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는 옛날에 우리 계림에 예속되었는데 언제부터 왜인이 살게되었는지 모르겠다..(동지여지승람)
.대마도주는 동번으로 청하면서 우리나라에 신하로서 섬겼으며...(조선실록)
.대마도는 섬으로서 경상도의 계림에 예속 되었던바...(세종실록)
...조선 1557년에도 1860년에도 대마도가 경상도에 속한 우리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어리석은 정책이었던 국경선 일대의 섬을 비워둔다는 ‘공도(空島) 정책’으로 일본인들이 들어와 살게 되고 파벌정치에 빠져있던 조선이 알지 못하는 사이 우리영토가 정식적으로 일본의 영토로 일본이 선포한 것은 1868년 메이지 유신 때입니다. 대마도는 1868년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거쳐 1872년 나가사키 현에 편입되었다.
대마도는 맑은 날이면 부산에서 보일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다. 부산에서 남쪽으로 고작 5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고 본토인 후쿠오카에서는 그 세 배에 가까운 138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 거리로 보면 분명 우리나라의 영토가 되었어야 할 대마도가 일본 영토라니? 관리를 파견하고 백성을 이주하여 확실한 영토로 만들지 못한 선조들과 일제강점기에서 광복을 찾은 후 행한 우리 지도자들의 무능이 원망스럽다.
대한민국 영토 대마도를 찾아오자!!
고지도 두개를 비교하면 조선 1557년에도 1860년에도 대마도가 경상도에 속한 우리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어리석은 정책이었던 국경선 일대의 섬을 비워둔다는 ‘공도(空島) 정책’으로 일본인들이 들어와 살게 되고 파벌정치에 빠져있던 조선이 알지 못하는 사이 우리영토가 정식적으로 일본의 영토로 일본이 선포한 것은 1868년 메이지 유신 때입니다. 1868년이전 대마도는 조청일 모두 조선의 땅으로 표시했습니다. 하지만 우린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국사 교과서에 대마도란 단어는 단 한마디도 없죠. 없는 사실도 꾸며 만드는 일본의 역사와 비교하면 정당한 사실도 일본눈치를 보며 숨기는 우리 국사는 대조적입니다.
다음 아래는 세종2년(1420년)윤정월 기묘조 대마도주 도도웅이 조선 예조에 보고.한 내용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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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예조판서 허조의 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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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하가 성심으로 회오하고 신복이 되고자 포로를 송환 하며 예물을 진헌하면서 알리는 바가 상세하여 왕께서도 모두 이를 윤허하셨으니 한 섬의 복이로다. 대마도를 경상도에 예속 했으니 모든 보고는 반드시 경상도 관찰사에 알려서 시행하고 예조에 직접 전할수 없다. 잎으로는 족하가 친서한 서계를 가지고 와야 예접을 허락할 것이니 도장을 종씨도도웅환이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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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사람들이 살고 고려시대 말을 방목하던 대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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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6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 1765년에 편찬된 ‘여지도서’와 1822년에 편찬된 ‘경상도읍지’ 등에 면 대마도는 부산 동래부의 부속도서로 되어있으며 12세기말
일본의 대마도에 대해 기술된 '산가요약기’에서는 ‘대마도는 고려가 말을 방목하여
기른 곳이고 옛날에는 신라 사람들이 대마도에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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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원래 고구려을 거처 신라에 소속됐던 섬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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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가 우리의 땅이었기에 옛날 우리 지도에는 대마도를 일본 본섬보다 더 크게 그려넣었다. 또한 일본보다 대한민국에 매우 가까이 있다. 여기에 일본인이 살았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우리 조상중 경상도에 살던 일부가 대마도에 살았고 고구려와 신라가 다스렸던 영토이다. 그러나 고려시대 이후 중국 대륙쪽으로만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대마도 관리에 소홀해졌고, 그 틈을 타서 왜인들이 들어와 살게 되면서 일본 땅이 돼버렸다는 것.
일본 역대 장군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반쇼인(万松院)의 감나비(부도)는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사리탑으로 우리나라 의정부에 있는 무학대사 것과 닮았다.
바다에서 육지쪽으로 5개의 도리(문)를 세워 용왕의 신화를 연상케해주는 와타즈미신사의 뒷 숲에 있는 남근석도 일본 것이 아닌 우리 고유의 문화 유산. 대마도에는 또 우리 역사속의 인물들의 발자취도 진하게 남아 있었다. 그중에서도특히 대마도를 거쳐 일본 본섬을 왕래했던 조선통신사들은 끊을 수없는 인연을 갖고 있다. 1703년엔 우호사절로 부산을 떠났던 108명의 통신사들이 대마도를 바로 눈앞에 두고 모두가 조난당하기도 했다. 부산이 가깝게 보이는 한국전망대 옆에는 그 당시의 조선통신사들의 순국을 기리는 위령비가 서 있다.
구한말 면암 최익현 선생도 일본군에 의해 대마도 이즈하라에 연금당해 있던 중 단식으로 항거하다 순국했다. 그를 기리는 순국비는 백제 스님이 건너와 창건했다는 이즈하라시내의 스이젠지(修善寺)에 서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신음했던 조선 고종의 딸 덕혜옹주의 기구한 삶도 대마도에 뿌리가 내려져 있다. 1912년에 태어난 덕혜옹주는 쓰시마 도주인 쇼다케시백작과 정략 결혼을 했으나 가정생활이 원만치 못해 끝내 신경질환까지 앓고 이혼당했다. 이즈하라시 반쇼인에는 덕혜옹주와 대마도주의 결혼 기념비도 이들의 비극을 상징하듯 쓰러져 있으며, 대마역사민속자료관 입구에는 덕혜옹주의 남편이었던 대마도주가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이밖에도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사고마을엔 신라때의 충신 박제상의 충절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으며, 백악산 고려산 등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지명들도 많다.
대마도를 조선 영토로 표시한 1592년 일본‘조선국지리도-팔도총도’/조선DB
프랑스에서 작성한 1734년 당빌조선지도이다. 빨간색이 우리영토(대마도포함)
독도.대마도 포함된 조선 고지도, 이 지도는 1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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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옛날에 우리 계림에 예속되었는데 언제부터 왜인이 살게되었는지 모르겠다..(동지여지승람)
.대마도주는 동번으로 청하면서 우리나라에 신하로서 섬겼으며...(조선실록)
.대마도는 섬으로서 경상도의 계림에 예속 되었던바...(세종실록)
고지도 두개를 비교하면 조선 1557년에도 1860년에도 대마도가 경상도에 속한 우리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어리석은 정책이었던 국경선 일대의 섬을 비워둔다는 ‘공도(空島) 정책’으로 일본인들이 들어와 살게 되고 파벌정치에 빠져있던 조선이 알지 못하는 사이 우리영토가 정식적으로 일본의 영토로 일본이 선포한 것은 1868년 메이지 유신 때입니다. 1868년이전 대마도는 조청일 모두 조선의 땅으로 표시했습니다. 하지만 우린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국사 교과서에 대마도란 단어는 단 한마디도 없죠. 없는 사실도 꾸며 만드는 일본의 역사와 비교하면 정당한 사실도 일본눈치를 보며 숨기는 우리 국사는 대조적입니다.
1. 조선 예조판서 허조의 통보
족하가 성심으로 회오하고 신복이 되고자 포로를 송환 하며 예물을 진헌하면서 알리는 바가 상세하여 왕께서도 모두 이를 윤허하셨으니 한 섬의 복이로다. 대마도를 경상도에 예속 했으니 모든 보고는 반드시 경상도 관찰사에 알려서 시행하고 예조에 직접 전할수 없다. 잎으로는 족하가 친서한 서계를 가지고 와야 예접을 허락할 것이니 도장을 종씨도도웅환이라 하라.
2. 신라사람들이 살고 고려시대 말을 방목하던 대마도
1486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 1765년에 편찬된 ‘여지도서’와 1822년에 편찬된 ‘경상도읍지’ 등에 면 대마도는 부산 동래부의 부속도서로 되어있으며 12세기말
일본의 대마도에 대해 기술된 '산가요약기’에서는 ‘대마도는 고려가 말을 방목하여
기른 곳이고 옛날에는 신라 사람들이 대마도에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3. 대마도는 원래 고구려을 거처 신라에 소속됐던 섬이었다고 한다.
대마도가 우리의 땅이었기에 옛날 우리 지도에는 대마도를 일본 본섬보다 더 크게 그려넣었다. 또한 일본보다 대한민국에 매우 가까이 있다. 여기에 일본인이 살았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우리 조상중 경상도에 살던 일부가 대마도에 살았고 고구려와 신라가 다스렸던 영토이다.
배재학당 졸업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재임기간 12년동안 미국으로부터 일본과 수교를 맺으라는 수 많은 협박과 회유가 있었지만, 일본과의 수교조건으로 대마도 반환, 식민지보상 36억불 청구 등 사실상 일본이 받아 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함으로써 그는 끝끝내 일본과의 수교를 거부했다.
이승만 동상은 지난 1987년 2월 당시 배재대 졸업 동문들이 기증해 세웠다. 많은 철거 논란이 있었지만 배재대학교 측은 대학총동창회, 총학생회와 함께 지난 2008년 6월 5일 우남관 앞에 다시 동상을 세웠다.
배재대학교 아펜젤러대학 학생회(회장 권혁주) 소속 15명이 22일 독도를 방문해 한・중・일 간의 영토와 관련돼 극도의 긴장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독도 지킴이 활동의지를 다졌다.
독도사랑협회, '독도사랑 대학생 SNS 기자단' 발대식
기자단으로 선발된 대전 배재대학교 이승재학생(사이버 보안학과 1년)은 “독도 기자단으로 선발되어 너무 기쁘고, 독도를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까지 알리는데 최선을 다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출처 : 신아일보(http://www.shinailbo.co.kr)
면, 현 정부는 우리땅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조차 일본의 눈치를 보느라 독도가 빠진 한반도기를 사용해 국민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이외에도 일본의 거듭된 독도 다케시마 드립질에 짜증이 밀려온다. 왜 정작 우리 영토인 대마도에 영유권을 주장도 못하면서 일본에 끌려 다니고 있는지 궁금할뿐이다. 일본 독도도발, 고교 '영토왜곡 교육' 의무화 3년 앞당긴다. 해당 사건에 대해 외교부나 교육부는 해당 사건에 대한 입장 표명만... 독도 강치복원 사업은? 대마도 한국영토 주장은?
대마도, 독도는 우리땅. 우리는 대한민국인 (feat 배재대)
"투키디데스의 관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2500년 전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역사를 둘러싼 논란을 이렇게 적었다. “서로 다른 목격자들은 같은 사건에 대해 다른 진술을 내놓았다. 이들은 어느 한쪽이나 상대편을 편들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불완전한 기억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세계 곳곳에서 역사를 공유한 이웃 나라 간의 갈등과 대립이 여전한 것을 보면 투키디데스의 관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라쇼몽 효과 (Rashomon Effect)
동일한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으로 해석하면서 본질 자체를 다르게 인식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골라 ‘취사선택’한다는 의미로도 쓰는데, 그래서 현재의 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재구성하는 기억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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