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형 박상희는 1946년 10월 5일 대구공산폭동 당시 경찰에 의해 사살되었다. 박상희는 일제파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선상지국장 겸 주재기자로 일 했었던 인물이다.
식민지 시대 충성혈서를 쓰고 일본군 장교가 되어 연합군에 대항했던 박정희는 일본제국이 패망하고 해방이 되자 공산주의 사상에 매료되어 남조선 노동당에 가입하여 한반도 공산화를 위해 좌익인사로 활동한다. 1948년 10월 20일 새벽 여수 주둔 14연대가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박정희는 11월 11일 참모총장 채병덕 대령의 긴급명령으로 체포되었다. 빨갱이 색출작전은 만주군 헌병대 출신 김창룡 중령이 총지위하여 1천 명이 넘는 군인들이 끌려와 몽둥이 구타, 물고문, 전기고문, 고춧가루고문, 성기고문 등 잔혹한 고문을 당했다.
남로당 군사부 총책임자는 박정희였고 군사법원에서 사형에 처할 위기에 처하자 일본육군사관학교, 만주군관학교 출신인 채병덕 사령관, 이응준 육군참모총장, 백선엽 정보국장, 김정렬 사관학교교장, 김창룡 특무대장은 동료인 박정희를 구하기 위해 힘을 합쳤다.
박정희는 동료들을 대거 밀고하여 사형을 면하고 1949년 1월 18일 고등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과 파면을 선고받았다. 죄목은 남로당 군사총책으로 공산주의 활동과 군사반란 주도 혐의였다. 하지만 일본군 장교 동료들의 도움으로 형 집행을 면제받고 육군본부 정보국 전투정보과의 문관으로 복직하게 된다.
박정희는 살아남기 위해 철저하게 동료들을 배신하여 조직과 부하들을 몽땅 팔아 죽이고 인간적 가치와 신뢰를 가차없이 버렸고 권력을 향한 집착은 극에 달하였다.
그리고 1961년 5. 16 군사쿠데타로 국권을 찬탈하고 절제 전제체제를 확립하여 영구집권을 획책하며 공포정치를 통해 신민들 위에 황제로 군림하다가 중앙정보부와 미 CIA에 의해 제거된다.
공포정치가 말이 아니였겠구만 전기 ㅅㄱㄱ문 별별고문을 다했네 죽은 사람들만 불쌍하지이 ㅠ.ㅠ
그네아버지 박통도 고문피해자였는데 그네만 몰랐던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