로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는 한편 일본내막기를 저술하는 등 일본의 미국 침략을 경고하였으며 태평양 전쟁 이후 미군 OSS와 임시정부 간의 연결을 주선하였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공약한 1943. 11. 27. 카이로 선언의 배경에는 이승만의 집요한 외교노력이 있었고 그 결실이었다.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미국 체신청에서 발행한 태극기 모양 우표 발행에 크게 기여했으며, 항일 단파 라디오 방송 연설 등에도 참여하였다. 1945년 해방 후 조선인민공화국의 주석에 추대되었으나, 귀국 후 거절하였다.


초등학교 의무교육 도입으로 문맹률을 획기적으로 낮춘 점. 국민 학교 의무 교육제도 실시. 전국 만 7세 아동의 95.3%가 초등학교에 입학. 전문적 인재 육성을 위해 한국외국어대학교, 인하대학교, 배재대학교 등 많은 대학교를 세움. 그 결과 문맹률은 22%로 떨어짐.


지주가 독식하고 있었던 서민은 소작농에 불과했던 한국의 토지개혁. 1950년 3월에 농지개혁법을 단행하여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던 지주제를 혁파하고 농민들의 불만을 해소하는데 성공한다. 이 농민 불만 해소야말로 6.25전쟁 초반의 패전을 극복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인


이승만은 재임기간 12년동안 미국으로부터 일본과 수교를 맺으라는 수 많은 협박과 회유가 있었지만, 일본과의 수교조건으로 대마도 반환,  식민지보상 36억불 청구 등 사실상 일본이 받아 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함으로써 그는 끝끝내 일본과의 수교를 거부했다.


UTC+9'를 표준시로 삼은 건 1912년 1월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는 해방 뒤인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이 일제 잔재 청산을 명분으로 동경 127도30분으로 바꿨다. 그러나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 뒤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국제관례를 이유로 시간대를 돌이켰다. 실제 6·25 전쟁 직후 이승만 정부에선 30분 차이가 나는 표준시를 썼다. 동경 127도 30분 표준자오선에 따른 결정으로, 현재 북한의 것과 같다.


한국의 서울 및 수도권을 기준으로 볼 때 경도는 동경 `126도 5분~127도 5분` 사이에 위치하는데 중간값 127도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경도 1도당 4분 정도의 시차가 있으므로 토쿄 시간과는 약 32분의 차이가 있다. 그러다 1961년 박정희가 다시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삼는 법안을 만들어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왜 일본 식민 사상에 젖어 살아가고 있는건가? 말로는 친일청산 이라고 할뿐. 생활과 표준은 일본 기준에 맞춰 살고 있는것인가.


이승만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후 행적은 논란이 될만한 건 부정할수 없지만, 대한제국 시절의 행위는 이게 팩트이다. 이승만은 두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를 닮은 거인으로 비쳐지고 있다. 한민족의 독립과 번영의 기초를 다진 국부로 추앙 받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지나친 친미, 종미주의 경향과 한번도의 통일을 저해하고 민주주의를 압살시킨 시대착오적 독재자로 매도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