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본인이 직접 한센병을 경험하고 극복한 한나라당 임두성 의원이 2008년 8월 15일 34회 기일을 맞는 육영수 여사 영전에 전국 한센인들을 대표하여 바친 편지이다. 임 의원이 회장으로 있는 한센인 인권복지 자활단체인 사단법인 한빛복지협회 회원들은 매년 8월 14일 국립묘지 참배 추도회를 열고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미인이라 해도 여러 가지 장식품으로 아름다움을 돋보이려고 하지만 목련은 아무런 꾸밈없이 그리고 잎새 한 장의 도움 없이 앙상한 가지 꼭대기에 꽃만 홀로 피어 은은한 향기를 발산할 뿐 아니라 꽃잎이 지는 것을 보면 때로는 외경스럽기까지 하다.
이 글은 어머님이 좋아하시던 백목련을 보시고 어머님이 직접 쓰신 글입니다. 그래선지 어머님 생존 시에나 돌아가신지 34년이 지났음에도 지금도 우리 국민들은 어머님을 백목련에 비유하고 영원한 국모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그토록 좋아하셨던 백목련과 같이 항상 밝고 티없는 미소와 청아한 모습으로 우리 한센인들을 돌보아 주셨습니다. 부모형제와 고향을 찾을 수도 없고 사람들 앞에 나설 수도 없었던 우리들 가슴 속에 따뜻한 모정을 심어주셨고 용기와 희망을 안겨주셨습니다. 우리들 가슴에 자애롭고 자상한 어머니로서 조금도 아낌없이 정을 나누고 기쁨과 슬픔을 같이 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지금은 너무도 먼 곳에 계십니다. 그래서 더욱 그립습니다.
그리운 만큼 세월이 너무나 빨리 흘러갑니다. 어머님께서 비명에 가신지 어언 34년. 그동안 세상은 변해 헐벗고 굶주리던 국민들이 배고픔에서 해방 된지는 이미 오래 되었고 대한민국 구석구석 어디를 둘러보아도 풍요와 여유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지금은 어머님께서 그토록 바라시던 사회 참여와 보통사람으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머님, 올해는 아주 특별한 소식을 가지고 어머님 앞에 섰습니다.
지난 4월 9일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센인 대표가 당당히 국회의원에 당선 되었습니다, 천대와 멸시의 대명사, 우리 한센인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이 놀라운 소식을 어머님 영전에서 알려드릴 수 있어서 오늘은 너무나도 기쁩니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우리 한센인들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없는 존재였는데 이제 어머님이 가시고 난 34년 후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된 것입니다. 이는 사람으로도 살 수 없었던 우리들을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어머님의 은덕이 아니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특별한 소식을 이렇게 어머님 영전에서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어머님, 기억이 나십니까? 1970년대 초, 정착마을을 이루려던 우리들은 우리가 거주하려는 것을 막으려는 지역주민의 반대 때문에 청와대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마을의 사정과 지역주민들의 강력한 반대 상황을 적은 이 편지의 골자는 우리 마을에 영부인님이 한번만 다녀가시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영부인님께서 꼭 우리 한센마을을 방문하시겠다는 답장을 보내주셨죠. 우리는 주변 동네에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대통령 영부인께서 우리 마을에 오시기로 했다.”
그랬더니 주변 동네 주민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들의 정착마을 건설에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국정에 바쁘신 어머님께서 약속한 날짜에 오시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이제 지역 주민들의 방해는 더욱 기승을 부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비아냥거렸습니다.
“대통령 영부인이 어디 할 일이 없어서 너희 같은 문둥이들을 찾아오신단 말이냐?”
이들은 우리가 거짓말을 했다고 더욱 무서운 기세로 우리를 몰아내려 했습니다. 사정이 더욱 급해진 우리는 이 사실을 적은 편지를 급히 청와대로 보냈지요. 그리고 드디어 우리들의 구세주이신 어머님께서 헬리콥터를 타시고 우리 마을에 오셨습니다.

▲임두성 의원이 말하는 그때 그 장면. 1972년 9월 6일 전북 익산의 한센인 정착마을 상지원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육영수 여사를 전 주민이 배웅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1977년 8월 14일자 기사에서 “그분은 모여든 사람 중에서도 아주 심한 상처를 남기고 있는 환자를 골라 일일이 악수하시고 어루만져 주셨다”는 손성금 여인(당시 45세)의 회고담을 보도했다. ⓒ 국가기록원
이로써 모든 상황은 정리되었습니다. 지역 주민들은 어머님께서 서로 도와주며 화합해서 잘 살아달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다시는 우리들의 정착마을 건설에 대한 방해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곳에 우리들의 보금자리를 만든 뒤 안심하고 삶을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 우리들의 정착을 그렇게 반대하던 이웃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우리들을 돕는 위치로 바뀌어 졌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죠.
뜨거운 여름, 아마 요즘 같이 삼복 더위였나 싶습니다. 강원도 어느 한센인 마을을 방문하신 어머님께서 목이 마르셨던지 타고 오신 차에서 내리자마자 마침 우물가에 있던 마을의 한센인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바가지를 가리키며 직접 떠 마시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 여자가 어머님께 결례를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이 이미 한센병 후유증으로 뭉그러진 상태였으므로 그 손으로 물을 떠 드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머님께서는 전혀 개의치 않으시고 물을 떠 달라 하시고 그 물을 맛있게 드셨습니다. 그리고 몇 걸음 더 가시다가 감자를 쪄서 먹고 있던 한센인들 옆에 가 앉으시며 배가 고프니 감자를 하나 달라고 하시며 그것을 맛있게 드셨습니다. 이런 장면을 직접 목격한 수행원들과 지역 공무원, 그리고 지역 주민들은 너무도 놀랐습니다.
그들은 그때까지 우리 한센인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으며 짐승보다도 더 못하게 여긴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기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도 오지 못하게 하여 끝내 닭장을 교실로 한 분교를 다니게 했던 사람들인데 대통령 영부인께서 직접 찾아오시고 한센인들과 같이 먹고 마시며 뭉그러진 손을 만지고 등을 쓰다듬어 주시는 현장을 보면서 그들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 후 그들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우리를 이웃으로 대했고 우리와 같이 버스를 타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우리 한센인들의 인권은 급신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이제 한센인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한센인이 국회의원이 된 것은 한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에서도 처음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이 파격적인 현실이 아직도 잘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어머님이 살아 계시면 얼마나 좋아하실 일입니까?
그래서 저희는 아마도 생전에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던 어머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선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땅에서 너희를 도울 수 없으니 이제 너희가 국회의원이 되어 한센인 문제를 직접 해결하라”는 뜻으로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니신지요?
사랑하는 어머님.
그런데 어머님의 그 은덕으로 우리 한센인이 국회의원이 될 정도로 이 땅은 인권국가도 되었고 세계 11위의 경제통상국가가 되었지만 여전히 이 시대 최고의 화두는 경제 살리기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 국민의 절대적 관심은 잘 먹고 잘 사는 것, 그것뿐입니다.
보릿고개를 이기지 못해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절이 불과 40여 년 전이며, 쌀이 귀했던 70년대 박정희 대통령께서 직접 혼식을 하시며 분식을 장려했던 시절도 겪어왔는데 지금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쌀밥을 마음껏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었어도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인 경제 살리기가 화두인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어머님이 그립습니다. 경제가 정말로 어려울 당시 내핍을 솔선수범하며 근면의 모범을 손수 보여주신 故 박정희 대통령과 영부인이신 어머님의 그 애국애족이 그래서 더욱 그립습니다.
내핍과 근면의 모범을 보이신 대통령과 영부인의 영향을 받은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인해서 오늘의 발전된 대한민국이 건설되었고 우리 한센인들까지 이제는 사람답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어머님 생존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경제성장을 이뤘음에도 아직 어렵다며 경제타령을 합니다. 그리고 내핍과 근면은 그 단어 자체도 없어져 버린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님.
어머님이 가신 지 34년이 된 2008년 대한민국은 엉뚱하게도 미국산 쇠고기 때문에 매우 시끄럽습니다.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는 사태입니다.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는 것이 소원인 국민들이 살았던 나라, 초등학교 졸업자 50% 이상이 ‘밥’ 때문에 공부보다는 일자리를 찾아 취직을 해야 했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인데 지금은 진학률이 거의 100%요 대졸자 미취업자가 100만 명이라는 말을 하는 나라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정말 일할 곳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마음에 드는 일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좋은 일자리만 찾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부지런히 일해서 부자가 되기보다는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투기로 돈을 번 사람들이 더 많은 사회가 된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어머님이 더욱 그립습니다. 지도자가 더욱 근면하고 내핍하면서 어려움을 이기자고 국민들을 리드했던 그 리더십이 정말 그립습니다.
국민의 양심을 깨우고 진실과 정의, 절약과 근면을 실생활로 보여줌으로 국민 통합에 동참하게 했던 지도자가 매우 그립습니다. 그러나 잘 될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근본적으로 근면하며 성실하기 때문에 지금의 어려움은 금방 극복될 것입니다. 지도자의 리더십이 ‘원칙과 정도’ 안에서 행사된다면 우리 국민들은 이런 지도자를 따르면서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낼 것입니다.
그 희망으로 저희들은 다시 힘을 낼 것입니다. 그래서 내년 편지에는 더욱 기쁘고 희망찬 내용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머님, 그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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